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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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대인 학살이냐? 아우슈비츠냐?라고 어떤 사람은 빈정거린다.
그것은 기막히게 또 정신대냐? 그 과거에 좋지도 않은 얘길 뭐하러 자꾸 하냐?는 말과 너무나 똑같다.
후자의 말은 내가 재직하던 학교의 모 교장에게서 직접 들었던 말이다.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 귀막고 눈먼 인간들에게 묻고 싶다.
제대로 들어봐준적이 한 번이라도 있냐고?

쁘리모 레비는 우리에게 전혀 익숙치 않은 이름이다.
이탈리아 사회에 정착해 섞여 산지가 워낙 오래되어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건 쌍커풀이 있냐 없냐의 차이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던 청년이 그다.
그 차이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탈리아 북부에 진격한 독일군은 바로 그 사소한 차이 때문에 이 젊은이를 아우슈비츠로 끌고 간다.
아우슈비츠라는 逆유토피아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에 속했다.
더더욱 운좋게도 돌아갈 곳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많은 유대인과는 달리 그는 정든 고향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후의 그의 삶은 자신이 겪은 것을 증언하기 위한 삶이었다.
그것은 복수도 아니었고 원한도 아니었다.
그의 고민은 늘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데 가있었다.
그는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어했다.
이해하지 못하면 미워할수도 벌을 줄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인간의 내면, 문화 속 어디에서 그런 잔혹함이 터져 나올수 있는지를 알고싶어했다.
그것만이 진정한 아우슈비츠의 끝을 낼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끝내 그는 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
아우슈비츠는 사실 그 이전 제국주의 국가들이 모든 식민지에서 행하던 폭력의 반복이었다.
다만 유럽밖을 대상으로 하던 폭력이 유럽 내부로 향해졌다는 차이일뿐....
또한 그러한 제국주의적 침략과 인간말살은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아우슈비츠는 끝나고 싶어도 끝날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아우슈비츠라는 개념은 이제 오히려 새로운 폭력의 상징이 되기까지 한다.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모든 폭력에 대해 정치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말도 안되는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폭력의 가해자에게 보편적인 인간평등의 개념은 구호일뿐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는 다르다.
인간이하의 극한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바로 그 개념을 구원할 역사적 책임까지 떠맡아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인간이하로 떨어졌다 살아남은 경험은 평생의 악몽이 되어 그를 따라다닌다.
인간이하를 감내하고 저항을 외면함으로써 살아남은 자의 수치심. 죄의식.....

이런 피해자들에게는 어쩌면 그 악몽의 기억이 오히려 원히 생생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고 사랑을 하고 술을 먹고 하는 일상이 오히려 꿈결같아 두렵지 않을까?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그렇게 학살하고 있을때에도 어떻게 다른 한편에서는 일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
그런 의문속에서 사는 이들의 삶이 늘 위태로울 것은 뻔한 일이다.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질문의 대답.
단순히 학살에 가담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냈던 국민국가 전체의 문제점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방관과 무지 역시 역사적 책임을 져야하는 죄악임을 인지하는것.
그 어느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시대.
몇몇 전범의 처벌과 재판으로 모든 속죄가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는 시대.
그것을 자신의 면죄부로 활용해버리는 사람들의 무신경함.
그럼으로써 태연하게 똑같은 죄악을 되풀이하는 시대
저자인 서경식씨가 쁘리모 레비를 통해 보여주고자하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 아닐까?

나는 가끔 내가 대한민국인이라는게 부끄럽다.
피해자에서 어느 순간 가해자로 돌변한 내 나라 사람들을 볼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공연한 무시와 학대는 또 아우슈비츠냐? 또 정신대냐?라고 묻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증언에 눈돌리고 공감하지 않는 사회의 무서움이다.
서경식씨는 글은 그러한 사회에 제발 들어달라고 애원하는 듯하다.
제대로 정말 제대로 들어보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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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7-01-0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정말....제대로 들어보도록 하겠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쩌면...맨날 하던 얘기가 아니니까 '뉴스'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수많이 킬해버린 많은 사연들도 제대로 들어보고 제대로 전해야했을텐데...우리는 늘 후끈 달아오른 오늘 얘기에만 관심을 둡니다. '들어라, 제발 들어라!'라는 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각인해놓아야될텐데...^^;;

바람돌이 2007-01-0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세기를 증언의 시대라고 하는데 그만큼 폭력이 심했다는 거겠지요. 우리가 그런 증언들에 좀 더 진지하게 귀기울이고 생각한다면 그런 폭력들이 좀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가 생각해봤습니다.

글샘 2007-02-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오랜만에 제값주고 샀습니다.^^ 느긋하게 읽어봐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07-02-1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경식씨의 글은 천천히 음미하며 사색하며 읽기에 딱 좋은 것 같아요. 많은 고민을 던져준 책이었습니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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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가 비교 불가능한 '유일무비'의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우슈비츠'는 '비교가능'한 사건이다. 비교 후에 도출된 대답은 그것이 과거 인간 또는 인간사회의 제도가 보여줄 수 있었던 냉혹함과 잔인함의 극한적 실례라는 것이다.
비교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누가 어떤 동기로 비교하는가일 것이다. 내가 '아우슈비츠'와 한국의 감옥을 상상하면서 관계지은 것은 '아우슈비츠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는 식의 언사로 나찌의 범죄를 상대화하려는 시도에 가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감옥이 아우슈비츠보다 낫다는 등의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거기에서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유일무비'하기 때문이다.-138쪽

저항의 의지조차도 전면적으로 파괴된 굴욕의 기억. 자신은 '카인'이라는 자기 고발. 증인으로 자신이 적격한지를 둘러싼 의혹(하지만 궁극적으로 '진정한 증인'은 죽은 자이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자기 자신도 인간이라는, 수치심을 느껴야 할 종족의 일원이라는 생각..... 이렇게 몇겹으로 쌓인 수치의 감각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어가자 쁘리모 레비는 자신의 몸은 '심연의 바닥'에 내던진 것일까?-179쪽

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가 '인간이라는 수치'에 시달려야 했을까?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가해자와 수치까지도 피해자가 고스란히 받아서 시달려야 하는, 이 부조리한 전도가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의를 실천하는 고덕한 성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에 희생된 까닭에, 그 사상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대치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도 물론 '인간'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 번 파괴된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려고 하는 한, '인간'이 저지른 죄는 어김없이 그들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181쪽

나는 '아우슈비츠'가 단순하게 우리에 대한 도덕적 경종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근대에 기인하며, 지금도 현실 그 자체에 내재한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는 '일부 인간은 인간이하'라고 하는 사상, '인간은 비인간이다'라는 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한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192쪽

아렌트는 그 후에 쓴 <집단의 책임>이라는 논문에서 '죄'와 '책임'의 개념을 명확히 구별한다. 그녀는 "우리 전부에게 죄가 있다"라는 호소가 현실에서는 실제 죄를 지은 자를 무죄방면하는 데 일조할 뿐이었다고 말한다. '죄'는 법적 개념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과 관련된다." 그와 다르게 정치 공동체의 성원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할 , 정치적 의미에서의 '집단적 책임'이 있다. 바꿔 말하면 '독일인'이라는 집단 중에서 '죄'를 지은 개인은 있지만 '독일인' 전체에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인 전체의 죄'라는 생각은 오히려 죄를 지은 개인을 은닉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독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독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행위에 '집단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211쪽

증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증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편'의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그로테스크한 것은 '이쪽'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인간'이라는 이념이 보편적으로 공유된 단순 명쾌한 세계가 아니다. 단절되고 금이 간 세계다. 여기에서 '인간'이라는 말은 단절을 숨기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단절 속에서 온몸으로 떨쳐 일어난 증인들이 '인간'의 재건을 위해서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편'의 사람들은 보신이나 자기애때문에, 천박함과 나약함 때문에, 상상력의 빈곤함과 공감대의 결여 때문에 증인들의 모습을 바로 보지않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장 아메리도 쁘리모 레비도 자살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7년 12월 16일 이 세상을 떠났다. 폭력의 세기를 증언한 산증인들은 전 세계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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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만끽하고 있다.
아침이면 옆지기는 이순신 출근을 한다.
"나의 출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마라...." ^^;;
느지막이 일어나면 두녀석은 먼저 일어나 집을 어지럽히며 놀고 있고...
일단 늦은 아침밥을 해먹이고(그전에 두녀석은 알아서 간식을 챙겨먹고 배고픔을 해결한다.)
그러고나면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고...
요즘은 용돈 200원땜에 두 녀석이 너무나도 청소에 협조적이다. ^^

그러고는 옆지기 퇴근할때까지 아이들과 간식 먹어가며 뒹굴거린다.
같이 책도 비디오도 보고, 책도 읽어주고, 온갖 원하는 방법으로 놀아도 주고
가끔은 컴퓨터 인형놀이 게임도 허용해주고....
옆지기 퇴근하면 저녁해서 먹고 아이들 목욕시키고 9시만 되면 아이들 재운다.
그러고 나면 자기 전까지 오로지 나의 자유시간!!
별로 하는 일이 없으니 밤시간은 무지 길다.
보통 새벽 3시까지 하는 일이라고는 커피마셔가며 서재에서 놀고 책보고.....
천국이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옆지기가 결혼식갔다가 술마시고 늦게 오는 바람에 다른 평일과 똑같았다.
덕분에 일요일을 혼자서 즐긴 죄를 물어 지금 소소한 심부름을 시키면서 (귤 갖다줘, 커피 타줘 등등)
룰루랄라 이러고 있다.
그래도 내일은 날이 좀 풀리면 집안에서만 있기는 그러니 아이들 데리고 집앞 공원에라도 나가봐야지...

내 직업이 제일 좋은게 바로 이거다.
방학때는 아이들과 온전히 같이 있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고등학교의 경우는 전혀 아니올시다지만....
물론 이것땜에 교사라는 집단 전체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항상 내가 궁금한 것은 무엇이 진짜 올바른가 하는 것이다.
내가 누리지 못하기에 남이 누리는 것도 억울해 억울해 하면서 빼앗아야 하는건지
아니면 이런 여유의 시간을 인간다움의 시간을 같이 누리기 위해 같이 싸워야 하는건지....

내가 원하는건 후자인데 사람들은 항상 전자밖에 생각하지 않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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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08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들도 학생 때는 방학을 누렸는데 그것도 많이 잊는 것 같아요. ^^

2007-01-08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1-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학생때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때는 누구나가 평등하게 누리잖아요. 근데 사회인이 되고나면 대한민국에서 교사 이외에 이렇게 휴가를 길게 가질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러니 맘이 상하는것도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 다만 그것이 모두가 인간적인 여유를 같이 가져보자는 즉 같이 살자는 쪽이 아니라 나 못살겠으니까 너도 죽어봐라 하는 억하심정으로 표현되는게 안타까울 뿐이죠. 교사에게 방학은 단순히 논다기보다는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다음학기 수업을 준비하고 하는... 문제는 이런 재충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라는거죠. 근데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니....
속삭인님/저도 그냥 푸념일뿐입니다. 연수받으신다고 고생하시겠어요. 저는 연수가 워낙 체질에 안맞아서....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 대비 결과물이 영 시원찮더라구요. ^^

전호인 2007-01-0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해 보이시네요.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요, 남 의식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역지사지인 것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선은 자기와 다르니까 비판부터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보니까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07-01-0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위로의 말씀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역지사지 좋은 말이지요. 저도 새겨들으야 할 말 같아요. 감사합니다. ^^

클리오 2007-01-0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람돌이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지향해야 할 방향이 노동의 안정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실제 마음은 그러기 힘들더라도 주장이라도 세칭 '철밥통'을 지지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근데,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기 쉽지 않더라구요. 아! 모든 부분에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기란, 얼마나 힘든지요.. 또 하나 덧붙이자면, 흔히 교사에 대해 안짤리고/방학있고/ 정시퇴근하는 걸로 좋다고 말하면서(혹은 비아냥 거리면서) 월급 적어도 감수하라고 말하는데, 정작 자신들이 교사 코스를 밟으려하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도 참 아니러니하죠. 또한 고등학교에 근무하다보니 실제로 그렇게 정시퇴근, 방학의 여유가 있는 교사가 그리 많지도 않더라구요... 그렇다고 뭐 그런 이야길 일일이 하기도 참 짜잔한게 교사의 일의 특성인지라... 가끔 친구들과 만나면 맘 상할 때가 많아요.. --;

바람돌이 2007-01-0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세상에서 자기만 힘들다고.... 너는 좋겠다고 하는 사람과는 말하기가 싫어요. 속으로 니가 와서 한 번 해봐라 싶지만 뭐 하나 마나 하는 말이니 삭이고 말죠. 세상에 쉬운 일은 없잖아요. 정직하면서 쉽게 돈 벌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어떤 직업이든 자신이 그속에 들어가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어려움들이 산적해있을텐데.... 이 얘기는 길게 하면 우울해지죠? ㅎㅎㅎ
 

인터뷰어  그날 아침의 사건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토모야시   저는 제 딸아이 마사코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딸애는 일하러 나가는 길이었죠. 전 친구를 만날 예정이었고요. 그때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전 마사코에게 집으로 가겟다고 했어요. 그애가 말했죠. "전 사무실에 가봐야겠어요." 전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면서 경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렸죠.
침구를 갰습니다. 벽장도 정리하고요. 물걸레도 창문도 닦았지요. 그 때 번쩍하는 섬광이 일었어요. 처음에는 카메라 플래시이겠거니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소리지요. 섬광이 눈을 찔렀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주변 창문들의 유리가 죄다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조용히 하라고 쉿 하실때와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전 서있지 않았어요. 다른 방으로 날아가 있었답니다. 제 손에는 아직 걸레가 쥐어져 있었지만, 이젠 바싹 말라 있었어요. 그때 머릿속에는 온통 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웃 사람 한 명이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꼴로 서 있더군요. 피부가 몸 전체에서 벗겨져 내리고 있었지 뭡니까. 피부가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었다니까요. 저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었지요. 그는 너무나 기진맥진한 나머지 대답도 못했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사방을 두리번거렸어요. 가족을 찾는구나 싶었어요. 저는 생각했지요. 가야 해. 가서 마사코를 찾아야 해.
저는 신발을 꿰어 신고 공습 대비용 두건을 챙겼습니다. 기차역으로 향했지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와 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구궁 오징어 비슷한 냄새가 났어요. 저도 혼비백산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가봅니다. 사람들이 바닷가로 쓸려 올라온 오징어처럼 보였으니 말입니다.
한 어린 소녀가 저를 향해 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애의 피부가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마치 밀랍같았습니다. 그 애는 나지막이 중엉거리고 있었어요. "엄마, 물, 엄마, 물" 전 그 대가 마사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저는 그 애에게 물을 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마사코를 찾아야 했어요.
저는 히로시마 역까지 내내 달려갔습니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요. 어떤 이들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누워 있었어요. 그들은 어머니를 찾으며 물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저는 토키와 다리로 갔습니다. 딸의 사무실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했거든요.

인터뷰어   버섯 구름은 보셨습니까?

토마야시  아뇨 구름은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어  버섯구름을 못보셨다고요?

토마야시  버섯구름은 보지 못했습니다. 마사코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인터뷰어   하지만 구름이 도시 전체를 뒤덮었는데요?

토마야시  딸애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니까요. 사람들이 저에게 다리를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 딸이 집으로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니기쓰 신사까지 왔을때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뭔가 싶었죠.

인터뷰어  검은 비를 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토모야시   전 집에서 딸을 기다렸습니다. 유리는 다 깨지고 없었지만 창문을 열어두었죠. 밤새 뜬눈으로 딸애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그 애는 돌아오지 않았지요. 다음 날 새벽 6시 30분쯤 이시도씨가 찾아왔습니다. 그이의 딸도 우리 애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그는 마사코의 집이 어디냐고 큰 소리로 왜치고 있었습니다. 전 밖으로 달려나갔지요. "여깁니다. 여기예요!" 이시도 씨는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지요. "발리요! 옷가지를 좀 챙겨서 따님한테 갑시다. 지금 오타 강 강둑에 있어요."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지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뛰었습니다. 토키와 다리에 닿자, 땅바닥에 군인들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히로시마 역 주변에서는 더 많은 시체를 보았습니다. 7일 아침에는 6일보다 더 많았지요. 강기슭에 갔더니,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나는 계속 마사코를 찾아다녔습니다. 누군가의 외마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귀에 익은 목소리였어요. 나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몰골을 한 딸애를 찾아냈습니다. 그 애는 요즘도 그런 모습으로 내 꿈속에 나타난답니다. 그 대가 말했어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나는 딸애에게 미안하다고 했지요. "최대한 빨리 온거란다." 거기에는 우리 둘뿐이었어요. 어떡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전 간호사가 아니었으니까요. 딸애의 상처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끈적끈적한 누런 액체가 고여 있었습니다. 저는 딸애를 닦아주려고 했지만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어요. 구더기들 천지였는데도 그것들을 닦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손으로 일일이 구더기를 집어내는 수밖에 없었지요. 딸애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오, 마사코, 아무것도 아니다."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홉시간 후, 딸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인터뷰어   그동안 내내 따님을 팔에 안고 계셨습니까?

토마야시   네. 제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딸애가 말했어요. "죽고싶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넌 죽지 않을 거다." 그랬더니 딸애가, "집에 가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렇지만 그 애는 고통스러워하며 계속 울부짖었습니다. "어머니."

인터뷰어   이런 얘기를 하신다는 것이 참으로 힘드실 겁니다.

토모야시    여러분의 단체가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꼭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애는 제 품안에서 눈을 감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요" 죽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군인들이 어떤 제복을 입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좋은 무기를 가졌는가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봤던 것을 모두가 볼 수만 있다면, 다시는 전쟁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중 258쪽-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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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전쟁의 고통이 또는 핵의 고통이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해방이었던 히로시마 원폭투하가 인류에게는 얼마나 큰 재앙이었는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건 참 힘들다.
워낙에 잔인한 장면에 길들여져서였을까?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에서는 아이들은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한다.   때로는 핵폭탄 떨어뜨리면 돼요라는 말을 농담으로 삼기도 하고....
내년 수업 자료에 포함시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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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08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에 이런 내용도 나와 있군요. 아........ㅠ.ㅠ

바람돌이 2007-01-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심글은 아니고 주인공 오스카의 학교 발표문이에요.

rosa 2007-01-1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자료..란 말에 눈이 번쩍 뜨여 혹시 참고가 될까 해서 몇 줄 적습니다.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사망한 사람들 가운데 열 명 가운데 한명이 조선사람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합천에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이 있다는 것, 원폭피해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2세,3세가 여전히 한국땅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함께 얘기해주면 어떨까요?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한국의 히로시마>란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바람돌이 2007-01-12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osa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국의 히로시마>란 책은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헤바 2009-04-14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은 왜 그래 다른 인간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지 모라겠어요
도대체 줌졌던 그 모든 사람은 어떤 죄를 지절렀어요?
참 인간은 그 비인간적인 행동을 어떻게 하는 지 이해가 통 안 가요

바람돌이 2009-04-14 22:32   좋아요 0 | URL
평범한 상황에서의 보통 인간들은 대부분이 저런 짓을 자신이 저지를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죠. 그런데도 세상에 저런 일은 널려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비극이겠죠.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 시에서 배우는 삶과 사랑
천양희 지음 / 샘터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시는 소설이나 수필같은 산문과는 달라서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그 중에 나의 마음을 울린 시가 단 한편이라도 있다면 그 시집은 내게 최고의 책이 된다.
어려운 말로 뭐라 하는 평론가의 말이 그다지 맘에 들어오지 않는 분야가 시이다.
시란 그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며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두드리는 글이기 때문일게다.

그런 시의 숲속에서 사는 이는 가난해도 고통스러워도 행복할 것이다.
천양희씨는 시의 숲에서 건진 아름다움들을 시인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물레에서 실이 자아져 나오듯이 술술 풀려나오는 시들의 이야기는
그 물레를 젓는 이의 노동을 잊게 한다.
그저 쉽게 마음 편하게 시의 숲으로 이 실을 따라 가만 가만 따라오세요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그 수많은 시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삶이 고통스러웠을까?
삶의 고통을 알지 못하면 시인이 될 수 없는걸까?
고통속에서 탄생한 시만이 다른 이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일까?
사람 하나의 마음을 사로잡는게 온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만큼의 어려움이라는 것을 안다면
평범하고 안이한 삶에서는 다른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 글이 나오기 힘든거겠지....
그래서 시인은 그냥 되는게 아닌가보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고민하고 싸우고 살아간 자만이 그런 영광을 누릴 자격을 갖게 되는 거겠지...

나같은 범인은 그저 그런 시인들의 시 한자락을 만난 것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시의 숲에서 시인을 만나고
삶의 고민들을 만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싸워야 할 것들. 보듬어 안아야 할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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