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를 리뷰해주세요.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 중반쯤에 <임꺽정>을 읽었었다.
아니 읽다가 그만두었다. 3권쯤인가 읽다가 아 정말 젠장 하면서 때려치웠다.
대하소설 아예 시작을 안했으면 몰라도 읽다가 중간에 그만둔건 이게 유일하지 싶다.
분량으로 따지면 임꺽정보다 훨씬 더한 토지도 다 읽었고, 장길산도 태백산맥도 다 읽었다.
그런데 왜 임꺽정은 던져버렸을까?
그 이유가 너무도 분명히 떠오른다.
딱 깨놓고 말해서 주인공 임꺽정이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다.
내가 예상한 임꺽정은 의적이고 영웅이어야 했다. 조선이라는 봉건사회에 통쾌한 한방을 날려줄 영웅 임꺽정 - 적어도 홍길동정도는 돼야 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책에서 만난 임꺽정은 정말 불학무식하고(여기까지는 봐줄 수 있다.),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고, 아무데서나 행패고, 의적이 될 가능성은 씨알머리도 안 보이는 그런 놈이었던 것. 

내 20대 중반은 흑백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 아 행복했다. 무식하면 행복하다.
혁명이 성공하면 세상 인간들의 도덕성도 더불어 혁명적으로 변할 줄 알았던 시절.
그런 20대 중반의 꿈꾸는 낭만주의자에게 임꺽정이라는 리얼리티는 감당키 어려운 인물이었던 것이 당연하겠다. 
고미숙씨는 내가 임꺽정을 집어던졌던 바로 그 지점에서 임꺽정의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아 물론 세월이 많이 바뀌긴 했다.
80년대에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책은 못나왔다. (그걸로 난 나의 저 단순무식 20대를 변명한다)  
고미숙씨는 임꺽정에서 참으로 많은 얘기들을 꺼낸다.
그건 아마도 임꺽정이란 텍스트 자체가 참으로 많은 얘기들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80년대에 우리가 읽을 수 없었던 임꺽정속의 새로운 삶의 정수는 무엇일까?

임꺽정을 비롯한 청석골의 칠두령은 모두 정착민이 아니다.
출신은 다양하지만 정착민이 될 소질은 다들 애저녁에 글러먹었다.
아예 그런 기반을 타고나지 못한 이도 있고, 타고나기는 괜찮았으되 어쩌다보니 인생이 꼬여 길 위에서 한 생을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인 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가 죽느냐?
기가 죽는다는 것은 그들이 정착민, 주류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때 성립되는 이야기다. 아예 그런 생각이 없는 이들에겐 해당사항없음이다.
저자인 고미숙씨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인듯하다.
기존 주류사회에서의 추방, 아니 탈주를 통해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해내는 것, 그 공동체를 운영하는 원리를 이 시대에 맞게 변용해내는 것이 그것이다.

자 그러면 고미숙씨가 임꺽정과 그 무리들에서 발견한 새로운 공동체의 논리는 무엇인가?
소설 임꺽정의 주인공격의 인물들은 모두 달인들이다.
달인 하면 요즘은 생활의 달인이 떠오를듯한데 뭐 별반 다르지 않다.
열심히 배운다.
배움의 목적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배우는가 중요하지 않다. 배움의 방법 역시 마찬가지.
임꺽정은 유불도 모두를 아우르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갖바치에게서 배웠지만 워낙 글머리가 없어 겨우 병법이나 배웠을 뿐이다. 그것도 이야기로만... 하지만 타고난 힘에다 말타기 검술은 달인의 경지에 이른다. 표창의 달인, 활의 달인, 돌팔매의 달인 등등...
이들은 모두 즐겁게 공부한 이들이다. 공부가 놀이이고 놀이가 공부인, 그럼으로써 생활 그 자체가 되는....
오늘날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출세, 돈, 안정된 직장을 위한 수단이 되는, 그래서 눈코 뜰새없이 시달려가며 공부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들의 공부는 이해 불가능이다.
도대체 저것들을 뭐에 써먹냐고? 써먹긴 뭐 그냥 배우고 싶으니까 즐거우니까 배운거지라고 고미숙은 임꺽정속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대답한다.
이 대목은 결국 근대 교육이 시작되면서 공부의 근본을 잃어버림에 대한 질타이다.
배움이란게 즐거움이 되어야 하고 놀이가 되어야 하고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즐겁게 진입하는 삶의 기쁨이어야 한다는 그래서 여기에는 스승과 제자의 구별이 없다는 배움과 앎의 공동체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배움에도 두갈래 길이 있으니 임꺽정의 길과 임꺽정의 스승인 갖바치의 길이다.
갖바치의 길이 도가 깊어짐으로써 자신의 존재기반을 벗어날 수 잇지만,
임꺽정의 길은 적대감이 깊어질수록 자기가 증오해마지 않는 세력들과 맞물리게 되어있다... 괴물과 싸울땐 괴물을 닮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309쪽)
그러나 이거 별로 안 쉽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청석골을 움직이는 논리는?
근대에 들어오면서 잃어버린 논리 - 우정 그리고 의리
근대 이후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그 핵가족이 세계의 중심이 된 시대를 산 이들에게 임꺽정식의 우정은 도통 이해불가능이다.
친구가 너무 좋아 가족도 버리고 친구따라 강남간다는게 농담이 아니라 실제가 될 수 있는 시대라..... 이를 고미숙은 피보다 진하고 연애보다 더 에로틱하다 했던가?
우정과 의리는 횡적 연대이다.
돈이든 뭐든 핵가족의 범위내에서만 돌고도는 사회에서는 탈출구는 없다. 사회의 연대란것도 어찌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겠다. 우정과 의리의 회복이라... 고미숙씨는 핵가족에서 도는 돈이란게 그 범위를 벗어나 우정의 경제학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적이기도 하다.  

청석골은 탈주자들이 만든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이웃사촌에 사돈에 팔촌에 그도 아니면 어떠랴. 우정과 의리로 뭉친 의형제들이 있고 주변에서부터 확장되어 나가는 소통의 네트워크가 있고 경제적 착취가 있을 수 없는 공동체가 있다.
늘 축제의 현장으로 복작이는 그래서 사랑조차도 전혀 은밀하지 않고 부부싸움도 은밀할 수 없는 왁자지껄한 공간.
지식의 순환과 경제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창출.
고미숙씨의 그 시작이 지금 그가 몸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라고 생각하는 듯도 하다.
더 많은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창출하고자 하는 계획까지 있는 걸 보면...
연구공간으로서 수유+너머가 시도하고 있는 실험은 신선하기 그지 없으나 글쎄 그것이 사회의 다른 분야로 확장되는것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을까?
그럼에도 일단은 보기 좋다.
그것이 가능할거라고 보는 그 낙관주의가.... 낙관이 반드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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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1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유공간너머의 탈주는 계속진행되나 봅니다. 어디까지 갈지 저도 궁금해요...^^ 그래도 그들의 시도는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도 읽으려고 찜해 놓았는데..계속 밀리고 있네요

바람돌이 2009-08-11 11:49   좋아요 0 | URL
수유공간너머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더라구요. 이론 지상주의니 뭐니...근데 전 뭐 그렇게 볼게 있나 싶어요. 어쨌든 그들은 공부하는 사람들이고 그 공부와 함께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찾아나간다 싶거든요. 오히려 저런 실험이 신선하다고 느껴졌어요. 이 책 잘 읽힙니다. 고미숙씨의 책은 몇 권 읽어놔서인지 머릿속에 잘 들어오더라구요. ^^

글샘 2009-08-1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임꺽정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주인공들의 엉망진창인 삶이 오히려 더 좋더라구요. 위인스런 가식보담은... 고미숙의 이야기가 점차 나아지는 느낌을 받은 책입니다.

바람돌이 2009-08-11 11:50   좋아요 0 | URL
글쎄말예요. 저는 그 때 왜 그렇게 읽는게 힘들었을까요? 지금의 저는 그 때와 또 다르니 재밌게 읽어질까요? 고미숙씨의 책만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말이죠. ^^

무스탕 2009-08-1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0대 초반에 읽었어요. 22~3세 정도였던거 같은데 회사를 다니며 읽었지요. 너무너무 재미있는거에요. 오죽하면 회사에 감사원 감사가 나왔는데 대기자로 감사장에 앉아있는동안 열심히 읽으니까 감사하러 오신분께서 '뭘 그렇게 읽냐?'고 묻더군요 ^^;
근데요.. 지금은 거의 생각이 안나요. 그렇게 정신놓고 읽었는데 이모양이라니.. ㅠ.ㅠ

바람돌이 2009-08-11 11:51   좋아요 0 | URL
오 무스탕님. 20대 초반에 읽으셨는데도 이 책을 재미나게 읽으시다니 갑자기 존경스러워집니다. 전 왜 그랬을까요? ^^;;

프레이야 2009-08-1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겠네요.
오래전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더랬는데요..

바람돌이 2009-08-11 23:21   좋아요 0 | URL
여긴 모두 임꺽정을 다 읽은 분밖에 없네요. ㅎㅎ 역시 알라디너들.. ^^;;

하양물감 2009-08-1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도 끝까지 읽었던 임꺽정입니다만.......내가 같은 임씨라서? 하하하...사실은 국문학도(?)로서 의무감으로 읽었다고 해야 하나....그렇네요...'장길산'보다는 흥미가 덜했다는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제법 캐릭터가 잡히잖아요^^이 책 관심깊게 점찍고 갑니다.

바람돌이 2009-08-11 23:22   좋아요 0 | URL
장길산도 전 뭐 그렇게 썩... 그래도 읽기는 다 읽은걸 보면 임꺽정보다는 나았다는 거겠죠? ㅎㅎ 임꺽정은 고미숙씨 이 책 때문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되었습니다. ^^

순오기 2009-08-15 03:56   좋아요 0 | URL
장길산은 아파트에 오는 이동도서관에서 빌려보다가 이사하는 바람에 7권까지 보고 끝.ㅜㅜ 임꺽정 못 읽은 사람 여기 있어요~ 하지만 청석골은 가봤어요. 시숙님이 그쪽에 사시거든요.^^
 
메신저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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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들면 손에서 놓기 싫은 책!!  

밥 딜런은 열아홉에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베테랑 가수로 활약하고 있었고,
살바도르 달리는 열아홉이 되었을때 이미 뛰어난 그림을 발표했다.
혁명적인 일을 한 잔다르크는 열아홉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가 돼 있었다.
하지만 열아홉살인 나, 에드 케네디는? 

에드 케네디는 어떠냐고?  저 자조가 말하듯 당연히 별볼일 없다.
도시 주변의 변두리 가난한 동네를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벗어나지 못했고,
월세가 싼 판잣집에 살면서 택시운전을 하고,
그 외 하는 일이라고는 비슷하게 한심한 인생들인 3명의 친구들과 카드게임을 하는게 전부인 삶.
아 참 도어맨이라 불리는 무지막지하게 냄새나는 개도 한 마리 키우는구나.

그래, 젠장할... 이토록 하찮은 인생이라니....
근데 갑자기 인생이 바뀐다.
소뒷발질에 쥐잡은 격으로 은행강도를 잡은 것.
뭐 이게 중요한게 아니다. 은행강도를 잡았다 해도 지역신문에 이름 나고 사진나고, 며칠간 잠시 우쭐했던 것 뿐이니까....
근데 그 때부터 이상하게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메시지가 날아들고,  

아! 우리의 에드 케네디 이상한 사명감에 불타며 메신저가 되다. 

이제 메신저가 되었으니 뭔가 거창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소설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근데 이게 뭐야
케네디가 한 가장 거창하고 스펙터클한 일이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자 하나를 혼내서 쫓아버린거다.
아 이정도면 안되는데....
영웅적인 메신저가 되려면 좀 더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고 뭐 그래야 하잖아.
그런데 미리 얘기했다시피 우리의 주인공 에드 케네디가 사는 곳이 도심 주변의 변두리 빈민가다.
일상적인 무력감과 소외감으로 덮여있고, 일상적인 자질구레한 싸움들이 일어나는 곳.
뭔가 거창한 사건이 일어나기에는 정말 작은 곳이란 말이다. 

그래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말했듯이 무력감과 패배감, 소외감, 외로움이 덕지덕지 지겹도록 늘어붙은 곳에 말이다.
에드 케네디의 임무는 그런 그들에게 위로와 관심을 전해줌으로써 그저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대박 복권 당첨 같은게 사람을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게 아니다.
나 혼자라고 생각되어지는 순간, 나의 고민을 나 혼자 모두 안고 있는 순간 전해지는 동감과 위로가 얼마나 삶의 위안이 되는지...
그 누군가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래 세상은 살아지는 거다.
때로는 희망도 생겨지는 거다. 
그리고 또한 그 속에서 나도 구원받아진다.
내 옆의 이웃에게 손을 내밀때, 그것은 나를 위로하는 또 하나의 손과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하찮은 인생이란 없다.
거창하게 연대라고 할것도 없다.
너와 나의 마주잡음으로 세상은 그리고 나는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너 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수 있을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472쪽)  

에드 케네디는 사실 메신저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전작인 <책도둑>에 비하면 훨씬 유쾌하고 발랄한 책이다.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그 따뜻한 시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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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8-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보니 땡기네요^^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읽고 싶었어요

바람돌이 2009-08-11 11:51   좋아요 0 | URL
가끔은 이렇게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그립잖아요. ^^

글샘 2009-08-1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책도둑은... 좀 그랬죠. ^^ 유쾌, 발랄... 좋겠네요.

바람돌이 2009-08-11 11:52   좋아요 0 | URL
뭐 사는게 재미없을때 읽으면 살짝 재밌어진다고 할까요? ^^
 

 요즘 소설이 꽤 고팠다.
한달동안 꽤 바빴던 덕에 밀린 서평단 책이 한 두권이 아니다.
이게 한 번 밀리니까 따라잡기가 장난 아니다.
겨우 겨우 몇 권 읽고 서평쓰고, 그리고도 못 읽은 책은 이왕 늦은거 시간 맞출 수 있는 것부터 먼저 읽자 싶어 미뤄놓고...
이렇게 서평단 책에 파묻혀 있다보니 간간이 약처럼 봐줘야 되는 소설을 한 권도 못 본 것. 

지역 도서관에 요 마커스 주삭의 <메신저>를 신청해놨었는데 우선 대출기관을 넘겼더니  대출중이다. ㅠ.ㅠ
내가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던 날
동생이 혹시 <밀레니엄>2부 있으면 빌려다줘 해서 봤더니 왠일로 있다.
동생에게 책을 갔다주고 노닐다 보니 아니 <메신저>가 동생네 집에 있는거 아닌가? 나보다 잽싸게 먼저 도서관에서 빌린 이가 동생이라니.... 이런 배신이... ㅎㅎ 
하여튼 대출 기간 겨우 3일인가 남은 책을 내가 가져왔다.

오전에 옆지기와 아이들을 영화보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나는 집에서 밀린 청소를 할 터이니 그대들은 새로 나온 영화 <UP>이 재밌다하니 보고 오시오"
정말로 난 청소를 할 생각이었다.
사실 계속 밖으로 나도느라고 집안은  여기저기 똥무더기 쌓아놓은 것처럼 구석구석이 난리다.
방바닥 한구석에 쌍인 책은 수십권을 넘겨 이제 거의 백여권에 달할 것 같고,
부엌의 싱크대에도 갖가지 그릇들이 좁아요 좁아를 외치며 쌓여있고 아 곳곳에 예쁘게 쌓여있는 먼지도 있구나...
하여튼 내가 할 일은 옆지기가 절대로 못하는 청소 그니까 정리정돈이었던것.

가족들이 나가고 밀린 청소를 하기 전에 잠시 이 책을 손에 든게 화근이었다.
정말 첫 몇 페이지만 보고 청소를 할 생각이었다고...
근데 도저히 손에서 놓기가 싫어지다니...
결국 병원가고 영화보고 집근처에서 베드민턴치며 놀기까지 하고 가족들이 돌아올때까지 집안은 나갈때 그대로를 유지했다.
"도대체 뭐한거야"라는 비난에 계면쩍은 웃음만 날리고도 책을 마저 보고싶다니... 

아! 미안 미안... 대신에 내가 저녁밥 맛나게 해줄게. 우리 고등어조림해먹자. 응???
솔직히 밥하고 싶냐고? 아니!!! 그래도 어쩌랴. 청소도 안한 주제에  밥은 해줘야지...ㅠ.ㅠ
근데 바로 요 때 생각지도 못한 구원투수 나서 주시니 바로 울 예린이
엄마 저녁은 오랫만에 ***가서 돈까스 먹으면 안돼?라는 엄청나게 반가운 멘트를 날려주신다. 그럼 그럼 되고 말고... 오랫만에 우리 나가서 먹자. ㅎㅎ
이로써 밥하고 설겆이하는 시간을 벌었다.
근처 식당에서 돈까스를 맛나게 먹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만화방에 들러 아이들과 옆지기에게 만화를 가득 안겨줬다.
아아 이로써 우리집은 아주 조용한 독서천국이 되었다나 뭐라나?
결국 오늘 하루만에 47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다 읽었다. 우하하~~~ 

아이들 재우느라 9시반부터 잠들었다가 새벽 3시에 깨어서 이러고 있는 건 또 뭔지...
아 옆지기는 지금 이 시간까지 잠도 안자고 열심히 만화보고 계시는구나...
예린이가 자기 전에 그랬다.
엄마 나는 내일 아침에 내가 일어나자 마자 밥상이 차려져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응 엄마도 그랬으면 진짜 좋겠다라고....ㅠ.ㅠ
그래도 착한 예린이는 그러면 엄마 내가 내일 간단 밥상을 차려놓을게란다. 에고 예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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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8-09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몇번 살까말까 망설였던 책인데 오호 재미있나보군요 ㅎㅎㅎ

예린, 저래서 자식을 키우는군요!!
훌륭해 훌륭해~

바람돌이 2009-08-09 13:57   좋아요 0 | URL
딱히 극적이지 않음에도 손에서 놓기 힘들던데요. 그리고 세상의 마이너들을 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역시 즐거웠어요. ^^(다만 내공이 좀 약한 경우 드러나는 마지막 뒷처리가 조끔 딸리는 한계는 역시.... )

프레이야 2009-08-09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린이 정말 예쁘네요.^^
독서의 적들 ㅋㅋ
페이퍼 보니까 생생하게 장면이 떠오르는 게 자꾸 웃음이 나요.
동감동감 이러면서 ㅎㅎ

바람돌이 2009-08-09 13:58   좋아요 0 | URL
애 키우는 엄마들 모두 동감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모두들 좀 쫒아낼까 말이죠. ㅎㅎ

마노아 2009-08-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지름신 강림 권장과 더불어 천사같은 예린이를 소개하는 글이군요! 좋아요 좋아. 책도 좋지만, 딸 낳으면 예린이같이 자라주면 엄마는 행복해요. 알흠다운 풍경이에요!

바람돌이 2009-08-09 13:58   좋아요 0 | URL
아 이책 좋아요. 리뷰도 어젯밤에 마저 쓰려했는데 해아가 깨서 엄마 들어와 하는 바람에 그냥 잤어요.

Arch 2009-08-0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책 한권 제대로 읽을 수가 없어요. 대체 엄마들은 일이며 가사며 육아까지 어떻게 하는건지...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예린인 정말 예쁘니까 따로 예쁘다는 말은 안 할래요^^ 그래놓고 두번이나 말하고. 마술처럼 아침밥이 차려져 있으면 참 좋겠다!

바람돌이 2009-08-09 13:59   좋아요 0 | URL
일, 가사, 육아 모두 잘하는거 당연히 불가능하죠. 적당히 빵구 내면서 요령피우면서 하는거죠. ㅎㅎ
페이퍼에 썼지만 마술처럼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어요. 뭐 밥은 아니고 디저트지만... ^^

순오기 2009-08-0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애들 커버리면 지들 방 알아서 청소하고 엄마는 청소 안하고 살아도 돼요.
전날 이런 사연이 있어서 공주님이 간단밥상을 차렸군요.^^
그런데 메신저가 그렇게나 재밌어요?

바람돌이 2009-08-09 14:18   좋아요 0 | URL
메신저는 음 지질이도 못난 인생들의 이야긴데요. 그럼에도 정말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있어요. 작가가 던지는 긍정적인 메시지도 맘에 들고요. 끝이 좀 아쉽긴 하지만 한 번 손에 잡으니까 놓치기 싫던데요. ㅎㅎ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리뷰해주세요.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젤란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
제목은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뭐 그런 당연한 걸 가지고 질문을 하지?라고 생각하다가 아 맞다 철학은 원래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는걸 뒤집어보는데서부터 시작하는거지라면서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철학적 질문들과 논리학적 질문들을 끊임없이 오간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방패로 삼는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서 논하기도 하고
진정한 양성평등이란게 가능한가? 내지는 완전한 평등이란게 진짜 말이 되는 상황인가라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내 흥미를 끌었던 것들은 이런 철학쪽에 가까웠던 질문들 쪽이었다.
교과서속에서는 너무도 쉽게 내려지는 결론들이 사실 현실사회쪽으로 적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상황과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그래서 결론이란게 결코 쉽지 않음은 누구나가 경험하는 바일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들은 그런 인간사회의 복잡다단함에 대한 질문이다.
어디에도 해답은 없다.
당신이 직접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라이다.
뭐 급할 것은 없다. 어차피 저자도 천천히 하라고 했으니.... 

이 책이 좀 더 이런 철학적인 질문에 많이 할애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더 많은 부분에서 묻고 있는 것은 논리학의 문제들이다.
내가 지금 있는 시간이 과연 현재인가? 현재라는 말은 성립가능한가?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모순없는 개념은 과연 가능한가? 같은 순수 논리학 내지는 언어의 문제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철학이든 무엇이든 기본적인 개념이나 논리학의 도움 없이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는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책에서 펼치고 있는 논리학이란게 그렇게 이 책의 목적에 부합하는 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나처럼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즐겁게 그 고민에 동참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나의 삶과 고민의 폭을 확대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데 있었다면 더더욱 논리학의 질문은 너무 많은게 아닌가 싶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쟁이의 역설 같은 것들을 읽다보면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논리적 추론 문제는 어릴 때 많이 풀어본 문제들 아닌가? 이런 추론은 그런 어릴적 퀴즈 문제가 오히려 더 즐겁게 볼 수 있었던 듯하다.
이런 면이 상당히 유익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책인데도 이 책을 즐겁게 읽는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 같아 살짝 안타까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책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번역의 문제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았다. 그런데 곳곳에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잘못된 문장들이 진을 치고 있다. 한 두개가 아니니 나중에는 아예 멀쩡한 문장까지도 이해가 잘 안되면 이거 또 이상한 번역아냐하고 돌아보게 된다.  주어와 서술어의 불일치나 앞 문장과 뒷 문장의 명백한 모순도 자주 눈에 띄고, 또 좀 더 매끄럽고 읽기 편하게 만들 수 있는 문장도 그냥 원문을 순서대로 나열한듯한 번역들도 많이 눈에 띈다. 2쇄를 찍는다면 솔직히 몇몇 문장이 아니라 책 전체를 다시 교정을 보고 다듬어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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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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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귀여운 남자아이가 보인다.
터키식 모자(책에서 보면 이걸 '페스'라고 하는 것 같던데)를 쓰고 눈은 사과로 표현되었다.
처음 이 표지를 볼때는 어릴 때 가난했던 작가가 사과를 먹고싶은데 못먹었었던 추억이 있나같은 딱 내 수준의 유치한 상상을 했다. ^^
그런데 책을 보면 비밀이 나온다.
아버지는 어린 아지즈 네신에게 사과를 던져주면서 말한다.
"봐라. 신이 이 사과들을 네게 보내주셨다. 기도하거라."
그러나 아지즈 네신에게 사과를 보내준 그 신은 그의 여동생을 회복시켜주지는 못했다. 여동생은 죽었다.
표지를 자세히 보면 소년은 울고있다. 사과와 눈사의 틈새로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 있는 것.
에고 이걸 못봤었구나.... 

터키 최고의 풍자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어린 시절을 되짚는 그의 기억들 역시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식탁에서 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라고 외치는 아이의 모습을 그릴때나,
응답없는 첫사랑이란 제목으로 옆집 꼬마아가씨를 좋아하기라도 했나 싶어 읽어보면 그 첫사랑의 대상이 터무니없이 닭이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 닭에 대한 정말 애절한 짝사랑,
그리고 배가 너무 고파 점심시간을 착각한 이야기들에서는 푸하하~~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그런 유머감각속에 녹여낸 그의 어린시절이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너무 많이 가난하고 너무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듯하다.
18살의 어머니는 집을 태운 화재속에서 너무 놀라 아이 둘을 먼저 구해내고 다시 들어가 구해낸 물건이란게 겨우 재봉틀과 요강이다.
어린 동생은 영양결핍으로 인한 구루병으로 죽었고, 어머니 역시 결핵으로 고통받는다.
가난한 아이들 중에서도 더 가난했던 듯 길거리에서 노는 가난한 아이들 틈에도 끼일수 없었던 모습들이 간간히 보인다.(여기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는듯한데 터키의 종교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니 짐작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가 대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일까?
가난하지만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비굴하지 않도록 가르친 그의 부모님들
그리고 공화국으로 변신한 터키에서 그와 같이 가난한 아이들도 공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이런 것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글들의 갈피 갈피에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작가는 자신이 이런 얘기를 쓴 것은 과거의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지난 어른 세대의 삶은 추억이 되어야지 오늘의 아이들에게 이런 삶을 살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아마도 그가 그의 작품의 국내, 해외 인세 모두를 고아들을 위한 기금으로 남긴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우리 부모들의 세대와 비슷한 삶의 고통을 겪은 아지즈 네신의 어릴 적 얘기는  오늘 우리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도 필요한 이야일 것 같다.
아지즈 네신의 바람이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그 바람은 오늘의 대한민국 어른들에게도 점점 더 절실한 바람이 되고 있다. 오늘 더 많은 어른들이 아지즈 네신을 읽었으면 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제게 왜 풍자 작가가 되었냐고 항상 묻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절 풍자작가로 만든 것은 저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물속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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