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현대 미술을 보러 가서 당혹감을 느끼는건 뭐 누구나가 경험하는 일이다.
국제적인 비엔날레전같은 곳에서 뭐라도 예술적인 감각을 개발하고자 하나 도대체가 이걸 뭐라고 만들어놓은건지....
보고 뭘 느끼라는거냐?
그러면서 제목은 또 뭐이리 어렵냔말이다.
이런 경험은 현대미술전을 한 번이라도 본 보통사람들은 누구나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런 전시를 앞에 뒀을때 사람들의 반응이야 천차만별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뭐 무시다.
흥! 이러고 돌아서는 것.
하지만 맘 한구석으로는 그런 감정도 없지 않다.
아! 숭고한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무지함이여 같은.....

이 책은 현대 미술전에서 이런 경험을 한번이라도 느껴본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죽었다 깨놔도 나는 잭슨플록의 물감뿌리기가 아름답다 내지는 뭔가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으며
마크 로스코의 그 사각형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으며
요셉 보이스의 그 낙서들에서 한 번도 친밀감이나 감정의 떨림을 경험할 수 없었던 그런 나같은 사람 말이다.

이 책은 나같은 감상자들에게 괜히 주눅들것 없다고 얘기한다.
그것들은 모두 사기라고...
뭔가 있어보이는듯 만들어서 대중을 바보로 만들고 엄청난 돈을 챙겨가는 사기꾼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내가 속았던 거였군
비로소 나의 무지가 아님을 증명하는 저명한 원군을 얻고 안도하는 나!
뭐 이정도면 책의 내용은 충분히 전달되겠다.
하지만 속았다는데는 변함이 없네....

그런데 문제가 되는건 사기와 예술의 경계를 어디까지 둘건가의 문제이다.
저자가 사실적인 작풍만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추상화 전체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예술가들 중에서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같은 경우 그 의미를 인정하는 경우인데,
뭐 결국 사기냐 예술이냐의 경계는 결국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현대 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라고 부제를 달았는데
풍자라고 하기에는 아주 직설적이다.
제목만 풍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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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3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법천자문 2007-05-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읽어도 뭔 소린지 이해가 안되는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철학자, 작가 나부랭이들도 전부 사기꾼들일 뿐입니다.

바람돌이 2007-05-1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6억님 - ㅎㅎㅎ 속지말자구요. ㅎㅎㅎ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알레르기성 비염, 알레르기성 결막염. 기침감기와 몸살
이상이 지금 현재 저를 괴롭히고 있는 병명입니다.
이것들은 왜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 나를 공격하는 것이야..... ㅠ.ㅠ

독서 좋아하시는 지요?

- 뭐 좋아하니까 저같은 귀차니스트가 요기 이렇게 서재도 차려놓았겠죠? ㅎㅎ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삶을 보는게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이루지 못하거나 꿈도 꾸지못할 것도 해볼 수 있잖아요.
일종의 대리만족? 아니면 내 현실이 너무 재미없어서일까?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  한 10권 내외. 책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생업을 어쩔수 없어....
   거기다 자립능력 빵점인 아그들 둘까지 나의 방해꾼들.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 잡식성이니 장르를 안 가립니다. 하지만 많이 읽는 분야는 있죠.
역사, 미술, 소설의 순서 정도?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 만남이죠.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세상과의 만남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 나와 다른 세상,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즐겁고 나를 변화시켜가는 행위
뭐 그래도 안변하는 인간도 있고, 변해도 꼭 이상한쪽으로 변하는 인간도 있더라만....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드니 무슨 경제적 이익이 있지 않으면 책읽을 시간도 내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
그러니 애들한테도 논술에 도움되니 책 많이 읽어라... 영재만들려면 독서시켜라고 하지...
그저 순수한 즐거움으로 책읽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회
아마도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을까요? ㅠ.ㅠ

책을 하나만 추천 하시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오래된 책은 기억이 안나서.... 이세상에 책이 하 많으니 항상 가장 좋은건 가장 최근에 나를 매혹시키거나 나의 생각에 변화를 주거나 강화시킨 책이다.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 당연하죠. 어젯밤에도 열심히 책을 읽었어요. <오오쿠 2권> 신의 물방울 9, 10권
아 피곤해....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 반반 정도 돼요.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문학을 장르별로 딱 나눠서 좋은편 나쁜편 가르는게 웃기지 않나요?
판타지와 무협지쪽에 수준미달인 책이 많은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장르에도 훌륭한 책도 많지 않나요. 또한 인문 사회과학이나 순수문학이라고 지칭되는 장르에서도 쓰레기같은 책들도 넘쳐나고요. 요컨대 저런식의 딱지붙이기는 가진자의 횡포라고 봅니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고 귀차니스트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앞으로도 없을것 같군요.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 기분이야 당연히 좋겠죠? 한권이라도 팔리면 돈이 될텐데.... 하지만 상상만으로 만족할래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 한홍구, 박노자, 이주헌, 진중권, 오쿠다 히데오.....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 그저 좋은 책 많이 써주시와요. ^^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이건 정말 어렵군요. ㅠ.ㅠ
일단 눈에 안띄는 분들... 춤추는 인생님, 클리오님, 세실님, 아영엄마님, 폐인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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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7-05-0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눈에 잘 띄잖어요~~~ 귀찮아서 안하려고요..헤헤~~~ 요리조리 피해 댕기고 있습니다. 머리쓰기 싫어요. 켁

마노아 2007-05-0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쿠 재밌나요? 소장용일까요, 대여점용일까요? 그게 너무 궁금해요6^^

물만두 2007-05-0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아무나라는 닉네임을 만들어보시면=3=3=3

무스탕 2007-05-0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쿠... 저도 어제 2권을 읽다가 앞권 내용이 생각이 안나서 다시 들춰보다가... -_- 언제 붙여서 다시 읽어야 겠어요.
요시나가 후미상(이상하게도 요시나가 한테는 꼭 후미상이라고 불러야 제대로 부르는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왤까요? --a)의 작품은 정말 작품마다 색깔이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다 틀려서 재미있어요!

홍수맘 2007-05-0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그나저나 님 건강이 걱정이예요. 몸 조리 잘 하세요. ^ ^.

바람돌이 2007-05-0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뭐 그럼 패스하죠.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마노아님/무슨 용인지는 모르겠고요. 저는 대여점에서 빌려봤는데 앞으로 조금 더 나오는거 보고 계속 재밌으면 살려구요. ^^ 님도 일단 한 번 빌려서 보세요. 대여비야 얼마 안하니 부담없이 보고 또 사면 되잖아요. ㅎㅎ
물만두님/음 심각하게 고려중.... 제가 닉네임을 바꾸면 알아봐주실까요? ^^
무스탕님/다 나오면 다시 본다. 만화의 기본 아니겠습까? ㅎㅎㅎ
홍수맘님/병원가서 약 타 먹었더니 훨신 낫습니다. 지금 나아가고 있는 중...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

클리오 2007-05-1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불러주실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쩐지 바람돌이 님이 부른 사람들은 전부 이어갈지 어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군요. 알라딘엔 날마다 들어오는데 어쩐지 몸도 마음도 의욕이 없네요. 예찬이는 주말에 목포 다녀와서 무리했는지 감기에 설사를 해대서 하루종일 애 데리고 씻기고 다니느라 기진맥진이여요. 휴휴.. 요즘 아이들 감기도 유행이던데 예린이랑 해아는 괜찮아졌나요. 님도 몸이 많이 안좋으셨아보죠. 뭐든지 시큰둥하고 하루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 나날이여요. 그래서, 젖만 뗀다면... 하고 벼르고 있어요. 어느새, 예찬 돌이 2달 남았거든요.. 안부와 릴레이를 대신한 주절주절 댓글을 남기고 갑니다. ^^

국경을넘어 2007-05-11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악악!!! 덫에 걸렸습니다.
요즘 정신이 없어서 오랜 만에 들어왔는데... 이거 답하지 않으면 향후 10년 불행해지는 그거 맞죠?... -.-;;;

바람돌이 2007-05-1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뭐 안하셔도 또 이렇게 말 건넬수 있는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예찬이 감기랑 설사는 좀 나았나요? 아이가 어릴수록 아프면 더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워요. 아이가 어리고 특히 젖먹는 동안에는 정말 엄마가 꼼짝도 못하죠. 젖 떼고 나면 그래도 좀 나아질텐데....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엄마에게도 잠시라도 아이가 없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쵸?
폐인촌님/10년 아니고 20년인데요. ㅎㅎ
 
조선시대 산수화 테마 한국문화사 6
고연희 지음 / 돌베개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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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정선의 <금강전도>를 보여주면 극소수의 특이한 애들을 제외하고는 뭐 시큰둥하다.
그런데 다음편에 바로 금강산의 촬영사진을 보여주고 그림과 비교해주면 바로 탄성이 새어나온다.
즉 <금강전도>의 금강산 그림이 실제 금강산의 산수화 많이 닮았다는걸 인정하는 탄성이다.
그러면 그 그림은 순식간에 잘 그린 훌륭한 그림이 된다.
그런데 이런 기준을 들이대고 우리 산수화를 보면 감탄할만한 산수화는 거의 없어져 버린다.
서양화가 끊임없이 물질세계를  모방하고자했던 것과 달리 동양화는 물질적세계보다는 그 반영으로서의 정신세계에 더 비중을 두고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미감은 어느 새엔가 서양 미술의 미감쪽으로 많이 틀어져 있는 듯하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뭐 서양을 베끼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우리의 근대사에 일단 책임의 많은 부분을 돌릴것이며, 또한 우리 미술의 정신을 제대로 보존하고 가르치고 대중화하지 못한 미술계와 교육계에 나머지 책임을 돌릴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돌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터이고...
결국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미감을 되찾는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미감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산수화의 미술적 아름다움이나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 미적분석을 하는 책은 아니다.
각 시기별로 어떤 산수화가 주로 그려졌으며 그런식의 산수화가 그려진 사회적 지적 배경이 무엇인가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표현하는 시대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산수화의 사회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든다면 위에서 조선초기의 산수화가 청산백운을 주요 소재로 그려졌던 것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에 개혁을 주도했던 사대부 계층들이 자신의 이상향을 반영한 것으로서 읽어야 한다는 식이다.
조선 중기 산수화는 엄격한 사림학자들에 의해 설정된 산수이미지였다.
현실이 혼란하면 마땅히 돌아가 몸을 깨끗이 보신해야 하는 공간이요, 현시로가 격리된 공간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은 은자가 거할 만한 깊은 산이거나, 은자가 보란 듯이 버티고 앉은 공간 혹은 주자와 제자들이 노니는 무이산이었다.
진출과 후퇴를 거듭했던 사람파들에게는 아마도 딱 맞는 그림의 주제였으리라....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에는 산수화에 대해서도 물론 적용된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이 안드는 것도 아니다.
별로 잘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림들이 있다.
그건 동양화에도 있고 서양화에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은 서양화는 뭔가 설명을 듣고 공부해야 맘에 와닿는게 많은 반면,
한국미술의 경우에는 그림이든 다른 미술품이든 아무것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맘을 때리는 게 더 많다는 것.
그건 어쩌면 우리가 서양화의 길을 그렇게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미의식의 원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진리라는 것은 그런 미의식의 원형도 갈고 닦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뎌지고 무뎌져서 결국은 그 잔해조차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일게다.
굳이 우리 문화가 다른 문화에 비해서 뛰어나고 어쩌고를 논할 필요는 없다.
문화란게 원래 그런 우월비교의 대상이 될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우리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미의식이기에 그것은 서양화나 다른 곳에서 온 것보다는  우리 생활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게 더 쉬울것이다.
우리 문화 우리 예술을 알자고 하는것은 내게는 그정도의 의미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뛰어난 미술이라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서양화에 비해서 너무나도 제대로 알려져있지도 않고 대중화도 안되어있는 한국화 분야에서 소중한 책 한권을 건졌다.
훌륭한 도판들과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조선의 산수화와 선비들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덧붙여
돌베개 출판사에서 펴내는 테마 한국미술사 시리즈는 훌륭한 기획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별로 돈도 될것 같지 않은 이 시리즈를 계속 펴내는 무모함에 박수를 보내고,
또한 정말 정성을 다해 만든 것이 명백히 보이는 그 수고로움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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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7-05-07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꼭 보고싶었던 종류의 책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 좋아라... ^^

바람돌이 2007-05-0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하는 쪽들이 대부분 예술도 사회사로 보는쪽으로 관심이 많죠? ㅎㅎ 저도 그래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이런 끔찍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다.
때때로 내 아이의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눈물겹도록 고마워해야 될 일임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바로 이런 글을 만나고 이런 뉴스기사를 접하고 할때이다.
제 자식 귀한것에 눈먼 에미는 한편으로 내 자식이 이런 상황이 아님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또한 한편으로 남의 불행에 빗대어 자신의 행운을 감사하는 이기심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내 옆에 굶주리는 친구가 있다면? 또는 바로 내 이웃의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그 상태로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집에서 쌀이며 반찬이며를 퍼다 줄 것이며, 또 누군가는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봐줄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런데 그것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고 먼 남의 나라 또는 그리 멀지 않더라도 어쨌든 내 눈에 직접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그 나라의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가 도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고?
그래 그렇게 우리는 딱 떨어진 거리만큼 무감각하고 무책임하다.
아니 애써 없는듯 모르는척 눈을 감는것일게다.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리는 소말리아는 기아구제를 위한 정책은 커녕 국제사회의 지원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듬으로써 의도적인 살인을 벌이고 있다.
오늘도 브라질이나 필리핀의 대도시에서는 부자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고...
심지어 그런 상황을 바꾸고자 최소한 국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들은 식량생산과 유통 소비를 통제하는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식량이 인간의 기본 생명을 지키기 위한 역할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파괴하고 이윤을 위한 무기가 되는 체제를 과연 정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자본주의 체제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윤 창출 즉 돈이 되는 것이라면 내가 더 많은 돈을 쌓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하루에 10만명이 굶어죽든지 말든지 남는 식량을 불태워 없애버릴 수 있는 비정함.
그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그것이 자기 탓이 아니라 돈이 없는 그들의 문제라고 큰소리칠수 있는 죽일놈의 뻔뻔함.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이 체제는 오늘도 잘 굴러가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저 체제에 구멍을 내는건 가능하기나 할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내 옆의 사람이 굶고 있는데 내입에 내 자식의 입에 밥들어가는것만 기특하다 훌륭하다 되지 않는것처럼 좀 떨어진 그들의 고통 역시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 밖에는....
그걸 흔히 인지상정이라고 하는거 아닌가?

유엔조사관이었던 저자가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것처럼 나는 또 내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아마도 더 이상의 굶어 죽는 아이들이 없어질때가지 이 책은 유효기간을 가질 터...

부디 바램이 있다면 지금은 어린 내 아이가 중학생쯤 되어 이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때는 더 이상 이 책이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런 책이 되기를......
그저 역사책 속에서 과거에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났대라고 넘어갈 수있기를 바라는건 너무 큰 바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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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1:59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마노아 2007-05-07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때에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ㅠ.ㅠ

바람돌이 2007-05-0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아이가 중학생쯤이 되려면 한 7년쯤 남았군요. 이윤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인간적 사고에 의한다면 충분히 가능할텐데.... 그 전에라도 할 수 있는걸 찾아야겠죠..

홍수맘 2007-05-0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큰 바램을 가져봅니다.

책읽는나무 2007-05-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랬음 좋겠어요.

바람돌이 2007-05-0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나무님 모든 사람이 이런 바램을 가지겠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은 아마 더 크게 다가설것 같아요. 저도 제가 처녀적에는 이런 문제가 이론적인 또는 정책적인 문제로 해결해야 될 문제로 다가왔었는데 지금은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아파지던걸요.
 
 전출처 : 글샘 > 4.3 사건의 진실...

제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다보면 만나게 되는 역사의 흔적이 있다. 4.3학살사건이다. 1948년 4월3일에 시작된 군인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사건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관광지, 제주도 곳곳이 비극의 공간이었던 4.3학살의 현장이다. 녹색순례 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9일간이지만 직접 발품을 팔아 제주도 중산간을 비롯한 여러 곳을 살펴보는 일정이라 4.3학살현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순례단 중에서 20-30대의 젊은층은 4.3이라는 역사에 대해 막연하거나 모르는 경우도 있어서 새롭게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계기도 되었다. 녹색순례 7일째, 본격적으로 4.3학살의 현장을 살펴보았다. 유사이래 제주도 최대의 비극이자 아픔의 현장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전4.3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제주사람 강태권씨가 생생한 안내를 해주었다.  

▲ 제주는 마을 중심에 정자목(팽나무)을 심고, 집 앞에 난을, 집 뒤편에는 대나무를 심어 키움. 영남동 등 사라진 마을 집터와 마을 중심은 이를 통해 알 수 있음. 영남동 마을을 외롭게 지키는 정자목과, 마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


순례단이 아침에 만난 4.3학살의 현장은 서귀포시 인덕면 광평리였다.  제주에서 행정구역상 가장 높은 해발 고도에 위치한 마을이다. 4.3 사건 때 한림읍, 안덕면, 대정읍 등의 지역주민들이 이곳을 거쳐 한라산으로 피신하였다. 토벌대들도 이곳을 거쳐 진압에 나섰다. 광평리가 왜 주요 길목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곳의 지형을 알아야 한다. 서귀포 동쪽 지역의 지형은 초원과 같은 형태이지만 서귀포 서부지역은 완전한 밀림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이 주요 길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곳 광평리도 4.3의 아픈 기억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 광평리, 이곳을 통해 한림, 대정, 안덕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녹색순례 구간마다 4.3 사건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순례 3일째 지나간 성산일출봉 옆 너른바위를 관치기라 부른다. 4.3 사건 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학살을 당했고, 그래서 무수한 관을 그곳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성산 일출봉 옆 너른바위(일명 관치기). 이곳은 4.3 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이곳 성산읍에서 무수한 관을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순례 4일째 지난 성읍민속마을 바로 아래인 표선면 가시리의 지미왓 인근의 새가름마을도 그러한 곳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새가름마을은 가시천 동쪽에 형성되어 신설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320년 전 오씨가 중심이 되어 만든 마을이다. 20여 가구에 100여명이 조, 메일, 콩 등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던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15일 마을 전체를 군인들이 불질러 없애고 주민들을 표선국민학교에 수용시켰다. 그중 마을 주민 17명이 속칭 버들못 근처에서 처형당하는 등 마을 주민 25명 4.3사건으로 희생당했다. 49년 2월 가시리 현재 마을사무소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돌아와서 새로이 마을을 일으켰다. 새가름에도 2가구가 들어와 옛마을에 생기를 회복하려고 노력했으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마을을 떠나면서, 새가름 마을은 영원히 사라졌다. 가시리에 인접한 동백마을 신흥리는 더 큰 피해가 있었다. 4.3학살 때 마을 주민 140여명이 사망하였다.

▲ 4.3 사건 당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살당해 마을의 흔적만 남고 사람이 살지 않은 남제주군 표선면 새가름


순례 6일째, 한라산 남쪽을 관통하는 산록도로 근처에도 곳곳이 4.3의 피해현장이다. 탐라대학교와도 그리 멀지 않은 서귀포시 영남마을이 대표적이다. 화전마을이었던 영남마을은 메밀, 조, 콩, 밭벼 등을 심어서 먹고사는, 법 없이도 살아가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일제 때부터 애국심도 뛰어나 1918년 마을 주민들이 법정사항일운동에 참여하여 6명이 구속되었고 이중 김두삼(당시 25세)은 옥사하였으며, 후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마을도 4.3학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48년 11월 20일 마을주민 60명 가량이 군인에게 학살당했다. 한집안 14명이 몰살을 당하기도 했고,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도 18명이 죽었다. 4.3은 양민학살이었기 때문에 노인과 부녀자, 심지어 어린이도 많은 피해를 당했다. 인구비례로 가장 피해가 큰 마을이었던 영남동은 법정 지명만 남은 채, 행정으로는 이미 그 의미가 사라졌다. 이곳도 사라져버린 마을이 된 것이다. 이외에도 4.3의 현장은 제주도 전역에 널려 있다. 관광객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공항도 정방폭포도 학살의 현장이었다.

▲ 서귀포시 영남동 마을, 4.3 이전 마을 사람들이 우물로 사용하던 자리. 이제는 연못으로 변해버렸다.


5.10단선을 반대해서 일어난 4.3 학살의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는 4.3이 일어난 48년 4월에서 약 6개월이 더 지난 그해 초겨울부터다. 1948년 11월 15일부터 이듬해 1949년 3월까지 중산간지대 마을은 초토화 되었다. 전체 4.3사건의 사망자 중 약 80%가 이 시기에 죽었으며, 70여 개 중산간 마을 중 성읍, 애월읍 정도가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4.3학살은 제주도민들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제주의 정체성속에 한의 정서로 뚜렷하게 남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속으로 흐르는 정서가 더 뚜렷한지도 모른다. 곳자왈 아래 숨골을 따라 흐르는 지하수처럼 제주의 가슴에 잊혀질 수 없는 정서가 되었다. 4.3의 가장 큰 상처는 저항할 능력이 없는 무고한 양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점이다. 대부분의 제주도 사람들에게 4.3은 비슷하게 인식된다. 국가에 의해서 그것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군인과 경찰에 의해서 참혹하게 학살당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육지에서는 이념의 잣대로 다르게 해석할지 몰라도, 적어도 제주도에선 4.3에 대한 1차적인 사건의 규정은 끝났다. 4.3은 이념의 대립이 빚은 결과가 아니다. 육지에서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제주에서 4.3은 군인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한 무자비하게 진행된 양민학살이었다. 죽어간 자들의 죄라고는 중산간지대의 마을에 살았다는 단 한가지 그 이유뿐이다.

▲ 서귀포시 영남동 마을 사람들이 학살당한 장소 전경


순례단이 오후에 방문한 곳은 동광육거리다. 여섯갈래의 길이 교차하는 제주 서부의 길목이자 교통의 요지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곳이다.  지방도를 비롯한 주요도로가 지나는 곳이라 파출소도 있고, 주요소와 식당, 식료품점 등이 있다. 이곳에 4.3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작은 공동묘지가. 그때 학살당한 주민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가족들이 그 한이라도 풀기 위해 시체가 없는 묘소를 조성한 한 것이다. 4.3학살의 희생자들의 영혼을 쉬게 하는 헛묘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807번지-4에 자리 잡고 있다. 동광리 헛묘는 7기는(2기는 합장묘) 동광리 출신 임문숙일가 9명의 영혼을 수습한 묘지다. 헛묘는 시신을 찾지 못하였을 때, 생전에 입던 옷이나 유품 등을 넣어 만든 분묘이다.



▲ 동광리 마을 초입에 만들어진 4.3 유적지 ‘헛묘’에는 당시 처형당한 동광리 주민 임문숙씨 일가 9명의 영혼을 수습한 7기(2기는 합장묘)의 묘가 있다.  


동광리는 초토화작전이 전개되던 48년 11월 21일 국방경비대 제 9연대에 의해 온 마을이 불태워졌다. 군인들은 마을에 들어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폭도로 간주하여 학살을 자행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근 큰널궤로 피신했다. 하지만 이곳도 발각되어 또 다시 도주하였으나, 눈에 남긴 발자국때문에 한라산 영실기암 인근에서 볼레오름에 체포되었으며, 서귀포의 수용소에 옮겨져 49년 1월 22일 정방폭포에서 학살되었다. 그 때 동광리 주민들도 40여명 학살되었다. 유족들은 군인들이 무서워 시신을 수습할 엄두를 못내다가 몇 년후에야 비로소 정방폭포에서 죽은 영혼을 달래고 이곳 동광리 초입에 헛묘를 조성한 것이다. 억울한 원혼을 위로하는 듯 헛묘의 비석과 봉분 주변에는 보라색 고깔제비꽃이 피어 있었다. 순례단은  동광리일대의 4.3유적지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4.3이 제주의 마을공동체와 주민들을 삶을 얼마나 모질게 유린했는가를 생생히 확인했다. 동광리 비극의 정점인 큰널궤라는 굴속으로 직접 기어들어가, 주민들이 군인들의 학살을 피해서 어둠속에서 숨죽였던 현장을 체험하였다.  

▲ 4.3 당시 마을 사람들이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피난 생활을 했다는 동광리에서 서북쪽으로 2.5km 정도 떨어진 도너리 오름 근처에 위치해있는 큰넓궤(궤:작은 천연동굴).



▲ 4.3 당시의 피난민들의 고난을 체험하기 위해 동광 큰넓궤로 들어서는 순례단원들.




▲ 겨우 사람 하나가 지나기도 힘든 비좁은 동굴 내부에서 순례단은 피난민들이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힘들었을 당시 상황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다.


4.3의 현장은 이제 역사의 현장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인 재평가도 진행 중이며, 정부에 의한 명예회복도 진행 중이다. 제주4.3사건특별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 4.3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2008년에는 정부가 지원하고 제주도청이 주관하여 4.3평화공원이 조성된다. 6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들여, 죽어간 양민의 영령을 위로하고 4.3학살의 역사적 의미를 인권의 차원에서 정립하자는 취지다.

▲ 4.3 사건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동광리 마을 사람들의 서글픈 사연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운 비


4.3에 대한 기록과 자료가 온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최고인 나라답게 4.3에 관한 현장과 주민들의 아픔을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절실하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인터넷으로 4.3사건의 전말과 학살의 현장, 관련 유적, 기념추모시설과 추모비, 관련자의 증언 등을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3평화공원이 중심이 되어서 추진해야 할 일들이다. 항쟁과 폭동이라는 시각도 존재하는 현실이만, 분명한 사실의 기록은 어떤 논리와 이유에서도 미룰 수 없다. 그것을 방해하거나, 저지하는 것은 죽어간 제주양민들에 대한 또 한번의 역사적 학살이자, 4.3의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다. 이것은 민족에게 역사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 4.3 사건 당시 토벌대 주둔소로 쓰였던 돌성이 있는 녹하지 오름(알 오름)을 오르는 순례단.

▲ 녹하지 오름(알 오름)에 올라 순례단에게 4.3 사건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설명해주는 강태권(제주도민)씨


해방과 건국의 과정에서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대결과 아픔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양민들이 사라져갔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제주도 4.3학살의 피해자들이다. 해방 이후 역사는 여전히 뜨거운 논란이다. 하지만 4.3사건처럼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 학살이 집단으로 자행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정부는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를 냉정히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역사의 기록을 위해 청춘을 바친 제주사람 강태권씨  

20년 가까운 세월을 4.3의 아픔과 상처를 두 눈으로 응시한 제주사람이 있다. 작년까지 제주4.3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강태권씨다. 대학 졸업 이후 88년부터 지금까지 4.3의 학살과 피해 현장을 찾아서 답사하며 증언을 채록하고 현장을 기록하였다. 강씨는 중산간을 비롯하여 제주도 전역을 다니면서 피해자들이나 목격자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확인하고 학살의 현장을 발굴하는 연구활동을 전개하였다. 강전연구원은 4.3사건이 제주도 전역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웬만한 중산간 마을은 죄다 다녀본 셈이라한다. 88년에 제주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주4.3학살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과 재평가에 대한 요구가 모아지면서, 제주 4.3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교사, 향토역사연구자 등이 중심되어 연구소가 운영되었다고 한다. 국민의정부 이전까지 어려운 재정 상황 속에도 제주의 한을 끌어안고 역사적 기록으로 후대에게 정확히 남기자는 의지와 소신들이 연구소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제주 사람 누구에게나 피해갈 수 없는 4.3에 대한 현장의 발굴과 기록이라는 어려운 일들을 지난 20년 묵묵히 수행했고 그 대표적 일꾼 중 한 사람이 강태권 전연구원이다.  

▲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청춘을 바친 강태권씨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어려웠을 때가 언제냐는 물음에 “처음에는 말문을 열지 않았다.가슴의 응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언젠가 중산간 마을에서 한 촌로를 만난자리에서 ‘알랑, 뭣헐띠’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그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면서 사연을 전해 주었다. 이 말은 제주방언으로 ‘당신이 알아서 뭐하겠느냐?’라는 의미로 달리 표현하면,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강연구원은 “그 말이 바로 4.3살을 직접 겪은 분들의 응어리이자 맺힌 한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태권씨는 지금도 제주의 4.3현장을 방문하거나 답사하는 이들과 함께 4.3역사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43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책이나 자료를 넘어 직접 현장을 발굴하고 피해자들과 만나서 기록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에 그와 4.3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은 4.3의 실체를 단박에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강태권씨는 “4.3은 학살의 역사이자. 공권력의 무자비한 주민학살에 대한 항쟁의 역사였다. 역사적 재평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4.3이 온전히 평가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4.3은 통일이 되어야 온전히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4.3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이야기 했다. 4.3학살은 한국전쟁 다음으로 우리 현대사에 새겨진 가장 큰 상처다. 강태권씨는 그 역사를 그 어떤 학자보다 정면으로 끌어안고 20대에서 40대까지 이어왔다. 역사에 대해 후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 아팠던 역사를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역사를 알리기 위해 제주도 전역을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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