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를 떠올리면 ‘시인 되기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것이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내면에 말의 보물창고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을 잘 골라내고, 말에색깔을 입히고 그것들을 잘 배열하는 재능 말이지요. 이는 인위적으로 꾸며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천성적으로 주어지는 것일 테지요. ‘뮤즈‘를 자신의 안에 간직한 자들이 시인인것이지요. ‘보물창고‘는커녕 ‘웅덩이 조차 없어서 시인 되기를 포기한 저 같은 자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 P49

또 다른 하나는 ‘젊어서 늙어버리기‘같은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서 병들고 늙어야지" 같은 구절들이 황지우 시에는 있지요. 이를 견자로서의 시인 되기‘의 품성이라 합니다. 김소월, 윤동주 등이 다 그러한데, 이들 시인들은 청춘 시기에도 나는 늙었다. 청춘이지나갔다 말합니다. 그들은 젊어서 이미 늙어버린‘ 자의 철학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일찍 철들고 일찍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농담‘ 같지만 은유적인 구절들이 그의 시에 있고 그것은 철학적이고 예언자적인 아우라를 풍기며 독자를 기다립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된 시인의 인생철학은 구구절절 나열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단박에 달려 나가듯 질주하는 시인의 언어 바로 그 자체입니다.
- P50

이런 쉼표를 저는 ‘철학자의 쉼표‘, 미학자의 쉼표‘라 부릅니다. 황지우는 그 쉼표를 시 자간에, 시 행간에 찍어둡니다.
질주하면서 사유하고 사유하면서 달려가라고 말하지요. ‘쉼표‘라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쉼표 하나하나에 너무나 많은 말이 담겨 있습니다. 황지우에게 쉼표는 사색의 표지이자 침묵의 표지입니다.  - P72

기형도의 시에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직하게 우리 삶의미세한 흔적들을 탐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P84

하지만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의식에 공감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상실을, 연애의 불모를 겪은 자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 심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비극의 심정에 되풀이하듯 다가가면서 시인을 향한 공감의 알림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겠지요. 이것이 타인의 아픔과고통과 상실을 같이 사는 한 가지 방법이지요. 연애시는 심정적으로 타인과 공감의 연대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 P95

시어 하나하나에, 각각의 구절에 각각의 의미가 대응되어야 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믿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온전하게 시를 읽는 방법이아닙니다. 리듬으로도 읽고 이미지로도 읽지요. 시를 낭송할때 느끼는 리듬 감각이 시의 의미를 해독하는 지적 기능보다.
더 우위에 있고 그것이 보다 우리의 삶에 더 간절한 신호를보낸다 하지요. 의미를 해독하려 애쓰지 마시고 그냥 읽으세요. - P99

여류‘라는 호칭은 문학 혹은 시가 남성의 소유물임을 증명하는 용어였고, 남성의 후광 아래서 존재하는 시인, 특이한 일(문학)을 하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의미가 ‘여류‘라는 명칭아래 숨겨져 있었습니다.  - P169

여성주의 시인‘을 호명하면서 일종의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시기는 1980년대였습니다. 1980년대에 등단한 여성시인들은, 남성시인의 ‘타자‘, 그러니까 ‘여성‘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 시인‘으로 인식되었는데, 이 따옴표(‘)의 이동이야말로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지요. 이들여성시인들은 스스로 빛나는 자이지 타자의 후광으로 빛나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 P170

시의 말은 결국 동일한 은유의 틀 내에서 움직이고 이 유형적인 말법을 은유의 방정식‘이라 칭합니다. 은유란 죽은말법인데, 시인들은 죽은 은유들을 살려내 의미의 진폭을 확장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영혼을 충동하지요. 암시된 것은 단호히 주장된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인간의 마음은 진술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에머슨의 말도 있습니다. - P198

김춘수는 특이한 존재입니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 ‘젊은시‘, 좀 더 쉽게 말하면 모던하고 세련된 시를 썼습니다. 보통시인의 생물학적인 연대와 시의 스타일은 평행하게 간다고말합니다. 관례대로 한다면, 시인이란 모름지기 느지막한 나이에 이르러서는 모던한 시에서 손을 떼고 노장사상이 노니는 초월의 수풀로 들어가거나 시단의 원로로서 권위를 지키면서 대가급의 시론을 펼쳐야 옳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김춘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김춘수는 최후까지 우리말 이미지가 빛나는 시를 썼습니다. - P228

시의 언어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할 때, 시인은 항상 언어의 구속, 의미의 구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일상의 말과 시의 말이 어떻게 다른지 회의하기도 하지요. 시인은 ‘의미‘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지만 독자들은 시인의 말에서 언제나 ‘의미‘를 찾고 ‘의미‘가 찾아져야 제대로 시를 읽었다 생각하지요. 시의 말에 일상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를 갖다 붙이기 일쑤이지요. 시 교과서에서 시의 ‘주제‘를 찾는 작업과 유사합니다.
- P231

한용운 시학의 핵심에 ‘언어의 침묵‘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은 말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 인간의 언어는 불충분하다(신의 언어만이 완전하다)‘는 그 개념 말이지요. 언어의 불완전성, 불명확성 때문에 시인은 고뇌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완전한 표현이 될 때까지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언어의 무한 지옥이 시인의 운명인 것이죠. 이를 ‘언어의 감옥‘ 이라고 합니다. 언어의 창조자이자 언어로부터 절멸당하는 시인의 숙명은 피할 수 없는 모순에 갇힌 자의 그것이지요.  - P284

심장에 다가갑니다. 그러니 소월의 시를 읽으려거든 머리가아니라 심장으로 읽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지의 칼을벼르기보다는 심장의 불을 켜기를 권합니다.
- P307

시는 곧 은유이고 은유가 곧 최고의 대상을 향해 말을 건네는 방식이라면, 이 정의를 완벽하게 실현하는 것이 ‘연애시가 되겠지요. 연애시의 말법은 ‘은유‘라는 문장 구성법과본질적으로 동류라는 것이지요. 연애시는 시의 본질적 수사법인 은유와 등질적으로 접합된다는 점에서 연애시를 읽는밤은 곧 시를 배우는 밤이지요.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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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은 하루종일 안전안내문자로 바쁘다.

내가 사는 동네의 코로나 감염상황이 심상치않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그래도 잘 견뎌온다 싶었는데 지금은 여태까지의 시기 중 가장 심각한듯.....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으니 그저 3일간의 연휴 내내 집콕이다. 누구는 5일 연휴라지만 앞의 이틀은 내게는 더 많은 육체적 정신적 노동에 시달리는 날이므로 휴일이 아니다. ㅠ.ㅠ

 

어쨌든 밀렸던 집안 일 - 이불 빨래 같은 -을 3일동안 틈틈이 해내고, 책도 읽고, 서재에 미뤄뒀던 리뷰도 올리고...

아 그냥 이렇게 살면 좋겠다. 현실은 내일부터 출근이고, 10월부터는 좀 많이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래도 올해는 내게는 환상적인 한해다.

딸래미 중 하나가 고등학교를 드디어 졸업했고, 하나만 남으니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드는 시간과 힘이 확 줄어든다.

 

늘 식물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천성이 게으르고 귀찮음을 싫어하는지라 키우기만 하면 죽어나가니 꽤 오랫동안 식물쪽은 쳐다도 안봤다.

산세베리아를 죽인 날은 진짜 우울했다.

나에게 그걸 어떻게 죽이냐고 누군가 신기해하며 말해서 더 우울했다.

죽는 식물들도 불쌍하고, 그걸 보며 자학하는 나도 안타깝고....

 

그래도 올해는 여유시간이란게 생기니 그래도 좀 키우지 않을까 싶어 시장에서 1,000원짜리 화분 2개를 사왔다.

난 큰걸 키우고 싶은게 아니라 내 손에서 꼬맹이부터 자라는 녀석들을 보고 싶은 거니까....

아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잘 자라는거다.

물주고 햇빛 쬐어주고... 아! 이게 다인데 그동안 왜 그렇게 죽였을까?

먼저간 아이들아 미안......

결국 식물을 키운다는 것도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하다는걸 이제 알겠다.

화분 속 식물들이 너무 빨리 커서 분갈이를 해주다 보니 자꾸 화분이 늘어난다.

 

 

제일 오른 쪽에 있는 녀석이 제일 처음 사온 천원짜리 야자나무인지 고무나무인지 헷갈리지만 정말 물만 줘도 무럭무럭 자란다.

나머지 녀석들은 며칠 전에 분갈이를 해줬더니 이제 열심히 자라려고 애쓰는 중이다.  

 

 

 

요것들은 예쁘게 키운 것 같지만 조화다.

여행갔다가 토토로 화분이 너무 예뻐서 사온거였는데 어찌나 작아주시는지 여기다 키우기만 하면 한달도 안돼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 예쁘지만 쓸모는 없는 예레기의 전형.... ㅎㅎ

자꾸 식물을 늘릴 수는 없고 비워 두면 허전해서 그냥 조화 사다가 꽂아뒀다.

나름 멀리서 보면 예쁘다. ㅎㅎ

 

 

아 그리고 오늘 책의 새로운 쓸모를 발견했다.

특히 벽돌책!

 

다림질 하는 남편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딸래미 청자켓을 책으로 눌러줬다.

 

 

빨래를 했더니 저 청자켓 아랫단이 또르르르 말려 올라가 있는거다.

저거 다림질 해도 잘 안펴지는데...... 힘 빢빡 줘야 하고....

그래서 또로로로 펴서 책으로 눌러줬다.

이것만으로는 효과가 작아서 볼려고 거실에 내놨던 책을 몽땅 꺼내서 다시 시도!

 

 

 지금 식탁에 앉아서 이 글을 쓰는데 내 앞에 저 장면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책은 정말 좋다.

냄비 받침도 하고, 빨래도 눌러주고....

가끔 폼 잡기도 좋고, 아 그래 읽기도 한다. ㅎㅎ

 

어쨌든 이런 저런 뻘짓을 하는 휴일이 너무 좋다.

서재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

좋은 날은 왜 이리 빨리 가는거지?

 

그나저나 지금도 안전안내문자 - 어디 어디 업장을 이용한 사람은 보건소를 방문하라는 문자가 끊이지 않는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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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0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댁에 볕이 정말 잘 드네요! 저도 저희집에 볕이 잘들어서 그 볕들어올 때 창 바라보는 거 너무 좋아해요! 그렇게 볕 잘 드는 곳에 화분이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죠! 저는 사실 식물에 아직 관심이 없지만 부모님이 식물 키우시거든요. 볕 들어올 때 식물들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바람돌이 2020-10-04 19:26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 이 집에 이사오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남향집 타령을 하는지 알았다죠. 저도 집에 누가 키워 줄 사람이 있으면 딱히 내가 키우겠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친정아버지가 열심히 키우는걸 볼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제가 킹 고싶어지네요. 앗 이것도 노화현상이 아닐까요?

mini74 2020-10-04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쁜데요. 연쇄식물살인마는
그저 부러울뿐 ㅠㅠ저희집 책들이랑 겹쳐서 더 반갑습니다. 가끔 등짝을 살짝 두드려 줄때도 매우 유용하지요. ㅎㅎ

바람돌이 2020-10-04 22:56   좋아요 0 | URL
저도 작년까지 연쇄식물살인마 맞아요. ㅎㅎ 음 저 책들로 등짝을 두드리면 좀.... 제가 기운이 세거든요. ㅎㅎ

hnine 2020-10-0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황금가지> 책을 저는 벽돌책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어서 원래 용도로 사용될 날이 와야할텐데요.
식물 키우시는 걸 보니, 특히 화분들 줄 맞춰 배열해놓으신걸 보니 바람돌이님 꼼꼼하고 세심하신 분 같아요.

바람돌이 2020-10-04 23:02   좋아요 0 | URL
황금가지도 1000페이지믐 되죠? 저희집에도 그런 벽돌책들이 제법 있는데 언제 원래 용도로 읽을까요? 그것들 읽으려면 목욕재계하고 정화수 떠놓고 절 한번 하고 시작해야할듯한 기분입니다. ㅎㅎ 화분 줄은 그냥 몇개 안되니 줄 세워진 것 뿐입뎁쇼. ㅠㅠ

stella.K 2020-10-05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정말 인상적입니다.
시몬느의 책은 큰 맘 먹고 사셨을 텐데
저런 용도로도 쓰일 수가 있군요.ㅎㅎ

바람돌이 2020-10-05 19:47   좋아요 0 | URL
하하.... 언제 읽을지 순서가 자꾸 밀려서 저렇게라도 쓸데를 찾는다는요... ㅎㅎ
 

 

 

 

 

 

 

 

 

 

 

 

 

 

집을 떠나기 2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내가 매우 못생겼다고 했다신혼 시절 장만한 리오네 알토 구역  지아코모 데이카프리가 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아버지는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나폴리의 모든 공간도얼어붙을듯 차가운 2월의 창백한 햇살도아버지가 내뱉은 문장까지도나만 혼자 그곳에서 살며시 빠져나왔다그리고 지금나는 여전히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빠져 헤매고 있다내게 완성된 이야기를만들어주려는 문장들 사이에실은 무의미한 문장들일 뿐인데,
진정 나의 것은 아무것도 담지 못했는데,
나는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완결 짓지도 못했다 글은 혼란일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그저 구원 없이 일그러진 고통의 나열일 뿐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지금 글을  내려가고 있는 이마저도,   - P9

 

 

소설의 첫 문장인 저 대목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지식인 중산층 가정의 조반나라는 소녀의 어린 시절은 누구보다 훌륭해 보이고 완벽해 보이는 부모로 인해 충만하다.

하지만 그 부모의 세상이 거짓으로 곳곳에 균열이 가 있는 걸 발견하는 순간 아이의 유년은 끝나버린다.

아버지의 저 한 마디로 조반나는 부모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찾게 된다.

 

나폴리는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도시와 전혀 다르게 산비탈 고지대에 중산층이 사는 아파트나 주택, 상류층의 저택들이 존재한다.

조반나가 다른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그 언덕길을 내려와야 한다.

같은 도시 안에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나폴리의 거리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거리 어디쯤에서 조반나는 빅토리아 고모라는 다른 세계를 엿보기 위해 달려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가 이미 예상하듯이 세상은 사춘기 소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세계든 저 세계든 갖가지 이유로 어른들은 모두 서로를 속이고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고 살 뿐이다.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상처입은 영혼들이다.

어른의 정신 세계라고 해서 그다지 아름답거나 훌륭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오히려 더 타인과 자신에 대한 기만으로 똘똘 뭉쳐 있다.

게다가 이 소설석 어른들의 일탈 내지는 기만은 사실상 한 술 더 뜬다.

사춘기 소녀에게 아버지의 외도와 그로 인한 부모의 이혼, 이후 혼자 남은 엄마의 이해하고 싶지 않은 집착과 자기 기만이 작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더더군다나 아버지의 새로운 상대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이고,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의 부인이라면... 에휴~~~

게다가 새로운 롤모델로 잠시 떠오른 고모 역시 기만적인 어른인 건 마찬가지다.

유년기에 알았던 것처럼 주변의 어른들이 전혀 존경할만하지 않고,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건 정말 아 싫다.

그저 어른들이 내가 생각했듯이 대단한게 아니네, 그저 평범한 사람이고 저런 단점도 있네 수준이 아니잖아.....

 

그래서 조반나의 사춘기는 격렬할 수밖에 없다.

그 격렬한 사춘기의 심리와 감성을 정말 이 책은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조반나는 당연히 어른이 아니므로 어른의 거짓된 삶에 저항하는 방식도 생각도 세련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가는 생각과 행동, 문득 문득 튀어 나오는 하지말아야 할 행동과 말들, 후회하지만 그 후회조차도 합리화해가는 모습, 그리고 비틀어지고 절대화되는 짝사랑의 감정들

아 정말 난 엘레나 페란테가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천재소녀가 아닌가 생각했다.

 

조반나가 어른들의 세계를 벗어나고자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지점에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알을 깨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조반나는 이제 알을 깨고 한발을 내딛었다.

이 소녀의 새 출발이 그녀의 마음에 들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부디 어른들의 거짓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된 삶에 안착할 수 있기를....

지금도 어른들에게서 상처받는 모든 아이들에게 위로는 되지 않을지라도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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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0-0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물 사진이 멋진데요!ㅎ 조르주 브라크 그림의 감각이 있는듯 해요!

바람돌이 2020-10-04 10:52   좋아요 0 | URL
나폴리의 도시계획은 브라크가 한걸까요?ㅎㅎ
 

골방에서 혼자 묵독하는 시는 그 감동이 아무리 크다 해도홀로 고독 속에서 적막 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것입니다. 시를낭송하면 그 소리는 낭송하는 인간의 몸에서 빠져나와 타인에게로 향합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소통적이고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합니다. 소리가 인간을 황홀하게 하는 것은 단독으로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시를 크게 소리 내서 읽어보고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물리적 소리도 들어보고 또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숨겨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 필요하지요. 저절로 시의 리듬에몸을 맡기고 하염없이 그 시의 말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황홀해지겠지요. 그때 위로가 찾아옵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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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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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자 신문기사에는 민경욱이 드디어 백악관 앞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라고 하면서 1인 시위를 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일단은 쪽팔린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주장할 수도 있고 다 그럴 수도 있는데 왜 시위장소가 미국 백악관 앞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를 외치던 주옥순과 판박이다.

한국의 우익들은 오늘도 이렇게 국민들을 웃겨주려고 열일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는 저 모든 일이 웃기는 일이 아니게 돼버리는게 우리의 비극이라고 할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평소에 이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일본이 진심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필요하고, 그 진지하고도 의미있는 첫걸음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전하는 충격적 진실은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평화주의가 갖고 있는 명확한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자신들이 아시아에 저지른짓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본은 ‘일국 평화주의‘에 머무를 뿐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P259

 

전후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전쟁의 피해국이라는 집단 최면에 홀린듯 하다.

그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인한 것이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이라는 것이 모든 역사적 죄악을 덮어버린 것이다.

내가 피해자인데 전쟁의 책임이나 반성이 어디에 설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일본의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평화인식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입었던 그 피해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필요로서의 평화를 넘지 못하고, 이는 전쟁을 일으켰던 주범들과 그 후예들이 계속 일본 사회 내에서 권력을 잡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토대가 된다.

내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강한 국가의 존재, 전쟁은 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국가는 강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현주소인듯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일본의 평화주의의 한계는 너무도 명백하다.

만약 상황이 변하여 내가 피해를 입는다면 전쟁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것은 정말 한순간일 것이므로....

 

한국의 우익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존재들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익들은 강력한 국가라는 환상을 매개로 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우익의 뿌리는 이승만이 살린 친일파에서 시작되고, 박정희에 의해 광범위하게 다시 살아난 온갖 일제 잔재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주적-북한-을 향해서는 강력한 국가를 지향하지만, 우리보다 강한 국가-미국, 일본-에 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굴종의 모습을 보인다.

저 코미디 같은 민경욱이나 주옥순이 서있는 지점이다.

 

한국에 있어 친일파의 문제는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승만 시절에는 사람의 문제와 사회구조, 문화의 문제가 모두 섞여 있었고, 박정희 시대로 오면 친일파 출신이냐 아니냐라는 문제보다는 그들 집권자들이 만들려고 했던 사회구조와 문화가 더욱 문제가 된다.

박정희와 친일파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지적하는대로 박정희 개인의 친일여부가 아니다. 그는 본격적인 친일파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젊었고,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해방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일본 아베 총리의 정치적 지향이자 외할아버지인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에게도 정치적 아버지이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국가의 모델이 바로 만주국이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아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시는 사실상 만주국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런 만주 경험은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박정희와 잘 맞아떨어졌지요. 사실 유신 시대의 국방국가 한국은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생겨난 한일 간의 유착관계에는 기시와 박정희가얽힌 만주국 인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 P108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친일잔재의 청산은 단순히 누가 친일파인지를 가려내는게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유산들, 그들이 퍼뜨린 군국주의의 유령들을 몰아내는 것, 그럼으로써 억압적이고 양비론적인 문화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친일청산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황국신민학교의 줄임말인 국민학교를 모르고 다녔다.

아직도 황국신민서사를 본뜬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조차도 불가능하다.

한국전쟁 시기 국군이 운영했던 군 위안소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으며 이런 사실이 자랑스럽게 국방부 공식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베트남에서 우리가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사진이 하나 있었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전신문신 사진이었는데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많이 심해서 내아이가 중학생 정도가 아니라 그 초등학교 학생이라면 조금 꺼려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프랑스사회에서는 이 문신 남성이 초등학교 교사로 적합한가 않은가에 대해서 논쟁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부러운 지점이었다. 우리 사회였다면 무조건 퇴출이었으리라고 본다.

타인에 대한 관용과 다름에 대한 인정 역시 군사주의적인 문화에서는 어렵고도 어렵다.

 

일본은 사실 더 답이 없어보인다. 길이 안보인달까?

혐한을 먹이로 하며 일본 우익은 어떤 악재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고, 오히려 확대되는 듯하다.

지난 9월 아베는 총리에서 퇴임하면서 다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일본의 우익은 어쨌든 야스쿠니신사를 국가 공식 추도원으로 격상시킴으로써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공식화시키고자 한다. 이는 결국 일본의 헌법 9조 - 자위대의 무력행사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의 개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에 일본의 혐한 우익의 득세, 그리고 자위대의 교전권 인정이 가져올 동북아의 새로운 지형 등 갑갑하기 이를데 없는 일본 내부다.

 

사실 일본의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한게 많았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일본의 여러가지 해프닝들에 대해서도 우리야 바다 건너라고 웃긴다고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왜 일본 국민들은 저 꼴을 보고만 있을까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런 일본의 상황을 가져오는데는 전후 일본 시민운동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 상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결국 1960년 6월 19일 자정이 되어 안보조약 개정안이 자동적으로 성립됨으로써 안보반대 사회운동 진영이패배하게 됩니다. 격렬했던 반대운동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지요. 한국에서는 4·19 혁명이 일어났던 바로 그 무렵입니다. 한국이었다면 개정안이 강행되더라도 곧장 폐기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고 계속 이어갔을 것입니다. 정권을 바꿔서라도 목표를이루기 위해 투쟁했겠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일단 법이 제정되어 실행되자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렸습니다. 일본사회운동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1960년부터 거듭해서 이런 경험을 하며 점점 패배주의가 쌓였고 사회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깊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 P241

 

1970년대 일본사회운동의 몰락은 이후 커다란 구조적 문제를 남겼습니다. 우선 운동세력 내에서 연대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습니다. 전학련, 전공투, 적군파 등 큰 조직에서 발생한 모순과 폐해를목격한 뒤로 수평적 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지요. 지금도일본 공산당과 사회당은 절대 손을 잡지 않고, 시민운동단체들도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사회운동 조직은 갈수록 작아질 뿐 크게통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사회운동이 권위주의적 체제 해체나 안보조약 폐지같은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세울 수 있는과제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여성운동, 원전 반대, 군사기지 반대, 장애인 해방, 소수민족 차별 해소 등으로 사회운동이 세밀하게 분화되었지요. - P248

 

일본이 자랑하는 역사 중에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것이 있다.

2,000년간 천황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는 것인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한번도 역성혁명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1,000년이나 이어졌던 무사정권도 천황을 허수아비로 두었을지언정 천황의 집안을 유지했다.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이 조선에서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두려워했던 것이 의병의 존재였다.

일본의 경우 어떤 전쟁이든 전투가 벌어지고 우두머리가 항복하면 그것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인데, 왜 조선에서는 왕이 도망을 갔는데도 백성들이 싸우냐는 것이다.

강력하고 영원불멸한 권력에의 의지, 그에 대한 복종이 일본인 내면 유전자에 새겨져버린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결국 일본과 한국의 시민세력이다.

그들의 역사와 현재를 이야기 하는 이유도 한일관계를 제대로 협력과 평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 이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일관계의 어려움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 역시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시민사회에서 No아베로 방향전환을 한것은 옳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전반적인 정서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에게 No아베는 여전히 No일본이다.

지금은 코로나사태로 수면 밑으로 살짝 가라앉아 있는 듯 하지만, 오히려 그 수면 아래서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와 극일주의 적대적 감정들이 모락모락 키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한때는 시기와 부러움, 증오의 대상이었던 일본이 지금은 약간의 우월감과 냉소, 비웃음의 대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한일 양국에서 저 우익들과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강화되어지는 토양이 될 뿐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한일관계에서 일본과 한국의 사람들은 서로를 거울처럼 따라하며 닮아가고 있는듯도 하다.

어디에서부터 이 두 이웃나라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데 결국 희망은 시민사회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결론을 곰곰히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다.

 

만약 한국이 계속해서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전면에내세운다면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극우주의에 전부 포섭될 것입니다. 그런 흐름은 일본의 헌법개정 및 동아시아 평화의 위협으로 이어지겠지요.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은 갈등과 혐오가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한국과 공통점이 많은 덕에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본을 직시하고 배울 건 배우면서 연대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물론이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향해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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