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부 산수화에 대한 이해
1. 산수화 발생의 사상적 배경
동양에서도 생각만큼 산수화의 역사는 길지 않다. 산수라는 거대한 대상을 감상하며 시를 짓고 그림으로 옮겨내는 작업은 자연을 조망할 수 있을만큼 문명이 발달하고 정신적 여유가 생긴후에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회화사에서도 인물, 화조, 동물 등의 장르들이 모두 발달하도록 산수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수화 발생의 토대가 된 산수 인식의 양상은
첫째, 고대의 신화에 근거한 산수관(상상속 산수)
둘째, 유가와 도가 등 철학적 사유에 근거한 산수관(철리적 세계로서의 산수) - 산수는 그 자체로 최고의 인격적 덕목을 가지며 그 자체로 도가 구현된 물상이며 나아가 고상한 인격의 발휘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고 확정지어준다.
셋째, 산수문학의 발생과 관련한 산수관(정치적 이데올로기화된 산수) - 위진시대부터 시작. 정치적 혼란기에 산수은둔이 절대적으로 미화되었던 상황과 신선사상의 결합. 이전의 유가, 도가에서 확립된 산수관 등이 결합하면서 등장.
2. 산수화 발생의 회화사적 배경
본격적 산수화가 발생하기 이전에 산수 표현은 짐승과 인간이 산봉우리보다 크게 배치되었고, 산수는 신비의 공간으로 조형화되거나 다른 주제의 배경으로 처리되었다.
독립된 산수화는 수나라때 등장한 것으로 보여지며, 우리나라에서는 백제의 <산수문전>을 들수 있다.
3. 채색 산수화와 수묵산수화
산수화의 발달과정은 채색산수화에서 수묵산수화로 옮겨가는데 여기에는 중국에서 발달한 필묵 매체와 문화 권력, 나아가 사상 배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독특한 문화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1) 필묵 그 자체가 지식문화의 상징물로서 암묵적으로 의미화 되어있었다는 것
2) 주요 사상의 심미적 지향성이 채색보다는 수묵의 세계와 잘 부합하였다는 것(노자 -"오채가 눈을 어둡게 한다" 공자 "사치스러움보다는 검소한 것을 택하겠다")
산수와 산수화는 그 자체로 사상의 덕목과 문인의 정신을 표징하는 세계로 등장한 것이기에 수묵은 산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기법으로 자리를 굳혀간 것.
4. 산수화 내용의 이해
1)북송대 - 커다란 화폭에 거대한 산을 그리는 '기념비적 산수' '영웅적 산수' - 深遠, 高遠, 平遠의 삼원론 과 군신의 질서가 반영된 산악의 구도가 이론화 된다.
2) 남송대 - 감상적, 시적 분위기로 옮겨가는 드라마틱한 변화 - 새로운 삼원론 즉 넓게 트여 먼 산수(闊遠), 가물거리듯 먼 산수(迷遠), 그윽하게 먼 산수(幽遠) 등 망망한 공간감을 요구하는 산수화들이 등장. 높이 솟은 북송대의 산수와 대비된다. 또한 인물이 자연속에 묻힌 미미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을 관망하는 주체적 존재로 등장한다는 점도 달라진점.
3) 송대 이후 중국에서는 화원화가의 작품에 비해 솜씨가 떨어지는 문인화가의 산수화가 더 인정받는 특이한 역사가 형성된다. 결국 문인의 철학과 시인의 뜻으로 그려낸 이미지라는 관념이 등장하는 것. (원나라때부터 크게 성장)
4)명의 대표적인 화풍
절파 - 화원출신의 직업화가들. 어부나 은둔자 혹은 전설적 인물이 등장하는 주로 상상의 산수, 조선 초기의 화원과 문인들은 대부분 절파의 화풍을 응용
오파 - 문인화가들. 화가 자신의 문화공간을 그리는 경험산수가 많음. 문인의 자부심과 자기표현의 수단. 조선후깅는 진경산수화의 경우처럼 근원적으로 오파에서 시도된 경험적 주제가 활용됨.
5) 명대 말기 동기창의 남북종론 - 남종은 문인화의 계통, 북종은 화원화풍으로서 남종은 본받을만하지만 북종은 배워서는 안된다는 극단으로까지 나아감. 이후 남종문인화풍의 모방에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된고 우리나라 19세기 회화의 배경이 된다. 이후 결국 문인산수화가 하나의 양식으로 정착되게 된다.
제 2부 영원과 초월의 시간 - 여말 선초의 산수화
1. 푸른 산 흰구름의 영원, 청산백운(靑山白雲)
<청산백운>이란 일상의 산수경에서 멀리 벗어나 다소 환상적 시공간으로 각인되어온 산수 이미지.
즉 선험적 상상의 관념경이자 다소 과장된 낭만경이다.
극심한 정치적 변혁을 거치는 시기에 이런 지극히 고요하고도 신비한 산수그림이 최고의 인기를 누린것은 '이상사회로 향하는 문사들의 역동적, 긍정적 에너지와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 순간을 현현하는 그림으로 청산백운도가 맞아떨어진 것이 아닐까?
2. 계절의 정취, 사시팔경
사계절을 표현하는 산수화들도 많이 그려졌는데 특히 풍우가 몰아치는 여름, 눈 소복이 쌓인 겨울이 많이 그려졌다. 이는 계절 감각의 극단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관념적 계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시도 역시 특정한 지역의 구체적 산수경이 아니며, 각 계절의 에센스를 불변의 이미지로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청산백운을 영원의 자연경으로 감상했던 태도와 유사한 면모를 지닌다.
또한 조선 초기의 관각문인들이 사시 팔경의 자연 질서와 농촌 겨오간을 즐겨 읊르며 행복한 위정자의 입지를 보여주었던 것을 고려하면, 순조로운 보편질서의 자연향유로서 '사시도'가 그들에게 적절하였으리란 것도 추정할 수 있다.
3. 이국의 정취, 소상팔경
소상팔경이란? - 중국의 소강과 상강이 흘러들어 호수를 이룬 동정호 일대의 경관
8개의 그림이 짝으로 병풍으로 그려지기도 하나 하나씩 떼어 단품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단품으로 그려질 경우 역시 비바람치는 여름밤과 눈 쌓인 겨울 저녁이 애호되는점은 사시도와 거의 유사하다.
---- 조선 초기에 그려진 우리 산수 - 산수화의 주된 영역이 아님
1. 행정적, 외교적 차원에서 그려진 금강산도 -제화시문이 없는것으로 보아 감상용은 아니었던 듯
2. 관료 문인들의 계회, 야유, 혹은 별장등을 그린 한강 유역의 풍경 -산수풍경이 주제가 아님
3. 조선초기 문인들의 제화시문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박연폭포도
4. 꿈속의 산수경, 몽유도원
1. 일반적인 방향과 반대로 좌에서 우로 진행된다.
2. 안평대군의 글에는 인물이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안견의 그림에는 인물이 없다
3. 화면의 구도가 독특하다. 동굴을 통과하여 도원이 드러났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하여 도원의 사방을 거대한 동굴 입구로 처리한 점. 도원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그렸으나 왼편에는 지평선이 존재하는등 화면의 시점의 왜곡
몽유도원도에 부쳐진 제화시들은 두종류로 구분. 하나는 화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안평대군의 꿈을 유가적, 현실적의미로 해석. 다른 하나는 화면에 없는 장면을 상상으로 읊으면서 안평대군의 꿈을 도가적 사유나 신선세계로 해석하였던 것. 전자는 건국의 분위기 속에서 번영을 도모하던 당시의 건설적 기상이 그대로 그림감상에 반영된 결과라면, 도가적, 상상적 면모는 권력과 부귀를 누리는 관료들이 느껴야 했던 인생과 벼슬길의 낭만적 허망감을 반영하는 이면의 정신세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조선 초기 문사들은 유가적 현실과 도가적 환상이 공존하는 낙관적 세계를 살았던 점이 산수화 선택이나 감상에 나타났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