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부 - 숭고의 미 현인의 공간 - 조선중기의 산수화
조선 중기 산수화에는 비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듯한 구도와 산수 표현, 붓질마서 몹시 성글고 거친 산수화면들이 적지않다. 기이하고 육중한 산이 번번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런 산이야말로 진정 은거자가 거할 만한 깊고 깊은 공간이며 그 속에* 머무는 객은 분명 속세에서 멀리 떠나온 은자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감상자는 이러한 그림속에서 깊은 산수 속 은자의 정신적 경지를 만끽하고,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경건하게 다잡는 수양의 매개물로 삼았다.
결국 16-17세기 조선중기 문인사회에서 즐겨 감상된 단순화되고 과장된 산수형상과 거친 필치의 산수 이미지는, 물질을 초월한 정신적 소탈함과 꾸밈없는 소박함의 요소로 받아들였졌던 것이다.
1.산수인물도 - 산수는 뜻 높은 이의 은일공간으로 기호화하고, 산수보다는 산수속 인물의 높은 정신세계가 더 중시되었다. 이 때 인물의 대부분은 중국의 옛 현인들이며 이런 그림에는 중국의 성현을 전통으로 삼으려 한 조선 문인들의 이상과 사림의 도학적 이상이 서려 있으며, 한편 이상이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고뇌도 반영되어 있다. (탁족도, 어부도, 기려도, 관폭도, 수면도 등)
2. 무이구곡, 주자선생 머물던곳 - 도학적 정신수양수단으로서의 산수화. 무이구곡도같은 그림과 감상은 조선중기 사림의 내면에서 주자철학이 종교적 차원에 가깝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3. 관료문인들의 모임, 계회도 - 조선 중기 사림들에게서 유난히 성행하였던 그림. 이는 16세기 사림의 정계진출 및 그들의 정치 문화가 학문풍토와 관련을 맺으면서 크게 성행한 풍조임을 짐작케 한다.
조선 중기 산수화는 엄격한 사림학자들에 의해 설정된 산수이미지였다. 현실이 혼란하면 마땅히 돌아가 몸을 깨끗이 보신해야 하는 공간이요, 현시로가 격리된 공간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은 은자가 거할 만한 깊은 산이거나, 은자가 보란 듯이 버티고 앉은 공간 혹은 주자와 제자들이 노니는 무이산이엇다. 정작 실제 계회를 그린 계회 산수도에도 이런 산수 분위기가 표현되었던 것은, 그들이 산수관이 여실히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제 4부 체험과 소유, 서정의 산수경 - 17세기 후반-18세기의 산수화
1. 진경산수화의 뜻 - 진경산수화의 내용을 보면 문인들이 노닌(遊)산수와 또한 그들이 머문(居)공간이라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즉 진경산수화는 대부분 문인들의 산수유람이 기록된 산수화이거나 문인들의 저택이나 사당을 그린 그림, 또한 정자나 누대 등의 별장을 그린 그림들이다. (이는 민족적 자각으로 우리 산천의 실경을 그렸다라는 해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상과 산상의 산수 관념에 유람과 거주의 체험을 반영하는 것이며, 문인들의 자기표현 욕구였으며, 나아가 우리 산천을 발굴하고 표현하는 열정의 과정이었다.
2. 유람을 기록한 산수화 - 18세기는 산수유람문화의 유행기였다. 동시에 그들의 관심역시 이전 시기처럼 명성이나 종교적 의미에 있지 않고 오로지 빼어난 산수풍광을 즐기고 느끼는데 유람의 목적을 두었다. 그 가장 큰 대상이 바로 금강산이었다.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면 그것은 화가의 눈에 비친 금강산의 한 장면이 아니라, 금강산 속 유명 명승지들을 한눈에 보이도록 재구성한 화면이다. 이는 유람을 즐긴 문인들이 방안에 앉아 유람의 추억을 되살려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 외 단양, 동해, 한강의 뱃놀이등)
3. 머문곳을 기리는 산수화 - 이런 그림의 경우 외형은 산수와 건물이 어우러진 완연한 산수화이지만, 그림의 제화시를 통해 보면 그림의 주제는 대개 건물의 주인이었다. 조선중기의 이런 그림은 그곳의 실경보다는 학풍과 인덕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명분이 더 중시되었다.
이런 산수화의 전통, 즉 산수화의 고상한 정신이라는 인식은 문인 개인이 경험한 공간 혹은 자신의 모습을 그러한 위상속에 담아 그림으로써, 스스로의 풍취를 세상에 보여주고 또한 그 풍취를 스스로 소유하는 만족의 표현이라고 할 수있다.
4. 아취있는 모임을 기념하는 산수화 - 조선 중기의 계회도속 문인들은 아소 경직된 자세로 질서 있게 앉아있는 반면 아회도 속 문인들은 자유로운 자세와 위치를 점하여 느긋하게 예술을 즐기고 있다.이런류의 그림은 모임의 체험과 개최된 실제 공간을 보여주고있지만 그 주제는 이상적 아취를 표현한느데로 치우쳐갔다. 이런 양상은 아회의 주인공이 중인층으로 확산되어가면서 더 두드러지게 된다.
5. 서정을 표현한 산수화 - 실경이 아닌 산수화들 중에 조선 후기에 새롭게 부상한 것으로 시의도(詩意圖)를 들 수있다. 이것은 유명한 시구를 회화로 표현한 그림인데 조선 중기의 산수인물도들이 철리적 이상으로 완전 무장된 은자의 고차우너적 달관의 세계를 지향하였다면, 시의도에서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감상 혹은 세속에 얽힌 개인 정감도 표현하려 한것이다. 진경산수, 실경산수화가 개인의 체험을 중시하여 유람의 경험이나 소유의 욕망을 노출하여 보여주었듯이, 시의도 또한 개인 정감의 표출을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연관성을 지닌다. 나아가 조선 중기까지의 문화에서 표현되지 않았던 경험적 내면이 표출되었다는점에서도 그러하다.
**정선과 윤두서의 차이(노론과 남인의 산수관의 차이)
노론계는 개인 체험의 자득을 주장하며 산수 유람의 체험을 마음껏 즐기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정선이 나온다. 하지만 남인계는 절경을 극대화하여 표현한 산수화에 대하여 무익하다 하였고 그보다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그림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윤두서가 대표적으로 그는 새로운 문명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