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대신에 왕궁의 음탕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십사야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하고 있느냐고 놀린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위에는 서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원 때문에 십원때문에 일원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원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적으냐
정말 얼만큼 적으냐...

-------------------------------------------------------

아무런 합의도 없이 '이리 가자'라고 한 것에 우르르 목을 메고 있다.그 가는 방향이 자존감과 정체성을 훼손 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고사'하게 되는 길인데도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말라 죽는 방향'으로 슬슬 따라간다.

어제 대책회의에서는 밤 10시까지 동어반복만 있었다.이것 저것 생각한 바가 많아서...이래 저래 많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반응이 그렇다. '분석이나 본질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적확하다'..나의 정세 파악을 그렇게 받아들여주니...아주 고맙다.어떤 선배는 끝나고 "야..너 말 잘한다.국회나가도 되겠다."그런다.

나는 그런 분석 속에서 분명히 일관된 대안을 이야기해왔다.아주 지속적으로...

그런데 분석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안은 각양각색이다.첫 단추가 꼬여 있는데 그건 인정하면서 나머지 단추 가지고 어떻게 해보려고 하니 결국 대응논리가 빈약해지고 자기함정에 빠진다.또한 한쪽이 힘의 논리에 의지해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을 이성적 논리로 논박하려고 애쓰고 있다.물론 그 쪽도 완전 무대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결론을 만들어 놓고 움직이는 논리가 있다.나름대로 일관된 자본의 논리와 같은 것이다.

어제 내가 한 이야기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모든 대화는 서로 틀릴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 되어야 가능하다.그런데 현재 저쪽은 조금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득 논리의 부족에 대해 좌절하는가?"   

대개는 '현실'과 '합리'라는 말도 포장된 '패배의식'이다.사람들은 여러모로 분할되어 있고 당장 내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또 직접적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복합적이다.

어제는 그런 말도 인용했다.최근에 보던 책에서 마침 나왔던 말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노동자가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힘의 원천이다" 물론 어제 모임은 노조모임은 아니었다.노동자 대신 다른 이름을 넣으면 된다고 했다.

결국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의 동학에 의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들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피할 수 없는 힘이니까 일단 받아들이고 대신 '희생양'이 죽어 나자빠지기 전에 대타를 보낸다.즉 '고통의 분담'방식...스스로의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집단이 겪을 수 밖에 없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 저것인가보다....깝깝...하다. 

아마 내일도 회의는 이어질 것이다.할 건 이미 다했다.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 하나만은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고 있으며....

하루 하루 참 피곤하다.일도 해야되고 자본과의 싸움도 해야되고...아기도 봐야되고...와이프의 눈치도 봐야되고... 오십원짜리 갈비에 기름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것도 봐야되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9-1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대화는 서로 틀릴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 되어야 가능하다.그런데 현재 저쪽은 조금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득 논리의 부족에 대해 좌절하는가?"

드팀전님 글 중에 요 부분이 '칼 포퍼의 오류가능성 논증'인데,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게 문제겠죠. 흠 늦게까지 고생 많으십니다.

드팀전 2007-09-1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까..그 유명한 칼 포퍼의 논증이었군요.그는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인간은 부족하니까....
그의 점진적 사회공학도 내리 적용이 되겠군요.포퍼는 추상적인 선보다 절대적 악을 제거하라고 했지요.(지난 대선에서 유시민의 민노당 공격 논리도 칼 포퍼에게서 얻었나 봅니다.^^) 또한 악의 제거를 직접적인 수단에 의해 감행하라고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제가 말하고 있는 바가 그 '직접적 수단'이지요..
사실은 그전에 어느 것이 선인가에 대한, '방향'에 대한 수렴이 없었고 막혀있는 것이 문제지요.
 

이랜드...ㅜㅜ  자본주의는 단 한번도 국가와 결탁하지 않은 적이 없다.신자유주의가 국가를 축소하라라고 하는 것은 자본의 움직임에 장애가 될 때뿐이다.즉 신자유주의가 국가와 적대적이라는 것은 거짓이다.자본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거나 물길을 만들어야할때 신자유주의는 또 국가와 결탁한다.이랜드에 공권력이 들어간다.공권력이 누구를 지지하고 지켜주고 있는가...국가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뒤에서 '비용의 내부화'를 넘어 '권력의 사유화'를 지켜주고 있다.용역 경비들을 지켜주고 있는 국가다.

이랜드는 신자유주의의 칼날이 겨누고 있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이제 거짓말하거나 둘러대면서 다른 그럴듯한 말들을 뱉지말자.신자유주의는 '노동'을 노린다.민주노총 포스터 중에 이런 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정규직 당신의 다음 모습입니다" 이런 것이었다.

이 말이 와닿는 사람도 있고 와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많이 와닿는다.실제 돌아다니면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기도하고..또 내가 있는 직장에서도 이런 공포감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비정규직만의 문제는 아니다.정규직들은 이중적 상태에 놓여있다.중간계급의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을 방패막이 삼아 자신을 보호한다.또한 비정규직으로 변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떨면서 자본의 압력에 속속 굴복한다.주눅들어 있는 파편화된 정규직은 호구다.

"직장이 안정성을 상실하고 시간제 고용이 흔해지고 소규모공장과의 외주계약이 관행으로 자리잡으면서 노동자들과 피고용자들은 직장을 잃지 않으려면 좀더 일을 많이 하라는 요구를 받게된다"...

처음에는 노동강도를 높이고 복지를 축소한다.그 다음에는 인원감축에 들어간다.

우리 회사는 97년 IMF때 구조조정으로 여러사람을 내보냈다.그게 끝은 아니다.

회사는 공공연히 이런말을 흘리고 다닌다.

"곧 회사가 이전하는데 신사옥에 전부 데리고 들어가지는 않겠다"

실제 그럴지 않그럴지는 모른다.자본은 '공포'를 흘리고 다닌다.'빈곤의 일상화'는 한순간이다.그건 현재 정규직 노동자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공포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곧 정규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게 아직 안와닿는가?

 당신이 너무 무감하거나,당신이 너무 노동 현장과 멀리 있기때문이거나,당신이 내 능력 하나면 다 해결된다라고 믿는 철부지이거나...이런 것 들중 하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7-2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의 사유화. 공감합니다. 거대자본을 지켜주는 공권력이라니.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하군요. 이러다 지하반군까지 나타나야하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울 2007-07-2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안타깝네요. 마음도 몸도 아프네요. 일터 얘기 한번 나누었으면 좋겠군요. 잘 보았습니다.

마노아 2007-07-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의 이야기인데 그들의 이야기로 착각하며 살곤 하죠.ㅡ.ㅜ

바밤바 2007-07-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치 치하의 민중들이 생각나네요. 비밀 경찰에 주윗 사람이 한나씩 잡혀갔을 때에 모른척 했었다는 그들. 남의 일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그제서야 내재된 분노가 과도하게 표출되곤 하죠. 요즘 님 서재에서 많은 걸 배우네요^^ㅋ

파란여우 2007-07-20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 밖으로 내던져진 존재들의 삶이란...정말 이렇게 나가면 안되는데..안되는데 말입니다.

드팀전 2007-07-2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공권력은 아주 오래던 부터 거대자본을 지켜주었습니다.자본주의와 국가의 밀월관계는 재미있는 공부가 될 듯 합니다
여울마당님>..네.전 마음은 아프고 몸은 피곤하네요.^^ 일터 이야기는 저의 푸념속에서 대충 짐작하세요..^^
마노아님>그래서 타인을 공유하는 감수성이 필요하고 또 인문사회학 공부가 필요한 듯 해요.
구두님>...건물이 대여섯개 있어도..
바밤바님>..로자룩셈부르크의 말이 생각납니다...야만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지금의 자본주의를 세계화라고 하던데..프랑스 좌파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더군요.세계화는 다양성을 포함한 긍정적 측면도 포함하고 있기때문에 현재의 자본주의를 그 용어로 묶어서는 곤란하다고 말이지요...그들은 '(전지구적)야만적 자본주의'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저는 사회 나오면서 점점 더 까칠해져가는 듯 해요.늦돼서 그런가 봅니다.
파란여우님>...곧 많은 사람들이...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습니다...정말 이렇게 나가면 안돼지요.여우님은 일단 자발적 망명을 하신 거라서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 ..

<습관은 무섭다.아직도 서재 1.0 패턴으로 답글을 달고 있다..ㅋㅋ)

전자인간 2007-07-20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은 모든 이들이 비정규직이 될 때까지 밀어붙일 기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기가 목구멍 바로 아래에 올 때까지 그것이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지요. 오히려 자본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나무랍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드팀전 2007-07-21 01:34   좋아요 0 | URL
그들이 문제입니다.^^
 

상이 꽉 차고 있다.축제를 준비하자!

                        ............. 안토니오네그리,마이클 하트 <제국> 한국어판 서문에서

'내츄럴 본 비관주의자'인 제게 오늘 하루 힘을 준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봄, 파르티잔

                       서정춘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남쪽의 봄은 종종걸음을 칩니다.안그래도 짧은 봄이 지구를 데우는 인간들로 인해 더 짧아질 듯 보입니다.<침묵의 봄>이 아니라 언젠가는 <사라진 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최근에 나오는 기상예측도를 보면 수십년 후에는 남쪽지방은 아열대 기후로 들어선다고 하더군요.어제 신문에서는 아열대 기후에만 산다는 어떤 나무가 발견되었다는 것도 언뜻 보았습니다.아열대가 된다고 봄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 천년을 거쳐 내 몸에 각인된 '고향의 봄'이 가진 보송보송한 봄의 기억들은 흐려질 것 같습니다. 

요즘은 답답한 마음에 이민갈까...생각해보곤 합니다.현실이 막혀있을때 도피를 꿈꾸는 것은 자연스렁 인간심성인가 봅니다.가끔 농담삼아  '종교에 귀의 하던지..이민을 간다.' 고 말하곤 합니다.'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가능이야 하겠습니까만...바깥의 문제에 귀를 닫으며 '내면의 탐구'라는 이름으로 숨을 수는 있을 듯 합니다.세상이 어찌되든 일하는 환경이 어찌되든 문제를 '내 안에서' 찾고 '다른 세계'에서 답을 찾는 다면 현실의 압박이 주는 불편함에서 편안해질 것 같긴 합니다. 탈사회화한 관점으로 탈관계화한 관점으로 '노자,장자'를 읽고 '불경'을 읽으면 될 듯 합니다.짖는 것들은-그것이 공격이든 저항이든- '궁극의 지혜'를 모르는 자들도 배제하고 귀 닫고 눈 막고.....결국엔 외부에서 보면 '순응'이고 -과거에 있던 내가 그렇게 보는 것이지 -'내면'으로 들어가면 그닥 괴념치 않을 듯 합니다.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요?

수년전에 외국나가서 공부하려고 외국 대학 사이트들을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뉴욕에 가서 미학이나 대중문화학 같은 것을 공부해보고 싶었지요.한 몇 개월 그러다가 말았습니다.그 때 만약 갔더라면 결혼은 언감생심이었을 듯 하고 -예찬이도 없겠군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듯 합니다.(역사에 가상은 참 부질없네요.) 요즘은 이민 생각이 나서 처음으로 이민관련 업체들의 사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현실의 답답함도 있었고 한겨레 21에서 봤던 김규항의 교육칼럼도 예찬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김규항 칼럼의 내용은...과거 군부정권때보다 자유로와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딱 한 계층만 예외다.아이들..... 아이들은 무한경쟁의 틈에서 살아가고 있다.20년동안 감옥에서 구속되어 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서 어떤 가치로 세상을 살아갈수 있을까..그 아이들이 만드는 사회가 과연 희망적인가...좌파든 우파든 이것을 막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공멸한다.....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만만한게 호주,캐나다,뉴질랜드이더군요.그러나 그것도 돈이 있던가 기술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대개 손으로 하는 직업들이 기술이민에서는 선호되고 있었습니다.배관공,전기기사,용접공,요리사....제가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더군요.옆에서 있는 동료가 아는 사람이 뉴질랜드에서 중국음식점하는데 중식 자격증따면 소개해 줄께요 하더군요.또 어떤 동료로 부터 직원중에 누군가 출근전에 일식자격증 따러다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캐나다에서 일식요리사가 인기인데 한국과 일본이들 외에는 할 줄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입니다.그래서 일식 자격증따면 이민가서 먹고 살길은 있다고....

 스스로도 이런 퇴행적인 상상이나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도대체 이 사회에 무슨 비전이 있을까 ... 극단적인 선택만이 행복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여기에 묻어가면서 저항하는 척 하지만 아이들 학원 자정까지 보내지 않고 밤 10시까지만 보내면 더 나은 건지...

그냥 답답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 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짱꿀라 2007-04-1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장밖으로 나가기 전 좋은 글을 만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옛날의 당(黨)에는 군자도 있고 소인도 있었다. 그 때에는 소인과 군자를 구분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의 당에는 군자도, 소인도 없다. 오직 자기 편이면 등용하고 남의 편이면 등용하길 꺼릴 뿐이다. 이들의 마음씀이 군자답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사람의 성품은 모두 다르지 않으니, 마치 미인을 좋아하고 악취를 싫어하는 것과 같다. 시비를 가리는데 있어서도 옳은 것은 누구나 다 옳다고 여기고, 그른 것은 누구나 그른다고 여긴다. 그런데 지금은 이쪽, 저쪽으로 나뉘어 서로 원수처럼 여기고 있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사(私)가 공(公)을 이기고, 공이 멸하고 사가 굳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폐단이 심해지면 처음에는 그러려니 생각하다가, 마침내 그것을 세상 사는 도리라고 여겨 누구나 굳게 믿게 된다. 이런 곳에서 명예와 이익을 좇는 행위가 본래의 선량한 마음을 좀먹는 것은 물론이다.

-서당(西堂) 이덕수(李德壽:1673∼1744)의 ‘붕당론’(문집 ‘서당사재’에서)

경향신문 <옛 글의 숨결>에서 옮겨봤다...사가 공을 누르게 된 결과가 낳는 사회적 의미가 의미심장하여 다시 한번 읽어본다.

"사가 공을 이기고 공이 멸하고 사가 굳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이러한 폐단이 심해지면 처음에는 그러려니 생각하다가,마침내 그것을 세상사는 도리라고 여겨 누구나 굳게 믿게 된다"

해방 이후 한국 역사가 현재 우리 사회 개개인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을 예견한 글이 아닌가 싶다.일상에서 만나는 가장 큰 벽은 반성하지 않는 이성에서 나오는 '(이 글에 나오는)세상사는 도리에 대한 강한 믿음'이다.군사문화가 만들어 놓은 위계적 조직문화가 그것이며 개인을 인정하지 못하고 집단으로 호명하는 것이 그것이다.연대보다는 작은 틈새라도 먼저 치고 나가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러면 너만 바보 된다'가 그것이고 '그런다고 누가 널 알아 줄지 아냐'가 그것이다.또한 '그래봐야 소용없다.'와 '네 살 길 찾는데 신경쓰는게 낫다'가 그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07-01-3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해방 이후에만 그럴까요? 모든 인간의 삶이 그랬던 것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식민 정책에 '이이제이'만 한 것이 없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삶치고 혼란기 아닌 시대는 없는 셈이죠. 그래서 공자에 썰에 대하여 노자는 그렇게 냉소적이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투지 말라고 하면서요...

드팀전 2007-01-3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언제나 그래왔습니다....제가 이 글을 쓴 것은 붕당의 폐해라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이덕수의 인식을 소중히 여겨서입니다.또한 해방 이후라고 말한 것도 '구체성'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그런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