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기독교는 동서로마제국의 분열 이후 분리가 시작되고 특히 8-9세기에 일어난 성상숭배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동로마제국의 성상파괴운동을 계기로 분리가 심화된다.  여기에 기독교계의 주도권을 둘러싼 로마 교황과 비잔틴 황제와의 대립으로 결국 카톨릭과 동방정교로 분리된 것.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동방정교에게는 시련의 시작이었다. 이슬람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 동방정교는 이후 각 지역별로 특색을 가지는, 중앙집권성보다는 지방성이 강한 종교가 되기 시작하였다. 카톨릭이 위계적인 질서가 엄격한 종교로 발달한 반면 정교에선 각 교구의 주교들은 수평적인 관계를 이루고 성직자와 평신도 역시 개인적인 권위는 갖지 않는 수평적인 관계가 발달한다.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시절 오스만제국은 동방정교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그 관리를 그리스에 위임, 그래서 동방정교를 그리스정교라도 한다.



하지만 이 시기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발칸지역과는 달리 독립하고 있던 러시아 정교회가 그리스정교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 - 때로는 러시아정교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종교를 주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전체를 아우르는 특성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면 동방정교라고 부르는게 타당할 듯....


카톨릭의 신학이 이론적이고 추상적이며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학문적인 성격인데 비해, 동방정교의 핵심은 신앙, 즉 믿음을 몸소 체험하는 것을 중시하며 기독교 신앙 안에서 몸소 하느님을 배우고 체험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세계가 곧 하느님의 세계임으로 성속은 일치한다고 믿는다.


그리스정교는 크리스마스보다는 예수의 부활절을 가장 큰 축일로 여긴다.(기독교의 원죄의식보다는 구원을 더 중시함으로 해서) 그리고 성가라는 것 자체가 마음의 기도이기 때문에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성가만이 허용된다.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고 이콘의 숭배인데 교회 가정 등 어느곳에서나 예배때 사용하고 있다. 이콘은 초기 기독교때는 없었고 2-4세기에 유행하다가 8-9세기 성상파괴때 거의 대부분 파괴되었다. 하지만 9세기 중엽 이후 북쪽의 슬라브족이 대거 비잔틴 제국내로 이동해오면서 이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다시 유행, 동방정교의 중요한 예배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 외 발칸반도에는 큰 교회가 드문 편인데 그것은 오스만제국이 동방정교도들에게 정교자체는 금지하지 않았지만 이슬람교회보다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문높이를 1M로 제한해서 그 낮은 문으로 기어들어가도록 했다. 따라서 이 지역의 교회는 땅을 파 지면보다 낮은 곳에 교회를 지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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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9-2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정교라고 배운 기억이 나네요. 러시아도 이 종교를 믿었더랬죠?
그래서 한국엔 알려지지 않은 듯...

바람돌이 2007-09-29 23:38   좋아요 0 | URL
저도 아무 생각없이 그냥 그리스정교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리스정교라는 말의 유래는 오스만제국이 통치의 효율을 위해 동방정교도들의 본산을 그리스에 두면서 생긴 말이더군요. 이에 대해 러시아가 반항하면서 동방정교의 전통은 오스만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정교라는 말도 있구요. 근데 실은 이 동방정교는 믿어졌던 곳들이 이전 비잔틴 제국 지역이었는데 제국의 쇠약과 더불어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따라서 지방색을 강력하게 띤답니다.
거기다 동방정교자체가 오스만 제국하에서 오랫동안 탄압을 받다보니 카톨릭과 같은 공격적인 세계포교는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고요.
현대 제국주의 시대에 와서야 러시아는 혁명의 성공으로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 되었으니 더더욱 타지역에서의 선교같은건 성립될 수가 없었겠죠. 그러다보니 원래의 지역의 종교로 남게된거고요.
근데 종교의 생활과의 밀착은 굉장히 강해서 오스만제국의 그 오랜 통치기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지역에서는 압도적인 종교로 남아있었답니다.
 
쥐를 잡자 - 제4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18
임태희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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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tv를 보다가 우연히 대만의 소녀임신문제에 대한 논쟁을 보았다.
TV속에서 보여지는 대만은 적어도 우리나라보다는 나았다.
혼전임신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무료로 진료를 받고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는 전용병원이라도 있었고, 그들에 대한 실제적인 성교육-가령 콘돔의 사용방법같은-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만의 정책도 충분한 것은 못되어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임신을 하게된 여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일단 임신을 하게 되고 그것이 학교에 알려지게 되면 그녀는 더 이상의 학교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대만은 적어도 이런 상황의 문제점에 대해서 사회적 토론이 되고 이슈화가 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결국 학교와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의 임신문제는 심각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인 공론의 장으로 나오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문제로서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되어 임신한 소녀를 죄인으로 낙인찍는다.
동시에 그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고 나면 그녀는 더이상의 교육을 받을 권리는 포기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의 교육의 의무를 지고 있으며 동시에 헌법에서 행복추구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임신한 소녀들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늘 무책임한 생명존중 교육이니 청소년의 건전한 교제 어쩌고 하는 말만 되풀이 되고 있다.

자 당신에게 물어보자.
만약에 말이다.
당신의 어린 딸이 누군가의 교제에 의해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다면 당신은 어쩌겠는가?
우리 딸은 그럴리가 없다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웃기지 마라. 청소년의 성의식은 우리 같은 어른들이 따라잡을 수없을 정도로 개방적이 되어가고 있다. 당신의 딸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임신한 아이가 나의 딸이라면 혹은 나의 학생이라면 나는 아마도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아이들 데리고 병원으로 가 낙태를 시킬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부모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낙태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엉망이 되어버릴 소녀의 삶의 저울질 하면서 나는 아마도 소녀의 삶이 더 무겁다고 결정지을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명의 존중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면 그 아이를 낳아기를 수 있는 국가적 지원과 사회적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줘야 하지 않는가?
TV속에서 대만의 학부모와 교사들은 만약 아이를 낳은 소녀들의 학업을 계속 인정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청소년의 성관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아마도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듯하다. 그렇기에 정상적이라고 그어놓은 선을 벗어난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선언할 수 있을테니....

아이들에게 생명존중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그것은 무지한 성관계와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예측할 수없도록 한다.
다만 임신에 대해 태아에 대해 죽을 것 같은 죄책감만 가져다줄뿐...
같이 병행되어야 할 것은 실질적인 성교육이고,
동시에 소녀들에게도 낙태가 살인이라는 의식을 주입할 것이 아니라 낙태 역시 그녀의 삶의 한 권리임을 가르치는 것, 동시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녀들이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를 갖고 다시 학교에 복귀하는 것이 그렇게도 말이 안되는 일일까?

책속의 주홍이는 혼자 고민을 싸안고 혼자 괴로워하다가 결국 죽음을 택한다.
한 생명의 죽였다는 죄책감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으로 갚은 것이다.
주홍이의 부모도 교사도 누구 하나 그런 주홍이를 막지 못한다.
당신은 당신의 딸이 주홍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가?

임신의 고통으로 자신의 아이를 쥐라고 여기고,
낙태의 고통으로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주홍이는 보고싶지 않다.
낙태도 자신의 권리로 당당히 받아들이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자신의 권리로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주홍이의 탄생은 언제정도면 가능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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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09-2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시원한 리뷰네요.

바람돌이 2007-09-29 23:39   좋아요 0 | URL
리뷰만 속시원하면 뭐하겠습니까? 지금도 이런 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은데요.

프레이야 2007-09-2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아니면 믿고 싶지 않아 외면하거나.. 꾸욱^^

바람돌이 2007-09-29 23:40   좋아요 0 | URL
문제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런 일이 자기 자식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거 같아요. 일부 문제가정, 문제아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니까 이 아이들을 나의 아이와 같은 맘으로 봐지지가 않는게 아니가 싶은....

대지의 마음 2008-01-10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너무 생명의 문제로만 자의식과 죄책감이 극대화되어 있어 속상했습니다. 아기를 가진 아이들이 갖는 진정한 문제는 그것에 국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설이 너무 매끄럽게 써지고 잘 읽혀지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순결의식과 퇴행적이고 겉으로만 보수적인 성에 대한 인식 문제의 후진성 모두 담아지지도 다루어 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 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생명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지점으로 이야기가 집중되어서 이것도 아니의 사회적 편견에 다름아닌 것은 아닌가 하고 ... 어쨌든 글 잘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08-01-12 01: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만약 실제로 임신한 10대 아이가 이 책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주홍이처럼 저도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건가? 뭐 그런 불만들이 생겼습니다.
 
가로세로 세계사 1 : 발칸반도 - 강인한 민족들의 땅 가로세로 세계사 1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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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원복씨라면 학습만화계에서는 스타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어린시절에도 그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면서 자랐는데 요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니 하나의 책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는다는건 정말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요즘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유럽에서 벗어나서 세계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 중심의 세계 - 정확히 말하면 서유럽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동유럽,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기 시작한 것.
일단 이원복씨가 쓰면 기본은 팔려나간다는점에서 그가 이런 지역들을 써준것이 고맙기만 하다.

이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실제로 책의 내용중에서 발칸반도를 다룬 부분은 반정도밖에 안된다.
책의 앞 반 정도는 민족과 민족주의, 민족국가, 국민국가, 제국과 제국주의 등의 설명에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지만 실제로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개념들이다.
발칸반도는 특히나 민족과 종교, 역사가 복잡하게 뒤얽혀 그들 내부의 민족주의들이 상호 끊임없이 충돌하고, 또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가 맞물리는 곳이었으니 더욱더 이러한 개념들의 정리는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소 지루하더라도 저자는 이런 개념정리를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개념 설명은 대체로 별 무리없이 민족과 국민국가의 성립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는 솔직히 이 설명이 얼마나 이해되어 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워낙에 단일민족의 신화의 맹목성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또 실제로 그런 민족이라 하면 혈연의 단일성부터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가 하는 설명은 피부로 와닿기에는 무리가 많다.
그래서 어쩌면 이원복씨의 이 시리즈 중 이 책만큼은 중고생용이 되어야 하지않을까 싶기도 하다.

발칸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방정교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발칸반도에는 카톨릭,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가 믿어지지만 역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동방정교이기 때문이다.
역시 책은 동방정교의 성립과 역사 그리고 카톨릭과 비교되는 그만의 특징을 찾아내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생소한 종교의 하나이기도 하기에 무척이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동방정교와 카톨릭의 분리에서 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카톨릭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형성하는 동방정교의 역사가 재미있게 정리가 잘 되었다.
개인적으로 동방의 이콘 문화가 어떻게 발달할 수 있었을까가 궁금했었다.
우상숭배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성상파괴운동을 주도한 비잔틴 제국이지만 그들 역시 야만족이라 불리던 이민족인 슬라브족이 이동해오자 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다시 이콘을 유행시켰던 상황은 결국 종교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자신의 주장이나 모습을 얼마나 간단히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발칸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하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원래 이 지역에 살던 민족들외에 이후 대규모의 슬라브족의 이동. 그리고 오랜 오스만 제국의 지배 등은 이 지역의 민족구성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슬람의 지배기간동안 개종자도 많이 생겼는데 보통은 이 개종이 마을이나 촌락단위로 이루어짐으로써 이후 종교적인 분열의 싹까지 만들게 된다.
그것이 이후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인종 청소, 코소보사태를 만들어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책을 읽다보면 민족이나 종교는 다르지만 수백년의 세월을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 결국 서로를 말살시키고자 싸우는 광경은 이것이 인간사회의 일이라고 믿고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의 공존, 종교의 공존이란것은 결국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도 꽤 오랫동안 공산주의라는 체제하에서 동지적 연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서로를 향한 증오의 총구를 들이댈 수 있다는 것은 섬뜩한 현실이다.

이원복씨는 이렇게 발칸의 현대사까지를 서술하면서 닫힌 민족주의, 국수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가를 열변한다. 하지만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민족주의다.
열린 민족주의라는 것이 그것.
하지만 저자가 앞서 했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비교하면 이러한 결론은 지나치게 안이한 결론이라는 비판을 버릴 수 없다.
열린 민족주의라는 것은 결국 본질은 그대로 둔채 얼굴에 살짜 분만 바른 민족주의에 다름 아니다라는 것.
실제로 책의 마지막 문장들

내나라, 내민족, 내 문화에 대해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편 세계와 인류를 함께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을 지니는 것이 열린 민족주의지.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세계로 진출하며 문화국민, 문화민족으로 세계를 당당하게 끌어안는 정신과 자세 그래서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이야말로 바로 열린 민족주의로군요.

일면 도덕교과서에 딱 나올법한 평범한 결론이다. 하지만 이런 민족주의가 결국 기존에 말한던 민족주의와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누구든 평화시기에는 민족주의에 대해 저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저런 민족주의가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리해질때면 어떻게 다른 이에 대한 가혹한 폭력으로 전환될수 있는가를 발칸의 역사는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결국 이원복씨는 제대로 잘 말해놓고 마지막에 가서 결론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해버리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만약 말하기가 힘들었거나 결론을 내지지 않았다면 그냥 결론 없이 열린대로 두어도 될 법한 책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민족주의의 유령은 참 떨치기 어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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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9-2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완다의 민족간 참극이나 보스니아의 참상들을 읽다 보면, 정말 민족이나 국가라는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넘들에 대해 너무도 증오심이 끓어올랐습니다.
정말, 민족이나 나라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07-09-28 22:21   좋아요 0 | URL
민족이나 국가라는 것은 결구 그 태생부터 차별을 전제하고 나온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비국민, 민족과 비민족 그래서 내부자가 아닌 타자에 대한 폭력을 필연적으로 전제한 것이라는 거죠. 요즘은 제대로 된 세상이 되려면 정말 님의 말처럼 민족의 경계라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저도 듭니다.
 

 

 

 

 

드디어 구했다.
무라카미 모토카의 42권짜리 대작 <용(龍)>

한 10년전쯤에 요걸 보다가 하도 안나와서 그냥 잊고 살았었는데 얼마전에 드디어 완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 팔방 주변의 도서대여점을 뒤졌으나 못구했었다.
어제 친정에 갔다가 친정집앞 대여점에서 드디어 42권 전권을 구하다.

이십몇권까지인가 보고 못봣었는데 다시 볼려니 하도 오래돼서 앞의 내용의 세세한 부분은 거의 기억이 안나 결국 42권을 한꺼번에 빌렸다. 어젯밤부터 눈에 불을 켜고 보는데 지금 현재 21권 보는 중..... ㅠ.ㅠ

다시 보는 만화는 이전에 볼때 느꼈던 것보다 더 좋다.
소설로 치면 대하소설쯤 된다 할 정도로 워낙에 스케일도 크고 나오는 인물도 다양해 내용을 뭐라고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힘들다.

1920년대부터 1945년 패망때까지의 일본, 만주국, 중국이 만화의 주무대를 이룬다.
주인공 용은 일본 귀족이자 재벌가의 후계자이지만 이런 배경으로 뻔한 내용의 상상은 금물!
그의 변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진정한 무사정신의 실현을 꿈꾸며 무술수련에 열심인 무술전문학교(무전)의 풋내기 학생
자신의 집 하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집안의 계승권을 모두 버리는 로맨티스트
자신의 힘으로 독립하기 위해 거지생활이나 괴짜 스님 도장의 무술사범이 되기도한다.
또한 넓은 세상을 꿈꾸며 항공기 사업에 뛰어들어 만주항공이라는 기업을 일으키기도 하며,
또한 누명으로 들어간 경찰서에서는 조사를 받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조선인 청년의 죽음을 막기 위해 경찰서를 탈출해버리는 용감무쌍함을 발휘 - 범죄자고 쫒기기까지....
결국 일본을 탈출해 중국으로 간 용에게 시련은 여전히 끝이 없다.

이런 용의 변신만 보면 이 만화가 단순히 한 영웅적 인간의 일대기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또 아닌것이 주인공 용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이 장난 아니다.
1920년대 이후는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국주의의 길을 걷는 격동기였고 그만큼 사회는 다양한 사상과 계층간의 대립이 분출하고 있던 시대.
용이 변신할때마다 그가 만나는 인간들 역시 그 시대 일본의 모습을 전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을만큼 다양하다.
우익 국가주의자 부터 좌익 공산주의자, 옛 유신지사나 재벌, 각계 각층의 권력자들, 가난한 품팔이꾼과 노동자들, 그리고 일본 내에서 억압받고 있던 조선인들까지.....

그럼에도 주인공인 용의 입장은 어느한쪽으로 치우치진 않는다.
뭐 항상 중립을 지킨다는 그런 어줍잖은 것이 아니라 그는 현재 성장하고 있는 중이고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그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며 평화다.
그가 누구든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핍박을 받고 있으면 도와야 하고, 그가 일본이 세운 허수아비국가 만주국에서 만주항공회사를 만들때도 그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일본과 중국의 평화다. 그걸 위해서라면 자신의 집안 - 재벌하나쯤은 쓰러져도 괜찮지 않겠냐는 말을 태연하게 뱉으면서...
그런 그가 지금은 기억을 잃고 중국에 있다.
때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중일전쟁의 시기.
이곳에서 그는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까?

이 만화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작가가 그려놓은 여성상이다.
많은 여성들이 나오지만 특히 여주인공 격인 하녀출신의 타쯔루의 변신도 남자주인공 용에 못지 않다.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결국 가난 때문에 돈에 팔리고 어찌하다보니 용의 집안에 하녀로까지 오게 된 그녀는 남자주인공과 사랑을 하게 되지만  결코 그 사랑에 안주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강인한 여성상.
그녀 역시 자신의 무슨 사상을 가진건 아니지만 항상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다.
어쩌다 알게되고 감동받았던 한 노동운동가 여성이 결국 감옥에 끌려가게 되자 그녀의 아이들을 7년이나 떠맡아 기르기까지 하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한다.
영화배우로 성공한 이후에도 그녀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그녀가 영화배우가 되면서 당시의 일본 영화계의 모습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녀의 다음 도전이 어떤 것이 될지도 사뭇 기대된다.

이 만화의 또 하나의 장점은 훌륭한 그림이다.
사실적인 그림으로 그려내는 당대의 풍경은 역동적일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교토의 풍광을 묘사하는 그림들을 보면서 얼마전에 다녀왔던 교토의 거리들이 되살아나는듯 했다.
그림만 보고도 다녀왔던 곳은 아 여기가 어디구나 하는걸 바로 느끼고는 추억에 젖게하기도 한다.
또는 내가 갔던곳의 옛모습이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군국주의 일본을 비판하면서 당대를 살아간 수많은 인간의 다양한 파노라마를 펼쳐놓는 이 만화는 내게는 올해의 만화로 꼽혀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일본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아니면 역사에는 관심없어도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게든 강력추천하는 만화다.
단 42권이나 되는 분량 - 한권당 읽어내는데 드는 시간도 꽤 만만찮다.-의 압박을 견뎌낼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강추다. 한 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할 것 같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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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27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권이 넘어간 맛의 달인도 보는 판에 42권..정도는....^^

바람돌이 2007-09-27 16:27   좋아요 0 | URL
맛의 달인이 100권을 넘어갔나요? 한 50권 언저리쯤에서 보는거 중단했던 거 같은데.... 저는 요정도가 한계예요. 더 이상은.... ㅎㅎ전 지금 29권 볼 차롄데 아마 오늘밤도 다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일까지... ^^

비로그인 2007-09-2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만화는 안 읽은지 꽤 됐는데,
추천에 힘입어 보관함에 담을게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07-09-27 16:27   좋아요 0 | URL
역사만화를 특별히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재밌을거라고 생각해요. ㅎㅎ

무스탕 2007-09-2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이 끝이났군요. 오래된 책이고 유명한 책이라는건 알지만 보진 않았어요.
바람돌이님 말씀 들으니 (글을 읽으니? ^^;) 보고싶어지네요. 꼴깍~

바람돌이 2007-09-27 16:30   좋아요 0 | URL
한 10년만에 끝난 것 같아요. 유명한건 옛적에 공안정국에서 희생양으로 일본만화 때려잡을때 같이 때려잡혀서 유명해진 것도 같고... 그 때 이유가 일본의 침략정책을 미화한다 어쩐다 하는 것으로 기억돼는데 정말 말도 안돼는 이유예요. 책은 오히려 반대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좋고 재밌는 만화인데 아마도 구하기가 힘드시지 않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만.... ㅠ.ㅠ

2007-09-27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9-2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소장해야 하는데, 역시 권수의 압박이란... 중고로 알아봐야겠어요. 오래 전에 20권 정도까지 본 것 같아요. 기억 거의 안 나요. 다시 봐야 돼요^&^

바람돌이 2007-09-27 23:31   좋아요 0 | URL
저도 하나도 기억안나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보고 있습니다. ㅎㅎ 만화의 소장은 자금의 압박과 공간의 압박이 워낙 심한지라 왠만하면 피하고 있는데 마노아님도 대단하십니다. ^^
 
리진 2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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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과 역사소설이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간의 우리문학에서 역사소설이란 민족주의 아니면 맑시즘(?? 이건 좀 애매하긴 하다. 그냥 두리뭉실 민중주의라고 할까?)을 벗어나서 이야기 하기 힘들고....
따라서 역사소설이라면 항상 대하소설의 뉘앙스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 신경숙씨의 가늘디 가늘고 숨조차 쉬기 힘든 내면의 독백같은 문장들이 어울리려나 싶은 것.

하지만 역시 신경숙과 역사소설은 어울리지 않았다.
이걸 역사소설이라고 한게 도대체 누구야라고 묻고 싶다.
이것은 그저 아프디 아팠던 한 여인의 독백이지 역사소설은 아니다.
그 여인은 그저 여인일수도, 또는 그와 운명을 같이 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일수도 있을테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배경을 달리하는 다른 시대, 혹은 다른 나라로 옮겨놓는다 해도 고쳐야 할 부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  궁중 무희 리진은 그대로 조선을 빼닮았다.
그런데 여기서 리진이 조선을 빼닮았다 함은 누구의 시선으로 보여진 조선이냐는 물음을 전제해야만 한다.
그것은 콜랭으로 대표되는 서구와 같은 강대국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다.
아니 그렇게 비쳐졌으리라 생각되어지는 모습이겠다.

그녀는 한마리 나비로 연상된다.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그녀의 춘앵무도 그 나비를 연상시킨다.
아니 그녀의 몸짓, 빠져들듯 깊을 검은 눈동자, 단조로우나 물기가 배어있을 목소리까지도...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지붕을 두드리는 빗줄기에도 찢어질 한없이 연약한 나비.
그럼으로 해서 그녀가 자기 주장을 드러낼때의 콜랭은 곤혹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왜 이집트이 것이 여기에 와있어요?
콜랭, 사람들은 나 또한 당신이 조선에서 가져온 수집품들같이 구경하죠.

서구인이 본 조선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름다운 산천을 배경으로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으나 또한 무언가 함부로 하지 못할 기품을 간직하기도 한 그런 나라.
하지만 약하디 약하여 누군가의 보호를 벗어나면 곧 쓰러질 것 같은.....
콜랭의 보호에서 벗어난 리진이 그녀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은 중전에게 돌아오나 곧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곧 파멸의 길로 휩쓸려 들어가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러하다.

소설의 이런 면은 역사소설의 혐의를 풍기기도 하지만 작가가 마음을 쓰고 애절해 하는 것은 여인을 둘러싼 환경이 아니며 역사적 배경도 아니다.
그녀는 리진의 마음으로 상징되어지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안타까운 애도시 한자락을 올리고 싶었던 듯하다.
리진의 아름다움과 그녀에 대한 애틋함.
그것은 조선이라는 불행한 결말을 간직한 나라에 대한 애틋함이 아니었을까?
작가가 써내려간 문장과 리진의 애틋한 모습과 그리고 조선의 아픈 결말이 하나로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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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9-19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하고 순박하게 보였을까요? 아님, 지저분하고 무식해 보였을까요...
비숍 여사의 글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데, 후자 같아요. ^^

바람돌이 2007-09-21 02:17   좋아요 0 | URL
저도 후자일거라 생각해요. 다만 이 책에서 콜랭이 보는건 지배층에 대한 시각이죠. 나름대로 우아할 수 있었던 왕실과 지배층 지식인들 말입니다.

짱꿀라 2007-09-2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진은 역사소설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여성적 시각으로 보시면 조금 편안해 지실 겁니다. 아시겠지만, 리진의 생을 조명한게 아니고, 명성왕후를 오히려 더 부각시킨 느낌이 듭니다. 또한 리진이 있었다면 일본과 탕헤트 같은 곳을 전혀 집어 넣지 않구요. 아마 김탁환씨가 쓴 리심을 보시면 대조가 잘 될 것 같은데요.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각설하고 너무 오랫만에 댓글을 다는 것 같아서 죄송도 하고, 참 면목이 없습니다. 어찌 전주로 자리를 옮기고 나니 더 시간이 쫓기네요. 이곳에 오면 시간이 더 나줄 알았는데요. 며칠이면 정말 추석입니다. 추석 잘 보내시구요. 친지분들과 좋은 시간, 맛난 음식도 많이 많이 드시구, 두루두루 좋은 시간 가지세요. 행복하소서. 이만 줄입니다.

바람돌이 2007-09-24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적 시각도 글쎄요. 그리 편한 시각은 아닌듯합니다. 리진이란 인물은 새로운 시대가 아닌 스러져 가는 조선을 대표하는 여성인듯.... 산타님도 맛난 음식 많이 해드시고 행복한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