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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평점 :
세상이 미쳤다는 걸 아는건 너무 쉽다.
그냥 오늘자 기사 검색만 해보면 미친 짓이 도르르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비단 정치만 그런게 아니다. 그냥 선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은 일반인들도 자신의 작은 불편이 걸리기만 해도 얼마나 이상한 미친듯한 사람들로 변하는지....
2주째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로 인해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택배 노동자들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시켰다는 어떤 아파트 주민들을 생각하며 또 욕을 퍼붓는다. 사람들이 말이야 미친게 아니고서야 짐들고 이걸 오르라고 한다고???
연일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는 이게 도대체 사람이 맞긴 한건가라며 같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자괴감을 가지게도 하고....
미친 세상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매일 하는 나날들이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이란 제목의 원제는 <파페 사탄 알라페>,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사실 아무도 그 뜻을 모르고 그저 세상의 온갖 나쁜 짓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고 책 소개에 나와있다.
책을 읽고난 지금 한글 제목과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의 시작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사회>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종교나 신, 국가, 공동체 등 거대 서사가 사라진 인간 존재의 불안의 시대-이 시대의 전형적 특징은 분노를 동반한 항의운동인데 문제는 그 운동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알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는데 있다는 것이 에코의 일침이다. 또한 우리가 이런 유동사회를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런 사회를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16쪽)
그 새로운 수단은 무엇일까?
그 전에 지금의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고 바뀌어야 하는 지점을 포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던져준다.
나무랄 게 없으면 자기 일을 잘 해낸 사람이다. 나는 좋은 교황이라든지 정직한 자카니니 라든지 하는 말을 들으면 항상 마음이 좀 불편하다. 그런 표현은 다른 교황은 모두 나쁘고 다른 정치인은 정직하지 않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23세와 자카니니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고, 그래서 그들이 특별히 칭찬받아야 할 이유는없다. - P22
어떻게 보면 세상을 제대로 사는것이 딱히 어렵지는 않은 것이 자신이 할일을 모두가 성실하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정치인이 모략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성실하게 해내고,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가는 삶.
그런데 역사와 실제 사회는 한번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동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기를 쓰고 사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의 모습을 포장해 어떡해든 눈에 띄기 위해 온갖 엉뚱하고도 바보같은 일들을 저지르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듯이 살고 있다.
타인의 고통의 현장에서도 그를 구하거나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대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그것을 알림으로써 자신을 과시하는 것에 집착하는 세상이 올 줄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알았을까?
심지어 마피아 조차도 배신자의 입에 돌 대신 핸드폰을 박아넣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 대해 에코는 누군가가 <야, 어제 너 텔레지번에 나온거 봤어!>하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라고 일침을 놓는다.
유럽 곳곳에서 이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테러를 보는 시각은 거장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소위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타 종교와 그 지도자들을 지나치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희화화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백인 유럽인으로서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결과로 이슬람들의 끔찍한 보복살해가 있어 먼저 누가 잘못했는가는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더 큰 범죄가 큰 무례와 모욕을 엎은 형국이다.
이슬람의 테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하지만 에코는 그것을 유발하는 백인들의 타 인종과 종교에 대한 무례함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말하지 않거나 비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분명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교육에서는 모든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어야 하고, 모욕과 유머, 문학적 표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해야 한다.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방법에 대해 에코는 부단히 질문하고 대답한다.
신문에 기고한 짧은 에세이라는 글의 성격상 심도있는 논의를 펼칠 수는 없지만 그의 짧은 글에서도 인간과 역사에 대한 애정, 불합리를 날카로운 유머로 통찰해내는 에코의 시선은 절묘하다.
이 책을 한 권 읽는다고 이 미친 세상을 단번에 이해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하나 하나 짚어가다보면 그래도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