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재능으로 대입이 이뤄져야지, 학생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다른요인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그들 모두 ‘대입은 실력에따라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적어도 암묵적으로) 노력한 사람은 대입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혜택을 누릴 자격을 갖는다고도 보고 있다.
- P33

이는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부담이다. 시민적 감수성에도 유해하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수성가한 사람 또는 자기충족적인 사람으로 볼수록 감사와 겸손을 배우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런 감성이 없다면 공동선에 대한 배려도 힘들어지게 된다.
- P37

기술관료적인 정치 개념은 시장에 대한 믿음과 강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꼭 국가 개입이 일체 배제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의미하지는않는다. 하지만 시장경제야말로 공공선을 달성하는 데 기본적 도구라여기는 것이며, 따라서 더 큰 범위에서 시장을 신뢰하는 것이라 할 수있다. 정치를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기술관료적 정치가 이뤄진다. 그것은 실질적인 도덕적 논쟁에 대한 공적 담론을 실종시켰으며, 논란이 있는 이념 문제를 마치 경제 효율 문제 처럼 전문가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문제인 듯 취급했다.
- P45

기술관료적 통치 방식은 여러 공적 문제를 기술 전문가들에게 맡김으로써 보통 시민들은 손을 써볼 수조차 없도록 만들었다. 이는 민주적 토론의 범위를 좁히며, 공적 담론의 내용을 공허하게 하고, 개인들이 점점 더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 P46

바로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생겨난, ‘성공과 실패에 대한 관점‘이다. 그들은 새로운경제 환경에서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왜 ‘승자가 경멸적으로 깔보고있다‘고 느끼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 P48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무엇이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직접 다뤄야만 하며,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P51

민주정치가 다시 힘을 내도록 하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정치 담론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공통의 일상을 구성하는사회적 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함으로써 가능하다.
- P61

능력주의의 폭정 중 일부는 이러한 충동에서 비롯된다. 오늘날의 세속적 능력주의 질서는 이전의 섭리론 신앙처럼 성공에 도덕의 틀을 씌운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과 부를 통해 신의 섭리를 불러온게 아니라 해도(그들은 스스로의 노력과 근로에만 감사할 뿐이다), 성공은그들의 탁월한 덕성을 반영한다.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부자일 만해서부자라는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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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6번째 주인공은 어니스트 웨밍웨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있거라>, <노인과 바다>를 모두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그 때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나 어쨌든 좋아하는 작가다.

그래서 이 책을 들 때는 마음이 좀 두근거렸다.

오래 전 애인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물론 헤밍웨이의 그 마초적인 분위기나 성격은 이미 알고있던 바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나는 헤밍웨이는 나의 예상을 가뿐하게 넘겨주신다.

여성에 대한 그의 태도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끊임없이 순종적이고 자상하고 순애보적인 사랑을 여성에게서 바란다면 최소한 자신도 그 비슷은 해야 하지 않는가말이다.

시대적인 한계로 퉁쳐주기에도 헤밍웨이의 여성편력과 여성관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끊임없이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그의 삶도 그러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와 그의 삶이 존경스럽지 못한건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네루다는 위대한 시인이고 정치적으로도 존경스러운 분이지만, 여성의 입장에 서면 아니올시다다.

젊은 시절 그는 미얀마에 외교관으로 있으면서 원주민 여성을 강간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기도 한다. 범죄라는 자각조차도 없었던 걸 보면 그의 여성관과 아시아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후 계속된 그의 여성편력은 그의 여성관이 자신을 위한 뮤즈로서의 도구지,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존중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화가 중에 피카소를 정말 좋아한다.

사실 피카소를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좀 멋적은게 너무 유명해서다.

아 저는 칸딘스키와 마크 로스코,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해요라고 하면 좀 멋있어 보이잖아,

그런데 고흐나 피카소를 좋아해요라고 하면 폼이 안난다.

하지만 피카소의 그림은 정말 좋다.

단순한 정물화 하나조차도 피카소의 그림은 다르게 심장을 확 때린다.

하지만 인간 피카소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솔직히 아 그 마초 하면서 진저리를 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를 그 인간적인 면모에서도 존경하고 사랑하고 싶다.

위대한 예술과 인간성은 정녕 따로 노는 것일까?

이런 마초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내가 싫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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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2-01 08: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파리 스케치 읽고 완전 정 떨어졌어요. 여성 편력과 유유자적 에효
파츠 제럴드의 실상도 보고요 ㅜㅜ

바람돌이 2021-02-01 22:15   좋아요 2 | URL
훌륭한 예술가가 훌륭한 인격도 갖추면 더할나위 없을텐데 말이죠. 안타까워요. 헤밍웨이의 삶은 그의 마초적인 여성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극단으로 계속 몰아부쳤더라구요. 안타까웠습니다.

scott 2021-02-01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21세기 살았다면 또람프한테 투표했을것 같아여 ㅋㅋㅋ

바람돌이 2021-02-01 22:16   좋아요 0 | URL
음 글쎄요. 전 그렇지는 않을것 같아요. 스페인 내전에서 반파시스트 전선에서 싸웠던 경력도 그렇고, 개인적 삶이나 여성관을 빼면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이성적인 나름의 주관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

mini74 2021-02-01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범하고 별탈없는 예술가보단, 오히려 문제가 있는 예술가들이 더 돈벌이도 되고 이목을 끌어서? 그런 면이 더 부각되는 점도 있는 거 같아요 예술가라 그런거라머 용인하는 분위기도 좀 있는 듯 하고요. 저도 공감해요 ㅠㅠ

바람돌이 2021-02-01 22:18   좋아요 1 | URL
예술가에 대해서는 아 그는 예술가니까 뭐 좀 과할 수 있어 이런식으로 확실히 관대한 면이 많죠.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듯하고요. 고은시인의 사건 같은 경우 정말 충격적이었으니까요.

감은빛 2021-02-01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척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여가며 읽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임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남성으로서 죄스러운 감정을 느낍니다. 에휴!!
작년 고 박원순 씨와 최근 정의당 사태를 보면서 더더욱!!

바람돌이 2021-02-01 22:2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이 죄스럽게 여기면 대한민국 남자들 모두 고개를 못들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ㅎㅎ
여전히 양성평등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것들이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것도 아주 큰 진보라고 생각해요. 결국 생물학적인 성이 무엇이나갸 아니라 어떤 성인지의식을 가지고 있느냐고, 또한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거나 서로에게 책임전가를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그 모든 문제제기들을 하는걸테니까요. ^^

han22598 2021-02-02 0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 역시 시대의 희생양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저 역시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헤밍웨이를 그저 동경하고 경배하고 있었을지도.

바람돌이 2021-02-02 13:18   좋아요 1 | URL
분명히 시대적 한계는 있어요. 근데 그렇다고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여성을 대상화하지는 않았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어쩌면 피카소나 헤밍웨이는 어쨌든 쌍방합의에 의한 연애니 범죄는 아니라서 싫지만 그래 그것도 당신 능력이다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네루다의 미얀마에서의 행위는 범죄잖아요. 그래서 네루다는 정말 정치적으로도 존경할만한 분인데 참 안타까워요.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 아파도 힘껏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주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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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병은 생리학적 질병이며 그 중 조증과 울증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제1형 양극성장애는 전 세계적으로 약 1%의 유병률을 보인다고.... 우울증은 나라와 문화, 남녀 비율에 따라 큰 차이가 나지만 조울병은 남녀차이없이 평균적으로 1%란다.

깜짝 놀랐다.

1%라니.... 그렇다면 100명중 1명이란 말이다.

 

삐삐언니라고 자칭하는 작가의 글을 보면 고학력에 선망하는 직업에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자랐다.

우울증과 조울병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먼저 한국사회에서 조울병이라는 자신의 병을 이렇게 솔직하게 책으로까지 써내는게 정말 쉽지 않았을테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신의 병증을 내놓은건 아마도 조울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일거다.

작가의 용기에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쉽지 않았으리라.....

 

조울병을 앓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조증의 주요 특이점 중에 타인과의 거리를 제대로 재지 못한다는 게 있다.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경계를 마구 무너뜨리고 함부로 침범해버린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현재의 황홀경에 홀딱 빠져 있는조증 환자에게 ‘지금‘ ‘여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 P45

우울은 실체 없는 어떤 것이 주변을 채우고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의지, 목표, 흥미가 마비된다. 모든 것이 메말라간다. 슬픔이 감정의 습지라면, 우울은 감정의 사막이다. 그것도 사하라 같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라 남극 같은 동토의 사막. 우울은 귀를 막는다.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우울은 셀프 감금이다.  - P123

 

 

최근에 동생이 아는 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소식이다.

직업상 우울증이나 이상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담임이 되었을 때 학급 아이들 중 가장 긴장하게 하는 아이가 자살충동이나 자해현상을 보이는 아이들, 친구관계에서 피해의식을 보이며 피해망상으로까지 치닫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많은 부분에서 과대망상, 집착, 지나친 자기 합리화현상을 보여준다.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말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어떤 경우에는 어릴 적 딱 한 번 엄마에게 맞았던 경험을 일상적인 물리적 폭력이 진행되고 있는듯이 얘기하기도 한다.(물론 이 때는 학교에서도 가정폭력을 의심해서 사후 대책을 진행시켰었다. 몇달간 지켜보고 전문적인 병원치료를 병행한 결과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다)

부모에게 자신의 이상 행동의 원인을 돌리지 못하는 경우는 교사나 친구들에게로 돌리기도 한다.

제3자가 보기에는 그저 타이밍이 안맞을 뿐이었던 문제나, 친구들의 일상적인 행동이 모두 자신을 왕따시키고 뒤에서 욕을 하는 것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아이의 집착과 과대망상이 너무 심해서 학부모상담을 진행하는데 엄마가 아이보다 더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하면 학생과 학부모를 병원으로 이끌 수 있는가이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내가 함부로 건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사랑과 관심만으로는 절대 조울병이나 우울증은 치료되지 않는다.

이 책의 작가가 가르쳐 주는 증상들을 하나 하나 따라가면서 그 때 그 아이들의 마음과 뇌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또한 전문적인 치료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

 

문제는 우울증이나 조울병의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우울증은 그래도 주변의 보살핌, 관심, 상담치료 등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조울병은 무조건 병원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100명 중에 1명이라면 국가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정말 갑갑한 경우가 아이가 조울병같은 증상을 보이는데,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안되고 생업으로 너무 바빠서 병원에 데려갈 생각도 못하는 경우다.

지금의 학교는 상담치료 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학교 내에도 있고, 학교 밖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품을 팔면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치료는 전혀 아니다.

학교와 지역사회와 연계된 정신과 의사가 있어 조울병을 보이는 아이들은 실질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정말 절실하다.

병원에 가야 하는 아이를 학교가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디 작가의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의 조울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니 맘만 잘 먹으면 이런 병이 안생길텐데, 네가 마음이 약해서 그런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지기를....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정신건강도 지원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을 수 있기를 역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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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2-01 0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친구들이 만나면 꼭 우울이나 조울 앓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내가 학생일 때는 감수성이 없어 그랬나, 주변에 그런 아이들의 존재를 못 느꼈는데 싶으면서 이게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복잡한 기분이 되곤 했는데요.
이 책 한 번 읽어봐야겠다....

바람돌이 2021-02-01 02:35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학급당 학생수가 너무 많았구요. 조울증을 앓는 아이들이 있어도 묻히고 몰라서 어른이 되면서 더 심각해졌으리라 싶어요. 그리고 정말 심각하면 집에서 쉬쉬하면서 아예 학교를 안보내거나요. 다만 우울증은 좀 다른게 확실히 증가한데 맞다싶어요. 이건 사회적인 영향이 커서 옛날에는 우울증이 있어도 아무데서도 안받아줬잖아요. 그래서 어른이 되어 우울증을 앓더라구요

2021-02-0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02-01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 예전엔 더 했던거 같아요. 같은 반 친구가 시험시간에 울던 기억이 나요. 시험지가 백지로 보인다고 ㅠㅠ 그 때 선생님이 뻥치지 말라며 공부를 안해서 백지로 보이겠지 했던 그 말투와 웃음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요. 옆애 있던 나도 그런데 그 친구는 어땠을지 ㅠㅠ 그 친구는 1년 휴학을 했는데. 그저 무탈하게 잘 살고 있길 바란답니다. 바람돌이님 글처럼 아이들 정신건강도 지원이 되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1-02-01 22:27   좋아요 1 | URL
아 가끔 그런 일이 있었죠. 요즘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교사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서 저런 경우 최소한 저렇게 웃지는 않아요. 바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보건선생님 부르고 아이를 진정시키고 후속조치를 취하긴 해요. 근데 이후의 후속조치가 모두 부모의 관심과 경제력에 모두 맡겨져버리는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mini74 2021-02-01 22: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이들 이야기 들어보면 요즘은 좋은 선생님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다행이죠 *^^* 저 어릴 땐 골목길 돌면 혹은 옆 옆집만 가도 동네 친구들도 있었는데. 지금 아이들 참 외로워 보일때가 있어요.

바람돌이 2021-02-01 22:36   좋아요 1 | URL
교사들의 인식수준도 사회 전체의 인식수준을 따라가는 거죠 뭐....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학교 내 메뉴얼 같은 것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요. mini74님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많은건 님의 아이들이 좋은 아이여서일 가능성이 크요. ^^
 

그는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영광과 비참을 모두겪었다는 점에서도 초인이었다.
- P17

근사한 마초가 등장하고 순종적인 여성이 그를 대책 없이 사랑하는구도다.
헤밍웨이는 이 같은 구도를 평생에 걸쳐 많은 작품에서 반복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남녀 간의 성 역할은 남근중심주의가 만연한 가부장 사회의 전형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그가 성장한 20세기초반이 그런 사회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차별적 시각은 유난스러운 데가 있었다.
- P32

하지만 그는 적어도 가해자가 되는 남성을 변명하고 옹호하거나,
가해자에게 낭만적 사랑이라는 허울을 씌울 의도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 그는 남성 인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징하고 가혹했다.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윤리적인 테마만을 다루거나, 비윤리적인 테마를다루면서 고발의 시각만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기엔 세상이 인간이 너무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 P36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의 보기 민망한 경쟁은, 예술을 사회의 다른 분야들처럼 작가들끼리 경쟁을 시키고 우열을 가리는 미국 문단과 출판계의 풍토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예술을 필요 이상으로 경쟁시킬 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 P84

헤밍웨이 소설 미학을 몇 가지 열거해본다. 입말체 대화법, 빙산이론과 하드보일드 스타일, 그리고 남근중심주의 미학이다. 네 가지로 나눴지만 이들은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많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헤밍웨이라는 하나의 실존에서 나온 것들이다. 네가지로 나누어 있지만 실은, 헤밍웨이라는 한 인간의 다른 표현들이다.
- P101

글을 쓰는 데에도 역시 여러 가지 비결이 있다. 글을 쓰다가 어떤부분을 생략할 때, 그 순간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생략해서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생략된 부분은 언제나 남아 있는 부분을 더욱 강력하게 해준다.
- 『파리는 날마다 축제』, 292쪽 - P106

프로이트도 사후에 남성우월주의라고 비난을 받았다. 사실 그의이론 가운데 남성을 중심에 놓고 여성을 그 중심에 종속된 존재로보는 이론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남성이 여성보다는우월하다는 생각의 뿌리가 남근의 존재 여부에 있다고 사태의 핵심을 꿰뚫어볼 만큼은 생각이 열려 있었다. 남성우월주의는 실은남근중심주의다. 그리고 그 세게에서 중요한 것은 남근뿐이므로,
여성의 있고 없고는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참 하찮은 이유다.
- P124

1930년대 후반, 헤밍웨이는 작가로서 성공하고 부유해지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자신의 명성을 불변의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면서, 인성의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별명 ‘파파‘처럼 그는 가부상의 위치에서, 가정과 동료들 사이에서 작은 폭군처럼 행동하고 군림하려 했다. 이 시기에 「킬리만자로의 눈」을 통해 비정한 하드보일드 미학의 절정을 보여줬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피츠제럴드를 비방해 그와의 우정이 깨졌던 것처럼 이 시기에 다른 동료 예술가들과도 관계가 단절되었다.
- P216

동물과의 이런 교감은 기독교 문명에서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일이다. 기독교에서 동물은 인간과 같은 값을 가지지 않으며, 기독교의 신이 인간에게 잡아먹으라고 내려준 선물의 의미만을 가진다.
그래서 사냥에 성공하면 사냥감의 고통과 죽음은 아랑곳 않고, 사냥감을 내려준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 이 같은 점은 고래 사냥을다룬 또 다른 해양 소설인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고래잡이에 나선 그 어떤 백인들도, 피를 뿜으며 죽어가는 그 커다란 바다의 생명체를 애달파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동물을바라보며 말을 걸고 그들의 죽음을 동정하는 이들은 산티아고 노인같은, 사냥감의 영혼을 위로하는 습속을 지닌 야만인들뿐이다.
헤밍웨이 자신도 비정한 백인 기독교도였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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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아니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슬픔은 슬픔대로 받아들이고 실패는 실패대로 인정하고 힘들면 주저앉고 잘 안 풀리면 접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다.  - P41

조증의 주요 특이점 중에 타인과의 거리를 제대로 재지 못한다.
는 게 있다.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경계를 마구 무너뜨리고 함부로 침범해버린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내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현재의 황홀경에 홀딱 빠져 있는조증 환자에게 ‘지금‘ ‘여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 - P45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 전, 명확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조울병을 치료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병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된다. 조울병의 한복판을 지날 때 보였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나‘를 재구성해봄으로써 위기에 처했을 때, 감정이 극도로 고양됐을 때 또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패턴을 발견한다면 그다음 찾아올 조울병의 폭압에 반응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 P78

조울병은 지난 일을반짝반짝 빛나는 행복의 기억들 또는 땅 밑으로 꺼질 듯한 암울한 기억으로 극단화시킨다. 조울병을 앓기 이전의 경험이 조울병을 유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조증과 울증 그 어느 시기든나를 사로잡은 감정의 소재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얻어진다.
- P81

 슬픔은 이유가 있다. ‘나‘와 ‘잃어버린 것/사람을 분리할 수 있다. 그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이 슬픔이 언젠가는 다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오로지 슬픔으로 꽉 차 있는 감정의 공간에 기쁨과 행복이 비집고 들어올것을 믿는다. 슬픔은 위로하는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반면, 우울은 실체 없는 어떤 것이 주변을 채우고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의지, 목표, 흥미가 마비된다. 모든 것이 메말라간다. 슬픔이 감정의 습지라면, 우울은 감정의 사막이다. 그것도 사하라 같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라 남극 같은 동토의 사막.
우울은 귀를 막는다.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우울은 셀프 감금이다.
- P123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늘 다르다. 내가 고통의 견적을 정확하게파악한다고 하더라도, 고통의 주인은 고통이다.
- P133

어찌 보면 일상생활에서 흔히 듣는 당연한 조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울병에 모든 것을 빼앗긴 느낌을 가져본 환자라면, 아무리 아프더라도 자신의 노력에 따라 ‘모든 것을 다잃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게 중요하다. 평소 일상에 겹겹이 안전장치를 만들어 피해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 P172

우선 내 탓을 하지 않게 됐다. 사회적으로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심을 거뒀고, 내가 겪는 심리적 곤경을 다른 사람과의 보편성 차원에서 보게 됐다. 조울병 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인간이란 존재가 모두 취약하기 때문에 아픈 것이고, 그러면서도 방어적 본능, 강인함을 갖고 있어 견딜 수 있다는 것이었다.
힘들 때도 좀 더 인내심을 가질 수 있었다.
- P173

조울병은 불가역적인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계를 다독여야 하는 상대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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