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130
박시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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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한번 볼까 하고 봤습니다. 시인 이름을 모르는 시집은 거의 제목 보고 고르는군요. 그렇게 만난 시집에 담긴 시가 좋을 때도 있고 무슨 말인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땠을까요. 제가 알아들은 건 얼마 안 됩니다. 아니 알아들었다고 여겼을 뿐 알아들은 게 아닐지도. 급하게 시를 봤습니다. 조금 천천히 봐야 하는데. 시인이 시 한편 쓰는 데 시간 많이 걸리겠지요. 무언가 쓸 게 떠오르고, 한번 썼다가 다시 쓰고 고치고 또 고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쓰고 싶은 거나 쓸 게 떠올랐다고 그걸 바로 쓰지 않을 때도 있을 거예요. 자기 마음에서 그게 익기를 기다리겠지요. 그런 게 많으면 좋을 듯합니다. 시간이 가면 그게 싹을 틔울 테니. 싹을 틔우지 않고 말라버리는 것도 있겠습니다.

 

 앞에서는 시집 제목 보고 이 시집 봤다고 했는데, 시인 이름은 먼저 알았어요. 이름만 알았습니다. 이번이 세번째 시집인데 저는 이걸 첫번째로 만났습니다. 다른 시집 제목도 괜찮아 보이던데, 거기 담신 시도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시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시를 쓰는 걸까요. 이런 걸 잘 말해줄 수 있는 시인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는 다가오고, 세상이 말하는 걸 받아적는다고 할 것 같아요. 그런 말 가끔 봤습니다. 소설은 거기 나오는 사람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하지요. 그런 거 참 부럽습니다. 시인이나 글쓰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해도. 잘못 말했습니다. 글은 누구나 써도 됩니다. 세상에는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다. 책읽기든 글쓰기든 안 해도 사는 데는 문제 없어요. 안 하기보다 하는 게 좀 나은 듯해요. 이것도 누구나 그런 건 아닐지도. 자신한테 맞는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꿈이 될까

꿈이 되면

함께 걸을 수 있다

너의 잠에 다가가고 싶다

외로운 꿈으로서  (<존재의 흐린 빛>에서, 22쪽)

 

 

 

 처음 마음에 든 부분입니다. 시 한편은 아니고 <존재의 흐린 빛>에서 2연입니다. 첫연에서는 개가 될까 해요. 2연에서는 꿈이 되어 누군가의 잠에 다가가고 싶다고 하는군요. 이런 생각도 괜찮네요. 자기 꿈에 누군가 나오기를 바라기도 하는데, 꿈이 되는 게 더 낫겠습니다. ‘외로운 꿈’은 어쩐지 쓸쓸하네요. 꿈이 되어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기분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누구.

 

 

 

생존한다는 건 얼마만큼 토 나오는 것입니까

친애하는 사르트르,

당신은 알고 있었던 건가요?

 

11월이 곧 떠납니다

떠나는 건 붙잡을 수 없어요

사르트르, 떠나보낸 것들은

무사한가요

 

나는 다만 울고 있습니다  (<디어 장폴 사르트르>에서, 27쪽~28쪽)

 

 

 

 박시하 시인은 갑자기 사르트르한테 말하고 싶어서 편지를 썼어요. 그게 시가 됐네요. 이런 시도 괜찮네요. 박시하 시인은 십일월을 좋아할까요. 십일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더군요. 십일월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십일월이 가면 십이월이 오고, 십이월은 한해 마지막 달입니다. 끝으로 가는. 떠나는 건 붙잡을 수 없다는 말은 슬픕니다. 떠나는 시간도 잡을 수 없군요. 이 시에서는 마지막 연 ‘나는 다만 울고 있습니다’고 한 말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을 때 있잖아요. 울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박준 산문집 제목과 비슷한 말이군요). 그래도 잠시 울어도 괜찮겠지요.

 

 이 시집에서 마음에 든 시가 아주 없지는 않은데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시든 소설이든 그걸 보는 데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아주 다르게 보면 안 될 텐데 싶습니다. 박시하 시인 이름은 기억하겠습니다. 지금 보니 이름이 시 같네요. 이름에 ‘시’가 들어간다고 이런 말을 하다니. 박시하 시인 이름에서 ‘시’가 시(詩)와 같은 뜻이 아닐지도 모를 텐데. 제목에 있는 ‘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는 <디어 장폴 사르트르>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사람은 서로 주고받는 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그런 거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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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7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니 저도 무언가 주고 받은 느낌이 드네요. 존재의 흐린 빛에 나온 시구절 정말 좋네요~!! 저도 12월보다는 11월이 주는 느낌이 더 좋더라구요😊

희선 2021-07-18 01:12   좋아요 2 | URL
사람은 다 무언가 주고받겠지요 여기 알라딘에서도 다르지 않네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보고 이런저런 마음이나 생각을 주고받는군요 십이월은 마지막 달이어서, 그전달인 십일월에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달은 마무리 해야 해서 다른 건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희선
 

 

 

 

하늘 높이 떠오른 달은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게 즐거웠어요

 

가끔 구름이 앞을 가려

세상이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구름이 달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자신이 본 걸 달한테 말해줬어요

 

달은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만큼

구름이 해주는 이야기도 좋아했어요

 

달과 구름은

좋은 친구가 됐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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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7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과 구름을 보고 이런 표현을 생각하시다니 완전 감탄합니다 ^^

희선 2021-07-18 01:08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은 뭐든 좋게 봐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1-07-17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선 2021-07-18 01:09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 님 고맙습니다


희선
 
나의 꽃은 가깝고 낯설다 에밀리 디킨슨 시선 4
에밀리 디킨슨 지음, 박혜란 옮김 / 파시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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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리 디킨슨 이름은 알았지만 이렇게 시집 한권을 보기는 처음이야. 그렇다고 시를 하나도 안 본 건 아니지만. 다른 책에 실린 시 한두편밖에 못 봤어. 그런 시와 여기 담긴 시는 조금 달라 보이기도 하는군. 에밀리 디킨슨은 시 제목을 안 썼나 봐. 제목이 없다니. 에밀리는 많은 시를 썼지만 책으로 내지 않았다고 해. 그저 시를 쓰고 가까운 사람한테만 보여줬대. 에밀리는 처음부터 자신이 쓴 시를 책으로 낼 마음이 없었을까,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게 됐을까. 에밀리 이야기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텐데 그건 것도 본 적 없어. 아니 《에밀리》라는 그림책은 봤군. 이웃집 아이가 에밀리를 알게 되고 만나는 이야기. 그리 길지 않지만 괜찮았어.

 

 언젠가 에밀리가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한 적 있어. 에밀리는 좋아하지 않았을까. 실제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만날 수 있으니 말이야. 이건 내 이야기군. 에밀리가 모르는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해도 가까운 사람은 가끔 만났겠지. 에밀리를 만나러 온 사람도 있었을 거 아니야. 에밀리가 늘 집 안에만 있었던 건 아닐 거야. 에밀리한테는 자신이 돌보는 뜰도 있었어. 사람보다 그런 걸 더 자주 만나고 글로도 썼겠어. 여기 담긴 시를 보면 에밀리 자신이 만난 꽃, 벌, 나비, 새, 바람 이런 걸 말하는 것 같은데. 분명한 건 나도 잘 모르겠어. 꽃이름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건 은유로 쓴 느낌이 들기도 해. 에밀리가 가꾼 뜰에는 여러 가지 꽃이 피었을 것 같아.

 

 

 

나의 나라와 ─ 다른 이들 사이에 ─

바다가 하나 있지만 ─

꽃들이 ─ 우리 사이에서 중재하는 ─

직무를 다한다

 

-<나의 나라와 다른 이들 사이에>, 51쪽

 

 

 

 여기에서 시 제목은 첫 연을 썼어. 이건 차례에 쓰인 거고 책속에는 제목 안 쓰였어. 앞에서 에밀리가 가까운 사람한테 시를 보여줬다고 했잖아. 에밀리는 뜰에서 본 걸 시로 썼어. 그게 있어서 에밀리는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있었겠어. 실제 하는 말이 아닌 글말일지라도. 어떤 책에서 보니 에밀리는 2층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나도 밖에 나가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오랫동안 집 안에만 있지는 않아. 걸으려고 밖에 나가고 나무나 꽃을 보러 밖에 나가. 하늘도 보는군. 에밀리가 살았을 때는 둘레가 걷기에 좋았을 것 같아. 나무 꽃 새와 벌이 많이 보였을 테니. 이제 그런 곳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아주 사라지지 않아야 할 텐데.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해. 에밀리가 밤에 아주 안 나온 건 아니겠지.

 

 

 

정말 “아침”은 올까?

“낮” 같은 게 있을까

내 키가 산 만하면

산에서는 볼 수 있을까?

 

수련 같은 발이 있을까?

새 같은 깃털이 있을까?

나는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유명한 나라에서 가져온 걸까?

 

오 어떤 학자! 오 어떤 선원!

오 하늘에서 내려온 어떤 현자!

작은 순례자에게 꼭 알려주세요

“아침”이라 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정말 “아침”은 올까?>, 97쪽

 

 

 

 앞에 옮겨쓴 시 잘 모르겠지만 조금 마음에 들었어. “아침”은 올까 하고 생각하는 게. 아침은 늘 오지. 밤이 가면. 밤이 가는 모습을 보고 아침이 오는 걸 보고 잠들 때가 많다니. 이젠 좀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아침이 와서 반갑기는 해. 이 세상에는 아침을 맞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거야.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기쁜 일이지. 세상에는 기뻐할 일 고마워할 일이 많아. 그런 걸 가끔 잊어버리지만. 다른 생각에 빠져서. 에밀리는 어땠을까. 에밀리는 고마운 일 기쁜 일 자주 생각했을 것 같아. 그걸 시로 썼겠지. 시로 쓸 걸 잘 찾아냈을 것 같아. 그런 거 부럽군.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빨강머리 앤뿐 아니라 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에밀리 이야기도 썼어. 그 에밀리는 시인 에밀리와 상관있을까. 앤이나 에밀리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 분신이었겠지만, 이름이 같은 에밀리는 시인 에밀리도 생각나게 해. 언젠가 또 에밀리 시 만나고 싶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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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7 0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왠지 에밀리 디킨스 시랑 희선님 시랑 비슷한 감성이 느껴지네요~!! 저도 이 시집을 읽어봐야 겠어요 😊

희선 2021-07-17 02:39   좋아요 2 | URL
에밀리 시 많은데 별로 못 봤네요 에밀리 시와 제가 쓴 게 감성이 비슷하다니, 부끄럽네요 저는 대충 써서...


희선

미미 2021-07-15 0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이 글의 어감 좋아요!! 어쩐지 발췌한 시 와도 잘 어우러지고요.😉

희선 2021-07-17 02:43   좋아요 3 | URL
미미 님 고맙습니다 에밀리 시 잘 모르지만, 만나 보니 괜찮았습니다 언젠가 또 시 만나고 싶네요


희선

책읽는나무 2022-11-26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에밀리 디킨슨 시집을 두 권 읽었어요. 시집을 읽으면서 희선님을 떠올렸구요. 디킨슨 시가 좀 어렵다? 생각하며 다른 분들 리뷰 찾아 보는데 희선님의 리뷰도 있어 반갑네요^^ 이상하게 희선님과 디킨슨의 분위기나 삶이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희선 2022-12-01 01:26   좋아요 1 | URL
잘 모르면서 에밀리 디킨슨 시집 봤습니다 저는 이거 한권밖에 못 봤어요 언젠가 또 볼지... 보고 싶기도 하네요 에밀리 디킨슨을 그림책으로 그린 것도 있어요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실제 있었던 일인지 상상인지... 상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거기 나오는 에밀리는 실제 에밀리와 닮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당신은 저를 모르겠지만

전 당신을 조금 알아요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모르지만 아는

그 거리도 나쁘지 않아요

바라는 마음이 없으니

 

서로 알면

바랄까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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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5 0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면 바라게 된다는게 맞는거 같아요.
모르지만 아는 그 거리는 어느정도 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

희선 2021-07-17 02:33   좋아요 1 | URL
그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으면 좋을 텐데, 어느 때는 바라기도 하는군요 모르지만 아는 거리, 자기만 아는 사람... 상대는 자신을 모르니 바라려고 해도 바랄 수 없잖아요 그건 그것대로 시간이 가면 조금 슬플지도...


희선
 

 

 

 


영시가 지나자

오늘이 찾아왔다

 

오늘은 어제 기다리던 내일이지만,

오늘은 오늘일 뿐 내일이 될 수 없다

 

만날 수 없는 내일보다

오늘을 잘 만나야지

 

반가워, 오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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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4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시도 좋네요~!!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 지금 이순간에도 오늘이 지나가고 있다는게 슬프긴 하네요 ㅜㅜ

희선 2021-07-15 00:39   좋아요 2 | URL
시간은 쉬지 않고 가는군요 지금을 생각하고 즐겁게 지내면 좋을 듯합니다 늘 즐겁게 지내는 건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하루가 가고 새로운 하루가 왔네요 아직 어둡지만... 새파랑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1-07-14 1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ts zero o‘clock 이 생각나는건 왜일까요?^^

희선 2021-07-15 00:41   좋아요 2 | URL
조금 전에 찾아서 들어보니 ‘초침과 분침이 겹칠 때 세상은 아주 잠깐 숨을 참아’ 하는 부분 좋네요 세상이 잠깐 숨을 참고 시간이 조금 지났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1-07-14 1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즐기는 게 제일이라고 합니다.

희선 2021-07-15 00:42   좋아요 2 | URL
지금 할 걸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못할지도 모르죠 그러면서도 잘 미루는군요 미루고는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하기도 합니다


희선

han22598 2021-07-15 05: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가워, 오늘!
반가워요. 희선님.
오늘도 이렇게 희망적인 시를 써주셔서. 오늘도 반가워요!

희선 2021-07-17 02:31   좋아요 0 | URL
han22598 님 저도 반가워요 오늘에 희망을 가지면 좋을 듯합니다 오늘이 가면 또 다른 오늘이 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