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하다가 깜짝 놀랐다.

옆을 지나가던 버스 몸체의 광고

 

 

대치동 고등학생/학부모 연합이라는 명의의 저 광고,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잘 사는 동네 학부모들이 이번 수능에 대해 또는 대학입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저렇게 공공연하게 전국적으로(여기는 부산인데 저 광고가 등장했다는 건 당연히 전국단위로 광고를 했다는 거 아니겠는가?) 내놓고 주장할 수 있는 뻔뻔함이라니.....

 

돈 많은 자들의 기득권주장의 뻔뻔함이 여기까지 왔나싶어 암담해진다.

 

저런 사고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라면 뭐가될까?

대한항공 회황사건의 땅콩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앞으로 더욱 많이 일어날 거라는 것도 증명하는 순간이다.

 

내 자식에게 물려줘야하는 이 땅의 미래 삶들이 암담해지는 순간이다.

 

 

..... 아래 메피님 말씀으로 온라인 입시학원의 노이즈 마케팅이란걸 알았습니다.

적어도 학부모가 직접 낸 것은 아니라는 것에서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런 마케팅이 우리 사회에 먹혀들거라고 생각한다는데서, 그리고 실제로 먹혀들거라는 건 여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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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4-12-1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온라인 입시학원 업체의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밝혀지긴 했습니다만....

저런 문구가 나올 정도로 입시라는 것이 상당히 개념없고 체계가 안잡혔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요.

바람돌이 2014-12-12 12:09   좋아요 0 | URL
아 실제 학부모가 아니라 입시학원이라구요?
도대체 어떤 학원이 저런 문구를..... 참 개념없는....
적어도 학부모가 직접 낸건 아니란거에서 제가 조금은 안도해도 되는걸까요?

북극곰 2014-12-12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ㅜ..ㅜ

바람돌이 2014-12-15 08:45   좋아요 0 | URL
결사 반대 저 빨간글씨 정말 허걱이죠? ㅠ.ㅠ

조선인 2014-12-1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앞의 학원 이름이 `생존을 위한 비상`이에요. 비상하지 못 하면 죽으라는 소리인가 싶어 간판만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됩니다.

바람돌이 2014-12-15 08:45   좋아요 0 | URL
학원이름들은 정말 살벌합니다. 길거리 가다가 깜짝 깜짝 놀란다니까요.

무스탕 2014-12-13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하죠? 저런 정도의 자극을 줘야 움직인다 생각하는게 정말 끔찍해요ㅠㅠ

바람돌이 2014-12-15 08:46   좋아요 0 | URL
아 무스탕님 잘 지내시죠? 우리나라가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 같기도 해요.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 우리 시각으로 다시 보는 서양미술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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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조곤조곤 살뜰하게 서양미술을 이야기하던 이주헌씨가 그간의 이야기들을 한권에 압축했다.

저자 스스로 서문에서 17년간의 강의내용을 압축했다고 말한데서 알 수 있듯이

책의 내용은 대단히 명쾌하고 정리가 잘되어있다.

마치 시험직전에 보는 적중 정리용 문제집같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는 서양미술의 특징을 3가지로 압축한다.

인간중심의 미술, 사실주의미술, 감각주의 미술이 그것이다.

이런 3가지의 특징을 풍부한 도판을 통해 조곤조곤 얘기해가는 것은 이전의 책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번 책에서 약간 다른 점은 한국미술 또는 동양미술과의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인 듯 보이는데 원래 어떤 논리나 설명에서도 비교라는 수단은 아주 효용적이다.

즉 비교를 통해 나를 상대화시킬수 있을 때 그 고유의 특징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양의 인간중심 미술의 특징을 간단히 보면

최고의 미술 장르로 역사화를 위치시키고, 인물의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기 때문이며 이것이 기술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원근법의 발견이다.

원근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나라는 주체가 바라보는 세계이다.

즉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양화에서는 자연은 내가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 자연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대상화시킬 수 없는 자연이다.

이렇게도 동양과 서양의 자연관은 다르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주의의 발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리스의 역사와 사회의 특징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서양미술의 역사는 '나'라는 주체가 대상을 얼마나 잘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을 실제와 가깝게 구체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르네상스미술이든 바로크든 로코코든 표현법의 차이일뿐 본질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한 감각주의라는 것 역시 온 몸의 감각 특히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사실주의와 맞닿아있다.

이러한 서양미술의 전통은 그들의 철학의 발달, 합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할 수 있겠다.

 

반면 우리 미술에서는 지나친 사실적 표현은 외형묘사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게 되어 사물의 본성을 통찰하고 표현하는 일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는 말 그대로 차이이며 개인적 사회적 취향의 문제일뿐,

이것이 문화의 우월성으로 판단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문화의 간극은 깊고도 넓다.

 

이주헌씨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문화적 전통이라는것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동양화의 여백을 보면서 저절로 편안함을 느끼는 내가 서양화의 꽉찬 화면을 보면서 가끔씩 갑갑함을 느낄 때가 있다.

또한 한국화의 그림들을 보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림의 의미가 확 와닿을때가 많은데 서양화는 끊임없이 설명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대부분인게 이렇게 생래적인 문화의 차이때문이구나 싶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을 아마도 서양인들은 동양화에서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책을 읽다가 문득 얼마전에 봤던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가 생각났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루시를 보러왔다가 우씨!! 하게 될줄이야..."

우스개소리로 이렇게 툴툴거리며 나왔던 기억이다.

 

요즘 동양사상이나 문화에 관심을 표하는 서양인들이 많은듯한데 뤽 베송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서양의 과학이 돌파하지 못하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동양적 사유들을 통해 풀어보려했다는 느낌.

그런데 그들이 표현하는 동양적 사유란게 왠지 어설퍼 그것도 역시 서양의 논리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해하려 했던게 아닐까싶다.

논리의 영역이 아닌 것을 죽어도 논리로 풀어내고자 하는....

오랜 세월동안의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낸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것은 결국 내가 서양미술을 이해하는 것도 참으로 쉽지 않으리라는 것으로 통하리라.

 

그래도 이주헌씨의 책은 이 방면에서 늘 친절한 안내자역할을 한다.

서양미술을 접하면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차이의 간극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고,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으면서도 명쾌한 안내자.

서양미술에 대해 입문서적인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은 최고의 책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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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1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글 읽다가 루시 우씨!가 눈에 들어오니 웃음이 납니다....ㅎㅎ

오늘은 도서관에서 김선우의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시집 읽고 있어요.
딱정벌레의 시체놀이를 보면서 내 일상과 연관지어 들려주는 솔직, 담백한 시가 좋으네요^^

바람돌이 2014-12-12 09:35   좋아요 0 | URL
아주 가끔이지만 학교에서 책을 볼 때 아 이 직업이 좋구나 싶어요. 어느 직장에서 근무시간 중간에 책을 볼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세실님이나 저랑은 복받은 것 같아요. ^^
 
스캔들 세계사 3 - 로코코의 여왕에서 신의 분노 흑사병까지, 화려하고 치명적인 유럽 역사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3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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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표지에 보면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가르친다면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 J.R. 키플링(정글북 작가)"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출판사의 선전문구이다.

아 근데 나는 이 한 줄의 글이 어찌나 거슬리는지....

영국인 키플링이 어떤 맥락에서 저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 말을 한 키플링이 역사를 제대로 교육받은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키플링은 아주 견고한 제국주의자의 논리로 무장하고 그 논리를 문학으로 전파했었다.

 

         백인의 의무    -키플링-

백인의 의무를 다하라

너희가 가진 최정예를 파견하라

용사들은 쉽게 못 돌아올 것이니

새 백성들은 교화할 일이 너무도 많은 탓이라

무력도 불사해야 하리라

참으로 미개한 원주민들,

막 포획되어 아직 야수와 같은

사납고도 유치한 이 무리들에게는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는 키플링이 말하는 바 미개한 원주민들에 속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최정예 군대에 의해 무력을 통해서라도 교화를 받아야 하는....

출판사가 어떤 의도로 저 문구를 광고 문구로 선택했는지 그 의도는 알겠으나,

이 의도가 읽는 독자들에게 과잉 해석되어 마치 지금 학교의 역사교육이나 어린 시절의 역사교육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역사를 못했다는, 그래서 역사교육이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통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귀결되어버리는 걸 자주 목격했다.

물론 이것은 출판사의 본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의도와 달라지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야기라는 형식 또는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스토리텔링은 결국 역사교육의 방법론일 뿐이다. 효과적인만큼 한계도 분명한..... 

방법론을 본질적인 내용으로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조장한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일까?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별게 아니다.

이 책은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이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 더더구나 저자의 입담과 글솜씨가 좋아서 상당히 재밌게 읽히는 이야기.

어릴 적 할머니같은 어른들에게서 귀를 쫑긋대며 듣던, 또는 몇권 안돼서 아끼고 아끼며 읽던 동화책속의 이야기들.

이야기들은 재밌게 읽으면 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즐겁게 읽어 달랬다.

쓸데없이 과도한 의미무여를 할게 아니라는거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건 꽤나 즐거웠다.

'스캔들'이란 말 자체의 사전적 의미가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지 않은가?

원래 무난하고 도덕적인건 재미가 없다.

얘기 중에서도 뒷담화가 재미로는 최고다.

세계는 넓고도 오래됐으니 웃기고, 슬프고, 부도덕하고, 충격적인 인물들, 사건들은 넘쳐난다.

뒷담화를 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거다.

그들의 사생활을 엿보고 본격적으로 뒷담화를 해보는건 재미의 영역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물론 최소한의 말솜씨는 있어야겠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이야기꾼을 잘못 만나면 얼마나 썰렁해지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인 이주은씨는 상당히 숙련되고 세련된 이야기꾼이다.

걸쭉한 입담은 아니지만 조근조근 맛깔나게 말을 버무릴줄 아는 이야기꾼이다.

 

또한 책속 각 장의 부제들을 보면

'합스부르크 가문, 악마를 낳다' '여왕의 연인, 그리고 슬픈 부인', '오스만 제국의 올드보이', '왕의 자리를 탐낸 꽃미남'......

이런 걸 선정적이라 하던가?

이런 제목들 치고 실제 내용이 부실하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의외로 이 책은 내용도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덕분에 벌써 3권까지 나왔고 나 역시 1-3권을 다 읽었다)

이런 글들의 특성상 전체적인 내용에서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빼거나 ~카더라 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면서도 필요한 자료나 증거들은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자료들을 잘 수집하고 버무려놓았다.

또한 흑사병의 전파과정이나 이유들, 마녀재판의 이야기,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렸다는 조지 카버의 일생 같은 이야기는 선정성과 상관없이 생각해볼 거리들을 제공하여 약간의 지적 만족감을 느끼게도 한다.

 

이정도면 좋은 이야기책이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괜히 역사책이라고 우기지 않는다면 그냥 역사를 소재로 잘 만든 이야기책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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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9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14-12-09 23:28   좋아요 0 | URL
우와 돌바람님 정말 오랫만이죠. 뭐 제가 게으르고 무심해서인지라 죄송하기만 해요. ㅠ.ㅠ
잘 지내시죠? 오랫만에 들어와서 여러분들이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인사해주시면 너무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그래요. ㅎㅎ
집 주소는 그대로예요. 늘 게으른 저인지라 이사같은 어려운 일은 못한답니다. 반드시가 아니면요. ^^
자주 들를게요.

바람돌이 2014-12-12 09:45   좋아요 0 | URL
돌바람님 정말 감사하게 책 받았어요. 어젯밤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책이 와있더라구요.
예전에 등단하셨다는 얘기는 잠시 들었지만 이후 전태일 문학상까지 받으신지는 정말 몰랐어요. 의미도 큰 상이잖아요. 제 이름을 넣은 사인본 책은 진짜 감동이에요. 이런 훌륭한 작가님과 아는 사이라니, 제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

귀한책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서재를 막아놓으신건가요? 님의 서재로 들어가지지가 않네요.
또 하나 따로 써주신 타이프체 편지는 진짜 타이프인가요? 아님 새로운 글씨체?
오랫만에 타이프 글씨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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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읽는다는건.....

어쩌다가 잠시 쉬던 때 누군가가 평전을 소개한 출판사 광고지를 가리키며  "이런 책은 도대체 누가 읽냐?"라고 했던 것 같다.

하필 옆에 있는 나는 웃으면서 "저같은 사람이 읽어요. 저는 평전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나를 희안하다는듯이 보며 "진짜? 이런걸 읽는 사람이 있네......" 잠시 우리 둘다 웃었던듯.....

 

어쨌든 나는 평전을 많이 좋아한다.

역사서를 직접 읽는 것보다 평전을 통해 시대를 보는 것이 더 좋다.

왜?

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대껴낸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삶에서는 역사서의 내용이 그의 삶을 무대로 현장감있게 펼쳐질뿐 아니라,

역사서의 서술에 포함되기 어려운 디테일한 삶의 풍경들이 손끝에 와 닿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도 내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역사는 그저 지나간 일이 아니라 내가 꼭 기억하고 보듬고 다독여야할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안도현이란 한 시인의 오랜 짝사랑이 만들어낸 시인 백석의 평전은 어떤 풍경들을 보여줄까?

평전의 첫 장을 펼칠 때는 늘 두근거림이다.

누군가의 삶의 소중한 시간들을 마치 나만 알게되는듯한 묘한 설레임.

소설과도 다르고 역사서나 인문학서적과는 완전히 다른 그런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간이 기다린다는 느낌이랄까?

 

백석은.....

백석은 그의 시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로 내게 왔다.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이란 시대에 뜬금없이 다른 세계에서 푹 던져진것 같은 모던보이의 낭만적인 외모로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고 우주급 뻥을 치는 이의 정신세계라니! 궁금하지 않은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시인 안도현의 짝사랑 덕분에 나의 호기심과 설레임도 충족되었으니,

살아 다른 사람의 짝사랑을 고마워할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책 속에 보이는 백석이란 시크한 이름의 시인은 딱 그의 詩가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식민지시대, 누구나 그러했듯이 시인의 삶 역시 2가지 선택지 위에서 춤을 출 운명이었을게다.

민족주의 독립운동에 나서든지  친일파로 권력에 철저히 붙어 일신의 안일을 구하든지,

이 2가지의 선택지 사이에서 좌우를 끊임없이 오가며 왔다갔다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시대의 삶은 고난과 자괴감사이를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오고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인간은 참으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니, 그것은 만들어진 틀 사이를 자유롭게 탈출하는 이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백석이 그런 사람이다.

 

백석은 이념에 맞춰 시를 쓰고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유년의 자유로왔던 감성을 노래하고, 고향의 기억을 고향의 사투리속에 날것으로 담고싶어했고, 그것이 사람의 감정을 울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듯하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시인 역시 모두 다르다.

백석의 시가 이육사의 시와 같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육사의 시가 그의 선택이었듯, 백석의 시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가 그 시로 개인의 안일을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키지 않는 한 백석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나는 지금 21세기에 편안하게 앉아서 생각한다.

비록 식민지시대 오장환이란 젊은 작가처럼 현실비판의식이 없는 말장난에 가까운 시라고 (133-135쪽) 백석의 시를 폄하한 이도 있었지만, 그 역시 그 시대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고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문제는 백석의 시창작의 자유도, 오장환의 다소 설익었지만 그 비판 역시 자유로울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석은 독립운동을 하지도 않았고, 그 시대 카프문학처럼 현실참여를 외치며 식민지시대 민중을 위한 문학을 소리높여 외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조용히 어릴적 얘기를 하며 고향의 얘기를 하며 나직나직 노래불렀을 뿐이다.

하지만 말이다.

분명히 이런 조용한 속삭임덕분에 위로받는 마음도 당연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목소리 큰 투쟁가에 힘을 얻지만, 누군가는 사랑노래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기도 한다.

백석의 시 역시 그 시절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웃음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백석의 시는 아름답다.

지금에 와서 그의 연시가, 그의 산문에서 흐뭇함의 미소를 짓는 내가 있기에 또한 백석의 글은 여전히 아름답다.

 

식민지 시대의 삶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그리고 하고싶지 않은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백석 역시 쓰고 싶은 시와 쓰도록 강요받는 시, 쓰고 싶지 않은 시 사이에서 계속 갈등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건 타고난 자유인이었던 백석이 그래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걸 쓰지 않을 정도의 숨구멍은 있었다는 것이다.

민족말살정책의 시기에는 만주로 잠시 피신한다던지 하는 식으로라도.....

어쨌든 자신의 시정신을 배반하는 친일문학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서 저항 아닌 저항을 백석이 하게 되는것이 그의 민족정신 때문이 아니라 詩정신이라는 것에 백석이라는 한 인간의 본질이 있겠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은 오히려 백석에게 더 큰 올가미를 죄어대니

어떤 시를 쓰느냐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상황(아마도 그것은 개인 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존과 삶의  문제였을 것이다.)이 일제 시대가 아니라 해방된 조국에서 벌어지다니...

 

역사책을 뒤적이다가 비감할때가 딱 이런 경우다.

어떻게 일제시대보다 해방공간이, 그리고 지금이 더 개인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우를 발견할때.

북한에서의 아동문학논쟁 이후 시인으로서의 생명이 끊긴 백석이 살아남기 위해 쓴 몇개의 시들을 읽는 것은 고통이다.

읽는 이의 심정이 이럴진대 이런 시들을 쓰는 백석의 심정은 어느만큼 고통스러웠을까?

시인을 시인답지 못하게 하는 세상은 출구없는 닫힌 세상인것이다.

 

백석이라는 자유롭고자한 영혼, 그 한 사람의 삶만으로도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삶이 그 자신 개인으로 봤을때 결코 행복한 삶이 되기는 힘들다는건 누구나 알지 않나?

백석의 산수갑산 시절,

시인으로서의 삶이 끝나고, 한가족의 가장으로, 개인으로서의 백석의 삶에 대해서는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건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평전에 오르지 못한 그 기간이 오히려 백석이라는 개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평화로웠던 기간이 아니었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산수갑산으로 가기 전에 백석이 아들에게 하는 말이 내내 귓전에 맴돈다.

거기 가서 우리는 양을 키울거야. 양이 자꾸 늘어나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보일거야라던....

이것이 백석이 살아온 삶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저자인 안도현시인의 말대로 그의 시인으로서의 삶이 끝났다고 개인으로서의 삶까지 무너졌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오지랖일듯 싶다.

다만 그의 시를 더 많이 보지 못하는 우리 후인들의 안타까움이 큰 것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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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0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바람처럼 나타나셨네요~~~~~~
백석평전. 우리도서관 인문학서평쓰기 동아리 내년 1월 선정도서예요.
저도 조만간 읽으려고 합니다.
백석시인은 시인들의 멘토인듯요. 기대됩니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도 좋았어요.

바람돌이 2014-12-04 16:21   좋아요 0 | URL
바람이라기엔 좀 무겁습니다. ㅎㅎ
세실님이야말로 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시는 그야말로 바람같은 분인듯한데요. 순오기님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항상 에너지가 넘치시는듯 늘 보기 좋아요. ㅎㅎ
백석시인은 매력적이었어요. 추천하신 책도 급관심이 가네요. 이상하게 전 강신주의 책이 손이 안가던데 한번 읽어볼까요? ^^
 
[세트] 자전거여행 - 전2권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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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개가 거듭 군령을 어기기로 베었다. 바다는 물결이 높았다."라는 식의 문체를 보인다.  2권 172쪽

 

위의 인용문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의 한대목이다.

놀랍도록 김훈의 문체와 닮았다.

나는 <난중일기>를 읽지 않았으니 <난중일기> 전체의 문장이 이러한지, 아니면 작가 김훈이 자신의 문체와 똑 닮은 이 부분을 일부러 떼온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김훈의 문체가 저 문체를 똑 닮았다는 거다.

김훈은 왠만해서는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있는 것,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역사를 이야기하고 풍광을 이야기하고 또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다가 그때서야 발견한듯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이 뜬금없는 장면의 전환에 늘 김훈이라는 인간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기쁘다 슬프다 표현하지 않아도 절절하게 그 마음이 와닿는 것이다.

 이 마을 염부 권호원씨(67)는 14살 때 아버지를 따라 피란왔다. 아버지와 함께 등짐으로 돌을 날라 둑방을 쌓았다. 그 염전에서 권씨는 지금도 소금을 거둔다. "이제는 염전일을 할 젊은이가 없다. 염전은 결국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고 권씨는 말했다. 1세대의 둑방은 아직도 튼튼히 바다를 막고 있다. 고무래를 미는 권씨의 굽은 등 위로 서해의 폭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1권 256쪽

 

권씨의 굽은 등 위로 폭양이 내리쬐는 모습은 사실 그 자체일 뿐이지만 그 모습에서 나는 그가 살아온 노동의 세월과 삶의 신산스러움과 한 세대가 저물어감을 동시에 느낀다.

고무래를 미는 권씨의 모습에서 굳이 굽은 등을 찾아낸 것, 그리고 그 순간 그를 스쳐간 바람이든 바다내음이든 그 무엇이 아니라 내리쬐는 폭양으로 그의 모습을 설명한 것에서 내가 김훈에게 느끼는 건 소름이다.

구구절절히 풀어내야만 할 것같은 모든 장면을 단 하나의 스틸컷으로 압축해내는 이 능력이라니....

김훈의 글을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힘은 그의 짭고도 강렬한 문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건 단순히 문체의 힘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본질적인 장면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하나의 명징한 장면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그의 사유의 깊이의 힘이라는 것을......

 

김훈의 글은 자연을 빌려 인간을 얘기함에 탁월하다.

그의 글의 예리함은 그의 애정서린 눈길과 오랜 사유에서 나오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 예리함이 사람을 베지 않고 자연을 베지 않는 것은 또한 대상에 대한 애정이깊기 때문일터이다.

늘 피고지는 꽃들에서 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뿜어져나오듯이 피어난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 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1권 15~17쪽

 

때때로 자연을 보는 사유의 눈은 더 깊이 인간의 자연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김훈이 자전거 풍륜과 함께 넘는 산은 옛적 누군가의 산이기도 했을 것이다.

김훈은 유가의 산이 다르고 도가의 산이 다름을 이야기하며, 또한 등산객들의 산이 다르고 산에 깃들인 삶을 사는 이들의 산이 다름을 얘기한다. 어쩌면 산은 거기 있을 뿐인데 인간들이 다르다하는 것이겠다.

 

또한 나무의 나이테 하나에서도 나무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새로 생겨난 나무둥치의 바깥면이지만, 나무를 나무답게 올곧게 지탱하는 것은 이미 죽은 중심부임을 얘기하며 건강한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의 원형을 배우고자 한다.

자연과 인간은 결국 이 우주의 원리에 올곧게 부응할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음이니,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우주의 원리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자 했던 그 태도가 어떤 것이었나를 김훈의 글속에서 발견한다.

 

김훈의 글을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은 이토록 탁월하고 자유롭게  우리말과 한자어를 운용하는 작가를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한글은 소리글자 답게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글임이 김훈의 글을 통해 알게된다.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음 'ㅅ'의 날카로움과 'ㅍ'의 서늘함이 목젖의 안쪽을 통과해나오는 'ㅜ'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이다. 'ㅅ'과 'ㅍ'은 바람의 잠재태이다. 이것이 모음에 실리면 숲 속에서는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때 'ㅅ'의 날카로움의 부드러워지고 'ㅍ'의 서늘함은 'ㅜ'모음쪽으로 끌리면서 깊은 울림을 울린다....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속에 온 것 같다.   1권 59쪽

 

한자는 뜻글자답게 사유를 펼치고 사람의 사는 길을 표현함에 거침이 없다.

더불어 온갖 고전에 대한  김훈의 해석은 그의 어휘의 풍부함으로 한껏 빛난다.

우리말과 한자의 어우러짐으로 김훈의 글은 늘 간절하게 들린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간절하고 자연과 세상과의 소통을 희구하는 마음 또한 간절함이다.

그의 말대로 간절한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 간절함의 끝에 사람이 있다.

소금밭을 가는 염부의 굽은 등, 차를 덖음질하는 이의 구부러진 손마디, 소를 매질하는 농부, 80년 광주의 사람들, 도자기를 굽는 도공의 마음.....

그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그의 글은 지극히 건조하지만, 그 건조함으로 오히려 간절하다.

또한, 그러므로 눈물겹게 아름답다.

 

보고 좋은 책, 즐거운 책, 생각하게 하는 책은 많고도 많지만,

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음미하고 싶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내게는 김훈의 이 책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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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20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문체~ 초기엔 김훈도 저리 간결하게 쓰지 않았더라고요.
<풍경과 상처>를 보면 후기에서 ˝이젠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고 밝혔어요. ㅋㅋ
http://blog.aladin.co.kr/714960143/3234375
나는 <칼의 노래> 첫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전율했지요.
김훈은 정말 대단한 작가에요. 글쓰기의 모범을 보는 듯한....

바람돌이 2014-11-21 09:25   좋아요 0 | URL
칼의 노래는 정말 그 문장 하나로 시작부터 마음을 확 뒤집고 시작하죠. ㅎㅎ
저는 김훈씨의 책이 칼의 노래부터 시작이라 이전 글은 못봤어요.
지금 김훈의 문장이 좋은 저는 풍경과 상처는 살짝 밀어놓을듯.... ^^

조선인 2014-11-2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도 `풍경과 상처`가 제일 좋아요. 가장 김훈같지 않기에, 내 20대에 가장 잘 어울렸던 책이었거든요.

바람돌이 2014-11-21 09:28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나 나만의 책이 있잖아요. ㅎㅎ
그리고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가가 중요하죠.
저는 지금은 전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이문열을 처음 만났을때의 그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