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촛불시위가 계속 이어지는걸 맘만 무겁게 바라보다가 오늘 나갔습니다.
시청앞에서 6시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늘 학교일이 늦게 끝난지라 집에 아이들을 데리러 갈때 벌써 6시더군요. 시청앞을 지나는데 천여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에 가서 애들 옷부터 긴옷으로 챙겨 입혀 나오니 벌써 7시
시청은 안될 것 같고 바로 서면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가다가 대열을 만나면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몰라 버스를 타기로 했어요. 뭐 지하철 타는 곳이 저희집에서는 좀 멀다는 이유도 있고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우리집 녀석 둘은 끊임없이 조잘거립니다.
촛불시위 장소인 서면 바로 앞쯤의 부전동에 이르니 시위대가 서면을 향해 거리행진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3차선에 선 버스는 그때부터 꼼짝을 못하네요. 3차선이다보니 내려주지도 않고요.
할 수 없이 버스 속에서 시위대 구경만 하는데 신기한건 참 오랫만에 시위행렬때문에 차가 막히고 있는데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네요.(버스가 꽤 붐볐어요)
솔직히 87년 말고는 이런 모습은 처음 봅니다.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버스 3코스쯤 되는 길을 아이들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겨우 집회장에 도착하니 이제 도착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으려 합니다.
그 순간 많이 걸었던게 운동이 됐던지 그동안 먹은 걸 모두 소화시켜버린 아이들이 엄마 배고파를 연발합니다.
"그래 시위고 뭐고 일단은 먹어야지..." ^^;;
집회장 바로 앞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서 빵이랑 오렌지 쥬스를 시켜 아이들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고 나오니 이미 자리 정돈이 끝났고 어딘가에 끼어들어야 하는데 정말 끝도 없이 차 있더군요.
한참을 가다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데를 발견했습니다.
솔직히 연단과 너무 멀어서 소리는 거의 웅웅거리는 소리밖에 안들렸어요.
대신에 궁금한게 많은 우리집 아이들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을 해줬죠.
그랬더니 해아 말하기를 "그러니까 이거 몸에 안좋은거니까 니나먹어라고 하는거야?"라는 말에 주변이 잠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해아의 말은 항상 말 자체보다는 그 특유의 목소리와 억양이 웃음을 주는데 여기서 재현이 안되는 아쉬움이 있군요. ㅎㅎ
그래도 한참을 잘 있어주고 남들 하는거 보고 따라도 하던 녀석들
피곤했는지 8시 반쯤 되어서 갑자기 "엄마! 잠와"
이런... 잠와 하면 그걸로 끝인 이녀석들. 진짜 순식간에 잠이 들어버렸어요.
그대로 데리고 앉아 있었지만 그 무게 때문에 다리에 쥐가 날 정도
결국 업고 있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어 옆지기와 제가 하나씩 업고 나머지 집회를 마저 봤습니다.
마지막 30분은 두녀석을 업고 보느라 기진맥진...
다음번에는 너네 안데리고 올거야라고 속으로 결심했다지요. ㅎㅎ
마지막 오늘 촛불시위 정리 멘트를 듣고 남들보다 조금 빨리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순전히 택시를 타기 위해서요. ㅠ.ㅠ
20kg짜리 두 녀석을 없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건 정말 사양이랍니다.

광장이 제대로 없는 부산이 참 아쉽습니다. 시청앞 광장이 있지만 거긴 상징적인 의미는 있어도 유동인구가 없고요. 여기가 늘 시위 장소로 선정이 되는데 참 길기만 깁니다. 그래서 집회가 보통 산만해지는 곳이죠. 제가 중간쯤에 앉았는데 저 많은 촛불들 보이시죠.
어제 2MB가 중국갔다와서 1만명의 촛불은 누가 샀으며 배후가 누군지 알아내라는 말을 했다고 했는데 오늘은 저희가 직접 그 배후가 되었습니다. 주최측에서 촛불을 얻자 촛불값으로 돈을 냈거든요. ^^


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제발 좀 더 나은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해아는 그대로 여전히 자고, 예린이는 잠이 다 깨버려서 혼자서 일기랍시고 끼적거립니다. 그러고는 이걸 턱 붙여놓고 저보고 읽으라네요. 요즘 띄어쓰기를 어려워하더니 역시 띄어쓰기는 잘 안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