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르 그뤼미오(1921-1986) 

 

20세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린 연주자다. 흔히들 '프랑코-벨기에 악파'의 적통이라고 말한다. 20세기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계보로 나누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실제적으로 나눈다는 일 자체에 약간의 무리수도 있다. 먼저 하이페츠,오이스트라흐 등으로 대표되는 강철 바이올린족들 인 '러시아악파', 굴렌캄프,슈나이더한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오스트리아악파', 줄리어드 갈마리언의 제자들인 이착펄만,정경화 등과 카네기의 대부 아이작스턴의 '줄리어드-유태인파' 그리고 자크 티보 계열의 '프랑코-벨기에악파' 등이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악파니 동유럽 악파니 분류하는 방식은 더 많다.  20세기 전반부처럼 지리적 한계등으로 연주가 국지화되어 있는 경우는 이런 지리적/학파적 구분 방식이 제법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로 인해 물리적,정서적 공간의 축소가 이루어진 20세기 중후반 이후는 이런 영토적 구분은 사실 좀 의미가 없다. 또한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웠어도 이착 펄만과 정경화의 음악에 대한 접근 방식은 상이한 경우가 많다. 사람의 목소리가 제각각 다른 소리를 만들 듯 제각각의 소리를 가진 바이올린도 각기 개성있는 연주자들을 만나 천만가지의 소리를 만든다. 

내가 처음 클래식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무렵( 대개 그렇듯이 음반 뒷면의 연주자들의 이름을 눈여겨 보고 외우려고 할 때다.) 그는 이름이 입에 잘 달라 붙지 않는 대표적인 연주자 중에 하나였다. "아루트르...아...뭐였더라...방금 전에 봤는데도"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러시아 이름들은 한번에 잘 외워지지 않았다.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등등 . 수 십번을 입으로 발음해보고 또 몇 번을 잊어버리고 나서야 입에 붙었다. (비결은 억지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다음에 또 보고, 그 다음에 기회될 때 또 보고 하는것이다.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가장 유명한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음반들이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전집>, 클라라 하스킬과 함께 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아르투르 그뤼미오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나서 과거 가지고 있던 성음 LP음반에서- 파가니니의 협주곡이었다. 그러니까 이 음반은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듣기 이전 음반 가게가서 누구의 연주인지도 모르고 그냥 둘러보다 사온 것이다- 그뤼미오의 이름을 발견했다.  "아...내가 예전에 들었던게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연주였군."  그러니까 그뤼미오와 나의 인연은 내가 그의 이름을 알기 이전 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연주는 매우 유연하고 다정하며 우아하다. 하이페츠나 코간의 바이올린은 불과 얼음이 서로 쟁투하지만 그뤼미오의 바이올린에는 훈기를 머금은 서풍이 분다. 통기타라도 만져본 사람들은 이런 예를 들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기타를 튜닝할 때 줄의 좀 푼다. 장력을 떨어뜨리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날카롭고 팽팽하던 소리가 좀 둥글둥글해지고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든다. 그뤼미오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다보면 가끔 쇠로 만든 현을 건드리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정도로 유려하고 우아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영화같은데서 보곤하는 낭만적인 프랑스 귀족의 저택 속에 울리고 있을 것 같은 소리. 그뤼미오의 별명을 '궁정악사'라고 하는 것도 틀린 비유는 아닐 성 싶다. 그러나 결코 아름답게만 울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결을 섬세하게 다듬는 능력은 어찌 보면 화장술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반면 그뤼미오의 바이올린에는 드러내지 않는 귀족적인 관능의 격조가 숨겨져 있다. 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태생적인 양반 격조' 다. 그뤼미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부르주아의 미덕' 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여기서 '부르주아'는 정치 경제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연주에서는 어떤 '결기'같은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 결과인지-사실 무림에는 다른 뛰어난 고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러시아나 독일음악에서 그뤼미오의 손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다. 그의 대표적인 명반인 바흐의 <무반주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경우도 헨릭 쉐링이나 나탄 밀스타인등의 연주와 비교해 들어 보면 곡의 원래 양식인 '춤곡'(?)에 매우 충실하다. (이 곡이 춤곡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춤곡으로 작곡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게 정설인 듯 하다. ) 비슷한 예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연주에서 첼리스트 요요마의 연주가 이와 비슷한 양식을 따른다.  

대신 모차르트나 포레, 생상스 같이 좀 더 나긋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연주에서는 엄청난 매력을 발휘한다. 커피에 비유하자면, '원조 프렌치 카푸치노는 이거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달콤 쌉싸름하면서, 오래도록 깊은 향을 남긴다.  

필립스 레이블이 건재하던 시절, 그뤼미오의 연주는 거의 라이센스화 되었다. 덕분에 라이센스로 가지고 있는 음반들이 꽤 있다. 또는 라이센스로 언제든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놓쳐버린 음반들도 꽤 있다. 필립스가 병합되고 더이상 자주빛 레이블을 찾아보기 힘든 시절인지라  잊혀진 그뤼미오의 음반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에 호주 엘로퀸스 시리즈가 수입되었고 덕분에 그뤼미오를 다시 뒤적인다.   

 엘로퀸스 수입 1차분에 포함된 <생상스3번,비외탕 4,5번 바이올린협주곡>, <베토벤,비오티 바이올린협주곡>

 

   

 

 

 

 

<바로크바이올린곡집>, <텔레마, 무반주바이올린환상곡집><베토벤,바이올린 소나타><프랑스벨기에 바이올린소나타(포레,프렝크 외).. 

아래 4장은 1차 수입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곧 수입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2번째 음반은 텔레만의 곡을 2장의 CD로 엮은 것인데 1번 CD는 그뤼미오가 연주하는 텔레만의 12개의 무반주바이올린 환상곡이,2번 CD에는 아이오나 브라운이 연주하는 협주곡이 들어있다. 그 중 무반주 환상곡은 <아르튀르 그뤼미오의 예술>이라는 이름의 2장짜리 국내 라이센스 음반에 포함된 적 있다. 당시 23년 만에 음반으로 발매되는 곡이라고 해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연주는 매우 뛰어나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엘로퀸스 발매덕에 생각이 났다. 현재 국내 라이센스 음반의 수급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겠다. 만약 어려웠다면 반가운 소식일게 분명하다. 3번째 있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와의 베토벤 연주는  아라우의 박스반 외에는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다. 4번째 있는 프랑스,벨기에 소나타음반도 개인적으로는 포레,프랭크의 소나타 3곡이 들어 있는 필립스 음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2장 짜리 소나타 음반에는 그외에 다른 곡들도 여러 곡 들어 있어 살짝 구미가 당긴다. 

2차 수입분을 기다리기 힘든 사람들은 호주 엘로퀸스 사이트로 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buywell.com 이다. 들어가면 한국의 원화로 환전하여 비용을 표시해준다. 대략 호주 내수용 가격은 1CD 기준으로 1만 1천원대 미만이다. 국내 수입가격은 1만 3천원대. 그런데 호주에서 배송 비용을 포함하면 가격은 대략 비슷해진다.  데카나 필립스, DG의 오래된 음원들 중 반가운 것들을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데카에서 나온 앙세르메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거의 모든 레퍼토리가 있는 듯 보였다.  

나처럼 요즘 신예들의 연주보다 옛날 사람들 연주를 더 좋아하는 경우에 건질 음반들이 꽤 있다.  

 간혹 미풍도 불어오는 6월에 듣기 좋은 연주가 아닌가 싶다. 텔레만의 무반주바이올린 환상곡1번 

 

 

  국내 라이센스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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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사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그녀에게>는 '사랑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변주한다. 두 명의 주인공과 그 둘의 사랑. 그리고 상실. 마지막 장면의 또 다른 만남. 속류 변증법의 행보처럼 보여질 수도 있지만 새로움 또한 하나의 '부정'일 수 밖에 없다는 것에 이르면 그런 진부함 대신 채워지지 않는 벌어짐에 대한 애환이 가슴 속에 먹물처럼 퍼진다. 

영화 <그녀에게>는 영화 자체 외에도 볼거리가 있었다. 하나는 브라질 음악의 거장  카에타로 벨로소의 출연이다. 직접 노래를 불러준다. 또 다른 하나는 영화에서 새로운 마주침의 장을 제시하는 발레 극장, 즉 피나바우쉬 프로덕션이다. 

 

피나 바우쉬가 영화<피나>로 돌아온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감독이 빔 벤더스라는 사실. <파리 텍사스>,<베를린 천사의 시>등이 나오던 시기에 비하면 요즘은 좀 뜸해진 것 같다. 하지만 오버하우젠 선언으로 '뉴저먼 시네마'를 열었던 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빔 벤더스이다. 영화<피나>에서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이것이 '3D'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빔 벤더스와 3D.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무용'이라는 주제라면 그 조합이 그리 어색할 것 같지도 않다. 영화나 TV말고 극장무대에서 3D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험하는 곳이 '무용'분야이기 때문이다. 

자...영화 예고편 즐감. 영화<피나>

  

영화가 개봉된다면 이 영화를 볼 것인가?  당연하다.여러 곳에서 개봉할 것 같진 않다. 내 개인적 문제는 아직 3D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3D로 한번 보고 싶다. 

피나 바우쉬의 청소년 프로젝트 다큐 영화도 최근에 있었다. 생전의 피나 바위쉬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곱게 그러나 매우 고집있게 늙은 거장의 얼굴이 보인다.  

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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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리 무어가 멀리 하늘 너머로 간 날, 지구의 많은  라디오방송국들은 그의 음악을 그의 긴 여행의 동반자로 전파에 담아 보냈다.  수 백 광년 떨어진  어느 별의 외계인이 먼 미래 어느날 오늘 공중을 날아다닌 라디오 전파를 수신한다면 "어, 오늘은 왜 이렇게 비슷한 사람의 목소리가 일제히 송신되고 있을까? 이건 무슨 신호지? "라며 갸웃할 것이다. ^^ 칼 세이건식 유머다. 

그가 죽었던 날 나는 창고 속에 갇혀 있는 게리무어의 45회전EP가 꺼내 듣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렸다. 내가 처음을 산 게리무어의 음반이기 때문이다.  고 1때였나 모르겠다. 게리무어의 '파리지나 워커웨이'라는 곡이 무지하게 궁금했다. 하여간 락 음악을 꽤 듣고 있었는데 그 곡과는 인연이 안닿았다. 각 종 음악잡지를 보면 게리무어의 최대 명곡이라고 하는데 그 때까지 단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그 땐 듣고 싶은 노래를 더블 클릭 한 번으로 찾아 들을 수 있던 시기가 아니었다. 음반 가게에 가도 게리무어의 음반은 찾기 힘들었다. 빽판을 뒤져봤는데 그날 마침 없었는지 게리무어의 그 음반은 아니었다. 라디오에서도 잘 나오지 않았다. 

 "이것 참 ...명곡이라는데 낭만적인 곡제목만 알지 노래를 들을 수가 있어야지... 라디오를 그렇게 듣는데도 이 곡이 한 번 안나오다니...도대체 DJ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명곡이라는데... "  하여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즐겨 듣던 전영혁씨의 프로그램에서 간간히 게리무어의 곡이 흘러나왔지만 그 '파리의 산책로'는 아니었다. 콜로세움2 나 게리무어가 씬리지의 필리뇻을 돕기 위해 참여했던 - 내 기억에 2장이었는데 정확치 않다- 음반들, 그리고 그가 솔로 데뷔하고 나온 다른 음반들 이런 것만 간간히 나오는 것이었다. (...아...게리무어때문에 콜로세움2나 씬리지를 다시 연상하다니...씬리지의 음반들을 소개하던 전영혁의 글들과 잡지 사진으로만 눈요기하던 구하기 힘든 음반들. 잡지의 종이 재질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볼게 별로 없던 시절이다 보니 같은 잡지를 보고 또 보던 시절이었다. 그런 반복학습때문에 여전히 그 계보도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나보다. 씬리지의 게리무어 뒤를 이었던 매력적인 이름의 기타리스트 스노위 화이트.....이 사람도 이후 블루스로 전향한다만.그 뒤를 존 사이크스...) 

그렇게 시간은 흘렀갔다. 그러던 어느날, 레코드 샵에서 우연히 라이센스로 나온 45회전 EP를 보게되었다. Emty room이 두 가지 버전으로 있었고 parisienne walkerways도 두 가지 버전으로 실려있었다. 

늘상 33회전으로만 되어 있던 LP플레이어가 45회전으로 쌩쌩 돌며 드디어 그 곡이 흘러나왔다. 특히 라이브 버전에 있던 간주 부분의 피드백 소리는 새파랗던 청춘에게 섬광을 하나 던졌다.  이 음반이다. 

 

"아우.."   

 

 

제일 앞에 있는 검은 장미 음반이 씬리지 시절의 게리무어를 엿볼수 있는 음반이다. 그리고 최고의 락 드러머로 알려진 일찍 세상을 떠난 코지파웰의 솔로 음반(내가 저걸 성음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는데..저기도 게리무어가 기타리스트로 참여했었다.) 그 다음 음반이 존메이어밴드와 플리트우드맥의 명기타리스트 피터 그린을 추모하며-게리무어가 가장 존경하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였다- 만든 음반이다.(그러고보니 요즘 게리무어 음반은 없다. 그다지 듣지 않았다는 증거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게리무어는 블루스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국내에는 Stll got the blues로 공전의 히트를 거두었다. 라디오를 틀면 어디서나 그 곡이 흘러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대학가의 맥주집 앞에 가면 전신만신에 게리무어의 히트곡 음반들이 흘러나왔다. 주로 락발라드류의 음악이었지만 맥주 거품과는 꽤나 잘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하늘에서 절친 필 리뇻과 연주하고 있을 게리 무어를 추억하며 몇 곡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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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인들은 우주가 4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물, 불, 공기, 흙이다. 이런 주장을 최초로 꺼낸 이는 화산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진 엠페도클레스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7현인 중 한명이다. 그는 과거의 각각의 개별 원소가 중심이라는 -예를 들자면 탈레스의 물- 단원론을 통합하여 4개 원소가 우주를 구성한다고 믿었다.  뤽베송의 영화<제5원소>에서는 4원소에 이를 활성화하는 마지막 원소로 '사랑'을 추가한다. 하지만 원래 엠페도클레스에게는 '사랑'의 짝패인 '미움'이 포함된다. 그러니까 '물,불,공기,흙'이 '사랑'과 '미움'을 만나야 변화를 포함한 어떤 상태가 생기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생각에 4라는 숫자는 일종의 신의 완전성,전능성,조화였다. 이는 시공간을 횡단하는 우주적 보편성이라는 의미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4하면 '콰르텟'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현악 4중주'. 현악사중주란 무엇인가?  

 위키피디아에 아주 명쾌하게 정의해 놓았다. 

"In Western art music, which is often referred to as "Classical music," string quartets are considered to be an important type of chamber music. String quartets consist of two violins, a viola, and a cello playing a multi-movement musical composition written in sonata form. The particular choice and number of instruments derives from the registers of the human voice: soprano, alto, tenor and bass."  

그다지 어려운 단어는 없지만 쉽게 요약하면, 2대의 바이올린, 1대의 비올라, 1대의 첼로로 연주하는 실내악이란 말이다. 락 밴드로 치자면 1st 기타, 2nd기타, 베이스, 드럼. 가장 친숙하게는 이런식으로 비유될 수도 있겠다.   

레코딩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훌륭한 지휘자들이 무척 많다. 니키쉬,멩겔베르트, 푸르트뱅글러, 발터, 클렘페르,토스카니니,카라얀 등등... 4중주단의 역사에도 여름밤 하늘에 유독 빛차는 그런 별들이 있다. 모노시절의 부다페스트 사중주단, 부쉬 사중주단. 스트레오시대의 아마데우스, 이탈리아, 과르네리, 줄리아드, 보로딘 사중주단. 그리고 몇 년전 해산한 알반베르크 사중주단까지. 좀 과장하자면, 각 사중주단의 4개의 개별 원소들이 조화와 투쟁을 통해 빚어낸 음악은 각각 그들만의 사운드를 뽐내며 자신들의 작은 성운을 만들어내었다. 

빈 출신의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이 팬들의 아쉬움을 남긴 채 해산을 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단체는 역시 최근에 내한한 에머슨 사중주단과 데카에서 하이페리온으로 소속을 옮기고 브람스 시리즈를 내고 있는 타카시 사중주단이다. 이들은 사중주단의 실력을 가늠한다는 사각의 링과도 같은 베토벤과 바르톡 현악사중주에서 각기 자타가 공인하는 명성을 얻었다. 최소한 현재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이 되려면 이 둘을 정복해야만 하는게 공식인 듯 하다. 에머슨과 타카시 사중주단 모두 이 두 작곡가의 음반으로 각종 음반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타카시의 연주를 커피 한 스푼만큼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에머슨의 독특한 매력을 뿌리치지 못한다. 타카시가 유럽적 전통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콜로라도를 중심으로 활약하는데 반해 에머슨은 너무나도 미국적인 팀이다. 그들은 전형적인 양키, 뉴요커다. 두 팀 사이에는 그들의 음악이 성장한 지역적 차이도 느껴진다.  

 

  에머슨사중주단은 멤버 교체 없이 30년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의 음악적 발전을 위해 서로간의 거리를 둔다고 말한다. 일종의 '음악적인 자유주의'태도이다. 이들에 대한 첫 인상은 천상 뉴욕의 '여피'다. 실제로 이들은 함께 공연을 가더라도 각자 다른 호텔을 이용한다는 소문도 있다. 각자 서로의 취향과 공간을 존중해준다는 것이겠다. 이것이 무슨 분열의 소지가 되거나 하는 일은 아직은 없는 듯 하다. 흔히 정치학에서 말하는 권리중심주의편에서의 평등은 이와같은 형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에머슨사중주단의 특징 중에 하나는 두 명의 바이올린 주자 필립 세처와 유진 드러커가 각각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번갈아 맡는 다는 점이다. 이건 이 단체가 설립되었을때 부터 줄곧 유지되고 있는 특징이다.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의 일종의 위계를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자유 민주적 평등의 방식으로 돌파하고 있다. 물론 어떤 곡에서 누가 1바이올린을 맡을 것인가는 두 연주자들의 음악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에머슨 사중주단의 멤버들은 하여간 무언가 빈틈없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각 멤버간의 사적,음악적 긴장감이 그들의 음악에 텐션을 부과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마치 독립전쟁 이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조화를 통한 견제'라는  방식을 취한 것 처럼 말이다. 베토벤 사중주는 워낙 쟁쟁한 음반들이 많아서 국내에서 많이 사랑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89년 바르톡 음반이나 2000년 쇼스타코비치 음반은 상값을 하는 듯 하다. 특히 바르톡 음반은 에머슨의 능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좀 과장하자면 '에머슨 이후와 에머슨 이전'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에머슨 사중주단을 싫어하는 이들 조차 이들의 연주력은 공히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단지 이지적이고 열정을 억제하는 듯 모던한 해석에 취향의 호불이 갈릴 뿐이다. 마치 하이페츠나 폴리니의 초기음반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어느 누구도 하이페츠를 보고 '내 취향은 아니야'라고 할 수는 있어도 '그의 연주는 수준 이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에머슨 사중주단이 최근에 낸 그리그,시벨리우스 사중주 음반은 정녕 에머슨답다. 북구의 민족적 정서보다는 북구의 차가움을 선택했다고 보면 적절할 듯 하다. 그들은 마치 얼음의 표면처럼 차가운 열정으로 그리그,시벨리우스의 민족적 속성을 걷어내고 음표의 순혈성을 드러낸다.(아래 4번째 음반이 그리스,시벨리우스 사중주단 음반이다.)   

뭐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에머슨이란 이름은 미국의 바로 그 사람이다.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3번이다. 화면왼쪽부터 필립세처, 유진드러커, 데이빗 핀켈,로렌스듀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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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들은 엎어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들 낮달을 바라보 듯 서로의 얼굴을 보며,또 한숨을 한번 쉬고 다시 돌아갈 뿐. 

... 

 포정의 칼을 생각한다. 생명의 온기로 데워진, 

 ....그리고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붉은 핏방울.   

 

종이에 배인 상처를 매만지며  

생리를 시작한 어린 사슴처럼 굴지 말길 바랄 뿐이다.당신. 

 ...

그러한즉 나는 다시 한번 포정의 칼을 생각한다. 

내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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