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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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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로 통하는 길은, 십 년 전에 딩씨 마을 사람들이 피를 팔아 닦은 시멘트 길이었다.' 
피를 팔아 나 뿐만이 아니라 마을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왠지 섬뜩하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딩씨 마을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피를 팔는 것이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 자신들의 피를 처음엔 한달에 한 번 팔던 것이 이십일 십오일 그렇게 모두가 안이하게 꿈에 부풀어 있을 즈음 그들은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는 병 '열병이라 하는 에이즈' 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피를 팔았던,피를 팔지 않았던 걸려 들고 말았다.

'피를 파실 분,피 사실 분 안계세요?'
어찌보면 그들의 치부를 들어내는 소설이라 '창작의 날개를 꺾인 소설' 이 되었던 것인지,아님 옮긴이의 말차럼 '침회 의식의 결여'로 인한 비극에 둔감한 중국인들에게 너무도 비극적이라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딩후이' 를 놓고 보면 끝 없는 인간의 욕망의 끝이 얼마나 무서운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학교에서 종을 치는 일을 하며 선생님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는 인생이 한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것처럼 언제나 늘 올곧은 딩후이의 아버지인 할어버지와는 다르게 그의 아들들은 큰아들 딩후이도 욕심이 끝이 없었지만 딩 량 또한 열병에 걸린 이후 아내가 아닌 사촌의 아내인 링링과의 불륜을 저지른다. 할아버지의 아들들은 딩씨 마을에서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이며 딩후이는 딩씨 마을의 사람들이 '열병' 에 걸리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열두살의 딩후이의 아들이면서 그는 독이 들어 있는 과일을 먹고 죽었다. 할아버지가 있는 학교의 담장에 묻혀 있는데 그가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화자이다.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인물로는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딩후이가 평행선처럼 이야기 끝까지 나란히 간다. 어느 쪽으로 치우침없이 늘 변함없고 반듯한 할어버지와는 다르게 그의 아들인 딩후이는 그야말로 변신술이 남다른 인간이다. 언제든 자신에게 유리하면 무엇이든 남을 속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부를 축적하려 한다. 가난하던 마을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매혈' 을 누구보다 잘 이용하여 큰 부자가 된 딩후이,그는 남들과 다르게 삼층집에서 살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없다. 그가 피를 뽑을 때 솜과 주사기를 여러번 사용하여 열병이 더 번졌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그를 죽도록 미워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실들을 알고 또 그 사실때문에 손자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개두' 를 하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난일을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그런 아들의 목을 조르고 그를 죽음직전까지 가게 하지만 아들은 그후에도 달라짐이 없다. 오히려 어려움을 악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더 축적한다.

'모두 오늘은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직 우리 할아버지의 몸에만 열병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열병이 전염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리자가 되었다.' '새월이 시신 같았다.'  오늘은 있지만 내일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직전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학교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면서도 도둑질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죽고나면 관에 까지 '관인' 을 넣어 달라는 둥, 그들이 평생 집착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느껴본다. 딩씨 마을의 '고통과 절망' 을 끝내는 동시에 아들인 딩후이의 욕망을 잠재우는 길은 아들인 딩후이를 그의 손으로 죽이는 일 뿐이다. 과연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일 수 있을까?

'온 하늘과 땅을 뒤덮은 꽃의 바다가 평원 위로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딩씨 마을과 딩씨 마을 어귀로, 논밭과 황허 고도 위로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온갖 색깔의 빛을 뿜어내면서 황금 벽돌과 황금 기와,황금 가지,금괴와 금구슬을 연결 시키고 있었다... 땅위에는 신선한 곷들이 만발하고 땅 밑에서는 황금 열매가 맺히는 광경' 할아버지가 꿈 속에서 보았던 딩씨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 할아버지의 꿈이며 딩씨 마을이 이루고자 한 꿈일터지만 '매혈' 로 인하여 딩씨 마을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가축들이 죽고 관을 짜기 위하여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 되어가고 말았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란 말인가? 쉽게 돈을 쥘 수 있을 때는 피를 한 번 뽑고 설탕물을 먹고 한나절 누워 있으면 부를 쥘 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그게 바로 자신들이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길이었던 것이다. 

처절한 '고통과 절망' 을 피 비린내를 풍기며 너무도 세세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십만 자에 달아하는 이 작품을 쓰면서 내가 소모한 것은 체력이 아니라 생명이었다는 사실이다.' 매혈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음에 이르렀는가.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이 부른 '고통과 절망 죽음 그리고 폐허와 몰락' 의 세상에서 그야말로 '하늘이 바뀌고 땅이 변한 마을' 이 되어 버린 딩씨 마을은 미래가 없다. 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그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이야. 하루를 살면 하루의 의미가 생겨날 뿐이지.' 라는 삼촌의 말처럼 당장 오늘 하루의 의미로 살던 그들이 학교의 칠판까지 모두 떼어내어 가져가 버린 텅빈 학교처럼 미래를 위해 나무 한 그루,칠판 하나 남겨 두었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찌 되었을까? 스피노자의 말처럼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생각을 달리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열병이라고 하는 '에이즈' 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와 비슷한 소설로 알고 있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어보려 하다 기회를 잃었는데 이참에 한번 읽어봐야 겠다. 독특하면서도 삶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갖게 했던 소설로 여운이 길게 남을 듯 하다. 초판이라 '오자' 가 넘 많아 약간 먹구름이 끼게 하였지만 재판에서는 수정되리라 본다. 좋은 소설을 만난 기쁨은 오래도록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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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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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목표한 것이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이며 지금도 그들의 책에 주목하고 있다. 내가 주로 읽는 것은 문학이고 소설인데 우리 문학을 짊어지고 나갈 젊은 작가들에는 인색했던것 같기도 하고 풋풋한 그들의 '창의력' 이 조금은 등한시된 듯 하여 좀더 '젊은작가' 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작가가 '천명관' '편혜영' '안보윤' '천운영' '김숨' 등 둘러보니 읽어야 할 작가들의 작품이 너무도 많았다. 어찌보면 출판사의 전략도 있는데 일본소설은 쉽고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반면에 우리젊은 작가들은 한발 뒤로 물러나 아직 햇빛을 기다리고 있는 작가들이 많은듯 하다.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 문학의 미래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7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김중혁,편혜영,이장욱,배명훈,김미월,정소현,김성중.그중에 내가 알고 있는 작가로는 편혜영과 배명훈이다. 편혜영은 <재와 빨강>을 구매를 해 놓고 아직 읽지를 못했다. 반면에 배명훈은 그의 작품 <타워>를 알고 있는데 아직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두다 생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풋풋한 새싹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무언가 때가 덜 묻은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고 <문학동네>에서 좋은 취지에서 마련한 상인듯 하여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누군가는 그들을 '양지' 로 나오게 하여 좀더 밝은 빛을 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인 것이다.

대상 김중혁의 <1F/B1>은 정말 기발한 상상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역시 젊은작가답다고 해야 하나, 계단 층계참에 쓰인 표지판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참신하다. 그리고 그 글씨로 유추해낸 것이 너무도 기막혀서 한참 웃었다. 그의 창작노트를 살짝 들여다 보니 '장편용' 과 '단편용' 노트 두권을 쓴다고 하는데 '단편을 쓸땐 즐겁게 쓰려고 한다. 즐겁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라는 말이 있었다. 공감이다. 우선적으로 글쓰기는 자신에게 즐거움이거나 남이 읽어서 즐거움을 준다면 더없이 좋은듯 하다.읽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읽어서 스트레스를 주는 글보다는 즐거움을 준다면 독서의 즐거움에 하나를 더 추가해 주는 것이다. '표지판 속에서 'FBI' 라는 단어가 보였다. 그럼 이 모든 사건이 FBI의 음모였단 말인가' 라는 말에 그만 참고 있던 웃음이 한방에 터져 버렸다. 홈세이프빌딩을 비롯하여 주변에 불이 모두 나간것은 '거대한 음모' 가 숨어 있기는 하나 계단참의 표지판을 보고 FBI의 음모나 층과 층 사이,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무언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틈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여 마지막에는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가 그려낸 사건은 재미있었다.생각의 반전을 가져다주는 그의 기발함이 빛을 발했던 작품이다.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아직 그녀를 사랑하는지 아님 헤어져야 하는지 구분을 하지 못한 남자,그런 그가 친구에게 사회에서 은혜를 입은 이의 죽음이 입박하다며 꽃집을 하는 그에게 '화한' 을 부탁한다. 하지만 그날 저녁엔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화한을 가져갔지만 그는 아직 세상을 하직하고 않았고 김은 어쩔 줄 몰라 그가 죽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에 그녀와의 통화를 한다. 그녀와 헤어져야 겠다고 생각을 굳히는 그가 죽음앞에서의 긴 기다림에 지쳐갈 즈음 자신의 앞에서 교통사고로 인하여 차에 불이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구애의 전화' 를 하고 만다. 자신의 진심이었을까.낯선 곳의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맞닥뜨리고 이별을 선고하려던 그가 갑자기 선택해야 했던 살고자 하는 욕망의 구애, 자신의 앞에서 자신의 머뭇거림의 분신처럼 타오르는던 '조등' 을 보고 그가 느낀 진심은 어쩌면 좀더 안늑한 일상에 안주하려는 우리 본심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녀의 <재와 빨강>이 더 읽고 싶어졌다.

이장욱의 <변희봉> 이혼을 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가 선택한 것은 새삼스럽게 '연기' 였다. 그의 눈에 요즘 들어 자주 보이는 배우 '변희봉'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가 출연한 영화조차 다른 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또렷하게 배우 변희봉이 보인다. 지하철 계단에서 시장바닥에서 생선을 파는 이로 그리곤 결혼식의 주례사로 보이기도 한다. 무언이 진실일까. 죽어가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조차 '만기야... 니 밴....희봉이라고....아나?' 라는 말이었다. '인생은 왜 빛이며 죽음은 왜 어둠인가. 삶은 오히려 어둠의 편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인형의 집>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의 희망은 어둠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며 고작 그가 계속 그려냈던 인물인 '변희봉' 이 거짓으로 드러나며 그의 환상과 빚에 떠밀려 나는 삶인 현실이 극을 이루고 있다. 환상과 현실의 사이에 낸 작은 구멍인 변희봉, 삶은 오히려 어둠의 편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검은 빛속에 밝음을 표현한 렘브란트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었다. 

배명훈의 <안녕,인공존재> 라는 작품은 참 독특하다. 세상에 없는 독특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신우정 박사가 이경수에게 남긴 '존재' 라는 물건을 의미를 풀 열쇠를 누구도 찾지 못한다. 잘나가던 그녀가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것 또한 의문인데 그녀가 남긴 유작 또한 '의문의 돌덩어리' 이다. 아무리 해도 그녀가 남긴 '존재' 의 의미를 풀지 못하는 그는 우주비행중에 '존재' 를 우주로 보낼 결심을 하고는 그 존재를 우주로 보내는 의식을 생중계한다. 그 존재는 우주로 나아가 비로소 '존재의 의미' 가 풀리며 우주폭발을 하고 만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도 존재가 존재하며 단어와 단어사이에도 존재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전해준 작품인 '인공존재' 는 존재를 깨뜨려야만 새로운 존재를 탄생 시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 작품이기도 한 것 같다.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 이 작품은 천운영의 <잘가라,서커스>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불법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취업비자를 얻어 취업을 하려는 그들이 어학원엔 이름만 올려 놓듯 하고 생계를 위하여 불법취업도 하고 혹은 돈을 위해 몸을 팔듯 우리나라에 시집을 온 애인을 찾아 오기도 하면서 빚어 지는 이야기. 우리의 주위에서도 보면 제일 힘든 3D업종은 우리나라 사람들 보다는 해외사람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을 받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도 한때는 가난하여 해외취업을 나갔던 나라이고 그렇게 하여 부강해진 나라이거늘 배가 불러서일까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그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삼기도 하고 월급을 갈취하기도 한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애인을 찾아 인천에 온 '쓰엉'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이의 아내가 되어 임신을 하고 있다. 그래도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이 그녀만 향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일을 저질러 종국엔 강제출국을 당하게 되고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그를 위한 '두툼한 외투' 하나를 선물하지만 그에게 전달할 길이 없다.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나보다 못한 그들에게 우린 언제 세계화를 할지, 우리의 가슴아픈 현실의 단면을 들여다 본듯 하여 마음이 아팠던 작품이다.

그외 정소현의 <돌아오다> 김성중의 <개그맨> 도 좋은 작품이었다. 7인의 7색을 들여다 볼 수 있기도 하고 우리 일상속 한 단면을 젊은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새로 들여다 본 듯 하여 신선했다.김중혁이 보여준 우리가 놓친 일상의 '사이' 처럼 삶과 죽음 혹은 환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들인듯 하다. 표지부터 작가들의 캐리커쳐로 독틈함과 새싹처럼 연두빛 제목에서 보여준 싱싱함이 앞으로 계속될 '젊은작가상'을 주목하게 만들어주었다.원석으로 빛을 발하기 보다는 다듬고 닦아 아름다운 '보석' 으로 거듭나는 가교 역할을 문학동네가 해주지 않았나싶다. 녹음이 짙은 여름에 초록빛처럼 싱그런 젊은작가들의 풋풋한 작품들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던 것도 기쁨이다. 1회를 지나 2회를 기대하고 더 많은 젊은작가와 작품들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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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J.M.G. 르 클레지오 지음, 홍상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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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바로 그들의 진정한 세계였다. 금속과 시멘트의 도시가 아닌, 이 모래, 이 돌, 이 하늘, 이 태양, 이 침묵, 이 고통은 샘이 흐르는 소리와 인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들의 세계였다.’  사막, 그곳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모래만 존재할 것 같은 그들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하여 조상들은 ’문명’ 과 싸우며 그곳을 지켜냈다. 태어나면서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조상과는 ’단절’ 된 그녀는 고모인 아암마와 함께 살아가며 엄마의 이야기,조상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소설은 랄라의 조상인 ’누르’ 의 이야기와 현재 사막에서 살고 있는 ’랄라’ 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날실과 씨실처럼 엮어 아름다운 한편의 서사시를 만들어냈다.

모래사막과 바다가 전부인 그곳, 그녀가 문명세계에 대하여 전해 듣는것은 ’나망’ 이라는 늙은 어부에게서가 전부이다. 그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가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사막을 사랑하고 자연이 몸에 벤 강인한 소녀이다. 사막에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휘파람’ 만으로도 동물을 움직이고 통제하게 하는 목동인 ’하르타니’ 가 있다. 그는 그녀보다 두살아래지만 그의 강인한 눈빛과 거침없이 사막을 제 집처럼 질주하는 그에게서 강한 사랑을 느낀다. 그런 그녀에게 문명세계에서 온 결혼할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가 가져온 ’문명’ 이나 ’돈’ 으로 비유될 것들은 그녀에게 필요치 않다. 랄라에겐 아무것도 없지만 사막의 자유로움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하르타니가 그녀의 삶의 안내자이고 동반자인것 것이다. 하르타니도 그녀도 사막을 떠나서의 삶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함께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온몸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순간, 그곳은 그녀에게 어머니이고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인 곳이다.

사막에서의 행복한  기억들, ’랄라는 모든 길들과 모래언덕의 움푹 파인 웅덩이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눈을 감고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맨발로 땅을 디디기만 해도 지금 어디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전하고 행복한 곳에서 비록 먹을 것은 부족하지만 행복으로 충만한 그녀의 사막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아름다운 시처럼 고운 모래알로 박혀 느린 템포로 읽어야만 사막 곳곳을 탐험하고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카메라’ 로 찍어 놓은 듯 정교하게 그려낸 문장들은 급속은 안된다는 경제속도를 숨겨 놓은 것처럼 진도가 나지 않는다.그래도 작가가 그려낸 정교한 모래언덕을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독서의 즐거움은 스러지지 않는다. 

하르타니와 새로운 삶은 선택하여 탈출을 하였던 그녀,마르세이유의 허름한 빈민가에서 새로운 삶에 도전을 하지만 껍데기만 다른 삶, 마음은 늘 ’사막’ 의 자유롭고 자연과 함께 하던 그 때로 향하고 있었다. ’ 다음에 떠나실 때는 나도 데려가주세요.’ 랄라가 나망에게 말하면 ’ 그렇지만 너는 가게 될거야. 이 도시들은 모두 볼 수 있을 테지.그리고 나처럼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게야.’ 나망이 다시 사막으로 돌아온 것처럼 랄라 그녀 또한 마르세이유의 삶에 길들여지기도 전에 그녀는 원시의 삶인 살아 숨쉬는 사막으로 돌아와 하루타니의 아이를 출산한다. 사막에서 살 때는 문화적인 삶을 동경했지만 막상 자신이 그 삶을 겪어 보고는 물질이 풍부한 삶이 모든이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에게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하고 강인한 사막이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이란 것을 알게 된다.

’대사막, 그곳에서는 말야, 사람들이 며칠을 걸어도 집 한 채 보이지 않고 우물 하나도 마주칠 수 없을 때가 있단다. 왜냐하면 사막은 너무 광막해서 아무도 사막을 전부 샅샅이 알 수가 없기 때문이야. 사막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마치 바다 위에 뜬 배에 타고 있는 것과도 같아서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어,어떤 때는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지.’

’도시는 이상한 곳이다.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사막에도 삶이 있고 자유가 있고 자연이 있고 폭풍우가 있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문명이 발달된 곳만 역사가 있고 행복이 있다는 것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작가의 역량이 담겨 있다. 랄라가 일탈을 꿈꾸는 삶은 우리도 한 번쯤은 꿈꾸며 산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일상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살는 삶이 대부분이라면 한번쯤 경험을 하듯 새로운 일탈을 행하며 산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한 듯 하다. 마르세이유에서의 삶에 익숙하지 못했던 것 또한 사막의 자유에 너무 깃들여져 있어서가 아닌가 한다.

이 책은 언젠가는 꼭 한번은 ’사막여행’ 을 하고 싶은 로망을 가지고 있어 더 읽게 되었다. 작가의 다른 책들을 가지고 있지만 ’노벨문학상’ 의 작가들 책은 왠지 더 읽혀지지 않는다.작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 뒤로 미루다 잡게 되었는데 언젠가 티비에서 보았던 사막여행중 장면중에 물한방을 떨어 뜨리니 바삭 말라 있던 죽은 식물과 같았던 것이 금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사막의 자연에 길들여진 식물을 보고는 모래뿐이라고 알고 있는 그곳에도 생명이 있는 식물과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더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소설도 더 재밌게 읽었을지 모른다. 랄라가 누리던 사막의 자연과 자유과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결코 누릴 수 없고 볼 수 없음을 알기에 그녀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사막을 떠나보고나서야 진정한 사막의 가치를 발견하듯 다시금 되돌아온 그녀의 앞으로의 삶이 희망적이고 새 생명이 있기에 더 기대가 된다. 청색인간의 피를 물려 받았지만 조상과 어머니와 단절된 그녀가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고 만들어 가는,새 생명의 잉태가 모성애를 품은 사막이어서 더 행복인지 모르겠다.소설을 읽는데 속도가 나지 않아 조금은 조급하기도 했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읽다보면 한편의 시를 읽듯,한장의 정교한 그림을 보듯 사막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조상의 이야기는 왼쪽 페이지가 약간 들어가게 하는 정교함으로 현실과 구분 지어 놓기도 하는 세세함 속에 정말 정교하게 짜여진 한편의 아름다운 그림을 본 듯한 느낌은 비단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를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다른 작품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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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이야기
신경숙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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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기도 하고 당신이기도 할 겁니다.어디서나 볼 수 있고 언제나 헤어질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일 겁니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신경숙의 '짧은 소설' 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연작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단편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는 작품들은 읽다보니 정말 작가의 이야기이거나 혹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기쁨,슬픔,애환등 간결한 글속에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라 더 깊게 가슴을 헤집는 듯 하다.

그녀가 <풍금이 있던 자리>를 출간하기전 여기저기 썼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 하는데 일반적인 작가의 소설보다는 이런 단편들을 읽다보면 작가를 좀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좀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글들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상대는 나일수도 있고 혹은 당신일수도 있고 모두가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이 담아져 있어 어떤 글은 읽다가 한참을 웃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J, 8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J라는 글자가 익숙할 것이다.이선희의 'J에게' 라는 노래 때문에 한동안 입안에서 'J'를 외치며 유행처럼 느끼던 알파벳 'J' 는 모두의 일상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글자가 되었다. 짧은 소설은 첫이야기부터 웃음과 눈물을 '빵빵' 터트리게 한다. 통화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야기속 J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부의 삶이 녹아 있는 짧은 글이지만 가슴이 아리다. 시인과 거지, 동네마다 그런 사람이 예전에는 한사람씩 꼭 있었다. 정말 세상을 등진 시인처럼 그런 사람이 있어 가던 길을 붙잡던 그때 그들, 지금 어디로 갔을까. 셀로판지에 대한 추억,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아련한 추억을 떠 올리게 하는 짧은 이야기속에서 어릴적 무척이나 젊었던 나의 아버지를 본다. 하교길에 늘상 교문앞에와서 기다리며 막내를 자전거 뒤에 태어고 가는 것이 행복인양 하셨던 아버지,지금은 팔순이 다 되어 등고 굽고 큰병과 싸우고 계시니 좀더 잘 해 드려야겠다. 눈만 크게 뜨면 돼,정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도 한때는 초등입학전의 조카들을 돌보는 때가 있었는데 막내조카가 아이들이 골목에서 말썽을 피우면 '이모가 대신 나가봐' 하며 이모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꼬마의 말이 너무 이뻐 한참을 웃었다. 울지 마라,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해외파견으로 돈을 벌러 가던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 있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훈훈함에 가슴이 먹먹하다. 이 이쁜놈아, 괜히 울아버지 생각이 났다. 작년에 큰병을 얻으셔서 병원에 입원을 처음으로 하시게 되었는데 막내인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며 힘을 얻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덧니아가씨, 순수할것만 같았던 그녀가 축구광으로 생긴 덧니라니 읽다보니 반전에 혼자 웃었다. 토끼와 거북이,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정말 재밌다. 정말 예전에는 조회시간에 쓰러지는 나같은 사람들이 한둘은 있었다. 이 단편을 읽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시원하게 속을 비웠다.전망 좋은 벽장,담장이 허물어져 부엌이 다 보이는 집이지만 그래도 남에겐 정말 혼자쓰기 큰 방에서 사는 시 쓰는 그녀가 행복해 보인다. 그녀는 예뻤다,가슴 뭉클한 이야기. 다리 한 쪽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가 좀더 자신감을 가졌더라면 이쁜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눈물 두스푼의 이야기.

4장으로 나뉘어 있는 44편의 이야기는 이렇게 가슴 따듯하기도 하고 때론 눈물샘을 마구마구 자극하기도 하면서 우리 이웃이거나 혹은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긴 이야기로 써도 참 좋은 내용이 될 소재들이 많다. 짧은 소설 속에서 그녀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껴 본다.때로 삶이 각박하다거나 버겁다고 느낄 때 한 편 씩 읽어본다면 희망과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다분하다. 김치를 담고 몸이 조금 피곤할때 이 책을 잡았는데 피곤이 싹 가시면서 생기를 되찾았다. 한참을 웃고 가끔은 눈물 한번 찔끔하고 나니 감정청소가 다 된 듯 하다. <엄마를 부탁해> 나 신작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라는 작품들이 이런 짧은 소설을 발판으로 나오지 않았나싶다.짧은 소설속 이야기들을 읽고 있다보니 그녀의 이야기는 앞으로가 더 흥미진진해 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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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나나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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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아직 수쿰빗 소이 식스틴의 비밀을 공유할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 아프리카로 가던 중에 들른 태국에서 만난 전생의 아내라고 생각되는 창녀 플로이, 그녀로 인해 레오의 여행계획은 여지없이 수정되고 말았다. '예닐곱 권의 두꺼운 여행 가이드북을 뒤적여가며 공들여 작성한 것이었다. 완벽한 것처럼 여겨졌던 그 일정에는 그러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너무 철저하게 짠 나머지,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못될 경우 모든 게 통째로 무너지고 마는 구조였던 것이다. 애초에 완벽한 여행 일정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완벽한 여행 일정이 없듯이 급 수정된 여행 일정처럼 그의 삶 또한 변화시킨 나나, 그곳엔 창녀도 있고 그외 그녀들과 함께 하는 비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 로 얽혀 삶을 살아 가고 있다.

오백년전 쯤에 자신의 아내였을것 같은 여자가 지금은 식스틴에서 창녀로 있다. 그녀가 쌀국수를 먹는 엿모습을 보고는 그녀의 전생을 본 듯 하여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지만 플로이는 레오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서로의 주변만 돌 뿐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몇 달을 살아간다. 레오가 왜 그곳에 머무르려 했을까?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창녀 플로이를 위해 닭튀김을 가져다 주려 하다가 계단에 있는 도마뱀 비슷한 것을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동물과 대화를 하는 그, 그는 갓태어나 그 계단밖에 보지 못한 도마뱀을 죽일 수 없어 계단에서 구르고 만다. 그로인해 다리의 인대가 늘어나고 깁스를 하고 창녀들과 함께 그곳에서 오랜시간동안 머물면서 아프리카 여행을 꼭 하겠다고 다짐을 해 보지만 그의 주머니는 창녀들에 의해,아니 그가 전생의 아내였다고 생각하는 플로이에 의해 무참히 털리고 만다. 모든것을 다 잃고나서 불현듯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하는 그,한국에서의 삶 또한 만만하지 않아 여섯명이 탄 버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가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남고 그는 다시 나나로 향한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가 젊은 시절 관계했던, 그의 방황하는 시절과 같은 나나의 창녀촌 생활에 다시 물들어간다. 

'수쿰빗 노천 국숫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레오는 플로이에게 끌렸다. 거기에는 그녀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 외에도 낯선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과 젊음의 낭만 어린 치기, 또 무리한 일정으로 고단한 행군을 하는 배낭여행자 특유의 외로움 같은 것이 한데 섞여 있었다.'

'타이는 자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처럼 태국에는 온갖 자유가 넘쳐난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술을 마실 자유,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울 자유, 온통 벌거벗고 다닐 자유,부모님 말씀 안 듣고 까불 자유, 각종 마약을 할 자유, 그러다 체포되어 감옥에 갈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자유도 지금 당장의 이 순간을 허비할 자유보다 달콤하지는 않다.' 레오 그가 누린 자유가 '순간을 누린 달콤한 자유' 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렇게 창녀들과 어울려 살고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점점 자신을 잃어가면서 나약해지고 의지박약해지는 모습에 플로이에게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일기도 했지만 그 거리의 사람들처럼 '오늘 하루 만족' 하는 삶도 삶이고 자유이다. 서로 관계하면서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질긴 인연처럼 살아가는 잡초같은 그들,그들에게도 새벽이 있다.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쉽지 않은 작가라 생각하던 것이 점점 그를 좀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거리와 창녀들의 삶은 그가 깊이 있게 파고든 노력의 흔적처럼 세세하다.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의 전작처럼 그들과의 비루한 삶이 세밀하여 그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 장편이라 하는데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인듯 하다. 삶은 어디에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되는 것이고 '지금 사는 인생이 내 몫의 최선이라 믿고 싶어.' 라는 말이 가슴에 박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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