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 대해서 느끼는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른다. 당시에 나는 자신들의 부모뿐만 아니라 범행을 저지르고, 또 범행을 수수방관하고, 외면하고, 묵인하고, 수용한 모든 세대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켜 수치심 자체는 아니라도 적어도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한 다른 학생들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들 학생들에게서 자주 발견하곤 했던 그 의기양양한 독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어떻게 사람이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렇게 독선을 과시할 수 있는가? 부모로부터의 그러한 분리는, 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부모가 저지른 죄 속으로 어쩔 수 없이 연루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단순한 수사요, 잡음이요, 소음에 지나지 않았던가?" 
이런한 생각들은 나중에 떠오른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나중에도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했다. 한나에 대한 사랑때문에 겪은 나의 고통이 어느 면에서는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운명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고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슬쩍 넘어가기도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는가? (182-183쪽) 

꼬마 미하엘은 한나에게 한없이 빠져든다.
한나 역시 미하엘을 꼬마, kid라고 부르며 애써 거리를 두지만 그녀가 미하엘을 사랑하고 있음은 그녀의 머뭇거림에서 오히려 드러난다.
그저 사랑이다. 나이를 빼고 나면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한나가 떠나고 미하엘이 한나를 다시 만난 것은 의외에도 법정에서이다.
그것도 나치 부역자로 법정에 선 한나의 모습.
영화속에서는  너무나도 순진한 아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판사를 향해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라던 한나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독일인 전체를 향해서 던지는 질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속에서는 오히려 다시 만난 한나를 향한 미하엘의 머뭇거림이 더 오래 남는다.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나 궁지에 몰린 그녀를 다시 온전한 사랑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머뭇거리는 미하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일것인가 아니면 회피할 것인가?
단지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 때문이 아닌 과오를 사랑을 이유로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같이 짐을 나눠야 할까?
미하엘의 고민, 머뭇거림은 늘 그렇게 머뭇거림으로 끝난다.
그의 주저는 결국 그들 둘의 즐거웠던 추억 - 그가 한나를 안고 책을 읽어주던 기억에 그를 머무르게 한다. 

어쩌면 아버지 세대의 전쟁범죄를 보는 전후세대 독일인들의 마음이 한나에 대한 미하엘의 마음과 교차하는 순간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만 보고 싶지만 사실 사랑이란게 얼마나 복잡다단하며 미묘한 감정이던가?
모든 것을 같이 책임지고 같이 아파하는 사랑은 그리 흔한게 아니다.
그것이 연인이든 역사에 대한 책임이든.....
그 연인이나 역사의 죽음앞에서야 이제 제대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얼굴을 사랑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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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니 영화도 좋지만 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걸 같이 아파하고 같이 책임지는 사랑,
객관적거리를 둘 수 있는 자리에서도 그 편이 될 수 있는 사랑,
그런것이군요.역사에대한책임,도 동일하게요.

바람돌이 2009-06-05 13:27   좋아요 0 | URL
책의 90%는 영화와 같구요. 결코 미하엘역의 남자배우가 표현할 수 없었던 내면의 우물거림은 책속에서 더 이해가 잘 되더군요.
하지만 사랑이든 역사든 똑같이 아파하는건 가능할까요? 미하엘이 그러했든 원래 그렇게 불가능한게 아닐까?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거리만큼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고 행하는것, 전 그게 미하엘에게는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던듯해요. 우리에게는 어디까지일지... 글쎄요....

2009-06-0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과 비슷한 느낌을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에서 받았어요.
한 시대의 악이 평범한 개인한테 전이되는 것. 성인식에 선물로 흑인 노예와 채찍을 받은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예를 학대합니다. 시대의 악과 평범한 개인한테 진행되는 악의 전이. 어려운 문제이고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더 리더>는 영화로 봤는데 마지막 한나의 선택에 울컥했어요.

바람돌이 2009-06-05 15:56   좋아요 0 | URL
요즘 히틀러시대에 대한 연구나 파시즘 그리고 파시즘시대의 대중심리에 대한 책들이 유난히 많은것도 결국 이런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면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겠죠? 저도 더 리더에서 마지막 한나의 선택은 충분히 예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울컥하더라구요.
덕분에 관심가는 책을 또 발견했네요. 2백년전 악녀일기.. 재밌을 것 같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6-0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배경을 옮겨서 친일파 문제로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바람돌이 2009-06-05 16:22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로 옮겨오면 이런 글은 안나올것 같아요. 적어도 나찌에의 부역이 죄악으로 인정되고 공유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묻혀버리는 나라만큼의 차이가 나오겠죠? 그리고 피해자의 입장과 가해자의 입장의 차이가 있을테고요. 최근에 나온 김연수씨의 <밤은 노래한다>가 선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보여준 시도가 아닐까 싶은데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도 많이 듭니다.
 

25. 최세희, 전성원, 손동수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  


민중의 삶을 노래한 비올레따 파라
누구도 관심갖지 않고, 아니 외면하고 싶어하는 우리 안의 낯선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댄 다이앤 아버스
흑인과 여성이라는 두 겹의 벽을 깨드리려 한 영화감독 유잔팔시
모든 전쟁에 반대하며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보여준 화가 케테 콜비츠  

흔히 전집으로 이루어진 전기문들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여성들.
중고등학생에게 그리고 여성의 역사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

 


26. 유재현의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전작인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가 아시아의 근대사를 관통한다면 이 책은 아시아의 오늘 현재의 모습과 진실을 알리고 있다.
봉건적인 국왕이 살아있고 신으로 추앙받는 태국의 실제모습, 그리고 최근에 벌어지는 각종 시위와 공격들이 왜 일어나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성공에는 어떤 배경이 숨어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가 같이 살아가야 할 아시아는 우리의 거울이다.
이놈의 나라 인간들이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하는게 문제긴 하지만..... 

 

 

27-29.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 1,2,3>  

  

 

 

 

 

 

 

 표지가 바뀌었네....... 예전의 노란 표지는 좀 특색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이 표지도 또 딱히 맘에 든다고 하기는 힘들군.... ㅠ.ㅠ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을 잡아끄는 힘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탁월한 능력이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서도 느꼈지만 결말을 맺는 힘은 좀 약하지 않나싶은....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인간관은 역시 내가 감당하기에는 좀 힘들다고 할까?   

  

30. KBS한국사전 제작팀의 <한국사전 4> 

   

부제가 무너진 왕실의 화려한 귀환이다.
주로 왕실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인데 이게 편이 뒤로 가다보니 아무래도 소재의 제약을 많이 받는 느낌이다.
백제 위덕왕이나 고구려 우씨왕후의 얘기는 기본적인 자료가 너무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다보니 정작 인물에 집중하기는 힘들었고 당대의 다른 주변적인 상황서술이 주가 되버렸고...
그외 광해군, 혜경궁홍씨, 흥선대원군의 얘기들은 워낙에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알려진 인물들인데 별로 새롭지 않은걸 새로운 해석이라 강요하는 느낌이 많았고.... 
이 시리즈 자체가 이제 끝맺음을 할 때가 대충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다.





31. 페른하르트 슬링크의 <더 리더>


 

영화의 장면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남자주인공보다 역시 케이트 윈슬렛과 한나가 겹쳐지는게 정말 여자주인공은 탁월한 선택이었나보다.
책과 영화는 거의 일치하는듯하나 남자주인공 미하엘이 한나에게 느끼는 그 복잡한 감정은 역시 책에서 읽을때 더 잘 이해되는듯하다.
책을 읽다가 문든 한나가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구세대를 대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하엘은 그 구세대를 바라보는 전후세대의 복잡미묘한 심정을 대변한다고 할까?
버릴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그 어정쩡한 경계..... 

 

 

32.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요즘 우리나라의 청소년 소설계가 수상하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할만한 것도 별로 없던 출판계에 갑자기 새로운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소재나 이야기의 재미나 주제까지 영역을 확 넓히면서...
내인생의 스프링캠프나 완득이를 읽으면서 즐거웠는데 역시 이번엔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으면서 즐거웠다.
어른과 청소년이 같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위저드 베이커리....
다만 마법사의 존재이유나 근거에 대해서는 조금만 더 설득력이 있었다면... 2%부족이다. 

 

 

33. 김용호의 <신화 이야기를 창조하다>

  

우리나라와 동서양 모두의 신화를 종횡무진하며 엮어내는 솜씨는 과히 신기에 가깝다고나 할까?
이야기의 힘을 물씬 느끼게 하는 책.
근데 가끔은 저자 스스로가 너무 이야기의 세계로 푹 빠져버렸다는 느낌이랄까? 저자가 느끼는 이야기의 힘과 독자가 느끼는 이야기의 힘은 그 느끼는 강도가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저자가 너무 앞서나가니 독자로서는 한 번씩 뜨악한 느낌이 든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때도 적당한 거리두기는 이래서 필요한거구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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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꽤 읽었는데 리뷰는 거의 못썼다.
글을 쓰고 싶은 생각 자체가 나지 않는 그런 날들...
오늘 이 페이퍼 쓰고 다시 심기일전해야지 하면서 문든 드는 생각은
아! 사람도 곰처럼 겨울잠 같은걸 잤으면 좋겠다싶은.....
그러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 보일까???? 

겨울잠 아니면 여름잠이라도 어찌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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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6-0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음 더 리더 영화 보고 프잖아용 에고

바람돌이 2009-06-04 23:30   좋아요 0 | URL
더 리더 영화 전 참 좋았어요. 근데 역시 책이 더 좋네요. 오히려 영화보다 더 쉽게 와닿는 책이라고 할까요? ^^

노이에자이트 2009-06-0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 좋아하나봐요.

바람돌이 2009-06-04 23:32   좋아요 0 | URL
아뇨.. 별로 안 좋아해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참 재밌는데 책장을 덮을때 항상 뭔가 찜찜함이 뒷덜미를 서늘하게 한다고 할까요? 그게 작품때문이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마음 깊숙이 있는 어떤 어둠때문에 부담스러워요.
백야행은 워낙에 유명한 히가시노게이고의 대표작이라 혹시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선입견을 바꿀 수 있을까 싶어 봤는데 역시 아니네요. 근데 책은 재밌어요. 결론적으로 이 사람은 내 취향이 아니다라는거죠 뭐.... ^^

프레이야 2009-06-0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세상을꿈꾸다, 구입해놓고 아직이에요.
바람**님의 글도 있는데 어여 읽어봐야겠어요.
님의 추천글 보니 역시 좋은 책이군요.

바람돌이 2009-06-05 13:28   좋아요 0 | URL
쉽게 재밌게 읽을 수 있었어요. 전 이 시리즈가 3권까지던데 앞에 나왔던 책들도 찾아 읽어보려구요.
 
백야행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엄청난 몰입도!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마지막 장의 그 순간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주인공들의 진짜 관계의 정체!
이 유명한 소설은 도서관에서 늘 대출중이었다.
겨우 겨우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은 결국 하루에 한 권씩 사흘의 밤을 밝히게 만들고야 말았으니 그 이유가 바로 앞에 말한 것들이었다. 

"줄곧 나는 하얀 어둠속을 걸어왔어. 태양 아래서 걸어보는게 내 유일한 소망이야."
이런 유키호의 고백은 그녀의 삶을 얘기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이 책속에서 묘사되는 유키호라는 여자의 이미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녀는 한 번도 명징하게 앞에 나서 자기 주장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책의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사이에 그녀는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존재로 버티고 있다. 소설속의 그녀가 신비화되어 나타나듯 독자에게도 그녀는 신비로운 존재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때까지, 아니 덮은 후에조차도 그녀는 왜 이런 삶을 사는걸까? 왜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걸까 못내 궁금하게 하는 힘.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료지 역시 애매하고 안개에 싸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지, 그의 모든 행동들의 근원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대하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든 이 둘의 오래된 슬픔과 외로움은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과 함게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놓치 못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모든 것이 명징하고 일사분란하게 복기되는 것도 아니다.
책을 다시 뒤적이며 얼키고 설켰던 사건들을 다시 복기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하얀어둠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니 내용보다 더 절묘한 제목이었구나....  

다만 아쉬움은 마지막 순간의 비밀이 벗겨지는 순간 20년을 이어온 두 주인공의 관계의 설득력이 갑자기 떨어진다는 점이랄까?
그럼에도 멋진 재미있는 추리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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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둘째의 유치원행사로 가족마라톤이 있었다.
천방지축으로 뛰어가는 아이들 따라뛰느라고 헉헉거리는데 옆에서 같이 뛰며 휴대폰을 받던 엄마가 놀란 목소리로 "노무현대통령이 자살했대요"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순간 진짜 죽을 놈들은 다 안 죽고 살아있건만 왜 당신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번도 그를 온전히 지지해본적이 없다.
지역의 특성상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후 그의 유세를 따라다니며 지지시위에 참가했었고
그가 탄핵당했을때도 촛불시위를 갔었지만 그런 나의 행위는 그를 지지해서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지지는 최선이 아닌 차선이거나, 아니면 그의 반대자들에 대한 반대였을뿐... 

민주당사 점거 농성때(뭣 때문에 한 농성이었는지는 이제는 기억도 안난다만....)
농성자들을 설득하러온 당시 초보국회의원이었던 그에게는 냉소했었고,
대선 때도 그를 찍지 않았으며 돼지 저금통도 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통령만 아니었다면 그가 우리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정치인으로 남을 수 있었을거라며 아쉬워하기는 했었다.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그라는 존재 자체가 가지는 한국사회에서의 유의미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또한 그의 정책이 아니라 존재에 대해 가해지는 온갖 부당한 비판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웠었다.
그리고 퇴임후 비로소 나는 그를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농부로 돌아가 손녀와 자전거를 타는 그의 모습에서 전직대통령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했었다. 지푸라기만한 권력에 연연하는 모습이 아니라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그의 모습에 은퇴한 정치인의 하나의 모범을 보는듯하였다. 

그리고 그의 죽음...
부디 그가 받았던 부당한 비판들에 대해 한국 사회가 사과할 수 있기를...
그리고 제발 부디 이제는 편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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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캄보디아 서북부 태국과의 국경을 이루는 당렉산맥. 이 당렉산의 절벽 위에 쁘라삿 쁘레아 비히어라는 발음도 어려운 이름으로 불리는 앙코르시대의 사원하나가 있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그 직후 태국이 이 지역에 특수부대 병력을 급파했고 캄보디아 또한 수비병력을 증원해 군사적 대치가 시작되었다. 왜일까?  원인을 굳이 따지고 든다면 이 지역의 복잡한 식민지 역사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다. 현재의 가장 큰 원인을 따져보면 

캄보디아의 집권자 훈센은 베트남괴뢰정부의 수반을 지냈던 정통성과 도덕성을 결여한 인물.
그런 그가 2003년 태국의 여배우가 했다는 "캄보디아가 앙코르와트를 훔쳤다"라고 하는 근거도 없는 말에 주저없이 이를 이용한다. 여배우를 공격하고 반태국 정서를 고무시키며 태국 왕의 초상화를 불태우고... 그야말로 조작된 보도를 빌미로 크메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해 반태국 폭동으로까지 발전시킨 훈센의 책동은 캄보디아인들 사이에 만연한 반베트남, 반훈센정서를 희석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태국이다. 2008년 8월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때 태국인들을 선동한 세력은 왕인 푸미폰과 군부에 기대고 있는 민주주의 인민연합인 PAD였다. PAD는 엉뚱하게 탁신계의 현 정권을 영토를 빼앗긴 무능하고 파렴치한 정권으로 매도하고 나선 것. 결국 2003년 프놈펜의 반태국 폭동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정권타도의 도구로 재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독재정권 유지에 눈이 먼 훈센과 군부를 포함한 태국 왕정주의자들의 이 터무니없는 대립조장은 어쩌면 동남아시아에서 태국과 캄보디아(캄보디아를 지원하는 베트남까지) 포함시키는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태국
"왕과 왕비, 왕실의 후계자 또는 왕실을 비방, 모독하거나 위협하는 자는 3년에서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에 버금가는 태국의 군주보안법(태국 형법 112조)
비방, 모독, 위협과 같은 모호한 법률적용어로 자의적 해석을 위한 모든 길을 열고 있는 이 같은 법으로 유지되는 왕실이란 결국 밖에서 보듯 태국왕실이 국민의 자발적 충성이나 존경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일터....
일례로 태국 정보산업부는 2008년 무려 205억의 예산을 들여서 왕실에 대해 부적절한 콘텐즈의 태국 유입을 막기 위한 국가적 인터넷 파이어월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아마도 남한의 MB가 여기서 한 수 배운듯....) 

국왕 푸미폰, 군부, 그리고 PAD(민주주의 인민연합)
2006년 9월 총리인 탁신의 외유를 틈타 쿠데타 주도, 권력교체에 성공하였다. PAD는 방콕의 중산층(결국 태국의 상류층) 계급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반탁신시위를 주도한 연합조직으로 탁신의 축출과 왕의 개입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며 방콕에 노란셔츠(왕실의 상징색)의 물결을 만들었다. 심지어 이 진영에는 이런 중산층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언론자본가, 또 태국의 386이라 할 70년대 학생운동세력까지 포진하고 있다. 중산층은 그렇다 치고 70년대 학생운동세력(공산주의운동 세력)까지 친국왕 군부쿠데타에 가담한다는 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민중운동이나 사회운동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태국의 지독한 엘리트주의의 전형이랄까? 

탁신 총리 그리고 탁신지지 시위대인 반독재민주연합전선(UDD)
탁신은 전형적인 대자본가이며 정권을 이용해 부정부패를 일삼는 신자유주의자. 반인권의 상징
그럼에도 2006년과 2008년의  PAD에 의한 탁신의 축출이 태국의 진보적 발전을 10년 이상 역주행시켰다고 평가한 이유는 탁신은 태국 최초로 가난한 자들을 배려한 복지정책을 실현한 이중트랙 정책의 장본인이라는 것. '3바트로 병원에'로 상징되는 탁신의 의료보장체제, 농촌을 대상으로 한 무조건부 자금지원, 농촌의 특산물을 개발하고 유통판매할 수 있도록 한 오톱(OTOP)
탁신이 원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태국사회에서 탁신은 천천히라도 앞을 향해 나아간 태국사회의 요구를 어느정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완전히 무산시켜 버린 것이 국왕과  PAD의 쿠데타. 

"그 거리의 끝에 두 명의 악당이 버티고 있다. 두 명의 악당을 모두 처단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란 언제 어느 때에도 그런 식으로 충동적으로, 유아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지금 태국이 필요한 것은 악당 중에 늙은 악당을 때려눕히는 일이다. 늙은 악당을 없애지 못한다면 젊은 악당을 때려눕힐 기회 또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미얀마 
미얀마의 군사독재정권은 비슷한 군사독재를 겪어온 우리의 입장에서도 으악 할만큼 말종의 군부독재정권이다. 1985년 싹트기 시작한 민주화시위가 1988년에 이르러 8월 8일의 항쟁으로 발전했을 때 이들은 3천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피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1990년 5월 총선은 민족민주동맹이 압도적 의석수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대신 당선된 의원들을 투옥하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서는 것으로 총선을 약속한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했다 2007년 승려들이 주도한 민주화 시위 역시 유혈진압으로 무산되었으면 군정은 여전히 철권을 행사하고 있다.   

태풍 나르기스가 휩쓸고간 미얀마에서 미얀마 군부가 미국과 유럽의 구호물자를 거부하면서 한때 이 나라는 다시 한 번 비인권국가로 외신을 달구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미얀마에서의 인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대로 고쳐 쓰면 그것은 인권이 아니라 '이익'이다. 세계 10위의 천연가스 매장량, 광물과 목재등...거기다 군사적 경제적 가치가 뛰어난 인근의 말라카 해협,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항로를 보장받기 위해서도 서방에게는 미얀마에 친서방국가가 들어서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이익도 존재한다.
하지만 미얀마정권은 남한, 태국, 특히 중국 덕분에 미국과 유럽없이도 세계화 시대,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은덕으로 알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런 미얀마정권에게 미국의 미군함을 통한 구호물자 수송, 일방적인 공중투하방식은 미얀마군부에게는 협박일뿐이다.
이런 미얀마에서 아웅 산 수치와 NLD가 미얀마에 대한 경제봉쇄를 줄기차게 주장하며 그것이 미얀마 정권에 타격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판단착오일 뿐이다. 서방의 경제봉쇄는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말종의 군정에게 아무런 타격도 미치지 못하고 오직 민중들의 고통만을 배가시키고 있을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봉쇄로 인해 심화되고 있는 군사적 탄압과 경제적 빈곤, 정보의 폐쇄가 민중적 역량의 조직과 발전에도 또한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 군정의 종식은 미얀마 민중이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을 때 도래할 것이다. 서방의 봉쇄에 대한 NLD의 맹목적 지지는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네팔
2001년 왕정살인극으로 유명해진 네팔.
그리고 2006년 11월 10년간 무장투쟁을 벌이던 네팔공산당(M)이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고 정부구성에 참여했으며 제헌의회 선거에 참여해 승리했다. 평화협정은 네팔정부군과 인민해방군의 무장해제와 적대행위 금지, 왕정폐지, 공화국으로의 이행, 해방구의 인민정부 해산, 과도헌법과 과도정부의 구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네팔은 그 협정을 이행 중이다.
21세기의 드문 공산주의자인 이들 네팔공산당은 새로운 노선을 실험 중이다. 20세기 공산주의의 파탄은 민주주의 파탄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며 참된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21세기 민주주의는 바로 그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공산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다당제' - 선언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 다당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선거에 참여했다.
선거에서 네팔공산당은 일정한 의석을 확보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10년간 그들과 같이 싸우고 그들을 지지해줬던 농민들의 가장 큰 요구 토지개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네팔공산당이 선택한 다당제와 의회민주주의가 이 농민의 토지개혁요구를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을것인지가 이 당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노선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을것이다.
새로운 21세기 공산주의의 실현? 아니면 의회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 고사할것인가?
네팔에 눈을 집중시켜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티베트
달라이 라마의 나라???
서구의 맹목적인 달라이 라마 신봉자들의 믿음과 달리 이전의 티베트는 90퍼센트의 인구를 차지했던 농노들을 한줌의 라마승과 봉건귀족(지주)들이 지배하는 끔찍한 봉건적 노예사회였다. 1949년의 중국혁명은 10년만에 티베트를 봉건적 노예제로부터 해방시켰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등장은 티베트인들의 종교와 민족감정을 자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더 나은 세상을 약속했다.
그리고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 1959년 달라이 라마의 망명과 함께 구성된 정부이다. 달라이 라마가 수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귀족세력이 의회와 내각을 차지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신권정치을 인정하는 시대착오적 조항들로 채워진 헌법을 갖고 있다. 망명 이후 망명정부는 미국 CIA의 원조아래 국경지방에서의 무장투쟁을 지속했으나 문제는 티베트 국내의 민중들이 여기에 화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연 중국의 탄압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망명정부를 구성하는 구세력의  봉건적 착취를 티베트의 민중들이 기억해서였을까? 1970년데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를 기점으로 한 해빙무드는 망명정부에게는 악몽이었다. 이 시기부터 달라이 라마는 다른 길을 찾게 된다. 즉 대답없는 티베트가 아니라 서방에서 구원의 손실을 찾기 시작한 것. 이 시기부터 본격화된 달라이 라마의 해외순방이 바로 그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이 작전은 너무나도 크게 성공했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신비주의를 고무시키며 달라이라마는 신비주의적 라마교와 샹그리라, 반공, 마하트마 간디의 이미지를 차례로 덮어쓸 수 있게 된 것. 

그렇다면 최근 티베트내에서의 잇단 시위와 유혈사태는 어찌 된 것일까? 유혈사태를 빚은 티베트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것이 중국정부(공산당)에 대한 중국 인민의 저항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문제를 해외 망명세력과 중국공산당의 대결로 보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오늘 날 티베트의 티베트인들은 현재 중국의 통치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른바 시장개방 이후 개발의 미명아래 티베트 지역의 풍부한 광물과 가스, 삼림, 수자원 등을 수탈하는 대신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인들에게 돌려준 것은 빈곤과 차별이었다. 고작 4%의 외지인 한족 인구가 95%의 토착 티베트인들을 식민통치를 방불케 할 만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가 티베트인들의 저항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티베트 민중들의 저항이 어떤 식으로 귀결될 것인가? 망명정부의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구세력들이 어디까지 이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것인가? 티베트 민중들의 투쟁의 길은 참으로 어렵고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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