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지난 달에 있었던 일인데 그때는 워낙에 바빠서 못하고 갔던 얘긴데..
아까 내 글에 달린 책읽는 나무님 댓글보다 보니 다시 생각난다.

어느 날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서 여유가 꽤 있던 아침이었다.(하여튼 사람은 안하던 짓 하면 안된다)
마실 물이 떨어져 가는 걸 보고 아침에 끓여놓고 가면 저녁에 냉장고에 넣어서 시원하게먹겠다 싶어 주전자에 물 가득 넣고 보리차랑 옥수수차 넣고 끓였다.
그리고는 씻고 아이들 깨워서 챙기고 그리고 여유만만하게 출근했다.
가스 불에 물 올려놓은 것 새까맣게 까먹고...

그리고 출근해서 정말 열심히 일해주셨다.
이 때가 워낙에 바쁜 때였던지라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하루 종일 코박고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퇴근시간을 1시간 넘겨서까지 또 코박고 일하고....
결국 오늘일은 내일로 미루라고 있는거야 하면서 룰룰랄라 퇴근을 했다.
근데 친정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려고 신호등 기다리고 있는 순간 딱 생각이 난거다.
가스불에 주전자를 올려놨는데 그걸 끈 기억이 전혀 없다는 걸....
무려 12시간에 걸쳐서 끓고 있을 주전자 생각이 퇴근할때야 나다니...

그 순간의 기분은 정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였다.
우리집 단독도 아니고 아파트인데 불나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거지?
눈앞이 캄캄, 식은땀이 줄줄이란 정말 이럴때였구나....ㅠ.ㅠ
그때부터 부들부들 떨면서 심장은 두근반 세근반 후덜거리면서 집으로 직행!
정말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뭔가 이상한 탄 냄새가 집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다.
부엌으로 달려가니 역시 그때까지 가스불은 활활 타오르고 주전자는 미동도 없이 얌전히 가스불 위에 얹어져 있었다.
휴~~~ 불안나고 곱게 새까맣게 타주고 있는 주전자가 어찌나 고맙던지...
가스불을 끄고 주전자 뚜껑을 살며시 열어보니 당연히 물은 한 방울도 없고,
넣었던 옥수수와 보리는 형체가 모두 해체돼 회색과 까만색의 재가 되어 주전자 바닥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그래도 그 순간 불 안나준것만 어찌나 고맙던지 정말...
진짜 다시는 안하던 짓 안해! ^^;;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서는.... ^^;;

근데 다음날 내 얘기를 들은 내 옆의 선생님
"자기 집의 가스렌지 오래됐지? 가스렌지 바꿔라! 가스렌지가 얼마나 부실하면 그게 그때까지 불 안나고 타고 있냐? "하면서 막 웃으신다.
진짜 가스렌지 바꾸긴 해야 하는데...
이게 10년이 한참 넘어서 요즘은 불도 라이터 갖다 대고 켜야 하걸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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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8-0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안 하던 짓 하면... 사단이 꼭 나지요. ㅎㅎㅎ

바람돌이 2008-08-05 02:26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람은 살던대로 살아야해요. ㅎㅎㅎ

아영엄마 2008-08-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냄비 올려 놓은 거 까먹고 애들이랑 산책 나갔다 왔더랬어요. 돌아와 현관문 근처에서 탄내를 맡는 순간 '아차! 우리집이다!!' 싶더군요. 당연히 냄비는 새까맣게... -.-;; 암튼 저희집이나 님네나 불 안 나서 다행이어요~. 자나깨나 불조심~, 특히 나이들어서는 나갈 때 필히 가스레인지 확인!! 입니다요.

바람돌이 2008-08-05 02:27   좋아요 0 | URL
저희집은 그 냄새 빠지는데 거의 일주일 걸렸습니다. 옷장안의 옷까지 냄새가 배겨서 출근할때 입으면 그 냄새가 났다죠. 뭐 그렇다고 전부 다 꺼내서 세탁할 정도로 부지런하진 못해서 그냥 참고 입었습니다. ㅎㅎ

하늘바람 2008-08-0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경험있어요 집안이 연기로 꽉차서 당시 회사가 가까워서 망정이지. 이궁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바람돌이 2008-08-05 02:27   좋아요 0 | URL
전 왜 중간에라도 생각이 안났을까요? 그러면 저도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 달려와서 끌수 있었는데... 정말 섬뜩해요. ㅠ.ㅠ

Mephistopheles 2008-08-05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만.하.면.하.나.새.로.장.만.하.세.요.
큰일날 뻔 했습니다요.

바람돌이 2008-08-05 02:28   좋아요 0 | URL
새로 장만해서 화력좋으면 진짜 불나게요. 그냥 참고 살래요. ㅎㅎ

조선인 2008-08-05 09:03   좋아요 0 | URL
새 제품은 과열되면 자동으로 불이 꺼져요. 오히려 화재위험이 없다니깐.

바람돌이 2008-08-05 22:52   좋아요 0 | URL
엑!!! 새 제품은 자동으로 꺼진다구요. 전 왜 몰랐을까요? ㅠ.ㅠ
이번 여름에 가스렌지 꼭 바꿉니다. 더불어 제 꿈인 그릴 있는걸루다가.... ^^

무스탕 2008-08-0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달에 모처럼 우럭매운탕 끓여서 한 번 먹고 다음날 상하지 말라고 또 끓여 놓는다고 올려놨다가 잊어버려서 홀라당... -_-
냄비 바닥에 눌러붙은 우럭이 을매나 아깝고 가슴이 쓰리던지요..

예린이랑 해아 작품 팔아서 가스렌지 사실 자금 마련하셔야 겠습니다 ^^

바람돌이 2008-08-05 22:53   좋아요 0 | URL
아 맛난 우럭 매운탕 아까버라.... ^^;;
예린이랑 해아 작품 팔아서 사려면 도대체 몇년이나 걸릴까요? ㅎㅎ

클리오 2008-08-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인생의 철렁한 순간, 정말 있죠... 그니까 평소대로 살아야된다니까요, 그쵸? =3=3=3

바람돌이 2008-08-05 22: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평소대로 살아야죠. ^^

bookJourney 2008-08-05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밤 삶는다고 냄비를 올려놓고는 깊이(!) 잠이 들어서, 냄비를 홀랑 태워먹은 적이 있어요. --;;

바람돌이 2008-08-05 22:54   좋아요 0 | URL
다들 그런 경험들 한번쯤은 다 있군요. 그래도 시간상으로는 제가 최고 기록이 아닐런지.... ^^;;
 

아침 일찍부터 전화통이 난리다.
어제 밤배로 제주도로 간 인간들의 전화, 그리고 예약을 내가 했었던 관계로 제주도 렌트카회사와 펜션쪽에서도 확인 전화.... 아 약올라!!ㅠ.ㅠ

덕분에 잠이 확 다 깨서 뭐 그냥 일어나자 하고 벌떡 일어남.
이번 방학은 도통 늦잠을 못자겠군.... ㅠ.ㅠ
아이들 하고 아침밥 해서 먹고, 부지런을 떨어서 청소도 확 다해놓고...
또 집앞 수영장 가겠다는 녀석들을 이끌고 수영장엘 갔다.
또 3시간을 놀아대는 녀석들.
간간이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늘에 앉아 갖고간 지식e3권을 간간이 읽었다.
근데 햇빛 따가운데 너무 오래 있었나?
눈이 피곤해 죽겠네....

더 놀겠다는 애들을 거의 억박질러서 집으로 오다.
그리고는 다짐을 받았다.
수영은 하루에 2시간만 하자고.... ㅎㅎ
아이들 씻기고 밥먹기는 그렇고 그냥 잔치국수를 삶았다.
먹다보니 옆지기 생각이 난다.
옆지기가 이 잔치국수를 무지하게 좋아하거든.....
잠시 고민하다가 좀 더 삶아서 옆지기 것도 하나 만들었다.
다시 국물은 보온병에 넣고(난 여름이라고 잔치국수는 따뜻한 국수가 좋더라...)
그릇도 큰 거 하나 넣고 양념장 남은것 싹싹 긁어서 넣고...

아이들을 잠시 친정에 맡겨두고는 병원으로....
병실의 다른 사람들한테 좀 미안하지만 이놈의 국수를 6인분을 삶아갈 방법은 없더라...
그래서 옆지기만 휴게실에 가서 한그릇 뚝딱 시켰다.
뭐 다른분들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잘라간 수박을 돌리는 것으로 대체!

옆지기 병실에서 이것 저것 챙기고 좀 노닥거리다가 다시 친정으로...
아이들 데리고 집으로 오니 예린이가 "엄마 나 방학숙제는 언제 해?" 한다.
끙~~~ 빨리 좀 자줬으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래서 일단 가져와봐라 하고 봤더니
무슨 놈의 초등학교 1학년 방학숙제가 이리도 많냐?
아~~~~ 이거 언제 다하지?
여태까지 하나도 안했는데...(사실 방학숙제가 뭔지 제대로 오늘 처음 봤다. ㅠ.ㅠ)
일단 쉬워보이는 것부터 시작.
정말 매일 조금씩 안 시키면 나중에 죽어나겠다싶다.
더불어 해아유치원숙제도 도와주고....(하루에 한가지씩 과제가 있다.)
내일은 해아숙제는 슬러쉬 만들어먹는거네...
이건 쉽네. 아침 먹고 아이들과 간식으로 만들어먹으면 되겠다.

아이들 씻기고 재우니 밤 10시.
세탁기에 빨래 돌려놨던 것 널고, 이것저것 설거지좀 하고 그러고 앉으니 11시다.
이 때 또 울리는 전화!
이 씨~~ 제주도다.
무지 재밌다고, 좋다고 약올리는 전화다.
덕분에 나도 맥주 한캔 까서 먹으며 지금 이러고 있다.

한번도 방학을 이렇게 심심하게 그러면서도 부지런하게 보낸적이 없기에 이 생활이 다소 생소하다. 몸이 약간 적응을 힘들어하고 있고...
그래도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잘 놀았지...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는거고.... ^^;;

그리고 또 하나.
밤에 아이들 재우고나면 할일이 없어 심심하니 알라딘에 이런 잡글도 많이 쓰고, 또 책 읽을 시간도 많고 그건 또 나름대로 괜찮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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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8-03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님이 병원에 계시군요. 뭔일인지 몰라도 얼른 좋아지시기 바래요.
이 더위에 잔치국수 삶아가는 님의 성의가 참 대단합니다.
저라면 못할걸요.

바람돌이 2008-08-04 22:49   좋아요 0 | URL
어깨 무슨 근육이 끊겼대요. 그래서 수술했어요. ^^;;
잔치국수 삶는거 별로 안힘들어요. 그냥 옆지기가 워낙 좋아하는거니 해먹은 김에 한 그릇 더 해서 간거죠뭐... 일부러 하는건 어려워도 하는 김에 한그릇 더는 뭐 성의랄 것까지는.... ^^;;

순오기 2008-08-03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생기는 게 인생이려니~~
초등학교 때나 방학숙제 엄마가 신경쓰지 중학생 되니까 별로 할 일이 없어요.ㅎㅎ
잔치국수 우리 식구들도 좋아하는데~ 올 여름엔 귀찮아서 못 하겠어요.ㅜㅜ 나도 이제 늙었나 봐~ 음식 하기 싫으면 늙는거라는데~~끙!

바람돌이 2008-08-04 22:50   좋아요 0 | URL
제 잔치국수는 정말 대충 잔치국수예요. 그냥 국수 삶고 양념장만 만드는... 간혹 기분 내키면 달걀 고명만 얹어요. 남들처럼 이것 저것 다 얹어 먹을려면 간편음식이 아니잖아요? ㅎㅎ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방학숙제 알아서 할까요? 아마 안하겠죠? ^^

울보 2008-08-0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학숙제가 많은 모양이네요
류도 내일부터 일주일 방학 그림일기 3장 그리고 독서록 기록인데 뭐 내용은 말로 읽은 책과 주인공 이름적기 류는 오늘 이만큼 적어놓고 칸이 모라란다고 말을 하네요 ㅎㅎ
아이들하고 매일 그렇게 수영장가시면 힘드시겟어요,,
옆지기님은 아직도 병원에 계시는군요
음,,제주도 저도 가고 싶은데,,잔치국수 맛나겠어요,,

바람돌이 2008-08-04 22:52   좋아요 0 | URL
사실 유치원때도 방학숙제가 있긴 했지만 제가 방학때는 아예 애들을 유치원에 안보내서 신경을 안썼거든요. 안해갔단 얘기죠... ^^ 근데 초등학교는 그래선 안될것 같아서 신경이 쓰이네요. 오늘도 너무 많이 놀아서 지친 녀석들 숙제하자니 자네요. ㅎㅎ

서연사랑 2008-08-0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학숙제...저는 막 덜 해서 보내고 그랬어요 ㅋㅋ(뭔 배짱...)

평온한 일상을 맘껏 즐기시길 바래요~^^


바람돌이 2008-08-04 22:53   좋아요 0 | URL
저도 다 해서 보낼 것 같지 않습니다. ㅎㅎ
오늘도 결국 숙제 한 번도 못하고 하루종일 놀다가 일찍부터 뻗어서 자네요. ^^

책읽는나무 2008-08-0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겨울방학때도 옆지기님 입원하시지 않으셨나요? 근데 또??
무튼....더운데..아주 평탄한 아이들과 님의 방학을 보내고 계시군요.
저도 지금 민이 유치원 방학숙제 때문에 쬐끔 골치가 아프군요.
뜬금없이 가족신문을 만들어오라고 하니..이거 원~~
일주일 띵가 띵가 잘 놀다가 다음주 일주일을 맞이하려고보니 방학 끝줄에 들어섰더라구요.
이런~~
그래서 금방 애들 급하게 재우고 또 혼자서 급하게 가족신문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인상 구기며 대충 기획만 짜다가 에라~
식빵에 잼 발라서 지금 알라딘 앞에 앉았어요.ㅡ.ㅡ;;

애들 숙제가 엄마 숙제라더니 전 학교에 입학 시키기도 전에 벌써 숙제때문에 내가 고민이네요.저녀석은 것도 모르고 침 흘리면서 잠 자고 있고....

바람돌이 2008-08-04 22:56   좋아요 0 | URL
겨울방학 여름방학 연짝으로 옆지기 입원입니다. 그래도 겨울엔 입원기간도 짧고 회복기도 3주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입원기간도 길고 회복기간이 3달에서 6개월이라네요. ㅠ.ㅠ
도대체 학교에서 방학숙제는 왜 내주는걸까요? 그것도 초등학교에서... 무슨놈의 초등학교 방학숙제가 중학교보다 많은지...ㅠ.ㅠ
유치원에서 가족신문 너무 심한거 아닌가요? 초등학생도 힘든데...
예린이랑 해아 예전에 다니던 유치원이 그랬어요. 항상 숙제고 뭐고 엄마힘을 빌려야 되는거 너무 많이 내주고... 그런데 지금 해아 다니는 유치원은 숙제도 아이와 쉽게 할 수 있는 것만 내줘서 정말 좋아요. ㅎㅎ

sooninara 2008-08-0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학마다 병원 가시는 옆지기님도 고생이시고 환자보호자도 고생이시네요.
힘내세요. 제주도는 그래서 못가셨군요. 저도 올여름엔 제주도 가고 싶었는데..
다음으로 미뤘어요. 방학숙제는 안해가도 안혼나던데...ㅋㅋ
전 아이들 방학숙제는 대충 챙겨요. 일기나 쓰라고 하고..
아이들도 좀 놀아야 할테니..

바람돌이 2008-08-04 22:57   좋아요 0 | URL
방학숙제 안해가도 안 혼나요? 예린이 선생님 조금 무서운데 괜찮을까요? ^^
그리고 예린이 성격이 좀 그런거 안하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좀 받는 성격이라 안해가지는 않을것 같아요. 그래서 저만 힘들죠. ㅎㅎ
 
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이라고 어느 영국 주교는 영국 공군이 독일 도시를 폭격한 행위를 비난했다. 가장 악명높은 영국 공군의 폭격은 1945년 2월 13일과 14일에 걸쳐 드레스덴에 가해진 것이었다. 이때 떨어진 폭탄 1,000개로 사망한 사람 수는 약 6만명에서 12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18세기의 아름다운 건축물도 이때 많이 파괴되었다. 이 사진은 시 청사의 탑에서 내려다본 폐허가 된 시가지 전경이다. '엘베 강의 피렌체'로 불리는 드레스덴은 진격하는 러시아군에 쫒긴 피난민들로 가득차 있었다.......(사진과 글 - 20세기 포토다큐세계사 4 독일의 세기 186-187쪽)

드레스덴 폭격이 전후 20년간 미국에서는 아는 놈만 알고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데는 아마도 이유가 있으리라...
2차대전동안 무수히 많았던 폭격들이 모두 은폐되었던 것은 전혀 아닐터이다.
오히려 전쟁의 혁혁한 성과로 널리 알려지고 찬양되어졌을터...
그럼에도 이 폭격은 예외적으로 쉬쉬 되어왔던 것은 이 폭격이 군사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고 단지 독일의 항복을 며칠 더 앞당긴다는 명분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폭격이었기 때문일터... 또한 희생자의 대부분이 민간인이었고...

따라서 서양인들에게는 이 드레스덴 폭격이 하나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아니었나 싶어진다.
드레스덴 폭격이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이 근래에 본 것만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 <책도둑>, 그리고 <제 5도살장>이다.
그들 나름대로 이 트라우마를 제대로 표현하고 치유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때 미군포로의 신분으로 이 도시에 있다가 요행히 살아남은 빌리 필그림 또는 저자자신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제목의 상징감으로 인해 전쟁의 비참한 모습을 현장묘사를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잔인한 장면은 의외로 별로 없다.
빌리 필그림이 아니 커트 보네거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전쟁의 트라우마이다.
드레스덴에 가해진 아군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빌리 필그림은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없이 그것도 아주 부자가 되어 성공적인 삶을 이룬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늘 시간여행중이다.
그가 살아남았던 드레스덴을 떠나지 못하여 배회하고, 때로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의 우주인들이 잊어라 잊고 살아라 하는 것처럼 다른 행성으로 자신의 정신을 보내버리기도 한다.
하루 하루 매순간 그는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 비현실을 넘나드는 삶을 살고 있다.
전쟁의 트라우마가 한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만드는지 빌리 필그림을 보라라고 얘기하는 것일까?

하지만 빌리 필그림은 끊임없이 읊조린다.
그렇게 가는거지 뭐......
모든 인간과 생물의 죽음에 그저 그렇게 가는거지 뭐라고 읊조리는 빌리는 과연 달관한 것일까?
아니 내가 보기엔 견디기 힘든 악몽으로부터 그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 바로 그 읊조림일 것 같다.
그런식으로 인간의 숙명으로 죽음을 받아들여버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는 훨씬 더 전에 자기 머리에 총을 들이댔을지도 모르겠다.

커트 보네거트가 이 책을 씀으로써 빌리의 트라우마를 전면에 내세온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드레스덴 폭격을 고발하기 위해서?
아니면 전쟁의 상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인류가 아직도 드레스덴을 여전히 아니 더 확대된 형태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게다.
이대로라면 전 지구의 생물들이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의 확대반복!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지구 어느 한켠에서는 총알이 튀고 폭탄이 터지고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고 누군가를 죽이고 있을게다.
제2 제3이 아니라 수백 수천개의 드레스덴이 지금도 만들어지고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사는 땅은 절대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까?
모든 행동의 정당한 출발점은 휴머니즘이어야 한다.
빌리의 상처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공감해보자!!
그속에서 분노도 저항도 애정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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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0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
제가 강추한 보람이 있어 보입니다.ㅎㅎ
현실과 비현실같은 현재상황이 자꾸 체념화될까 우려됩니다.
그렇게 살다 가는거지...ㅎ

바람돌이 2008-08-05 22:59   좋아요 0 | URL
여우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죠 뭐.. 제가 감사합니다. 단 리뷰는 여우님과는 절대 비교안해요. 도대체가 비교가 돼야죠 ㅎㅎ
전 개개인은 체념도 하고 포기도 하지만 전체로는 늘 새로운 세대가 희망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저께 읽은 지식 e에 그런 얘기가 나오더군요. 68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었냐고? 아니 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바뀌었다고... 그게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라딘도 이번에 너무 멋지고 아프라사스님은 늘 멋졌지만 또 멋져요. ㅎㅎ

이런 이벤트는 무조건 참가해야 합니다. ^^

 

 

 

 

지식 - e 시리즈 3권
군인들이 나라를 지켜야지 너무 세상사에 많은 걸 알려고 하면 안되잖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갖 모습이 다 들어 있는데 이런 거 보면 갑자기 궁금한게 너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김에 아예 ebs방송의 지식-e 방송도 방송불가판정을 내리든지...

 

 

 


날마다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서 복지가 안된다고 생난린데....
우리보다 훠얼씬 못사는 쿠바가 교육과 의료같은 기본적인 복지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를 보면 대한민국에 살기 싫어질듯...
군인들이 몽땅 쿠바로 이민간다고 하면 안되잖아요.

일단 여기까지... 나중에 또 생각나면 추가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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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02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멋쟁이 아프락사스님이 이런 걸 했군요~~ 알라딘과 알라디너의 센스 짱!
나도 생각해봐야지~~~ ㅋㅋ

바람돌이 2008-08-02 22:5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참가하셨어요? 역시 센스짱인 순오기님 책도 기대되는걸요. ^^

마늘빵 2008-08-02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바람돌이 2008-08-02 22:53   좋아요 0 | URL
^^

프레이야 2008-08-03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식의 불온서적이군요. ㅎㅎ
코미디가 판을 치니 도서계에도 코미디마케팅으로다가...

바람돌이 2008-08-04 22:57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정작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의 판매량이 올라갈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

새벽여행 2008-08-04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몇번 더 불온 서적 선정해 주면 출판사의 불황타계에 큰 도움을 줄거 같습니다.
알고보니 국방부가 우리나라 출판시장을 많이 걱정해 주고 있었어요.
ㅋㅋㅋ

바람돌이 2008-08-04 23:02   좋아요 0 | URL
특히 인문사회과학 서적계의 불황타계에 아주 큰 공헌을 하고있는것 같죠? ^^ 새벽여행님 닉네임이 인상적이네요. 반가워요. ^^

조선인 2008-08-04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여기까지! 라고 하시더니 보충은?

바람돌이 2008-08-04 23:03   좋아요 0 | URL
보충을 할까 했는데 조선인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이 워낙에 쟁쟁하게 쓰셔서 전 그만해도 될 것 같아서요. ㅎㅎ
 

 

35-36.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 1, 2>


2차대전 당시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 소설.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독일에서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예 삶을 박탈당해야 하는 사람들을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보여준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다.


37.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꽤 재밌게 읽어서 나오자마자 읽고 싶어 안달한 책이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유머감각 넘쳐 주시고 입답도 여전히 좋고...
하지만 예전만큼 이 사람책이 재밌지는 않았다. 유럽을 정말 여유있게(시간이란 면에서) 유유자적 돌아다니면서 관광객의 눈으로는 볼수 없는 것들을 많이 얘기해주는데 그게 완전히 공감하기에는 그와 나의 문화적 차이가 참 크다는걸 많이 느꼈다.

38-40. 위화의 <형제 1,2,3>


어머니의 재혼으로 졸지에 형제가 된 두 소년의 인생역정. 문화혁명기의 광기와 그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 소년의 생존기.
하지만 둘 다 어른이 되고 한쪽은 개혁 개방의 물결속에서 거부가 되고, 다른 한쪽은 나날이 도태되어가는 형제. 개혁 개방의 물결속에서 양극화로 치달아가는 오늘의 중국의 모습이 형제의 모습으로 투영되다.

41.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1>


예전에 ebs에서 했던 진중권씨의 미술사 강의를 재밌게 들었었다. 책의 내용은 그 때 강의 했던 내용이 기본이 된듯... 사실 난 후반부의 현대미술 강의가 더 재밌었는데 그건 아마 2권으로 나올려나? 기존의 미술사책의 전개순서를 무시하고
미술형식, 시대, 사조를 아우르는 독특한 순서가 인상적이었다. 미술사에 대해 기본적인 책을 보고 난 이후 다시 보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

 

42. 주제 사라마구의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가 워낙에 강렬했던 탓에 고민도 없이 바로 나오자 마자 샀던 책. 뭐 읽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원제가 <모든 이름들>이라고 하는데 소설 내용상으로는 그게 훨씬 적합할듯하다. 모든 이름들이 익명화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심도깊은 고민이 물씬 배어나지만 그에 따른 서사의 힘은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살짝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43. 아스카 후지모리의 <미크로 코스모스>


일본의 역사를 이다지도 뭉개놓을 수 있다니.... 그렇다고 해서 통쾌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기발함과 발상의 자유스러움, 능청스러움에 놀랐다고 할까?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얘기를 그럴듯하게 버무리는 재주가 용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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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도 리뷰를 쓰지 않게 되는 책이 늘고 있다.
어쩌다 그때 못쓰게 되면 미루다 미루다 결국 안쓰게 되는구나...
그렇다고 지금 반성 모드로 들어가서 다시 끌적거리고 싶지는 않으니, 역시 귀차니즘이란....
대충 한동안 소설쪽으로 읽는 책들이 많이 기울었던 듯한데(지금 읽고 있는 것도 소설) 8월에는 조금 독서의 방향을 돌려볼까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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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8-08-01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보관함에서 어서 꺼내달라고 자꾸 아우성인데 어쩌죠 ㅎㅎ
조만간 지를 듯...ㅠㅠ

바람돌이 2008-08-0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곳에서는 참 책 지르기도 쉽지 않을듯하네요. ^^
서양미술사로서는 참 독특한 서술의 책이예요. 시사를 다룬 진중권씨의 책과는 또 다르게 색다른 맛이 나요. 보관함에서 아우성인 책들이 포화상태 되면 한꺼번에 지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