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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임의 비밀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6
로버트 오브라이언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7월
평점 :
프리스비 부인은 들쥐다. 들쥐와 시궁쥐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고, 까마귀와 올빼미도 찬조 출연하는 “니임의 비밀”은, 마치, 예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떠올리게 한다. “개미”가 개미들의 이야기였다면, “니임의 비밀”은 쥐들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란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프리스비 부인은 여느 들쥐와 다를 바 없이 힘든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늘 약해서 걱정인 아들 티모시까지 병이 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티모시의 약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프리스비 부인의 모습은 우리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모성을 보여준다. 사실, 모성본능은 인간만이 가진 성정이 아니기에, 우리는 자주, 동물들의 모성애를 보게 된다. 에이지스 씨의 처방을 받아 티모시에게 먹이고 증세가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봄이 오고 있는 길목의 농장은 위험하기만 하다. 곧 쟁기질이 시작되면 프리스비 부인도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다 낫지 않은 티모시와 함께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프리스비 부인은 까마귀 제레미의 도움을 받아 올빼미를 만나고, 그리고 시궁쥐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까마귀 제레미와 프리스비 부인의 만남은, 옛날 우화를 읽는 것처럼 익숙한 장면이었지만,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시궁쥐와 프리스비부인의 만남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장치인 것이다. 프리스비 부인이 시궁쥐들을 만나 숨겨진 비밀, 그러니까 “니임의 비밀”을 듣게 된다. 니임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책의 번역자는 자신이 쥐띠이고 쥐에 대한 편견으로 살아왔음을 번역후기에 써놓았다. 나는 이 책의 번역자와 같은 나이이다. 나 역시, 쥐 하면 불결하고 더러운 이미지만 떠올랐다. 실험실의 하얀 쥐는 쥐라고도 생각되지 않았고 어릴 때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곤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쥐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가끔 도로변 하수구에서 쥐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쥐는 더럽고 불결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에서 시궁쥐들은 쥐에 대한 인간의 오해는 바로 쥐들이 인간의 물건을 훔쳐서 생활하게 되면서부터라고 이야기한다. 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이유에는 그것도 있을 테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전염병을 퍼뜨린 동물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십이지에도 쥐가 들어가는 걸 보면 예전에는 쥐가 그렇게 나쁜 이미지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험실의 흰쥐들을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보았다. 인간을 대신하여 수많은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 쥐들을 보면서 감정적인 느낌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이 실험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달라질 것이다. 비록 약간 공상적인 부분이 많긴 하지만 수많은 인간의 실험에 동원되고 있는 동물들의 의식세계를 우리 인간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동물들이 인간들처럼 문명을 이루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였을 수 있다. 필요가 발명을 부르는 법이니까. 인간들이 이룩한 문명이란 것이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해주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서 잃은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자. 누군가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또다른 누군가는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 그것을 인간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 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데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이 책 속의 쥐들이 인간의 문명을 이용할 수 있게 된 후 더 편안하고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는 반면에 불평불만도 생겨났다. 아마도 그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또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쥐들이 인간의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의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가정은, 가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동물들이 우리보다 못한 존재라고 규정한 것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신이 아닌 이상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니임의 비밀”을 읽는 동안, 스스로 겸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더 겸허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험실에서 수없이 죽어 간 쥐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