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너무 고파서 책을 골라 읽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도시와 건축에 관한 책이었는데, 그냥 내가 생각한 그런 주제가 아니었던거지....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르면 가끔은 이런 일이 생긴다.

그 책 덕분에 더더더 여행이 고파져 아예 여행을 주제로 쓴 에세이를 들었다.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는 언제나 좋으니까....... 작가님에게 미안하지만 김연수작가에 한해서 나는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책을 읽다 보니 나의 여행의 순간과 겹치기도 하고, 여행과 독서에 대한 생각들을 읽으면서 아! 이 느낌 알아! 하면서 손뼉을 친다.

작가란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지....

같은 경험을 해도, 같은 책을 읽어도 왜 나는 그런 생각, 그런 표현들을 못하는걸까 자괴감에도 잠시 빠지고.....

 

여행자라는 약한 존재가 되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법을 익히게 됐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에게는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아가는 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 동네 주민에게는 산책만큼 쉽다. 그러므로 그 여행자에 필요한 행운은 단 한 사람, 그 호텔의 위치를 아는 현지인을 만나는일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대단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다.
서로가 약간의 용의를 내기만 하면 된다.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용의.
선뜻 도와주겠다는 용의, 여행지의 행운이란 이런 두 사람이 만날 때 일어나는 불꽃 같은 것이다.- P5

 

맞다. 나 역시 여행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법을 익혔다.

예전에는 내 안에 있는 오래된 수줍은 성격과, 이런걸 물어보다니 그것도 몰라라고 무시당할까봐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완전히 낯선 곳으로 가면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순간들이 분명히 온다.

 

어떤 순간들이 있었지?

예전에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터키 파묵칼레 가는 길에 버스를 잘 못 내려서 호텔을 찾을 수 없었던 기억.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지만 시골 길거리에 있는 거라곤 고양이 3마리, 개 1마리!
야옹아, 멍멍아 너희는 여기가 어딘지 아니? ㅠ.ㅠ

마지막 수단으로 예약한 호텔에 전화를 했고, 우리는 헬프 미를 외쳤다. 주변에 간판 하나를 간신히 읽고 알려주니,

바로 ok하면서 기다리라더니 잘생긴 청년이 너무너무 낡은 자동차를 타고 우리를 데릴러 와줬었지....

 

딸과 함께 간 도쿄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받은 티켓을 한국 집에 그대로 두고 와버렸다.

도쿄의 호텔에서 그 사실을 깨닫고 부랴 부랴 집에 전화해 티켓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 하고 무작정 지브리 스튜디오로 갔었다. 당시 딸과 나의  도쿄 여행의 목적 자체가 지브리 스튜디오였기 때문에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입구에서 우리는 입장을 거부당하고 하염없이 입장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밖에.....

도쿄의 지브리 스튜디오는 한달 전에 티켓이 오픈되면 며칠 내로 마감 되어 버리는 곳이다.

돌아가야 하나 어쩌나 처량하게 있다가 입장권을 받고 있는 사람 중에 정말 맘씨 좋고 예쁘게 생긴 젊은 아가씨를 우리는 공략하기로 했다.

안되는 영어로 "나 티켓 끊었어요. 이것봐요. 이게 내 티켓이예요, 어떻게 우리 들어갈 수 없을까요? 우리 이거 보려고 한국에서 왔어요?"

그 예쁜 일본 아가씨는 측은한 눈으로 우릴 보더니 실물 티켓은 어디 있냐고?

그거야 한국에 있는 우리 집에 있죠. 더더욱 불쌍해 보이게 얘기했다.

더더더 측은한 눈빛과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던 아가씨는 좀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한 30분쯤 뒤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건 정말 너무 너무 특별한 경우라고 몇번이나 강조하면서(아 그때의 영어 스페셜 스페셜이 얼마나 희망차게 들리던지.....) 왠 종이쪼가리를 하나 줬다.

그리고 쭈욱 길을 가르쳐 주면서 저쪽에 가면 편의점이 있는데 거기 가서 이 종이를 보여주면 티켓을 줄거다라고....

물론 공짜는 아니고 요금을 다시 지불하는 거였지만, 비행기 타고 다시 도쿄로 오는 것에 비할 것인가?

그녀의 친절에 딸과 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스페인 톨레도에서는 관광객들이 잘 안가는 지역 박물관을 갔었다.

우리의 목적은 그곳에 있는 엘 그레코의 그림이었지만 지역 역사를 보여주는 상설 전시도 꽤 흥미로웠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오래 그곳의 유물들과 그림들을 보고 있는 동양인들이 신기했나보다.

박물관 도슨트로 보였던 중년의 여성이 우리에게 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박물관 안내를 해주는 것이다. 특히 엘 그레코의 그림들이 있는 핵심방이었는데.....

문제는 그녀는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해서 스페인어로 계속 이야기했고, 우리는 스페인어를 하나도 못해서 안되는 영어와 한국어로 계속 떠들었다는 것......

서로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다가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어느 순간 의사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그 방의 엘 그레코의 그림 중 몇점이 진짜가 아니고 복제품이라는 것.

진짜는 당시 일본으로 순회전시를 갔다고....

그래서 이건 진짜야, 이건 복제품이야 하나 하나 찍어가며 스페인어로 알려준 것이었다.

거기서 난 스페인 사람들이 일본을 하봉이라고 부른다는 걸 처음 알았다.

스페인어에서 영어 J가 히읗 발음이 난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은 다음이었다.

그 친절한 도슨트 여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며, 박물관 속 엘 그레코의 그림속 소녀가 지역 내 성당 어디에 또 있는지까지 너무 열심히 알려주고, 아쉽게 우리가 나올 때는 예쁜 엽서세트까지 선물로 줬다.

톨레도가 내게 지금도 아름답게 남아있는건 그녀때문이다.

 

마드리드에서는 지하철에서 카메라를 통째로 소매치기당했다.

왠만하면 여행이 더 중요하니 포기하고 말겠지만, 문제는 이 카메라와 딸려있던 렌즈까지 가격이 합치면 100만원대였다는 것.

그래서 남편과 나는 용감하게 경찰서를 찾아가 폴리스 리포트를 받기로 결정했다.

카메라는 잃어버렸지만 한국 가서 보험금은 받아야 하니까.....

그런데 외국인이 폴리스 리포트를 받을 수 있는 경찰서는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번의 헤맴과 엉뚱한 장소를 거쳐 거쳐 가는 동안

우리는 영어가 하나도 안되는 마드리드 길거리의 경찰관, 아저씨, 아줌마들을 무수히 만나면서 우리의 상황을 보디 랭귀지 또는 상황극으로 보여주고 길을 물어 물어 어느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경찰서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길을 물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찌나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하던지, 그들의 선의에 지금도 감사하여, 이상하게도 유럽에서 흔히 만난다는 인종차별이나 그런건 한번도 느끼지 못했었다는 것도 감사하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카메라를 도둑맞아 슬프고 분노하고, 길을 찾는다고 너무 오랜시간을 헤매서 지치고 정말 엉망인 상황이었는데 경찰서 입구에서 반전을 만났다. 경찰서 앞에서는 한 중국인 부부가 아주 흥분해서 뭔가를 유창한 영어로 정말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가만 들어보니 그들의 렌트한 자동차를 통째로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주고 받으며 우리가 잃어버린게 겨우 카메라인걸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마 내 기억속에 가장 고마운 사람, 생명의 은인은 대학교 1학년 겨울에 계룡산에서 만난 분이었으니.....

같은 동아리에 유난히 학구열에 불타는 남학생 녀석이 있었다.

그런데 이 미친 놈이 같은 1학년들을 꼬드긴게 뭐야하면, 선배들 빼고 우리 1학년끼리 계룡산으로 엠티를 가자는거다.

그래 그거 괜찮지... 그것만이었으면 걔가 미친놈이 아니다.

가서 3박4일동안 사회과학서적 세미나를 하자는거다.(그 동아리가 사회과학동아리였다.)

뭐 나야 지금이나 그때나 누가 뭐 하자고 하면 머리 텅 비우고 그러지 뭐 하는 애니까 당연히 OK했지.

그래서 생전 처음 배낭에다 두꺼운 사회과학 서적 5권을 집어넣고, 쌀도 넣고, 반찬 재료도 넣고, 옷도 넣고 하여튼 배낭을 빵빵하게 해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이 미친 놈의 계획은 단합대회랍시고 그냥 계룡산 밑에서 민박잡아 놀고 공부하는게 아니라, 동학사에서 계룡산을 넘어 갑사로 가서 민박을 잡는 거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한 등산이 이거였다. 난 등산이 이렇게 힘든지도 몰랐고, 그 배낭이 그렇게 무거울줄도 몰랐다.

산을 반쯤 올라갔을 때쯤, 나와 다른 한명의 여자 친구는 얼굴이 하얗게 떠서 배낭에 깔려 죽는게 이런거겠구나

더 이상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자리에서 우리는 아 죽는구나 이러고 있었다.

같이 갔던 3명의 남자 애들이 우리 짐을 좀 빼주기는 했지만, 그놈들도 지 짐만으로도 이미 빈사상태였다.

그 순간 어디서부터 우리 뒤를 따라왔는지 모르지만, 맨몸으로 산을 오르고 있던 아저씨 2분(지금 생각하면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는데, 20살의 나에게는 다 아저씨였으니.....)이 나와 다른 여자친구의 배낭을 말없이 들어주셨다.

그 때 딱 한마디 하셨다. 어휴 배낭이 왜 이렇게 무거워요라고...

아마 그 분들은 그 안에 두껍디 두꺼운 벽돌책이 5권이나 들어있다는걸 절대 절대로 몰랐을거다.

그분들이 산 정상까지 배낭을 들어주신 덕분에 기력을 회복한 우리 둘은 정상에서 배낭을 돌려받고, 감사인사를 백번쯤 하고 하산하여 무사히 갑사로 내려갈 수 있었다.

정말로 이름도 모르고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올라가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인적사항이라고는 하나도 모르지만 내게는 생명의 은인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후 공부를 했을까?

그럴리가...

녹초가 되어 민박집에 들어간 우리들은 그 순간부터 욕이란 욕은 다 그 미친놈에게 퍼붓고, 그러고는 또 20대의 미친 회복력으로 3박4일간 술만 먹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 이후로 나는 여행을 갈 때 절대 책을 들고 가지 않는다.

책은 여행 가기 전에, 그리고 다녀와서 읽는거야라는 삶의 신조를 세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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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2-17 01:29   좋아요 1 | URL
진짜 무식해서 그랬던거죠. 지브리 스튜디오 티켓가격은 그렇게 많이 비싸진 않아요. ㅎㅎ

psyche 2021-02-17 0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에피소드들이 바로 진정한 여행의 묘미인 거 같아요. 풍경이나 건축물이나 이런 구경은 사진이나 티비로 다 볼 수 있잖아요. 예상치 못한 일들,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너무 좋네요. 저는 귀찮게 뭘 어딜가 이런 사람인데 바람돌이님 글 읽다보니 저도 여행가고 싶어요. ㅜㅜ

바람돌이 2021-02-17 16:01   좋아요 0 | URL
여행엔 역시 사람 냄새가 들어가야 여행이 완성되는거 같아요. 그 친절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나의 일상공간에서는 내가 그 선의의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은 하게 되더라구요. ^^ 여행도 정말 개인의 취향이 다양해서 저는 굳이 무리해서 다른 사람 스타일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 스타일대로, 노는것 조차도 남따라 하는건 너무 슬프잖아요. ^^

다락방 2021-02-17 0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바람돌이님... 등산에 사회과학 서적에..
제 친구가 책을 엄청 좋아하는데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선배들이 엠티가서 였나,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책을 읽도록 했대요. 그 후에 이 친구는 책을 안읽는 사람이 되었어요... 아아 게다가 사회과학 서적이라뇨, 바람돌이님.. 아아...........🥺

바람돌이 2021-02-17 16:03   좋아요 0 | URL
제가 20대인 시절에는 대학에서 그런 짓 많이 했어요. 그런데; 친구분은 어떡해요. 이 재밌는 책을 안읽게 되었다니.... 트라우마가 크셨군요. 역시 저는 20대일때도 현명했나봐요. 그 엠티에서 책을 확 집어 던져버리고 술을 선택한 바람에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

유부만두 2021-02-17 0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수많은 여행지의 착한 분들! 특히 계룡산의 그 두 귀인은 잊을 수가 없겠네요.
바람돌이님 귀여운 시절 상상도 되고요. ^^

바람돌이 2021-02-17 16:04   좋아요 0 | URL
아 지금 그분들을 만난다면 정말 제가 업드려 절하고 한상 거하게 저녁 대접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생명의 은인이 맞다니까요. ^^

scott 2021-02-17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여행지 에피소드가 너무너무 현실적일정도로 그상황이 마구 떠올라서 공감이되네요.
여행길에서 만난 인연들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이지만 이토록 고마운분들이였다니 !
마지막 계룡산이 귀인분들 최고네요 !

바람돌이 2021-02-17 16:05   좋아요 1 | URL
그쵸. 계룡산 귀인분들이 최고시죠. 그분들은 아마 좋은 어른이 되셔서 지금도 주변에서 존경받고 사랑받고 살지 않으실까요? ^^

hnine 2021-02-17 1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여행 참 많이 다니셨으니 풀어놓을 얘기가 정말 몇보따리 되겠지요?
감히 다 얘기해달라고 조를수는 없고, 이렇게 가끔씩이라도 풀어놓아주시면 귀 쫑긋하고 들을수 있겠지요.
대전으로 내려온후 동학사, 갑사 따로 가본건 여러차례이고 산책 기분으로 가곤 하지만 동학사에서 시작해서 갑사 찍는 코스 이건 각오하고 출발해야할 코스이지요.
그 벽돌책 다섯권이 어떤 책이었는지 궁금하네요.

바람돌이 2021-02-17 16:09   좋아요 2 | URL
배낭을 들어주신 두 귀인분덕분에 계룡산이 너무 좋아져서 그 이후로도 저는 1년에 한두번씩 갔었어요. 특히 갑사가 너무 좋더라구요. 당연히 이후로는 배낭따위 들지 않고, 가볍게 허리쌕 같은거 하나 매고 갔다죠. ㅎㅎ
그 벽돌책들은 기억도 안나는데 경제학원론 책이 한권있었던건 기억납니다. ^^

수이 2021-02-17 2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참 웃었잖아요. 벽돌책 가것도 사회과학서적 다섯 권이나_ 영화 속 장면처럼 그려져서 한참 웃었어요. 근데 저는 여행갈때 책 두 권은 꼭 갖고 가요. 안 갖고가면 불안해서요. 근데 이 글 읽고나니 계룡산 땡기네요 :)

바람돌이 2021-02-18 23:52   좋아요 0 | URL
웃자고 쓴글 맞습니다. ㅎㅎ 저는 여행기간에는 그냥 여행을 즐기자로 확실하게 태도를 정했습니다. ㅎㅎ 계룡산은 겨울에도 좋아요. 그 때는 갑사의 겨울 분위기가 정말 끝내줬는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
 

여행자라는 약한 존재가 되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람의 선의에기대는 법을 익히게 됐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에게는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아가는 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일이겠지만, 그 동네 주민에게는 산책만큼 쉽다. 그러므로 그 여행자에필요한 행운은 단 한 사람, 그 호텔의 위치를 아는 현지인을 만나는일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대단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다.
서로가 약간의 용의를 내기만 하면 된다.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용의.
선뜻 도와주겠다는 용의, 여행지의 행운이란 이런 두 사람이 만날 때일어나는 불꽃 같은 것이다.
- P5

여행이란 가지 못한 길에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여행을 통해 나는 비정함을익혔다.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토록 찬탄하던 곳과 작별하는 법을알게 됐으니까. 이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 P31

2009년 캐용고는 글로벌 소프 프로젝트 Global Soap Project 를설립했다. 그 단체는 호텔 체인과 연계해 한 번 쓰고 남은 호텔 비누들을회수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설립 3년째인 2012년에는 60 만개가 넘는 재활용 비누를 만들어 제3세계 아이들에게 나눠줬고,
2013년에는 200만 개가 넘는 비누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하는내내 나는 그 많은 호텔 비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건 마치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질문처럼 느껴졌다.
심각하고 복잡해진다면, 정답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많은 호텔 비누는 제대로 씻지 못해 질병에 시달리는 제3세계아이에게 간다. 정말이지 이건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멋진 정답이다.
비누는 계속 청결의 상징이 되어야겠다.
- P35

 20년 전의 나는하루라도 빨리 늙어버리고 싶은 20대였고, 이제야 그 소원을성취해나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젊음은 소중하다고 남들이 말하거나말거나 기필코 낭비하고 마는 그 무모함만은 부러웠다.
- P38

그래서 여행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젊은이가 되는데, 이 젊은이란 사실실제적인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자 또는 젊은이‘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너무나 서툴러서 태연하게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는 자신을감당해야 한다. 만약 그게 힘들다면, 당장 여행을 포기하는 수밖에.
물론 예외는 있다. 잘 짜인 패키지 관광을 떠나는 방법도 있지만,
이쯤이면 왜 효도 관광은 예외 없이 패기지로 떠나는 것인지 알겠지.
여행은 그렇다 치고, 그게 인생이라면 어떨까? 서투른 자신을 보는 게싫다고 패키지 인생을 선택한다면? 이번 여름 여행지에서는 이 질문을자신에게 던져보자.
- P39

자유는 남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이해에서 비롯한다. 더 많은 사람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있을 때, 나는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되고 싶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책이있는 게 아닐까? 원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이 자유를만끽하고 싶다.
- P75

이런 부산 말고 다른 부산은 없을까? 그러자 부산을 잘 아는사람이 가야시장 맞은편으로 가서 186번 버스를 타보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나는 186번 버스, 그것도 운전수 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알지 못하던 부산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피난지 부산의 삶과 애환을 담은 노래만 있으면 최고였는데. 그러니다음에는 노래까지 준비해서 다시 타봐야겠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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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과 관련된 매개체인데 주로 빛이나 색 같은 시각적인 정보를 이용한다. ‘봄은 봄을 본다‘는 알 듯 말 듯한 시각적 지각 외에도 바람, 소리, 향기, 질감 등 ‘만짐은 만짐을 만짐이다‘라는말처럼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하여 공간에 장소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도시 건축적 작업이 건축현상학이다.  - P81

오래된 역사의 한 부분인 로마 시대 유적지 위에 현대 건축 양식의박물관을 지으면서 내부 바닥은 유적지를 그대로 보존하고 그 위에지그재그 형태의 동선을 넣고 외부에서 벽돌 벽의 틈새로 빛을 비춰서 마치 유적지를 탐사하는 듯한 분위기를 극대화하여 도시 역사를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했다.  - P102

건축에서 현상학적 공간을 만드는 매체로는 단연코 빛이 최고다. 밝음과 어두움을 이용하여 극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현상학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이용되는 것이 현대 건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축 재료인 유리 그리고 자연에서 가져온 수공간이다. 유리와 물의 특징을 이용해 공간을 투명하게 만들고 주변 환경을 비추고 굴절시키고 반사시켜서 기존의 관념을깨는 뒤집힌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대하면 저절로 그들이 창조한 공간에 빠져들게 된다.  - P106

서울 도심부는 서울의 역사가 층층이 쌓여 있는 장소로 그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그런 다양성이 시간의 총체성을 나타내듯이 한 공간에 압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공간을 지나는 사람들은 현대사회를 살지만 건축물들이 보여주는 시간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 P134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의 건축적 가치는 충분하다. 자세히 보면외부 공간 절반을 그대로 비운 것이 아니다. 오른쪽 건물은 뮤직라이브러리라는 기능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왼쪽의 비워진공간과 지붕 프레임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 결과 왼쪽 광장은 바닥,
벽, 지붕의 형태는 있으나 가운데 공간은 비워진 박스 형태가 된다.
이것이 ‘관통‘이라는 현대 건축 개념이다. 이태원과 한강으로 나누어 한쪽만 사용하던 기존 공간에 도넛처럼 구멍을 뚫어서 양쪽 공간이 하나로 엮이는 새로운 위상학적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태원에서 한강 쪽을 보고 숨을 쉬게 되었다.
- P154

무주의 종합운동장은 건축가 정기용의 애정이 담긴 프로젝트이다. 종합운동장의 햇빛 아래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관람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등나무를 심어 그늘막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고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무주 종합운동장 같은 그늘막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건축가가 어떻게 사회를바라보고 고민하고 애정을 가져야 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되는 프로젝트이다.  - P163

생물학을 통한 디자인 방법론은 생체의 형태와 기능 등을 모방하여건축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법이다. 재닌 베뉴스 Janine Benyus는 자연에대해 배우기보다는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바이오미미크리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정복 대상에 불과했던 자연은 이제 스승이 된다.  - P192

현대 건축은 기존의 건축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기하학적 형태를 하고 있고 그로 인해 시각적인 지각을 하여 형태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체험 공간이다. 한번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곳이다. 그러나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인 강제로 움직여야 하는강제동선, 거대한 장벽 같은 벽체, 콘크리트 같은 인공 재료 등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새 시대의 건축가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을섬세하게 파악하여 각자의 디자인 방법을 동원해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 P194

근대 건축에서 돔-이노 구조의 특징인 바다 슬래브와 기둥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면 현대 건축은 그마저 사라지게 하고 싶어 한다. 바닥과 기둥 그리고 천장의 상호의존성이 있어야 하는 건축구조와 공간을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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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읽기 수업 나의 첫 수업 시리즈
박균호 지음 / 다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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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보면서 굉장히 인상깊었던 대목이 있었다.

 

엘릭스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면, 에이드리언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 나는 조지 오웰과 올더서 헉슬리를 읽었다. 콜린은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어디까지나 도식화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우리는 '벨탄샤웅'이니 '슈투름 운트 드랑'이니 하는 용어를 즐겨 썼고,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상상력의 첫번째 의무는 위반하는 것이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 확언했다.......그래서 콜린의 어머니는 내가 당신 아들의 '어둠의 천사'라고 여겼고,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공산당 선언>을 읽는게 엘릭스 탓이라고 했고, 엘릭스의 부모는 콜린이 미국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을 읽는다고 콜린의 부모에게 일러바쳤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솔직히 시시껄렁한 그냥 흔한 영국의 고등학생들이다.

이들이 무슨 특별한 엘리트 학교(우리로 치면 각종 국제고나 자사고들)를 다니는 아이들이 아니란 얘기다.

나머지 이들의 대화를 보면 우리 나라 고등학교 애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들은 허세를 정말 제대로 부릴 수 있는 아이들이다.(청소년기의 독서는 원래 허세로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철학과 고전으로 허세를 부리는 고등학생?

너무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이 책의 이 대목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 고등학교 아이들 중에서 철학이나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저렇게 낄낄거리고 얘기하면서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나의 독서 허세를 받아줄만한 친구를 주변에서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

지금도 전교에 한두명쯤 있을까?

특정 분야에 덕후들은 제법 있지만 철학책을 읽고 질문하는 아이는 여태까지 딱 1명 만났다. 작년에.....

(너무 반가웠다. 특히나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줘서 속으로 무척이나 고마웠다. ^^)

 

영국이나 유럽의 교육은 저런 철학이나 인문학, 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저렇게 막막 농담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걸까?

유럽의 대학입시 자격시험을 생각하면 그럴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저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독서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늘 이야기되고 새로운 방법들이 시도되고 하지만, 결국 입시와 부딪히면 다 부질없는 게 되어버리고 마는 우리 현실속에서도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입시교육의 아성은 너무도 단단하여 무너지기 힘들지만 그것이 무너져야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틀린 말이다.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과 그 구조의 틈을 벌리기 위한 작은 노력들은 같이 가야 한다는것이다.

 

청소년이 어떻게 고전을 읽을 수 있을까를 제시하려면 일단 힘을 빼야 한다.

고전이라는 말이 주는 어렵고 심각하다는 느낌을 빼야 한다.

생각해보자. 안 그래도 어깨힘 빡 주고 큰 결심해야 고전이라걸 읽어볼까 싶은데 그 고전을 소개하는 책조차 무겁고 엄숙하다면 지레 겁먹는게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 힘 빼고 읽어도 된다.

 

고전에는 이렇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그 통찰이 당대 사회의 모습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미래사회를 예견하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인간은 행복과 자유를 추구했고 선과악을 품고 있었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항해사들의 모습이 요즈음 직장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그러한 인간의 모습은 먼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P5

 

 

인용문에서 앞의 말들이 심각하지만 뒤의 예는 살짝 힘을 빼준다.

야 너희들이 직장 다니면 그냥 노예처럼 일하게 되는거야. 아빠 엄마 봐. 직장의 노예처럼 살고 있잖아. 뭐 이런 말을 하는 듯하다. 실제 본문에서는 이런 고전에 대한 힘주기와 힘빼기가 적절히 뒤섞여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고전을 읽음으로서 느낄 수 있는 허세의 기쁨과 평범한 나의 삶과의 연결로 인해 가질 수 있는 친근함을 적절하게 섞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어떤 책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배신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함정이 있지만.... 예를 들면 장 그르니에의 섬이나 루소의 에밀, 다윈의 종의기원, 아 이런 책은 고전이 재밌다고 했던 작가를 향해 돌을 던지고 싶어질지도..... ^^)

 

이런 고전과 삶의 연결의 예들을 들어보자.

<레 미제라블>을 통해 빈곤을 대하는 태도와 난민 문제의 연결, 안톤 체호프의 단편 <내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계속된 논쟁거리 중 하나인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에 대해 묻는 식의 사회문제와의 연결이 1부에서 진행된다.

2부에서는 자연과의 공존을 묻는데 장 그르니에의 <섬>의 에피소드 한꼭지와 유기동물 안락사 문제를 연결시키고, <종의 기원>을 동물 복지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은걸 생각해보면 이런 꼭지를 읽으면 저 책들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3부와 4부에서 역시 다양한 고전들과 다양한 삶의 양태들을 연결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모든 연결이 완전히 적절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오셀로>에서 주인공 오셀로의 부인과 스마트폰을 필요불가결하다는 점 하나로 연결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고전의 심오함을 가르쳐주려는 책이 아니라 청소년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고전에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종의 실용서다.

따라서 힘빼기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책이 가볍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힘빼기를 위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 아이들이 고전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지 않겠나말이다.

그래야 좋은지 안좋은지를 알지.....

요즘 책하고는 담쌓기 하고 있는 우리집 큰 딸에게 슬며시 이 책을 밀어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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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5 0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1-02-1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스 저 책 읽은 거 같은데 왜 어째서 기억에 없을까요 🤔 따님에게 추천하신다니 제가 먼저 읽고싶어졌어요

바람돌이 2021-02-16 00:27   좋아요 0 | URL
그런 책이 한두권이 아닙니다. 저 책은 오래 전에 읽었는데 저 대목이 저에게는 너무 강렬했어요. 저 대목 찾는다고 책을 다시 뒤적였는데 내가 읽은 책인지도 가물가물하더군요. ㅎㅎ

stella.K 2021-02-15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균호님 팬이 되가시는 것 같습니다.ㅎㅎ

바람돌이 2021-02-16 00:28   좋아요 0 | URL
좋은 작가의 팬은 행복의 한 방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전 점점 행복해지는거 같아요. ㅎㅎ

초딩 2021-02-1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주 좋은 예 같습니다.
생각의 탄생처럼
고전을 읽다 각 고전이 연결되어 통찰이 생기고 이 것이 지식을 습득하는 아이들에게 내면의 눈을 뜨게 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1-02-16 00:29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고전까지는 아니라도 책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참 어렵네요.

cyrus 2021-02-15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분야는 달랐어도 독서를 좋아했던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한국사와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어요. 그때는 판타지 소설을 왜 읽느냐고 구박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저 재미있어서 보는 거라고 대답하면서 웃고 넘어가더라고요. 도서관에 같이 가면 저를 위해서 자기 회원증 카드로 책 몇 권 빌려줄 정도로 정말 착하고 좋은 친구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녀석도 저랑 비슷한 덕후 기질이 있었을 같은데, 대학교에 다닌 이후부터 연락이 끊어졌어요. 만약 그 친구가 지금도 독서를 좋아하고, 저랑 계속 연락하면서 만나고 있다면,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궁금해요. 그 녀석이 제가 서평을 쓰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궁금하고요.

바람돌이 2021-02-16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 친구분은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읽는 책의 범위는 더 깊어지고 넓어졌을 테고요. cyrus님이 그러듯 가끔 cyrus님을 떠올리며 그 친구는 지금 뭘 읽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
 

이 책에서 나는 내가 관심을 둔 건축물과 도시 공간을 현대건축에서 주요한 다섯 가지 논점으로 구분했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건축, 현상학Phenomenology 으로 대표되는 지각과 체험의 공간, 새로운 유형의 구조주의적structuralism 네트워크로서의 건축 공간, 자연을 모방한 바이오미미크리 Biomiomicry 와 복잡계 이론에 기초한 건축, 스케일 Scale에 따라 건축에서부터 시작해 도시와 사람의 삶으로 확장되면서 다른곳과 차이가 나는 독특한 도시 여행이 그것이다.  - P7

건축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탄생시키는 것이다.........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보려는 건축가의 고민 자체가 건축설계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다. 미술관을 설계할 때는 미술관의사회적 역할을 찾고, 공동주택을 설계할 때는 주거에 관해 연구하면서 현재 사회의 상황과 문제점들을 찾게 된다. 바로 그것이 건축가라는 직업의 장점이다. 자칫 얕고 넓은 지식으로 현학적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인 양 보이기도 한다. 건축가에게는 잡학의 지식보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 P9

미셸 푸코는 이것을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르면서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일상의 장소들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하고 새롭게 환기시키는 장소, 즉 실제로 위치를 갖지만 모든장소의 바깥에 있는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라고 정의한다.
- P16

현대사회의 도시와 건축은 나무와 돌과 벽돌과 유리를 가지고 바닥과 기둥과 지붕을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사회와 자연현상을 면밀하고 섬세하게 관찰하여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새로운 관계를정립해서 새로운 인공의 대지와 건축물을 만들고 그 결과로 자연인지건축물인지 알 수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결국 현대 건축물은 지금까지 없었던 다양한 헤테로토피아를 만들고 사회에 드러내어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사회 문제를 환기하고 고민하게 하는 작업일것이다.
- P17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구조와 공간보다는 기둥과 기둥의 배열 그리고 높이 솟은 수직성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야 시민들을 설득하고 통치했을 것이다. 건축은 교묘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어느 시대에는 어느 공간에는 작동하고그 힘은 건축물로 시각화된다. 도시의 언덕 아크로폴리스에 올라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파르테논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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