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기다리는 여자의 차지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뒷굽은닳는다. 인내심은 미덕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이 고색창연한 지혜의 말들이 언제나 진실인 건 아니지만 가끔은맞는다. 여기 언제나 옳은 말이 하나 있다. 모든 건 타이밍에 있다.
농담이 그렇듯.
- P361

너무나 평화롭다. 거리들은, 너무나 고요하고, 너무나 정연하다. 그러나 기만적으로 평온한 표면 아래로, 전율이 흐른다. 고압선 근처에 있는것처럼, 우리 모두는, 가늘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우리는 진동한다. 우리는 떨고 있다. 우리는 항상 경계를 놓지 않는다. 흔히 공포정치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확히 말해 공포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대신 공포는 마비시킨다. 그렇게 해서 부자연스러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 P398

그때까지는 길리어드 신앙의 정당성을, 특히나 그 진실됨을 심각하게 회의한 적이 없었어요. 내가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을수는 있으나, 그건 내 잘못이라고 치부하고 말았거든요. 그러나 길리어드의 손에 무엇이 변화되고, 무엇이 덧붙여지고,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알았을 때는, 자칫 믿음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여러분은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실거예요. 그건 마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 가는 느낌이에요.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지는 느낌,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는 느낌이에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추방당한 느낌이에요. 타비사가 죽었을 때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이에요. 세상이 품고 있던 의미가 싹 비워지고 있었어요. - P433

그 경우, 나는 내가 이토록 힘겹게 쓴 이 페이지들을 파괴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당신도 파괴해야 할 것이다. 내 미래의 독자여, 성냥불을 화르르 붙이면 당신은 사라지리라. 한 번도 존재한적 없고, 영영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싹 지워지고 말 것이다. 내가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리라. 얼마나 신과 같은 기분인가! 절멸의 신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흔들린다. 나는 흔들린다.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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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현재에서 나는 전설이다. 살아 있으나 산 것 이상이고죽었으나 죽은 것 이상이다. 나는 교실을 가질 만큼 신분이 높은 여자애들의 교실 뒤편에 액자로 표구되어 걸려 있는 머리로서, 음침한미소를 띠고 말없이 설교한다. 나는 하녀들이 어린애를 겁줄 때 쓰는 귀신이다. 착하게 굴지 않으면, 리디아 아주머니가 와서 잡아갈거야! 나는 또한 본받아야 할 완벽한 도덕성의 모범이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네가 어떻게 하면 좋아하실까? 그리고 상상 속의 모호한 종교재판을 주재하는 판관이자 입법자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이런 경우에 뭐라고 하실까?
물론 나는 권력으로 한껏 부풀었으나 또한 그로 인해 성운처럼 모호하다. 형태도 없거니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나는 어디에나있고 아무 데도 없다. 심지어 나는 사령관들의 마음속에도 심란한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떻게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정상적인 내 크기로, 평범한 여자의 크기로 다시 줄어들 수 있을까?
- P49

사라진 나의 국가에서, 상황은 수년째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홍수, 화재, 토네이도, 허리케인, 가뭄, 물 부족, 지진, 이건 모자라고저건 넘치고, 퇴락하는 하부구조.…. 어째서 너무 늦기 전에 누군가 그 원자력 발전소들의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던가? 침몰하는 경제, 실업, 추락하는 출생률.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그러다가 분노했다.
실행 가능한 요법의 부재. 원망할 사람을 찾는 탐색.
나는 그런데도 왜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너무 오래 들어 왔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늘 한 덩어리가 제 머리에 떨어질 때까지는 아무리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못믿는 법이다.
- P99

나는 울지 않았어요. 울 만큼 울었으니까요. 진실은, 그들이 크리스털을 개복 수술해 아기를 꺼냈고, 그 과정에서 크리스털을 죽였다.
는 것이었어요. 그건 크리스털의 선택이 아니었어요. 고결한 여성의명예를 지키다가 죽거나 빛나는 모범을 보이겠다고 자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도 그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 P153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심하게 자책했다.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삶, 자유, 민주주의 운운하는 온갖 입에 발린 소리를 모두 믿었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믿음도 법대에서 흠뻑 들이켜 심취했다. 이런 가치는 영원한 진실이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것들을 수호하리라 믿었다. 무슨 마법의 주문에 홀린 듯, 그 믿음에 철저히 의지했다.
- P170

요. 우리는 장례식에 갈 때 말고는 그곳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망자의 이름이 묘석에 새겨져 있어서, 잘못하면 읽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읽기는 여자에게 맞지 않는일이었어요. 읽기의 힘을 감당할 정도로 강한 건 남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아주머니도요. 그들은 우리와 달랐으니까.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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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니체가 그리는 마지막 인간은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마지막 인간이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고말하면서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현대인은 행복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창 미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꿈을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거의예외 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의 낱말로 귀결된다. 행복, 행복하게 사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차라투스트라는 마지막 인간의 삶이라고 조롱한 것일까?
- P193

이런 철학은 연구실에 앉아 책 속으로 파고든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니체의 실존적 실험 철학은 오직 자신과의 대화로서만가능하다. 니체는 당시의 철학과 관계를 끊는다.
진리에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서양 철학은 근본적으로삶에 적대적인 도덕 철학이었다. 이성은 우리의 이면인 감정과 본능을 죽이고, 도덕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봉쇄한다.
- P211

니체는 이 등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우리의 내면은 이성과 욕망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지의 상호 투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만약 이성이 추구하는 진리가 이미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 역시 또 다른 의지일지도 모른다. 진리에의 의지도 결국 권력에의 의지다. 우리 내면을권력에의 의지가 활동하는 공간으로 보면 우리는 삶을 훨씬 더 역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P248

도덕적 평가 자체를 재평가하려면, 우리는 도덕의 계보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의 기원은 본래 ‘거리두기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다. 고귀하고 강하고,
높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저급한 사람, 비속한 사람, 천민적인 사람에게 갖는 우월의 감정이 바로 도덕의 기원이다. 왜냐하면 거리두기의 파토스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가치의 이름을 정하는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P267

무엇인가를 금욕한다는 것은 목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상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금욕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로 고통스러워 한다. 우리는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가? 우리가 고통의 의미나 목적을 알수만 있다면, 우리는 고통을 바라고 고통 자체를 찾으려 들지도 모른다. 지상에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병든 몸을 이끌고 숲과 도시를 방랑한 니체는 어쩌면현대의 고행자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금욕주의는 바로 우리의 삶이다.  - P274

니체가 심리학적으로 해부한 진리에의 의지는 기만하지 않으려는 의지다. 나 자신까지도 기만하고 싶지 않다는 정신을 기독교적믿음에 철저하게 적용하면, 아무런 전제가 없는 신앙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는 진리가 삶에 유용하다고 전제한다.
니체는 여기서 강력한 의심을 표명한다. "삶이 가상 위에 서 있는것으로 보인다면, 다시 말해 삶이 오류, 기만, 위장, 현혹, 자기기만에 기초하고 있다면"(『즐거운 학문), 우리가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독교적 신은 일상적 삶을 허위의 세계로 폄하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참된 세계로 평가하지만, 기독교가하나의 허구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는 신과 진리의 관계를 재평가해야 한다.
- P295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교의 진짜 역사에 대해 말해보겠다. ‘그리스도교‘라는 말 자체가 벌써 오해이며, 근본적으로는 오직한 사람의 그리스도교인이 존재했었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복음‘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렸다. (…) 신앙‘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믿음에서 그리스도교인의 표지를 찾는 일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오로지 그리스도교적 실천만이, 즉 십자가에서 죽었던 그가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만이 그리스도교적이다.
『안티 크리스트,
- P300

이성의 지배, 인간의 해방, 역사의 발전과 같은 거대 서사에 대한믿음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실험적으로 시도되는 시대, 우리는 이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 진리에의 의지를 하나의 우화로 폭로하고, 근대 철학의 확고부동한 토대로 여겨온 ‘나는 생각한다‘는근본 명제마저 회의하고, 인간의 본성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는 동물에 불과하다고 말한 철학자가 바로 니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니체가 온갖 포스트모더니즘을 빚어내는회전반이라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니체를 전환점으로 하여서양 철학은 ‘탈현대로 진입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서양 형이상학의 근원을 회상함으로써 모더니즘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적 태도이며 사상적 운동이다. 서양 허무주의가 문화의 디오니소스적 근원으로부터 소외되어 지나치게 이성을 강조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했다고 최초로 인식한 철학자는 니체다.
- P335

주체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주체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것은 수많은 힘들의 권력 유희다. 그렇다면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본래의 자기가 되는가?" 니체를 광기에 이를 정도의 극단적인 사유로 몰아넣고, 우리를 니체의 마법에 걸리게 만든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이 지속되는 한 니체의 영향은 영원할 것이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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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2인 둘째 딸
엄마 오늘 모의고사 국어시험치는데 시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막 나오는거야.
그래서 좀 울었어

시험문제속 시는 아래 기형도 시인의 바람의 집-겨울판화 1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 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음...... 시가 진짜 슬프네.....


근데 딸아 사실 엄마도 쬐끔 울었다.
시 말고 네 성적 때문에.....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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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0-09-1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1등급을 받고 행복해졌단다. 라고 하면 따님이 화내시겠죠 ? ㅎㅎㅎ

바람돌이 2020-09-19 15:25   좋아요 1 | URL
하하하.... 아마 경멸의 눈초리가 날아올걸요. ㅎㅎ
 

현대의 약자들은 자기계발 서적을 통해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고, 여행을 통해 이국적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을 실험할 수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사회에는 수동적 허무주의를위장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수많은 문화적 마취제가 흘러넘친다.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의 위기는 인간이 심오한 자기반성을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이 위기를 지배하고, 이 위기를 통해 회복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는 능동적 허무주의와 맞닥뜨린다. 능동적 허무주의는 강함의 징후일 수 있다. 정신력은 기존목표들이 그에게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될 정도로 증대될 수 있다. 허무주의 이기는 한데 강한 허무주의가 가능한 것인가?
- P138

살아가면서 져야 하는 짐은 수없이 많다. 부모에 대한 존경, 자식에 대한 책임,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성실, 짐을 져보지 않은 사람이 인생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낙타의 단계는 극복해야 할 것이기는 하지만 좀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과정이다. "너희 영웅들이여, 내가 그것을 등에 짐으로써 나의 강인함을 확인하고, 그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더없이 무거운 짐은무엇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낙타의 단계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내게 가장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
- P163

나에게 무거운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물음을 던지는 순간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낙타는 사자가 된다. 사자는 이제 자유를 쟁취하고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 사자가 싸우고자 하는 대상은 분명하다. 이제까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기존의 관습, 규범, 전통이 그것이다. 이것은 파괴되어야 한다. 전통에 대항하여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내세워야 한다.
- P163

내가 영원히 반복하길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니체는 이러한 실천만이 "우리의 삶에 영원의 형상을새기는 길이라고 말한다. 영원회귀는 틀에 박힌 것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영원회귀는 이 순간의 삶에 영원성을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영원히 반복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원할 정도로 정말 간절히원하는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바로 이런 실존적 물음이다.
- P170

나는 정말 나의 삶을 원하는가? 나의 삶에 최고의 감정을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감정을 얻기 위해 어떤 수단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는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우리에게이렇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니체의 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글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난주저 없이 이렇게 답하곤 했다.
너의 삶을 다시 살기를 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살아라!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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