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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오래된 집 - 근대건축에 깃든 우리 이야기
최예선 지음 / 샘터사 / 2021년 2월
평점 :
내 몸이 짐이라 뛰지는 못하지만 걷는걸 좋아한다.
오래된 집이든, 종교 공간이든, 현대의 멋진 건물이든 모든 아름다운 건축물을 좋아한다.
건축물을 보며 걷는걸 가장 좋아한다.
다만 전문적인 건축용어들은 너무 어려워서 패스
건물들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곳에 배어 있을 삶의 흔적들을 찾아 읽고, 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가령 이런 사진- 15쪽 최순우 옛집

이 단정한 방에서 어쩌면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에 나오는 글들을 간간히 썼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좀 잦아들면 서울 나들이를 해야겠다.
저기 최순우 옛집에 가서 선생이 생전에 어루만졌을 책상을 보고, 그가 거닐었을 뜰을 거닐면서 우리 미술에 대한 최순우 선생님의 그 마음을 잠시라도 느껴보고 싶다.
최순우 옛집이 좋은 건 사람 사는 집다운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나고 문화재가 된 집들은 삶의 온기가 주는 애틋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곳은 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과 회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정성과 노력으로 살뜰하게 매만지며 정성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가을에는 빨갛게 익어가는홍시를 볼 수 있고 사철 따뜻한 감잎차를 마실 수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품격 있는 집 한 채를 지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은 그토록 애써서 지켜야 하는 일이다.-
P21
어쩌면 이 책의 저자도 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오래된 집들을 같이 따라 여행하다 보면 그런 저자의 마음이 한껏 느껴진다.
때로 집은 주인이 바뀌면서 완전히 다른 삶과 마음들을 품기도 한다.
친일파의 집이었다가 민족주의자의 집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60여년을 지킨 아내로 주인이 바뀐 백인제가옥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의지와 희망을 품고 있을까?
친일파 한상룡의 그 허영에 찬 과시욕이 남아있을 테고, 그곳을 용도 변경하여 흥사단원들이 모임을 가졌던 흔적도 집은 가지고 있으리라... 무엇보다도 납북된 남편 백인제씨를 기다리며 60년간 그 집을 지켰을 아내의 한 평생이 녹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삶의 흔적이 어딘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집은 알게 모르게 주인을 닮아간다.(126쪽 장욱진 가옥)

저 집의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 한마리에서 장욱진 화백의 그림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막 그린 듯 천진한, 그러면서도 애잔한 그의 그림과 이 풍경은 이토록이나 어울린다.
슬핏 스쳐지나가면 그냥 집일 뿐이지만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 문짝 하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옛적 전라도 장성의 필암서원을 갔다가 기겁했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이 대문쪽 정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당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속깊은 뜻이야 모르겠지만 그 건물배치가 보여주는 갑갑함이라니...
"학생 너희들은 자나 깨나 오로지 선현을 공경하고 배우고 익히거라.
헛된 풍경이니 풍류니 하는 삿된 것에는 눈도 돌리지 말거라"라고 건물이 엄숙하게 훈계하는 느낌이었달까?
이처럼 건물에 스며있을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면 오래된 집들을 산책하는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장욱진 화가의 집에서는 구불구불한 기둥들이 그의 그림과 꼭 닮아서, 사랑스럽다.
집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162쪽 영천 임고초등학교)

오랜 역사를 가진 시골의 초등학교는 숲을 품고 있다.
건물은 오래되어 낡고 불편해서 리모델링을 들어갈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숲을 저 아름드리 나무를 가진 것 만으로도 이 학교는 보존되어야 한다.
저 나무들 아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유년을 추억을 쌓았을까?
내 기억 속 학교 하나는 목련나무 하나로 남아있다.
봄이 되면 아름드리 크게 훌쩍 솟은 나무에서 목련꽃이 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나무만큼 아름답게 목련꽃을 피우는 나무를 본적이 없다.
매일 등하교길에 한참을 꽃을 바라보던 순간은 또한 내 삶이 그래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 책속에 아름다운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쓸쓸히 쇠락해가는 소록도의 공간에서는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 만져지고, 그들을 위해 봉사했던 오스트리아인 간호사 2분의 희생과 봉사가 같이 잊혀지는 안타까움도 전해진다.
식민지 시절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어졌던 영단주택지역의 흔적, 김구선생의 최후를 간직하고 있는 경교장, 피난민들의 고달픔을 품고 있는 부산 아미동, 감천동지역들......
적산 가옥인 부산의 정란각의 구조를 보면서는 예전에 다녀왔던 군산의 적산가옥을 떠올린다.
군산 지역 최대 지주로 군림했던 일본인의 집을 보면서 성채를 떠올렸었다.
이들은 돌아갈 생각이 없었구나, 영원히 이 땅에서 조선의 농민들을 부리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구나라는게 건물 전체에서 풍겨나왔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적산가옥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구룡포의 일본인 거리를 보는 마음은 작가도 씁쓸해하듯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자고로 집이든 거리든 이야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
관광지화 되어버린 그곳에 그 시대를 살았던 어민들의 삶이 없음으로 해서 생명없는 복원이 되어버렸고,
이대로라면 아마도 얼마 안가 찾는 이 없는 쓸쓸하게 퇴락한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부산의 용호동 일대는 옛적에 백합조개 산지로 유명했었다.
그곳의 어민들은 그 조개를 캐는 것으로 그럭저럭 살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이 들어오고 어업령이 내려지면서 백합조개를 캐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게됐다.
졸지에 조선인 어민들은 조개를 캘 수 없게 되어버렸고, 일본인 업자 밑에서 임금노동자로 일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지금 용호동에는 그 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 삶의 거리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구룡포 지역은 반대로 삶의 자취들은 남아있으나,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짐으로 해서 죽어가는 거리가 되어가는 것이겠지.
많은 건물들을 소개하면서 각자의 이야기들이 너무 짧다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다.
깊은 울림을 느끼기에는 짧은 분량들이 방해한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건물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제목처럼 따뜻하다.
어딘가 거닐고 싶은 봄이다.
이 책 한권을 끼고 작가가 느꼈던 그곳을 확인하고, 작가가 보지 못한 곳을 찾는 기쁨도 누려보고 싶은
그런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