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제는 진리라는 주제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주체의 실존을 다중적 존재의 순수한 우연에 종속시키는 동시에 사건의 우발적 차원에 종속시킬 수 있는 주체 이론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바울에게 관건은 어떤 법이 모든 정체성을 결여한 주체,어떠한 사건-주체가 그것을 선언하고 있는 사태 외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에 걸려 있는 주체를 구조화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었다.우리가 보기에 핵심적인 사실은 정체성을 갖지 못한 주체와 버팀목 없는 법 사이의 그러한 역설적 결합이 역사 속에서의 보편적 가르침의 가능성 자체를 정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정체성 확인은 시장에 의한 투자를 위한 소재가 되는 하나의 형상을 창출한다....들뢰즈는 '자본의 탈영토화는 지속적인 재영토화를 필요로 한다'.....정체성들은 시장이 지닌 천편일률적인 특권들에 대해 다른 것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노출될 권리만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일반적 등가라는 자본주의 논리와 공동체들이나 소수 집단들의 정체성적.문화적 논리는 유기적으로 접합된 하나의 총체를 형성한다."

"오늘날 세계는 진리 과정에 이중으로 적대적이다.이러한 적대성의 징후는 이름에 의한 은폐에 의해 드러난다.왜냐하면 진리 공정의 이름이 차지해야 할 바로 그곳을 그것을 억압하는 또 다른 이름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적 또는 소수자적 논리는 이러한 유형론에 대한 전유로 회귀하기는 커녕 자본에 의한 명목적 은폐의 한 변형만을 제시할 뿐이다....이 모든 것(화폐적 동질성,정체성요구,자본의 추상적 보편성,부분 집합의 이익을 위한 특수성)과 단절하는 가운데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보편적 개별성의 조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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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2.0인가 김영진이 <추격자>의 김윤석을 두고 한 말이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아비의 동물적인,절실한 보호 본능...."

이건 마치 지금 우리 세계,그리고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에 대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우리를 호명하고 있는 그런 말로 들렸다.

최소한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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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을 참아온 나는

폴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이랑에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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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쓰려고 했다....그런데 부산에는 오늘 아침 봄 눈이 온다.겨우내 한 번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니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려는 듯 눈이 온다.어제 황사때문에 초등학교는 오늘 입학식이다.

날씨가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첫 걸음에 흰 눈은 어떤 의미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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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이 노래집에 있다.

이원수 선생의 노랫말에 백창우가 곡을 붙였다.

이 책은 몽당연필님이 예찬이를 위해 선물해주신 책이다.좀 인사가 늦은 감이 있지만...(몽당연필님!! 너무 감사합니다.아이도 엄마도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저도 다른 엄마 아빠들에게 선물할 때 이 아이템을 선정해야겠어요.)

 
이 책 중에 <석죽>이라는 곡이 있는데 한 번 만 듣고도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로 쉽다.이 곡이 참 마음에 든다.

석죽은 패랭이꽃이라고 한다.정확히는 패랭이꽃이 석죽과이겠지만

 

눈 더미 얼음판 바로 그밑에
네가 살아있었구나 어린 석죽아

긴 겨울 지나면서 멀리간 해를
얼마나 기다렸니 추워떨었니

 

 

해 님이 이제야 네 곁에 와서
얼음박힌 네 손을 녹여주신다

뜨거운 사랑에 네 몸이 녹아
잎사귀에 파아랗게 핏기가 돈다

어린 석죽 작은 풀잎아
이제는 네 속에서 꽃이 피겠네

빠알간 꽃 예쁜 꽃 내 맘 같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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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8-03-0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신랑도 오늘 아침에 출근하다가 다시 들와선 자는 큰아이를 깨우더군요.
"일어나, 얼른. 눈온다. 눈!!"
아이는 아침밥 먹는 내내 학교가서 눈가지고 장난칠거라고 했는데...
눈은 살짝 날리고 말았더군요. 아이가 얼마나 실망하던지....^^;;

그리고 시디, 맘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백창우의 시디를 워낙 좋아해서 나오는 족족 구입했답니다.
선물도 자연히.... ^^

2008-03-11 0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렇게 즐겁게 써도 되는 건가요.테리 이글턴 선생님!!

책 날개를 펼치면 책은 샛빨갛고 표지의 <롱스보전투>의 그림은 매력적입니다.책의 검은 부분부터가 책 날개 껍데기입니다.벗기려고 하다가 귀찮지만 그냥 두고 있습니다.

이 책은 테러를 그냥 폭탄들고 뛰어 들거나 비행기 몰고 돌진하는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테리 이글턴은 인문학적 의미에서 -정확히 말하면 형이상학(이 말은 자주 관념의 장난질 정도로 오해를 받는데 그렇지 않습니다.)-테러를 위치시킵니다.

초반부를 읽고 있는데..굉장히 흥미진진합니다.최초의 테러리스트 지도자는 '디오니소스'라는데요 ^^ 술과 쾌락,정열의 신이자 탐욕스럽고 폭력적이며 차이를 부정하는 획일성의 신.다름 아닌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제 철지난 논의 지만 <디워>와 관련해서 인용할 수 있는 내용이 '디오니스소'에게서 나옵니다.그대로 인용하지요.

"디오니소스 신도들의 도취적 행위는 숨 막히는 이성적 구석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유사 파시스트적 숭배에 취한 일종의 중독 상태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들은 분명 활력 넘치는 집단적,디오니소스적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지만,위계에 대한 그들의 거부는 무리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난 사람을 용인하지 않는 가차 없는 비관용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기때문이다.현대의 대중문화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 숭배자들 역시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을 민중의 무매개적 지혜에서 멀어진 엘리트주의자로서 배격할 것이다.디오니소스 그 자신은 뻔뻔스러운 대중영합주의자로서 본능과 풍속에 호소하며 불경스러운 지적 비판에 일갈을 날린다.그에게서 익히 알려진 직관의 독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에우리피테스의 희곡 <바쿠스>에등장하는 지도자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의 만찬을 상식 밖의 폭력으로 대응합니다.그는 주신의 머리를 베고 성소를 부숴버리려 합니다.

리비도의 반란을 직면한 이성은 난폭해진다.하나의 과잉(아나키)이 또 다른 과잉(독재)를 낳은 것이다.디오니소스 숭배자들에 대한 펜테우스의 대응은 웨이코 종교집단에 대한 FBI의 반응을 연상시킨다.

흥미진진 하지 않으신가요? ^^

이 책을 아마 로쟈님 페이퍼에서 알게 된 듯 한데...탱쓰투를 안한듯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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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0-06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땡스투해놓고 보관함에 넣을께요. :)
 

길에서 잠들다

                    -김윤식

삶이 피곤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물 한 그릇을 얻지 못해서도 아니다 발굽이 다 닳은 나귀처럼 하루 저녁은 서서 잠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속에서 그냥 마른 풀 향기처럼 흩어져도 좋고 모닥불로 사위어도 좋기 때문이다 길 가다가 눕는 곳이 곧 마지막 쉴 집이다 옛날 청도에 가면서는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어깨뼈 위에 이슬이 내렸다.

........................................................

오늘 일찍 출근해서 회사에서 잛게 책을 봤다.글로 사귄 친구는 아니어서 멋있게 '문우'라는 표현을 쓰긴 멋쩍지만 글때문에 알게된 친구가 보내 준 책이다.이 책에서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글은 김윤식 시인의 <길에서 잠들다>이다.시에 과문해서인지 처음 들어보는 시인이었다.이 시 다음 장에는 나귀와 관련된<나귀야>라는 시가 있다.무거운 짐을 짊어진 허름한 나귀가 종이 앞 뒤에 다보탑처럼 새겨져 있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황지우의 '뼈아픈 후회'중에서)임에 땅바닥을 치던 나의 시간도 이렇게 변화해간다.아이때문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남들 다 지고 가는 삶의 무게에 엄살을 부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통속적인 비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내 어깨를 누르는 중력은 나귀와 나의 모습을 오버랩시킨다.그럼에도 한가닥 남은 자존심이랄까 아니면 한쪽에 흐르고 있는 초원을 달리던 DNA의 슬픈 기억이랄까...  '하루 저녁은 서서 잠들고 싶은' '길 가다가 눕는 곳이 곧 마지막 쉴 집'이길 바라는 나귀의 눈빛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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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9-2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념무상, 주어진 삶을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는 바램이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살아봤음 합니다. ㅎㅎ

비로그인 2007-09-2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뼈아픈 후회'는 어느 흐린날 나는 주점에 앉아있을거다 '에 수록된 시가 아닌가요? ^^
인식의 힘 님 서재에 댓글을 남기셨더군요. 파도타고 넘어왔습니다. ^^

드팀전은 메밀꽃필무렵에 나오는 그 드팀전 허생원이 맞나요?
이곳 서재에 잠시 들러 여기저기 둘러보고 갑니다.
드팀전님, 행복한 주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