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멈춘 것도 아닌데 ‘다시 시작’이라 했다. 며칠 그러니까 가에서 하까지 쓰는 동안은 막연히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다고 바로 쓸 게 떠오른 건 아니지만. 하까지 쓰고 잠깐 거꾸로 써 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만두기로 했다. 뒤에는 억지스럽기도 하니.
날마다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글을 쓴 건 아니지만, 드디어 일천(1000)이 넘었다. 이건 일천두번째다. 지금까지 쓴 글 잘 썼다고 말하기 어렵다. 뭐든 써야 해 하고 썼으니. 그렇게 써서 어쩌다 한번 괜찮은 것도 쓰지 않았나 싶다. 가끔 내가 쓴 글 보고, 내가 이런 걸 썼다니 하기도 한다. 예전에도 이 말 했구나.
천한번째 ‘하아’를 쓰고 앞으로 뭐 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글쓰기 자신 없어져서 그렇구나. 자주 쓰면 뭐든지 쓸 수 있다는 말 본 적 있는데, 난 반대로 자신 없어졌다. 어쩌면 ‘가에서 하까지’ 다는 아니어도 쓸 게 있었는데, 이제 그게 없어져서 그랬나 보다. 다른 때라고 쓸 게 있어서 쓴 건 아니다. 그냥 쓰려고 하니 쓸 게 떠올랐다. 그런 뜻에서 ‘다시 시작’이라 할 수도 있겠다.
가끔 쓸 게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런 일은 어쩌다 한번이다. 평소에 쓸거리를 모아두면 좋을 텐데, 그런 거 잘 못한다. 쓸거리를 주우러 걷는다는 말이 나온 소설을 보기도 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기는 한데, 그것도 가끔이다. 난 쓸거리를 모아뒀다 쓰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 모아두려고 하지도 않았구나. 생각해뒀다 하나씩 쓰면 좋을 텐데. 하루키는 머릿속 서랍에 정리해 둔다고 했던가. 그것뿐 아니라 적어둔다고도 했던 것 같다. 윤성희는 첫 문장을 쓰고 그걸 늘려간다고 한다. 그걸 눈굴리기라 말했다. 나도 그런 거 해볼까 했는데 아직 못 해봤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려고 하기보다 먼저 쓰는 게 낫겠지. 앞으로도 쓸 게 없어도 쓰려고 해야겠다. 그러면 가끔 괜찮은 게 떠오를지도 모르지.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