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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평점 :
한 10년전쯤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클림트 전시회를 보러갔었다.
아 사람 사람.....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몰려왔었다.
원래 한가람 미술관의 전시방법이나 공간 배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다가 그 많은 인파때문에 솔직히 전시관람은 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다.
전시의 주인공격인 작품은 <베토벤 프리즈>였는데 솔직히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3면이 막힌 공간과 그 내부의 충분한 여유공간을 둬야 할 것 같았는데 그 때 기억으로는 무슨 통로처럼 좁은 길을 만들어놓고 쭉 이어서 보는 식이었던 것 같다. 작품의 연속성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전시는 작품에 대한 몰입을 불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그 통로마저도 사람으로 꽉 차서 줄서서 지나가기 바빴으니.....
클림트 단독 전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광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클림트의 인기가 그토록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때 아 클림트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빈을 가야겠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던 듯하다.
클림트가 대단한 것은 그가 어디에서도 미술사조의 계보를 그려넣을 수 없다는데 있다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철학이든 예술이든 앞세대에서 또는 당대의 사조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클림트는 그 계보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니 그의 독창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클림트의 계보를 아예 그릴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19세기 말 파리를 중심으로 모든 화가들과 예술가들이 새로운 미술, 모더니즘을 구가할 때 클림트는 아예 고대와 중세로 떠난다는 것.
여기에 클림트의 모순이 있다. 그 누구보다도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클림트의 ‘선배‘들은 이토록 먼 과거에 존재하고 있었다. 클림트는 19세기 말, 빈 분리파를 만들어 과거 스타일을 답습하는 기존 오스트리아 예술계에서 스스로를 ‘분리‘하겠다고 선언하며 혁신가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의 영감은 미래가 아니라 고대와 중세 초기의 예술에서 왔다. 클림트는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화가인 동시에 가장 고답적인 화가이기도 했다.- P15
이 구절을 읽고 나니 "아!"하는 탄성이 나온다.
그렇구나...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가 그의 가장 중심적인 계보구나.
클림트가 그 모자이크들을 보면서 어떤 충격과 경이를 느꼈을지가 생생하게 새겨졌다.

이 그림 누구나가 학교 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한번쯤은 본 그림일테다.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자이크로 산 비탈레 성당 돔의 벽면에 그려져 있다.
도판으로 이 그림을 보면서 감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물들의 생동감도 없고, 표정들도 무표정이고... 아이들은 보면 그림이 웃기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나 역시 이 그림에 대해서 일말의 기대도 없었다.
그러나 산비탈레 성당을 들어서서 천장을 보는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이렇게 사진발 안받는 그림도 없을거라는 걸 깨닫고야 말았고, 이 그림을 포함한 벽면의 벽화들 앞에서 1시간을 넘게 서성이며 경탄에 경탄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돔의 벽면은 이렇게 위쪽의 예수를 중심으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모자이크가 배치되어 신에 대한 경배를 바치는 모습이다.
비잔티움의 모자이크는 사진으로는 절대로 그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아 여기가 신의 공간이구나, 저 분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겠구나라고 저 황금빛들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황금 모자이크가 얼마나 적절하게 신성을 유발하는지는 실제로 그 앞에 서야만 느껴지는 체험이다.
그래서 중세의 미술은 직관적이다.
보는 순간 신앞에 무릎꿇게 하고 경탄하게 하는 권위의 미술이다.
이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미술이 걸어온 사실성과는 다른 층위의 미술이다.
클림트의 그림이 그토록 직관적인 것이 여기서 시작되었구나라고 깨닫는다.
클림트의 그림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보는 순간 마음을 훅 빼앗기는 그런 힘이 있다.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 화가의 철학은 무엇인지 굳이 따지지 않아도 마음을 파고드는 힘이다.
이는 오늘날 클림트의 그림이 무수히 많은 아트상품으로 소비되어 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클림트의 그림을 보면 느끼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느낌은 뭔가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아름다움이다.
특히 여성의 표정은 하나같이 관능적이고 유혹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직도 여성이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 주체로 인정되지 못하던 시대에 클림트의 여성들은 적어도 성적으로는 능동적으로 보인다. 물론 여성에 이런 판단이 올바르다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모독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는 여성관임에도 클림트의 여성은 아름답다.
역사에서는 이런 아름다움을 세기말의 공포로 허우적거리던 당대 남성들의 두려움의 표현으로 보기도 한다.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의 개념과 이미지가 여기서 나온다.
클림트의 그림속 여성들은 그 팜므파탈의 이미지에 딱 맞는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흔히 인용되어져 왔다.
하지만 정말 그런걸까? 클림트의 여성은 그의 남성성의 거세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었을까?
글쎄 그렇게만 보기에는 클림트의 여성들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클림트의 이런 그림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자주 예술 작품을 통해 한 시대의 개성과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받는 독특한 느낌과 기묘한 불균형은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빈의 모습 그 자체다. 19세기 말의빈은 다가오는 다음 세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중세 시대 사람들이그러했듯이 빈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욱 갈망한 도시였다. 클림트의 그림들은 빈의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 P14
한 때 유럽 전체를 호령했던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가는 이제 몰락을 향해 가고있다.
늙은 제국은 과거의 영화만을 간직한 채 침몰하고 있는데 누구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지역들이 산업혁명이다 제국주의다 변화를 겪고 있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중세에 머물며 그 광대한 과거의 영화를 붙잡고 있을 뿐이다.
현재에 대해 눈감은 수도 빈은 더 화려한 예술로 치장하고 자신의 몰락에서 애써 눈돌리고 있다.
클림트는 그 제국의 변화를 감지하면서도 미래로는 나아갈 수 없었던 딱 그 지점의 빈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보면 클림트의 그림 속 여성들의 표정을 단순히 관능으로만 해석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 그러나 결코 닿지 않고 닿을 수 없는 빈의 현재가 그녀들의 표정에 드러난 것이 아닐까?
누구보다 빈을 사랑했던 인간 클림트의 절망과 안타까움으로 그녀들을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클림트가 꿈꾸던 미래는 어쩌면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속의 그녀였을 것 같다.

그가 평생토록 사랑했다고 하는 여성 에밀리 플뢰게를 그린 이 그림에서 여성은 드디어 독자적 정신과 주체성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진다.
관능이나 유혹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던 여성 에밀리의 모습이 여기 있다.
클림트가 가장 소망한 것은 이런 에밀리였고, 다르게 보면 미래를 똑바로 응시하고 나아가는 빈이 아니엇을까?
하지만 소망이 모두 현실이 될 수 없음에 항상 역사는 비극이 된다.
언제나 클림트는 간절했던 듯하다.

<베토벤 프리즈를 위한 스케치>에서 젊은 클림트의 간절함이 너무 절실하게 와닿는다.
그의 이런 간절함은 이후 대표작인 <키스>에서도 여전히 간절함만으로 남았다는게 그의 비극일테다.
오랫동안 클림트는 나에게는 알 수없는 화가였다.
그의 그림이 너무 좋지만 무작정 좋아하기에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그래서 고민하게 하는 화가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클림트라는 인간을 조금 더 알게 되었고, 그의 그림에서 이해되지 않던 간절함과 부조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아르떼 출판사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참 좋구나...
역시 앞으로 계속 정주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