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어 - 하버드대 행복학 강의
탈 벤 샤하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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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화두라 하면 단연히 [행복]이 아니었을까? 행복에 관한 무수한 책들이 나왔지만, 정작 읽기는 꺼려졌던 이유는 바로,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알고 잇기 때문이다. 보통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도 거기서 거기. [해피어]도 그런 책 중에 하나일거라 생각했는데, 적어도 책머리에서 솔직하게 밝힌 문장 하나, <많은 사상들이 실제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래도 읽는 이유는 우리가 때로 이미 알고 있는 것, 또는 알고 잇지만 잊고 잇는 것들을 가끔씩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기 때문>(p.7)이라는 말 때문에 펼쳐보게 되었다.

 

그렇다. 요즘처럼 사는 게 힘들었던 적이 있을까싶을 정도로 경기침체는 여전하고, 그 중에서도 지방은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나은 바가 없다. 몇달씩 밀리는 월급에 한숨짓다가 그래도 새로 마음을 다잡아보자 결심도 해본다.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한달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쯤은 새해가 시작될 때 세운 게획도 조금은 수정을 할 필요가 있다.

 

<실제적인 도움을 받으려면 이 책을 훈련교본으로 사용해야 한다. 또한 훈련에는 반성과 행동이 뒤따라야한다.>(p.16)는 저자의 말이 없더라도 나에게는 훈련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훈련이라 함은 행복이라는 가치도 내 자신을 훈련시키는 과정 중에서 얻을 수 있다는 말이겠지. 몇십년간 지속해온 삶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의지도 필요한 때이고. <시간을 많이 투자할수록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p.17)고 하니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겠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뭘까?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궁극적인 가치에 대해 이분법적 사고를 갖게 하는 닫힌 질문이다. 행복하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식이다. 중략. "어떻게 하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은 행복추구가 어떤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p.34) 그렇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학생들이나 직장인, 또는 우리가 어떤 일을 성취하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조금 더 행복해지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것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좀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다. 글 중간중간 트레이닝을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익숙해지는 것, 감사표현에 인색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경험보다 다음 목표에 초점을 맞추게 하고 평생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를 쫓아가게 만드>(p.51)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혹은 나 자신을 성취주의자로 만들어버린다.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성취하기 위한 과정보다 그 결과를 중시하게 만드는 바람에 성취로 인한 행복은 유효기간이 짧아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행복을 <즐거움과 의미의 포괄적인 경험>(p.74)이라고 정의한다. <행복한 사람은 긍정적인 감정과 삶의 의미를 함께 느낀다>(p.74)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하는 착각은 바로 돈과 관련해서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 착각이라고는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물질적 풍요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고 행복수준을 높여줄 수 있다. 중략. 그렇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돈 자체가 아니다. 돈은 다만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줄 뿐이다>(p.107)라고 한다. 돈과 행복의 관게를 제대로 짚은듯하다. 물질적인 부가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데도 우리는 그것에 집착하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처럼 물질적 부를 추구한다. 그것은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 측정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측정가능한 물질로 대치한 것이다. 이러한 물질적 부가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세상은 결코 살만한 세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트레이닝을 시간을 두고 실천하다보면 어느 정도는 행복이란 걸 맛보지 않을까? 기본적인 욕구해결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은 행복의 기본조건이다. 그러므로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매일의 일상에서 해야 하는 일을 줄이고 하고싶은 일을 늘리는 것>(p.135)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아, 나도 행복해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트레이닝은 결코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자신의 생활습관을 조금씩 바꾸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들 중에서 [문장완성하기]는 내가 실천하기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말로 표현해보는 것,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를 정의내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쉽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도 쉽지만, 행복해지기 위한 실천방법도 쉽다. 쉽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간과하고 지나친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 지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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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벌타령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2
김기정 지음, 이형진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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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그림책을 통해 만나는 전통문화(혹은 풍습)은 재미있고, 신이 난다. 아이들이야 처음 만나는 것이니 즐겁고 신이 나는 우리 옛 문화를 만나는 것이고, 고리타분한거라고 여기고 살던 어른들에게는 다시 보는 문화가 될 터. 이렇게 신나고 재미난 것이 바로 우리가 숨쉬고 살아온 이 땅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장승. 관광지 혹은 문화재로 지정된 곳, 또는 인위적으로 만든 툭제장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지도 오래다. 예전에는 마을어귀에서 마을사람은 물론이고 오고가는 길손들까지 보호해주던 것인데, 도로가 생기고, 마을이 변하면서 장승은 보기 힘들어졌다.

 

이 책을 펼치면, 팔도장승들을 다 만날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나무를 깎아 만든 장승 외에도 돌미륵, 하루방까지도 다 장승의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마을어귀에 세워져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것들을 모두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내게는 장승이라는 말보다 벅수라는 말이 더 가깝게 여겨진다. 경상도에서는 장승을 벅수라 불렀다.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게으름뱅이 가로진이가 어미 성화에 못이겨 나무를 하러갔다가 실컷 자고 돌아오다가 장승을 나무땔감으로 쓴답시고 쑥 뽑아온 게 화근이었다. 비바람 맞아가며 마을사람을 보살피느라 고생한 장승이 하루아침에 나무땔감이 될 상황이다. 가로진이의 어미는 기겁을 하고 놀라지만, 정작 가로진이는 생각이 없다. 소식을 들은 우두머리 장승이 팔도장승을 다 불러모아 가로진이를 혼내주기로 하고 팔만가지의 병을 가로진이에게 바른다. 게으르고 쓸모없는 자식이지만 그래도 어미된 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 정성으로 장스을 다시 세운 후 가로진이의 병도 낫고, 게으름도 고츠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줄거리도 재미나지만, 제목처럼 타령을 구성지게 부르는듯한 이야기가 정겹다. "아침먹고 뒹굴, 점심먹고 빈둥, 저녁먹고 드렁" 마치 내 주위의 누군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하하. 가로진이의 게으름에 속이 터진 어미, "징글징글 미운 내 새끼" 가로진이에게 나무 한 짐 해오라 시켰더니 대형사고를 쳤네. 뽑혀 온 장승이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그 내용인즉, 장승의 역할을 읊는다.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팔도장승들이 모여드는 장면에선 그림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그들의 사투리가 정겨워 무서움은 잊혀진다. 장승들이 가로진이를 어떻게 벌줄까 읊어대는 소리는 한편으로는 무섭고 한편으로는 재미나다. "징글징글 미운 내 새끼"가 아프니 그래도 "내 살붙이 예쁜 아들"이라고 속내를 드러내는 어미. 벌받아 그냥 죽느니 착한 일로 죄를 씻게 해달라며 빌어 겨우 가로진이를 살려낸다.

 

참 재미있으며너도 장승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그림책이다. 이제, 어딘가에서 장승을 만나면 가로진이가 생각날 듯하다.

 

책의 마지막에 장승에 대한 정보를 짧지만 알차게 적어놓았다. 부모님이 먼저 읽고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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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앵거스 - 사랑과 꿈을 나르는 켈트의 신 세계신화총서 7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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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의 세계신화총서는,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기다림을 행복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 작은 사이즈와는 달리 세계의 신화를, 아니 세계를 품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 시리즈 만화책의 다음 권을 기다리듯 그런 기다림을 알게 해 준 시리즈다.

이번에는, 켈트신화란다. 신화에 대한 관심 역시, 편중이 심하여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내게 새로운 신화가 다가왔다. 켈트신화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기대를 갖게 되고, 신화의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낯설지 않음을 느낀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꿈꾸는 앵거스와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켈트신화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이 책 속의 이야기도, 앵거스가 소설속 현실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앵거스는 다녀간다.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그 사랑이 어떤 형태로 발현되든간에 앵거스 불러온 꿈과 함께..

나도 한때는, 지독하게 사랑을 믿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뭐 그다지 독실한 추종자는 못되지만, 사랑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사랑은 꿈과 같다.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 잡힐것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 현실세계와는 달리 내가 주인공이 되는 꿈처럼, 사랑에 있어서도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것. 앵거스가 불러온 사랑은 꿈처럼 아련하다.

소설 속에는, 앵거스 신화와 더불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질 듯 겹쳐질듯 전개된다. 특히 돼지를 사랑한 앵거스 이야기는 묘한 느낌을 준다. 인간이 돼지로 변해 살아간다는 신화적 이야기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조직을 이식받은 돼지의 이야기는 인간을 위해 희생된 동물실험의 대상이 된 수많은 개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어머니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가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를 미워하고 자신이 친아들이 아닌 사실, 그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좋아하는 모습에 섬찟함을 느끼기도 한다.

특별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아니, 신화가 꼭 교훈을 주어야한다고 누가 그랬나?) 앵거스가 꾸게 하는 사랑의 꿈은 다양한 현대적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나 재미를 더한다. 그랬다. 이 책은 한마디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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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때 들려주는 5분 구연동화 100가지 이야기 - 이솝우화 구연동화 잠들 때 들려주는 5분 구연동화
이옥선 지음, 이시현 그림 / 세상모든책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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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한솔이가 잠이 늦게 드는 바람에, 잠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어떤 책을 읽어주면 좋을까를 많이 고민했었다. 그래서 그동안 아이가 잠을 일찍 잘 수 있게 도와주는 책들을 주로 보았는데 이 책은, 잠이 들게 하는 동화라기보다는 잠자리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어느 정도 잠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구분하는 아이라면 나이가 어려도 읽어줄만 하다. 물론, 잠들기 전에 이런 책을 읽어줌으로써 잠잘 시간이라는 걸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드는 시간까지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성인이 된 우리는 생활에 치어 이것저것 일을 하다 잠이 들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공부에 놀이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하루종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정작 하루를 정리해야 할 시간을 놓치고 잠이 들기 일쑤다. 불을 끄고 누워 있는 시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들이 많다. 그것은, 아이와 부모 사이의 유대감을 형성해 줄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잠들기 전의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그러면 어떤 책을 읽어줄까?

 

이 책은, 일단, 구연동화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 참 좋다. 특별히 구연동화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좋다. 왜냐면, 간단하지만 구연동화의 형식을 빌어 책을 읽어줄 수 있도록 알찬 팁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정식 구연동화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안성마춤이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은, 이야기가 대부분 3분에서 5분 사이에 끝이 나는 길이일 뿐 아니라 내용도 아이들에게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내용이어서 좋다. 부모는 부담없이 읽어줄 수 있고, 아이는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 내가 중학생때 학교에서 방송으로 하루에 하나씩 탈무드를 읽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탈무드의 짧은 글을 하루에 하나씩 듣다보니 생각꺼리가 제법 많이 생겨나고 배움도 많이 얻었었다. 지금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것도 그런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긴 글을 읽지 않더라도 생활의 지혜,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들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관찰력, 사회성, 탐구심, 창의성, 도덕성 등으로 구분된 이야기를 돌아가며 하나씩 읽어준다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부터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100가지나 되는 이야기가 옛이야기, 신화, 우화, 창작동화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 구연하기 위한 팁 외에 포인트가 있어서, 아이와 어떤 대화를 하면 좋을지 조언도 해주고 있으므로, 아이와 잠자리에서 책읽기에 부담을 느낀 부모라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 스스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한솔이는 너무 어려서 내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을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구연동화의 장점만을 취해 읽어주었다. 그렇게 하루이틀 연습이 되면, 나중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때가 오면 더욱 자연스러워지리라 생각한다.

 

한 권의 책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책이 크고 무거운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누워 있는 아이 옆에 앉아서 들려주기에는 무리가 없다. 어떤 책을 읽어줘야 좋을지 고민하는 부모, 구연동화에 낯선 부모에게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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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들려주는 홍길동전
최태림 지음, 김고은 그림 / 세상모든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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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책들이 좋은 점은, 한국의 고전을 저자의 생애와 더불어 읽음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허균이라는 인물과 허균의 대표적인 작품인 홍길동전을 함께 읽으니 허균이 왜 홍길동전을 썼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전기만을 접할 때와 작품만을 접할 때가 다르고, 전기와 작품을 같은 줄거리 안에서 접할 때는 또 역시 다르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아주 유용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다보니, 얼마전 읽었던 허난설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에서는 허난설헌을 아주 잠깐 언급했을 뿐이지만, 허균이 허난설헌의 작품을 모아 책으로 엮게 된 일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랬을것이다. 허균이 허난설헌의 작품을 모아 전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문인과 교류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작품을 우리는 접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다음, 허난설헌의 이야기인 [스물일곱송이 붉은연꽃](일마)이라는 책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꿈, 이것은 허균의 일생과 더불어 홍길동의 운명까지도 함께 생각하게 한다. 한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 자질을 꽃피울 수 있는 시대를 함께 타고 나야한다. 한편으로는 시대탓을 하기에는 나약한 면이 있으나, 세종 대에 장영실이, 박연이,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었던 것도 세종이라는 성군을 만나서가 아니었던가? 허균이 광해군 대가 아니라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허균의 홍길동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종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종이라는 성군이 치세를 하던 시대에 서자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홍길동.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유교적 전통이 확립된 시기가 세종 때라고 한다. 천민출신까지도 기용해서 일을 맡겼던 세종이지만, 바로 그 세종이 맏이든 아니든, 적자이든 서자이든 상관없이 집안을 이어받던 관습을 적장자 계승제로 바꾸고, 남자가 여자집으로 장가들던 풍습을 여자가 시집을 오는 방식으로 권장하고, 과부의 수절을 반드시 지켜야할 미덕으로 (왕의 투쟁, 페이퍼로드, p33)여기게 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시대에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하였다.

 

허균 자신은 서자 출신이 아니었으나, 그의 스승과 그의 벗들을 통해 그 불합리함을 많이 본 듯하다. 성리학적 지배체계하에서 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파직과 등용을 되풀이하던 허균도 여러가지로 답답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허균이 원하는 세상을 길동이 만들어줄까?

 

길동은 마지막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왕이 되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의 우애를 두텁게 하였다고 허균은 말한다. 허균의 가족사를 볼 때 부모와 형제간의 관계를 다룬 것은 이해할만하다. 또한 허균이 원하는 세상을 길동이 세운 나를 통해 보여주기도 하였다.

 

허균의 생애 후반을 살펴보면, 허균 역시 광해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한 채 죽어야 했지만 말이다. 허균의 생애와 홍길동전을 같이 읽음으로써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홍길동이라는 인물과 허균이라는 인물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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