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참 예쁜 글!

만약 작가를 모르고 봤다면 여자가 쓴 글이라고 생각했을듯도 하다.

남자들의 글속에서 감성은 곧잘 모자라고, 여자들의 글에서 감성은 곧잘 지나치게 넘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물론 모든 남녀가 그런것은 당연히 아니다. 언제나 예외들은 존재하는 법!)

그러나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간다는 어쩌면 낭만적일 수 있는 여행길에서 자신의 감성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풀어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만 못하다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일인가 말이다.

 

이 책에서 다니는 여행지는 이미 말한대로 영화의 촬영지들이다.
그런데 영화는 모두 유명세가 대단한 영화들이지만 그 촬영지들은 영화가 아니라면 절대로 관심이 가지지 않을 것같은 곳들 - 외지고 한적하고 그래서 가려면 죽도록 고생해서 가야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이동진 이사람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곳을 책으로라도 보겠는가 말이다.

 

호주의 에어즈록에서 작가는 말한다.

"서로 몸을 맞대고 반갑게 비비기라도 하듯, 평상에 드러누워 끝없이 속살거리기라도 하듯, 별들은 일제히 소리를 냈다. 별이 별을 부추기고 별이 별을 흔들어 깨우는 압도적인 풍경을 올려다보고 있다니 현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 밤, 나는 별의 잔해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바위 에어즈 락, 그 바위외에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과 하늘 외에는 없는 그곳의 밤이 나를 감싼다. 이 순간 나 역시 별의 잔해가 된다.

 

"사막에서는 모래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어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이는 모래는 고체이고 액체이며 기체였다..... 사막에서 모래는 무형의 형질로 그 모든 것이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이룬 모래는 잔바람에도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속삭였다. 이제 어둠이 사막을 완전히 삼킨 후에도, 모래는 잠들지 않고 오래도록 수군댈 것이다."(스타워즈의 촬여장 - 튀니지) 모래는 바람의 잔영일테다. 아마도 나 역시 잠들지 못하고 모래의 수군거림을 내내 듣고 있었으리라....

평이한 문장들 속에서 이토록 깜찍하게 튀어나오는 문장들은 갑자기 나를 공간이동시킨다. 그저 평범한 여행이 특별함이 되는 보석같은 순간들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촬영지 피지 모누리키섬을 찾은 것은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머감각이 빛나는 곳이다.

아니 도대체 영화의 촬영지라고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1박2일동안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아보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톰행크스처럼 불을 피워보려다 결국은 포기하고 라이터로 불을 피우고, 야자열매를 따서 목마름을 해결하겠다고 나무를 오르다 실패하고.... 농담 한마디 없이 웃기는 것도 가능하구나... 이 정도면 21세기 톰소여에 그대를 임명할 수 있겠구나... ^^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세계적인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무덤이 있는 스웨덴 포러섬이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세계적인 거장의 겉을 모두 빼고 자연인 잉마르 베리만 하나만 남은 흙무덤 하나 보겠다고 스웨덴까지 날아가다니....

하지만 글을 따라 함께 가다보면 작가가 왜 이 곳을 굳이 가야했는지가 수긍이 간다. 무지 어려울것 같은 분위기와 명성에 압도되어 그의 영화를 하나도 못본, 그래서 잉마르 베리만이라는 영화감독에 대한 존경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의 무덤은 신성한 성소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의 삶이 마지막조차도 이렇게 비장하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또 하나 이 책의 마지막 아름다움은 여행의 본질을 잊지 않음에 있다.

"여행이라는 것 역시 나그네에게는 삐걱대는 삶을 수리하는 기간일 것이다."

"누군가 잠깐 들른 휴식 공간이 다른 이에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 여행자는 종종 죄책감의 삯으로 환상을 소비한다."

"전경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들이댈 때, 멀리서 나를 알아본 테오의 엄마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는 사진 찍는 것보다 마주보며 나도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감성이 얼핏 평범해보이는 여행에세이를 비범하게 빛나게 한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그와 함께 한 여행이 끝났을 때 내 입가에 미소 한자락을 머물게 한다.

 

(글 속의 붉은 글씨는 책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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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6-0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전문기자로 여자로는 김혜리를 좋아합니다.금요일 밤 10시 문화방송 FM 성시경의 푸른밤에 고정출연하는데 아주 해박한 지식과 감칠맛나는 언변으로 영화이야기를 해줍니다.목소리가 좋아서 매주 듣습니다.추천!

바람돌이 2013-06-04 23:22   좋아요 0 | URL
김혜리씨의 책도 눈팅만 하고 있었는데 챙겨놔야 하겠네요. ^^
라디오를 따로 챙겨듣지는 않는데 혹시 팟캐스트로 떠있는지 확인해봐야겠어요. ^^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거리는 흐른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움직인다. 움직이는 사람들은 거리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밝게 빛나는 쇼윈도와 반대 방향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에게만 신경을 집중한다. 그들은 민감한 센서를 장착한 로봇들처럼 여러 방향에서 흘러오면서도 서로 부딪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그러나 거리의 존재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거리의 거주자이며 따라서 거리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주시하게 된다. 담장 위의 길고양이가 오직 다른 길고양이만을 바라보듯, 그들은 단박에 서로를 알아본다. 이것이 거리의 삶을 시작한 제이가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78페이지)

 

 소설은 충격적인 프롤로그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을 토막냈다가 살려내는 마술을 부리는 마술사가 나오고, 그것을 보고 자신의 내시를 토막내고는 살려내보라하는 황제가 나오고, 그리고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는 토막났다가 살아난 마술의 또하나의 주인공 어린 조수가 나온다. 마술사는 황제의 행동에 놀라 마술에 사용했던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버린다. 그리고 상황은 종료된다. 하지만 이야기 어디에도 그 어린 조수가 어찌 됐는지는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는다.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 관심가져주지 않는 어린 조수의 이야기, 그것이 제이의 이야기이다.

 

  제이의 삶은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버스터미널의 화장실에서 어린 소녀가 혼자 낳은 아이, 어쩌면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 있었던..... 버스터미널은 머무는 이의 장소가 아니라 떠나가고 떠나오는 자들이 흘러가고 흘러드는 곳이다. 작가가 얘기하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리는 흐름의 장소이지 멈춤과 성찰의 장소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제이의 삶이 그렇게 거리에서 거리로 흘러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이에게 멈춤의 공간이 전혀 없었던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 그러하듯이 그 공간들마저도 잠시 스쳐 가는 곳이지 거주의 장소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장소가 그렇듯이 사람 역시 그러하다. 동규와 목란이 약간의 예외랄까? 제이에게는 모두가 스치는 사람일뿐이다. 그런데 이런 삶을 제이가 만든 것일까? 아니 제이는 그저 떠밀려다녔을 뿐이다. 선택의 기회는 없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졌고, 그렇게 내처졌다. 제이의  삶은 일상의 안정과 머물 장소를 소유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있는지 모르고, 알고싶지 않고, 알아도 잊고싶은 비루함일뿐이기 때문에......

 

  거리의 아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세계와 그들만의 룰이 있다. 그들의 도덕과 생각은 사회의 통념과 다르다. 누구도 그들에게  안락한 머뭄의 공간을 제공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사회의 통념을 따르라고 하는게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거리 안쪽의 세상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과시하듯 자랑스레 생각하는 이념들 - 안락한 생활, 보장된 미래, 가족의 따뜻함, 어른의 보호- 그 어느것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리의 아이들은 그들을 내친 사회가 그들을 내친 방식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완벽하게 일방적이고 완벽하게 폭력적인 그 오랜 과정들을 말이다. 사람들은 거리에 나온 제이가 처음 만난 가출한 아이들의 생활에 경악한다. 무자비한 폭력과 즉각적인 응징과 본드와 섹스와 매춘, 그리고 기생하는 삶.......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과장이겠지? 가출한 아이들이 이렇게 산다고? 설마......" 그러나 정말 몰랐을까? 진짜? 당신의 머리속을 구석구석 파헤쳐봐. 알잖아. 그냥 외면한 거잖아.

 

  이 책은 읽는 시간은 갑갑한 우울의 시간이다. 

  소통의 불가능성을 인지한다는 것은 슬픔이다.

   제이와 아이들의 8.15 대폭주는 스펙트클한 슬픔의 폭발이다. 거리의 아이들은 분노를 표현하고 소리지르고 내달린다. 그러나 어른들은 절대로 이들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므로 인정하지도 못한다. 슬픔을 인정하면 그들의 분노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의 영역에 속해있다.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을 바꿔봐! 좀 더 건설적인 방식으로 너의 에너지를 표출해봐!'라고 말하는 순간 더이상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저 나는 꼰대가 되는 것이다.

 

목란이 얘기한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은 오토바이를 탈거예요."

나는 말한다. "너는 내일 죽지 않을거야. 그게 문제야"라고.....

그래서 제이와 목란은 제이와 목란일 뿐이다.

 나는 나일 뿐이고....그들에게 나의 시각은 꼰대의 시각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슬픔은 나에 의해서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이다. 

 

제이는 모든 사물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정작 제이의 목소리는, 거리의 아이들의 목소리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제목은 나의 목소리를 제발 들어줘라고 해석해야 할지도.....

소설속 에필로그에서 제이의 얘기를 전했던 여인이나 제이의 얘기를 썼던 소설가(혹시 작가 김영하 자신일지도 모르는)에게는 제이의 목소리가 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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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쭘하다 - 약간 민망하고 부끄럽고 수줍기도하다 등등을 나타내는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오랫만에 서재에 글로 인사하는 제 마음을 표준어로는 뭐라 표현하기 힘드네요. ^^

 

요즘 해아가 국어시간에 표준어와 방언(왜 굳이 방언이란 말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투리라고 하면 될텐데... 방언과 사투리는 좀 다르나요?)을 배우나 봅니다.
표준어의 뜻이 '한 나라의 표준이 되는 말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해아가 "엄마 근데 교양있는이 무슨 뜻이야?"라고 묻길래 "많이 배웠다는 뜻 비슷한거야"라고 대답해줬더니 바로 "엄마 그게 말이 돼? 나는 할머니랑 있어서 사투리 진짜 많이 쓰는데 그럼 못배운거야?"

아 해아야 너는 왜 이렇게 아주 가끔 똑똑한거니?

겉으로는 아 그렇네. 이 표준어의 뜻은 진짜 이상하다 그치? 바꿔야 되겠다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똑똑한데 왜 공부는 그렇게 못하니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

 

어쨌든 다들 잘 지내셨나요?

저는 뭐 그동안 글이란 것 자체를 안쓰고 지냈습니다.
따로 블로그라도 만들어볼까 했지만 타고난 귀차니즘은 정말 어쩔 수 없더군요.

글을 안 쓰니 책도 잘 안읽어 집니다. ^^;;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대충 뒹굴뒹굴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갈아치워가며 잘 놀았다고나 할까요?
그러다보니 저희집 서방님의 제발 알라딘 서재를 다시 시작하라는 구박을 심심찮게 받았습니다.

여행 갔다온 것들과 사진들이 전혀 정리가 안된다는 이유로요. ^^

 

아주 가끔 서재에 들어와 지인분들의 글을 눈팅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소원했던 건 맞네요.

아... 뭐라해야 하나? 역시 뻘쭘합니다. ^^

시간 나는대로 서재로 찾아뵐게요. 다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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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5-14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2년 3개월 7일만의 알라딘 복귀를 환영합니다~~~~~~~~~
정말 가끔 가끔 생각나고 궁금하고 그랬습니다.
두어번 서재에도 와봤는데.....여전히 말이 없더군요.
'뻘줌하다'란 표현이 딱 맞는 경우, 우리가 살면서 종종 만드는 일이니까
그리 뻘줌해하지 않아도 되잖겠어요.^^
해아~~~~~~ 정말 똑똑하네요.
학교 공부도 때가 되면 빛을 발할거라 예상됩니다.^^
해아가 3학년, 예린이가 6학년인가~ 한 학년을 내려야 하나? 갸우뚱~

바람돌이 2013-05-14 08:57   좋아요 0 | URL
아니 저도 세지 못한 날짜를... 전 한 3년쯤 됐나 했더니 2년3개월7일이군요. ㅎㅎ
예린이는 6학년 맞구요. 사춘기를 맞아 점점 삐딱해지고 있습니다.
해아는 4학년입니다. 둘째라 그런지 여전히 저에겐 아기같은 느낌이고요. ^^

hnine 2013-05-14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반갑습니다. 아이들도 많이 컸지요?

바람돌이 2013-05-14 10:07   좋아요 0 | URL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제가 늙는건 안보이고 아이들 크는 것만 보이네요. ^^
hnine님도 건강하시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겠죠?
서재에도 놀러가고 할게요.

혀노기 2013-05-1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쭈욱 안하기에 짤라삘까 하다가 그래도 링크를 걸어놨더니만 생사 확인~~
반갑수.
두루 두루 잘 지내죠?

바람돌이 2013-05-14 10:08   좋아요 0 | URL
아 언니... 언니는 이제는 안들어올줄 알았더니...ㅎㅎ
이쪽 동네는 뭐 그럭저럭 지내고 있고요. 언니랑 선배는 어때요.

프레이야 2013-05-1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니ᆢ 이게 누구시래요? ㅎㅎ 바람돌이 님 반가워요. 똘망한 해아와 예린이가 그동안 쑤욱 자랐겠어요. 우린 그만큼 나이 먹었구요. ^^

바람돌이 2013-05-14 10:0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반가워요. 잘 지내셨죠? 프레이야님댁의 아이들은 아가씨들이 다 됐겠네요. 고3인가요? 대학생인가요?
나중에 서재에 마실도 설렁설렁 가고 할게요. ^^

2013-05-20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13-05-1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알라딘 눈팅족에 가까운 1인입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 옛친구를 만난 듯 반갑습니다. 두루 두루 모두 평안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바람돌이 2013-05-14 10:11   좋아요 0 | URL
옛 친구 맞죠? ㅎㅎ
드팀전님도 두루 평안하시죠? 그날이 그날같은 날들을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

춤추는인생. 2013-05-1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아 예린이...
정말 얼마만에 불러본 이름인지...
귀여운 해아 의젖한 언니 예린이 보고싶어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13-05-15 00:34   좋아요 0 | URL
해아는 여전히 하는 짓은 좀 귀엽지만 키가 너무 컸고요.
예린이는 완전 새침데기에 사춘기까지 겹쳐 전혀 의젖하지 않습니다. ^^;;
춤추는 인생님도 반가워요.
건강하셨죠?

Mephistopheles 2013-05-14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넵..!

바람돌이 2013-05-15 00:35   좋아요 0 | URL
단 두글자에 메피님의 마음을 다 보았어요. ^^
잘 지내시죠?

마노아 2013-05-1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 들어와봤는데 여전히 글이 없어서 갸우뚱 했어요. 제가 나가고 나서 글이 올라왔나봐요.
바람돌이님 다시 한번 반가움의 인사 전해요!
다시는 인사 없이 사라지고 그러기 없기입니다.^^
아이들이 쑥쑥 자랐네요. 곧 중학생 올라가기도 하고요.
어휴, 정말 세월이 나만 비껴가는 것 같단 착각을 하게 되어요.ㅎㅎㅎ

바람돌이 2013-05-15 00:36   좋아요 0 | URL
그동안 게으름을 너무 부려서 전처럼 부지런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요. ^^
오랫만에 들어와서 여러분들이 인사해주시니까 너무 반갑고 고맙고 그렇네요. ^^

rosa 2013-05-14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바람돌이님.
어떻게 지내시나 많이 궁금했어요.
저도 이젠 거의 눈팅족이고.. 딴 데 블로그를 만들긴 했지만 역시 귀차니즘 때문에..
그리고 여긴 친정같은 곳이라 아주 가끔씩 궁금한 님들 소식 들으러 들린답니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바람돌이님도 보이고.. 넘넘 반가워요.^^

바람돌이 2013-05-15 00:37   좋아요 0 | URL
역시 귀차니즘은 강적이예요. ^^
잘 지내시죠?

조선인 2013-05-1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히히히히 좋아요. 헤벌쭉

바람돌이 2013-05-16 21:15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잘 지내시죠? 마로랑 해람이도 잘 있겠죠?
얼마전에 사진들 보다가 마로랑 해람이랑 같이 찍은 사진 보면서 좋아서 웃었어요. ㅎㅎ

세실 2013-05-1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바람돌이님 방가방가~~~~
해아, 예린 많이 컸죠?
우리 이제 자주 만나요^^

바람돌이 2013-05-16 21:17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저도 방가 방가 *^^*
아이들 정말 많이 컸겠네요. 고등학생 중학생인가요? 여전히 야물딱지고 씩씩하겠죠? ^^

무스탕 2013-05-1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놓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반가워요. 보고싶었어요. 그리웠다구요.
요즘엔 나도 바빠져서 ㅠㅠ 잘 못 오지만 그래도 틈틈이 찾는 곳인데
이제 바람돌이님도 다시 뵐수 있다니 좋은 5월의 선물이에요.
자주 뵈어요, 우리 :)

바람돌이 2013-05-16 21:18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우리 진짜 오랫만이죠?
저도 무스탕님을 비롯한 알라딘 지인들 뵙고 싶었어요.
그놈의 귀차니즘이 문제죠. ㅠ.ㅠ
나중에 서재로도 놀러갈게요. ^^

꿈꾸는섬 2013-05-2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완전 놀라고 있어요.
어찌 사시나 궁금했어요. 바람돌이님의 여행기가 드디어 시작이군요. 자주 오진 못해도 가끔 들러 읽고 갈게요.^^ 다시 돌아오셔서 넘 좋아요.^^

바람돌이 2013-05-21 16:36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도 그동안 잘 지내셨죠? 오랫만에 반겨주는 모든 분들덕분에 뻘쭘함을 조금 이기고 있습니다. 나중에 서재로 놀러갈게요. ^^

paviana 2013-05-28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 오니 아는 분들이 다 계시는군요 . ㅎ ㅎ 돌아오셔서 너무 좋네요. 여행기 아직 안 읽었는데 기대만빵이에요. 딸기님 스페인 여행기 페북에서 읽고 욌는데 , 저도 스페인가고파요.

바람돌이 2013-05-29 10:44   좋아요 0 | URL
오랫만이죠? 다른 분들도 제가 오랫만이니 인사를 해주셨네요. 파비아나님은 정말 서재 이미지도 한바뀌셨네요. 뭔가 변하지 않은 걸 보니까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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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조선의 고(古)는 삼국유사에서 처음 보임
   -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단군조선+기자조선) - 위만조선으로 구분(즉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古자를 붙임
   - 그러나 후의 조선에서는 이런 구분이 별로 사용되지 않고 여러가지로 사용되나 흔히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많이 사용 
   - 17세기 이후 기자조선-마한-신라-고려-조선으로 우리 역사를 체계화하려는 사고방식  
   - 특히 대한제국 시기는 기자존숭이 극에 달함. 기자를 중흥군주의 모범으로 삼음 
   -기자를 왕도정치의 모범, 성현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율곡 이이<기자실기>에서이다 

2. 565년 중국 <북제서>에 처음으로 '김진흥'이란 이름이 보임 - 진흥왕
  - 진흥왕때 한강유역 점령 이후 중국과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외교상 성씨를 쓰기 시작한듯.
    (특히 도당유학생들이나 장보고 같이 당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씨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이름을 쓰는 방법의 차이에서 유래함)
  - 이후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며 왕실의 계보를 정리
  - 고구려 장수왕때 중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고씨 사용
  - 백제 4세기 근초고왕때 여씨 성을, 7세기 무왕때 부여씨를 씀
  -고려 초기 성씨 확산, 하기만 성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소수 지배층 - 적어도 지방의 지배집단 이상 신분의 사람이어야 했다. 여기서 백성(百姓)이라는 말 유래
  - 본관 역시 고려초부터 생김. 본관은 해당 지방에 대한 지배권에서 유래, 이후 국가가 民에게 역을 부과하는데 기초자료가 됨
  - 16세기까지는 전체 인구 중 40%정도가 성이 없음.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 타파, 1909년 일본 통감부 치하에서 새로운 호적제도인 민적법이 사용되면서 성과 본관이 일반화 됨  

3. 고려시대 왕의 측근을 가리키던 내시라는 명칭이 환관과 혼동되기 시작한 계기
  - 무신정권기 의종이 환관 정함을 내시에 임명. 이후 고려에서 원간섭기에 환관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
  - 공민왕 5년(1356) 환관의 관청을 새로 설치하는데 그 이름이 내시부. - 따라서 이후 환관과 본래의 내시가 혼동되어 불리기 시작 - 조선시대에는 내시는 환관과 동의어로 쓰임.

4. 고려장의 유래  
  - 중국 <효자전>에 실린 원곡이야기,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잡보장경>의 기로국설화
  - 여기서 기로국이 고리국 또는 고려국으로, 기로장이 고려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 고려장을 고려 때 실제 풍습이라고 두루 믿게 된것은 일제시대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동화집>에 이 이야기를 실으면서 부터 확대재생산 된듯....
 - <조선 동화집>의 편집과장 "오다 쇼고" - 대표적인 식민사학자  

5. 현무양처의 신화
  - 조선시대 이상적 여성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열녀, 효부
  - 근대 이후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가정)의 구분이 명확해지면서 새로운 여성상을 요구하게 되면서 등장, 여성은 자녀교육의 담당자이며 따라서 여성의 교육이 강조된다.
  - 동시에 식민지 시절 현모양처는 일본제국주의의 통치이데올로기로 활용됨. 여성교육을 통해 가정에서부터의 사회적 황국신민화 시도. 이를 위해  "현모양처"의 개념이 조선의 전통사회와 닿아있음을 선동. 따라서 현모양처가 근대적 산물임에도 전근대의 산물로 오인받게 되는 것
  - 신사임당의 등장 :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현모양처의 강조. 60년대 초 - 신사임당 전기 출간, 5/17일 신사임당의 날 제정 등... 

6. 온달과 평강공주의 결혼에 대한 평가 - 조선 유학자의 입장에서 보다
  안정복, <동사강목>제3 상 정유년 11월 
고구려 왕의 말이 일시적인 희롱에서 나온 것이요, 처음에 온달과 약혼한 일은 없었으니, 공주가 비록 신의를 지키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이른바 껍질이 없으면 털날 곳도 없다는 말과 같다. 하물며 스스로 온달에게 갔으니, 이는 외도(음분)의 일이다. 혼례를 갖추지 않으면 정숙한 여인으로서는 행하지 못할 일인데, 존귀한 공주가 "밤중에 이슬을 맞아가며 찾는 것"을 꺼리지 않고 홀로 산과 들을 헤메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집갔으니 어찌 정숙하다 하겠는가? 고구려 왕이 딸 하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방종케 하였으니 국가를 욕되게 하고 풍기를 문란시키고, 윤리를 어지럽혔으며 도의를 그르친 바가 크다. 괴벽하고 비루한 오랑캐 풍속의 소치이니 말할 가치도 없다.  

7. 원효의 오도(깨달음)장면의 전래
  - 국내에는 전하는 기록이 없고, 중국 문헌에 전한다. 961년 연수가 쓴 <宗鏡錄>, 988년 송나라때 찬녕이 쓴 <송고승전>, 1107년에 덕홍이 쓴 <임간록>에 전한다. 
  - <송고승전>은 신라땅의 무덤속에서 귀신을 만난 것으로, <임간록>에서는 해골물을 마신 것으로, <종경록>에서는 시체 썩은 물을 마셨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임간록과 종경록은 당나라땅에서 일어난 일로 묘사하고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원효의 이야기가 적혀있어 후대에 인상적으로 남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다.  

8. 이이의 <십만양병론>의 진위
  - 선조 실록(광해군대에 제작)에는 율곡의 시무6조의 건의 내용이 실려있으나 여기에 십만양병론은 없다. 다만 양병을 주장하며 양병의 기본이 양민에 있음을 주장.
  - 선조수정실록(인조대에 서인에 의해 제작)에는 율곡의 상소에는 십만양병설이 없으나, 뒤에 나오는 부연설명에 이이가 경연에서 10만 양병을 주장했다고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 최초로 십만 양병론이 나오는 것은 율곡의 제자 김장생이 스승을 추모하여 쓴 <율곡행장>
    <율곡연보> - 송시열 등이 편찬 간행한 율곡에 관한 최초의 공식 전기
  - 결국 서인들이 권력을 잡고 난 이후 서인의 학문적 시조인 율곡 이이에 대한 존숭과정에서 이런 십만양병론이 구체화되고 완성된 것이 아닐까?
  - 현대에 와서는 박정희가 1974년부터 실시한 군 방위력 증강계획에서 율곡을 다시 끌어댄다. 이름도 '율곡사업' 

 9. 김정호와 <대동여지도>
  - 김정호에 대해서는 출생, 신분, 사망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기록이 전혀 없다.
  - <대동여지도>역시 김정호가 혼자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측량하여 만든 지도가 아니라, 이전에 만들어진 여러 지도를 두루 참조하여 종합, 집대성한 지도다.
  - 김정호의 답사설과 흥선대원군에 의한 사망설의 진위
   - 최남선1925년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처음 제시, 잡지 <청춘> 제 1호에서 다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100인 중 지리 분야의 대표 인물로 김정호 선정
    - 이후 <어린이>, <학생>등에 소개되면서 알려지기 시작, 이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덧붙여지고 윤색이 가미됨
   - 1934년 조선총독부 발행 교과서 <조선어독본>에 이 이야기가 실림으로써 학교 교육을 통해 널리 보급됨. 조선총독부가  이 이야기를 실은 의도는 결국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한 조선 정치가들의 무지와 편견을 비난하면서 그 가치를 알아본 것은 바로 일본인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  

10. 고인돌
  - 고인돌의 북방식, 남방식 분류의 문제 -이 분류법은 1926년 일본인 도리이 류조가 처음 정립.한반도를 남부와 북부로 나누고 남부는 순수한 한민족의 영역이지만 북부는 대륙에서 들어온 다른 민족의 영역으로 한민족은 항상 외부세력에 의해 발전했다는 타율성론, 만선사관을 제시
  - 고인돌의 용도는 훨씬 다양했을 듯.. : 지배자의 무덤, 또는 그 가족의 공동묘지(합장, 또는 한 고인돌 아래에 여러개의 무덤방이 있는 경우), 한 집단의 공동묘지, 전사자의 무덤의 가능성
  - 제단으로 쓰인 고인돌 : 다른 고인돌과 떨어져 홀로 우뚝 서 있을 것, 크고 웅장할 것, 주변을 잘 둘러볼 수 있도록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서 있는 것
  - 묘표석으로서의 고인돌 - 다른 고인돌과 무리지어 있긴 한데 무덤방이 없는 경우, 아마도 묘역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보인다.  

11. 신라의 금관
  - 발굴당시의 모양은 시신의 얼굴을 완전히 덮고 세움장식을 안쪽으로 모아 깔때기 모양으로...
    즉 시신용 마스크가 아니었을까? (일상생활에서 쓰기에는 구조적으로 불가능)
  - 세움장식은 사슴뿔, 또는 나뭇가지(인간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통로 즉 생명나무) , 곡옥은 나무열매 즉 생명체를 상징, 서봉총 금관의 새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
 - 금관은 5세기 초 - 6세기 초의 약 100년간의 무덤에서 출토 - 이 시기는 눌지 마립간~지증마립간시대. 이 시기 돌무지덧널무덤에서 금관이 출토되는 것. 또한 이 시기 이런 금관은 왕뿐만이 아니라 왕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무덤에서도 출토됨 

12. 광화문앞 해태의 여러 의미
  -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될때 6조거리 사헌부앞에 해태상이 만들어진다.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 옳지 못한자를 문다고 하니 법과 정의를 지키는 동물로 여겨진 것이다. 같은 의미로 사헌부의 대사헌의 관복 흉배에는 해태가 그려졌고, 사헌부 관리들은 해태문양에 장식된 모자를 썼던 것이다. 즉 해태는 사헌부의 상징이었던 것.
  - 두번째 궁에 들어갈때 하마석지표로서의 역할도 같이 한 듯하다.
  - 일제시대에는 철거되었다가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세워져 조선총독부를 지키게 되다.
  - 1968년 광화문 복원 이후 현재의 자리로 이전, 하지만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관악산의 화기를 누를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이야기만 남게 된다. 

13. 고조선건국기원의 문제
  - 2005년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B.C2333년)
  - 실제 삼국유사기록 :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즉위한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요임근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니 즉위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 일연이 말한 고조선 건국 연대는 즉, '요임금 즉위 50년 정사년'이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284년이다.
  - 그러면 기원전 2333년은 근거는? 조선시대 서거정의 동국통감 "동방에는 최초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이 단목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단군이며 국호는 조선이었는데, 바로 당요 무진년이었다. (기원전 2333년)
  - 요임금의 즉위년 자체의 진위여부 불분명, 고고학적 연대와 불일치등의 문제 

14. 백제 왕인에 대한 의문들
  - 현재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의 주흥사(인물 생존기간 470-521), 왕인이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시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그렇다면 왕인이 전한 천자문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자문은 아니다.
  - 왕인에 대한 기록이나 설화가 국내에는 전혀 없다. 가장 오래된 기록인 이덕무의 <청령국지>나 한치윤의 <해동역사>의 기록은 모두 일본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 일본의 기록의 연원은 <일본서기>
  - 일본의 왕인에 대한 주목 : 18세기 일본국학에서 고대사 연구에 주력, 일본에 문풍을 일으킨 인물로 왕인을 지목, 일제시대 만주사변에서 대동아 전쟁기간동안 왕인에 대한 논문이 가장 활발하게 발표, 왕인의 탄생지를 전남 영암군 구림리라고 지목한 것도 1932년의 일이다. 영암지방에 전하는 왕인 설화도 이 지역 출신인 도선의 설화와 섞여 있어 진위여부가 불투명 ---->일본이 내선일체 선전사업에 왕인을 이용
  - 왕인에 대한 최근 연구 : 왕인은 4세기 인물이 아니라 6세기 인물, 그가 전한 천자문 역시 주흥사의 천자문이 맞다고 주장, 그리고 백제에서 박사라는 호칭이 쓰인 시기가 6세기라는 점. <일본서기>나 <고사기>가 6세기 인물인 왕인을 4세기 인물로 앞당겨 기록한 이유를, 당시의 최고 선진문화였던 유교 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시기를 앞당기고 싶어한 일본인들의 소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풀이

15. 임진왜란때 궁궐을 불태운 것은 백성? 일본군?
  - 선조실록(광해군때 편찬) - 5월3일자 기사에 이 때 궁궐이 불탔으므로 왜군이 종묘에 들어가 머물렀다. --->백성들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기사는 없음. (4월30일 선조 도성 포기, 피난)
  - 유성룡 <징비록> : 돈의문을 나와서 사현에 이르니 동쪽 하늘이 차츰 밝아왔다. 고개를 돌려 도성안을 바라보니 남대문 안 큰 창고에서 불이 일어나 연기가 이미 하늘에 치솟았다.(백성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기록은 없음>
  - <선조수정실록> ( 서인에 의해 효종때 편찬) : 거가가 떠나려 하자 도성의 간민이  내탕고에 들어가 보물을 훔쳤고, 거가가 떠나자 난민이 크게 일어나 먼저 공사노비 문적이 있는 장예원과 형조를 불태우고 궁성의 창고를 약탈하고 방화하여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일시에 모두 없어졌다. ---->일제시대 이 기록을 받아들여 정설로 굳어짐
  - 임진왜란 당시 일본측 기록 
     :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장수 오오제키의 전기 <조선정벌기> 입성한 5월 3일 궁궐 건재
       가토 기요마사 휘하 승려 제타쿠의 <조선일기>5월 4일 궁궐 건재
       종군승려 덴케이의 <서정일기>5월 7일 "금중에 들어가니 궁궐은 모두 초토로 변해있었다"
       -------> 결국 일본에 의해 5월4일과 7일 사이에 궁궐이 불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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