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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 식물과 관련된 몇 가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물론, 어린이 책을 포함하여..
사실, 내 관심분야가 아닌 책을 읽을 때는, 어린이 책만큼 편안한 책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성인을 대상으로 쓴 가벼운 서적을 읽고, 거기서 관심이 더 생기면 약간 전문적인 책을 읽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는 식물인 나무를 다룬 책이면서 내 관심분야인 역사가 포함된 책이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대만족이다.
1. 나무와 문화재의 인연
저자는, 과연 나무와 역사, 문화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먼저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가장 딱딱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장을 읽고 나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나무는 종류에 따라 어느 정해진 지역에만 분포하여 자라는 특성이 있다. 나무의 재질을 분석해보면 나라와 나라 사이 혹은 특정 지역 간의 교역 범위를 추정할 수 있”(p.13)기 때문에 저자는 나무로 된 문화재의 재질 분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이것을 확인함으로써 나무에 새겨진 역사를 읽어낸다.
2. 역사가 담겨진 나무 이야기
2장이 이 책의 중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스쳐지나간 오래된 사찰의 나무기둥, 무덤 발굴을 통해 나온 관재, 나무를 깎아 만든 불상, 숯, 나무활자, 무적함대 거북선 등은 물론이고 나무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나무는 세월이 지나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썩거나, 불이나 천재지변에 의해 사라지기 쉬운 소재인 탓에 역사적인 유물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소외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란 것은 이럴 때 더 다가온다. 나무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특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국가 간 혹은 지역 간의 교류를 증명해낼 수 있다하니 신기하다.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문헌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수많은 증거자료로 사용되지만, 나무의 특성을 비교/대조하는 것만큼 확실한 물증이 또 있을까?
또, 저자는 나무학자로서의 우려 섞인 충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무의 재질 조사를 통해 일본의 반가사유상을 한반도에서 만들었을 거라는 한반도 제작설에 대해 “재질이 소나무라는 것은 반가사유상의 제작지를 추정하는 참고인자이지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에서 자라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지식으로는 우리 소나무인지 일본소나무인지를 밝혀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p.66) 라고 말한다. 즉, 나무의 재질조사를 통해 얻은 정보의 객관성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앞뒤 인과관계를 살펴보아야 하고, 다른 조사결과까지 모두 취합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살펴보았던 나무문화재의 역사적 의의들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과학적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연구과정 중에 도움을 준 대학원생의 이름을 밝혀 적음(p.81 참조)으로써 자신만의 연구성과로 포장하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기초연구를 다 해놓고도 논문이며 저작물에 이름한자 못 실린 한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부분은 상당히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었다.
3. 사람살이 나무 살이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3장의 내용도 그러하다. 고전문학이나 종교, 예술 문화에 이르기까지 나무와 관련이 있는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풀어놓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 속 “사이프러스”가 그렇고, 인도의 나무를 대체할 나무들을 찾아낸 조상들의 기발함이 그렇고, 연리지의 특별함이 그러하다. 또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유적지의 나무들 이야기도 있다. 뭐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 무슨 나무를 심어놓은들 어떻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저자처럼 나 역시 이왕이면, 유적지에 어울리는 나무를 조경할 수 있는 감각~!! 정도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나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이제는 나무와 얽혀있는 문학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의 관심 영역 상, 식물학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고(고등학생 시절 생물 점수가 영~ 꽝이었던 기억이 ㅠ.ㅠ) 문화․예술적으로 나무와 친해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