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모름지기 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과 같으니,글짓는 사람은 의당 처녀처럼 부끄러워할 줄 알아 자신을 잘 감추어야 한다." 

"아아! 혹 누군가 '널리 남아게 구함으로써 자신을 밝히고 빛낼지어다!' 라는 말로 나를 책망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이 비록 통절하고 신랄한 풍자라 하더라도 나는 내 두려워하는 바를 더욱 깊게 할 것이며 내 감추는 바를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다. 또 누군가 '다만 스스로 즐거워할 뿐이요 남과 더불어 한가지로 즐거워하지는 말지어다!' 라는 말로 나를 책망하는 이가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변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이미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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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그룹의 일원이었던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의 선집에 나오는 글이다. 그의 문장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와 처녀의 마음'이 이 글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마음은 어떤 것인가? 둘의 공통점은 '순수함'이다. 어떤 효용적 가치보다는 글을 대할 때 갖는 아이와 갖은 천진함, 처녀와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요체이다.   

순수한 마음이 발현된 '있는 그대로의 마음'과 진실한 감정이 표출된 '참된 마음' 

이덕무의 전집이 '청장관전서'이다. '청장'이 그의 호였기 때문이다. '청장'은 '푸른 백로'를 말한다. 한 평생 가난을 벗을 삼았던 그였기에 필요한 것만 먹고 더 탐하지 않는 '청장'이 꽤나 어울린다.  

문장의 입장에서 우리는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의 대중적 글쓰기는 환영할 만한 일이고, 나 역시 그에 큰 위로와 도움을 받지만 또 그만큼 '보는 마음'과 '쓰는 마음' 을 요구하기도 한다. 솔직히 내 개인적으로 이 두 부분에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보는 마음'에서 나는 책과 모니터를 통해 읽는 글사이의 집중도를 비교하면 강 하나가 놓여있다 할 정도다. '쓰는 마음'도 그렇다. 그저 속풀이 한다치고 마구 쓴 글도 무척 많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인터넷 글쓰기의 한가지 장점이기도 하다. 동네 슈퍼가는 마음으로 편하게 움직여도 되는...그리고 나는 이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글쓰기가 대중화되고,누구나 시민기자가 되고,누구나 평론가가 되고,누구나 사진가가 되고...분명히 좋은 현상이다...하지만 그럴 수록 그 모든 이들이 이덕무의 문장론의 요체도 더불어 깊어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은 서울에 간다. 하루 휴가를 냈다. 굵은 비를 가르며 섬에서 소리를 지르려고 말이다.  

아침부터 왠 타박인가 싶어 내가 좋아하는 이덕무의 '가장 큰 즐거움'이란 글을 올린다. 

 "마음에 맞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일, 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지극히 드문 법, 평생토록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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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정희성

빛 안에 어둠이 있었네 

불을 끄자 

어둠이 그 모습을 드러냈네 

집은 조용했고 

바람이 불었으며 

세상 밖에 나앉아 

나는 쓸쓸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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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돌아보면 같은 자리지만 나는 아주 먼 길을 떠난 듯 했어' 장마철에 차 안에서 들으면 좋은 음반이 윤상 1.2집 아닐까? 전람회 2집도 내가 요맘때 즐겨듣는다. 정희성 시인의 <돌아다보면 문득>이라는 시집이야기를 하다가 '도치된 문장'이 낯익어 딴소리 잠시 해봤다. 

오늘은 이런 감상적인 딴소리마저 송구스럽다.  

평택에서는 폭력과 대항폭력 사이의 일촉즉발,폭풍전야다. 평범하게 살았을 젊은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종강씨는 강연다니면서 가끔 고 정은임 아나운서의 영화음악 오프닝을 인용한다. 

 이런 내용이다.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정희성 시인의 시보다 인용이 길어졌지만 시인은 충분히 용서해주실 것이다. 2003년 한진중공업 파업당시 김주익 열사의 이야기다.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그리고 오늘 남편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아내는 또 얼마나 외로왔을까?  큰 아이는 네살, 작은 아이는 한살....우리집과 같은데.

그렇다.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 밖에 나앉아 쓸쓸한' 시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또한 잊지 않는다. 

<희망>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천박할 정도로 외롭고 쓸쓸한 날이지만 장맛비 뒤에 한 줌의 햇살이...우리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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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자기 가두어놓기와 놓여나기를 무수히 반복한다. 가두어놓기와 놓여나기라는 두 개의 의지는 서로를 죽이고 동시에 서로를 새로이 태어나게 한다. 

"바다 한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섬만 섬이 아니다. 가두어놓을 수 있는 시공이면 어디든지 섬이고 그곳에 갇히는 일 또한 섬 자체인 것이다" 

"자기 외로움을 이겨내는 힘이 없는 사람은 자기를 가둘 수 없다. 가두어놓는 삶을 살며 고독을 씹어보아야 놓여나기, 자유 혹은 초월을 삶을 살 수 있다." 

                                                                    한승원 <바닷가 학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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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원선생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장흥에 들어가서 지은 집이 '해산토굴'이다. 미당에게 그를 키운 것의 팔할이 '바람'이었다면 한승원 선생에게는 '바다'다. 전남 장흥의 앞 바다말이다. (장흥의 '삼합'은 나름 유명한데 아직 한번도 함께 먹어보질 못했다. 미식가가 되어야 느낄 지복일텐데.) 그가 2002년에 낸 수필집 <바닷가 학교>는 자신이 바다로 부터 배운 것들의 보고서이자 바다에게 지불하는 수업료이다. 그 중 인용한 구절은 '섬의 미학' 에 들어 있는 구절이다. 

장맛비가 하루를 멀다고 중남부를 왕복하고 있다. 이쪽에서 물길어다 저쪽에 쏟아붓는 형상이다. 실제로 수해를 입은 농촌의 민가들은 모두 섬처럼 보인다. 바다에도 섬이 있고 뭍에도 섬이 있다. 또 섬이라고 할 수 없지만 삶의 상흔,섬의 트라우마같은-잊혀진 것들은 '여'가 되었다는- 섬조각들도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한 시인의 울림은 너무도 강해 '타인'의 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소통'이라는 말을 발견해냈다. 그런데 나를 비우고 다른 섬을 찾을 수는 없다. 내 안에도 섬이 있기 때문이다. 한승원 선생의 말처럼 '가두어놓을 수 있는 시공이면 어디나 섬'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그물에 대한 맹신'이라는 글에는 '어부들만 그물을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기 나름대로 고기를 잡아먹고 살 그물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라는 말이 나온다. 한선생은 '생존의 숭고한 그물'과 빗대어 '자기함정의 그물'을 이어서 말한다. 일종의 자기경험과 인식의 협애함에서 나온 '판단의 그물'이다.  

'구두장사를 하는 사람은 구두의 모양새로써,양복장사를 하는 사람은 양복의로써....(중략)... 내 감지 능력으로 감지할 수 없는 아주 많은 것들이 내 그물에 대한 나의 맹신을 비웃으며 내가 쳐노은 그물코 사이로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다.' 

내게 올 여름 딱 사흘 동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틀은 섬에 있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하루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부질없고 너덜한 관계로 핸드폰의 한자리를 차지할 사람들은 아니다. 앞으로 오래 두고 사귀게 될만한 이들. '섬'과 같은 이들. 

'섬은 사람들의 배와 바람과 파도와 새들이 몰려올지라도,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갈지라도 수다나 호들갑이나 너스레를 떨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거기 들어가 자기를 가두는 사람들은 그 섬처럼 자기의 고독과의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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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는 인상적인 구절이 아주 아주 많다. 그 중에서 짧지만 즐겨 인용되는 구절이 바로 이거다. 

"모든 결정타는 왼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벤야민이 말하는 '왼손'이 박노자의 '왼쪽'과 같이 정치적 의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벤야민의 '왼손'은 '낯섬','즉흥'으로 해석한다면 '이질감','전위','아방가르드','소수자','디아스포라'  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우파 오리엔티드' 되어 있는- 여기서 우파는 한나라당의 기준이 아니다. 한나라당 기준으로는 똘본좌들 외에는 다 좌파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왼쪽'은 분명히 '낯섬'이고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힘이다.(이길 기원한다가 더 적확하겠다.)  

 

이명박에 반대하기 때문에 스스로 좌파라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었다. 최근에 공부라는 것에 눈을 뜨고 평소 안쓰던 '미학용어'를 급남발하는 사람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긴 한데 간혹 우낀거는 '늦게 배운 도둑질'로 닭도 잡고 소도 잡으려고 나설 때이다.  

이 친구는 MB에 대해 분노하며 그것을 두고 자기를 스스로를 '좌파'스럽다고 목소리를 깔면서 이야기한다.  

지난 주에 또 한번 그러길래...'좌파라?..음..좌파 그게 뭐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슬쩍 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또 목소리를 깔고 약간은 관조적인 어투로 ."한 때 좌파였다는 거구..지금은 뭐 별로 거기서 좀 떠나서..." 뭐 이렇게 말을 흐렸다. 내가 아는데로 이걸 정리하면 "한 1년전에는 좌파였는데 지금은 그런 정치문제는 좀 떠나서 미학같은데 관심이 있어" 이다. 

웃기지도 않아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1년 사이에 좌파가 되었다가 금새 그 쪽에서 관심이 없어질 수 있는 좌파가 있단 말인가? 1년 동안 MB에 대해 반대한 것이 '좌파'의 학습을 다 마친거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니면 '정치'와 '미학'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첫번째 1년 사이에 좌파였다가 좌파가 아닐 수는 없다. 한나라당이 규정하는 좌파였다가 정치에 관심이 좀 줄었다는 '정치무관심'으로는 이해가 된다.

두번째 '정치/미학'이 그렇게 쉽게 내가 관심 방향을 튼다고 구분되어 질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정치판 신물난다.'라고 이야기하고 그래서 영화나 볼래 하면 불만없다.

아무리 '듣보잡 전성시대'라지만 아는 친구 사이여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마 이 친구는 학위따면 1-2년쯤 뒤에 대학으로 강의 다닐게다. 액면 프로필이 대중들이 좋아하는 거라서... ^^ 

박노자의 글을 예전에 많이 읽었다. 한국 사회에 대한 외부인의 시선도 신선했고, 또 이후 그가 보여준 탈근대주의적인 근대사 해석에서도 얻은게 많다.(물론 박노자의 탈근대적 해석에만 열광해서는 안된다.)  한동안 박노자의 책을 보지 않아서 이번에는 조금 관심이 간다.  

소개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박노자는 '개혁적 자유주의'가 우리가 지니고 추구해야 할 최상의 무엇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지향과 현실' 사이에는 치열한 갈등과 조절 또는 화해불가능성의 공존이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이 대개 좋아하지 않는 '미쿡'처럼 한국의 정당 구조가 '이원화'되는 것이 '선진 정치'라고 생각치 않는다.  '대중정당'보다는 '이념정당'이 내가 원하는 정치지형이다. 그런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반MB정당'이면 만사 OK인걸...'개혁적 자유주의' 외에는 모두 한나라당 2중대인걸... 그 스펙트럼이면 -내가 좌파인지는 몰라도- 2중대 1분대정도는 되겠다. 결국 이런 그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나는 '우파의 2중대'이다. 알라딘에 어떤 '개혁주자'는 자신의 '진보적 결정들'이 과도하거나 휘청거릴때 균형을 잡아달라는 식의 객소리를 한다.  발화자의 좁은 스펙트럼이 매걸음 불균형을 자초하고 있는 것을 모른다.  

최소한 눈 앞에서는 전술적으로 '반MB'의 연대가 이루어지더라도...(적극 찬성하는 바이다.) 

'소년이여 꿈을 가져봐. 모든 결정타는 왼손에서 온다잖아. 한나라당이 말하는 왼손말구.'   

알라딘 소개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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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급진적인 ‘왼쪽’으로의 행진에 의해서만 어느 정도 빛이 있을 거라는 것이 박노자의 주장이다. 그 험난한 왼쪽으로의 행진 끝에 도달해야 할 곳은 “양육.교육.의료를 공동체가 책임지는 나라”로 표현될 수 있는, 공공성의 국가, 복지국가로의 대전환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를 흘리지 않는 선에서의 전면적인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급진적 개혁’을 통해서만 겨우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박노자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는 구호와 실천을 선명히 내세우는 까닭은, 워낙에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흐름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왼쪽으로 기울어져야 비로소 좌우의 날개를 갖고 나는 새의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류에 위험한, 불온한 흐름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중간 지점’에마저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타결될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먼저 부르는 게 흥정의 원칙이 아닌가?(p.72)”

박노자는 그 근거로 현실에서 복지국가의 모범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라는 고귀한 열매를 지배자들의 순순한 양보 하에 얻어낸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예로 든다. 가령 노르웨이 노동당의 왼쪽 흐름은 “구소련의 독재를 거부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혁명적 공산주의를 주장했었다. 그 정도의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 북구의 지배층이 불가피하게 양보를 해서 ‘복지 시스템’ 건설에 동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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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뭥미? 이거. 책도 안보고 이미 리뷰같다. 뭐란 말인가 이런 당혹감은? 그동안 리뷰랑 페이퍼랑 혼용해서 쓴 죄인가? 아니면 이거 결국 뻔한 이야기로 책이 채워질 것 같다는 불안감인가? 아니면 내가 반복해서 뻔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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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를 벗기고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삵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 

퇴근길에 비가 그쳤다.  

집 앞을 얼마 앞둔 내리막 길에 앉은뱅이 노인이 보였다. 젖은 바닥을 엉덩이로 기어 내려가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보인 노인의 행색은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그런 행색의 노인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부산역 근처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다.  '바닥이 모두 젖어서 옷도 다 젖었을텐데...'  햇살이 내리 쬐는 날이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내려서 도와주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차는 이미 아파트 주차장에 와있었다. '다시 돌아가 볼까..잘 갔겠지..아니 그래도'  

결국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그 노인이 어떻게 되었나 살폇다. 멀리서 보니 마을 버스 정류장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노숙자들을 몇 번 만난 적이있어서 그들에 대한 낯선 공포같은 것은 없다. 최소한 그들 모두가 알코올중독자거나 행패를 부린다고 생각치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을 확인하고 싶어서 근처까지 갔다.  

오늘은 비가 아침부터 많이 왔고 바닥은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았다. 정말 그것때문이었다.

사람들이 흘깃 흘깃 더러운 냄새가 나는 노인을 지나쳐가고 있었다. 그는 대략 70쯤 되어보였다.실제보다 더 늙어보였을 수도 있다. 노숙자들은 실제보다 더 늙어보인다. 옷은 남루했고 운동화는 아주 낡았다. 손톱은 아주 더러웠고 눈 근처에는 마른 눈꼽이 아직 남아있었다. 흔히 만나는 노숙자들의 행색과 똑같았다. 그래도 술을 마신 것 같진 않았다. 그 노인은 담배를 뒤적였지만 가진 것은 없어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눈 위쪽이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피는 살짝 엉겨붙고 있었다. 나는 괜찮냐고 물었다. 그 노인은 어눌한 말투기는 했지만 괜찮다고 답했다. 무릎이 아파서 ...어딘가에 부딪혔다..라고 말했다. 나는 조심하셔야지요..하면서 잠시 기다리라고하고는 근처 약국으로 갔다. 마데카솔과 대일밴드..그리고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샀다. 노인의 상처는 생각보다 좀 컸다. 마데카솔을 발라주고 대일밴드를 그의 눈 위에 붙여주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큰 밴드를 샀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노인에게 담배 하나를 붙여주었다. 마데카솔과 밴드를 주머니에 챙겨주었다. 가지고 계시다가 떨어지면 또 바르세요..라고 말했다. 노인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빗길인데 조심하셔야된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돌아오면서 두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마데카솔을 먼저 바르는게 아니라 상처를 소독하고 지혈을 조금 더 했어야한다는 것. 침착하지 못했다. 나로서도 우연히 만난 노숙자의 상처를 치료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두번째는 '저 노인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 하는 생각...저녁밥값이라도 드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지금도 마음 한 켠이 씁쓸하다. 노인의 옷은 하루 종일 비를 맞았을 터이고, 나는 부족한 지식으로 대충 상처를 처리하고 말았고, 따뜻한 밥 한 그릇 해결해주지 못했다. 언제쯤 되면 뭐든 제대로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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