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둘러싼 말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훑는 작업은 마치 세상을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한다는 건 나의 무의식까지 훑어보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조금이나마 가능해질 것 같았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 P10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특권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발견‘인 이유가 있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이런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못하기 때문이다. 특권은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 P28

고정관념은 일종의 착각이지만 그 영향은 꽤 강력하다. 일단 마음속에 들어오면 일종의 버그처럼 정보처리를 교란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사실에 더 집중하고 그것을 더잘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그 고정관념을 점점 더 확신하는 사이클이 만들어진다. 반면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에는 별로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고정관념과 충돌하는 사례를 보더라도고정관념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전형적이지 않은 특이한 경우라고 여기며 예외로 치부한다. 고정관념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반증 사례를 아무리 제시해도 별 효과가 없는 이유이다.
- P48

‘우리‘와 ‘그들‘ 이라는 감각의 차이는 두 집단을 가르는 경계에서 생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
즉 그들을 쉽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속한 내부 집단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반면외부 집단은 훨씬 단조롭고 균질하며 덜 인간적으로 보인다. 내부집단과 외부 집단의 차이를 과장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집단을 가르는 마음의 경계를 따라 ‘그들‘ 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들어진다.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도 이 마음의경계에 따라 달라진다.
- P51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하면서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상황은 직관적으로도 부당한 차별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성이 애초에 임금이 낮은 직종에 진출하는 상황은 다르다. 어떤 면에서 여성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노동시장으로 자발적으로 진입한 셈이 되었으니, 여성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구조적 차별ystemic discrimination 20 은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 P74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
면 내 시야가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발견할 기회이다. 그 성찰의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 P79

소수자에 대한 잠재된 거부감이 혐오표현을 통해 방출되는 것이라면 최근 한국사회는 그 적나라한 모습들을 보았다. 범람하는 혐오표현을 통해 편견은 더욱 자유롭게 소통되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규범‘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평등에 관한 규범이 모호한현실과 관련 있다.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립된 규범이 없는상태에 기생하는 유머들인 것이다. 차별금지의 규범이 사회적으로확립되기 전까지 유머를 통해 누군가를 비하하고자 하는 욕망은계속 표출되고 증폭될 수 있다.
- P93

그래서 어떤 소수자 집단은 낙인이 부착된 단어를 그들 스스로전유reappropriation 해버리기도 한다. 아예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단어로 사용하면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버리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단어가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퀴어‘다. 퀴어는 본래기괴한‘ 이란 뜻으로,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이 단어를 전유해버렸다. ‘기괴하다‘는 뜻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기괴함은 나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이며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특징이라고 선언해버렸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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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178페이지)


박원순시장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던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명이었다. 지금 이렇게 과거형으로 쓸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정도로.....


며칠전 발표된 피해자의 편지에서 ˝사과 받고 싶었습니다.... 용서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두 문장이 가슴을 치받았다. 그 두 마디에 녹아있는 간절함이 너무도 절절해서.


그가 자살하지 않고 죄값을 받고 진심어린 사과를 했더라면 피해자인 그녀는 용서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이다.


박원순은 살아서 사과했어야 했다.
죽음이 사과라고?
아니, 그것은 피해자를 향한 또 한번의 폭력이고 가해일뿐이다. 그것도 최종적이고 완전한 폭력.


나는 박원순 시장이 살아 뉘우치고 끊임없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먼 훗날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비록 치명적인 잘못을 한적도 있지만 그래도 당신이 한 일에 우리 사회가 많은 빚을 졌다며 그의 죽음에 애도를 보낼 수 있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무책임한,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줘버린 그의 자살앞에서는 감히 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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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사람에겐 친절하지 않다는 게 이상 - P115

폭력은 사람의 인격을 조각한다. 조각하다가 아예 부숴버리기도 하지만, 폭력에서살아남은 사람은 폭력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얻은 감지력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절망해 방치해버리는사람도 있어서 한 가지 결로 말할 수는 없다. - P126

한빛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규림은 자신의 해명이 힘도 없고중요하지도 않음을 이해했다. 화수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죽은 남자가 사촌 큰누나에게 염산을 던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을 온 가족이 똑똑히 이해할 수밖에없었고 규림 자신은 도저히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 P173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실행이었다.
- P178

우리가 이천 년 가깝게 사랑해온 땅들은 플랜테이션 농장이 되었어요. 백인 선교사의 자식들이 그 농장을 차지했습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대거 바다를 건너왔고요. 농장주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합병을 한 겁니다. 아무것도 우리가 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문화가 희석되는 걸 막기 위해 지극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말이 살아나고 훌라가 살아났지만 갈 길이 멀어요. 우리를 그저 관광상품으로 대상화하면 안됩니다. - P213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 P288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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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 그림에 반해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가 누군가의 부인이란 설명이 먼저 오는것에 아연함을 느꼈었다. 이렇게 대단한 걸 그려도 그보다 중요한정보는 남성 화가의 배우자란 점인지,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에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 P15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P30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면읽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행위는 읽기라고, 동의할 만한 사람들과 밤새 책 이야기나 하고 싶었다.
- P72

이승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승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로 첨예하게 반분되어 있던 한인 사회는 세대를 내려가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끝내는 익숙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가 망명한 집에 밤에 몰래 가 유리창이라도 깼을까? 평행하는 세계에 대해 읽어보았지만 역시 그런 게 없었으면 한다.
- P93

그리고 피해자들이 민사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자살했다. 염산을 쓰지는 않았고, 욕실수건걸이에 목을 매달았다.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 그건 도망이었다. 화수는 잊을수 없었고 늘 화가 나 있었고 이제 그 화는 화수만을 해쳤고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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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에서 풀려날 때, 야백은 사람의 밥을 벌고, 사람이 걸어주는 장신구를 붙이고, 사람을 태우고 달린 생애의 시간이몸속에서 소멸하는 것을 느꼈다. 지나간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아서 이 빠진 자리는 빈 채 서늘했다 - P146

젊은 농부가 죽은 딸의 머리맡에 묻은 돌은 이 악기를 본떻것인데 어려서 죽은 월의 아이들은 모두 이 악기를 선물로 지니고 갔다. 사람들은 들짐승이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도록 돌로 무덤을 덮어놓았는데 돌에 구멍을 뚫어서 무덤 속 아이와별이 서로 쳐다볼 수 있도록 했다.
- P178

사람이 땅에 들러붙으면, 땅은 그 위에 들러붙은 자의 것이 되는데 그위에 기둥과 지붕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앉은 자들의 어두움을 표는 상양성에서 알았다. 초원에서 창세 이래로 전개된 싸움은 세상에 금을 긋는 자들과 금을 지우려는 자들 사이의 싸움이었고, 초원 끝까지 나아가서 금을 지우면, 그 뒤쪽에서다시 금이 그어져서 싸움은 끝이 없었다.  - P191

초원의 봄은 땅속에서 번져 나왔다. 봄에 초원은 벌렁거렸다. 눈이 녹아서 부푼 흙 속에서 풀싹이 돋아나고 벌레들이깨어났다. 벌레들은 땅속에서 올라오고 숲에서 살아났다.
벌레들은 가을에 모두 죽어서 없어지고 봄이 오면 새로운벌레들이 초원에 나타나서, 모든 벌레는 작년에 죽은 벌레의자식이 아니며,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벌레이고, 벌레들이 다 죽어도 벌레들의 초원에는 죽음이 없다고 무녀는 연에게 말해주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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