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정영목 옮김 / 까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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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는 아직도 아담과 이브 두 사람만이 살고 있지 않을까이브가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는 벌을 받았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그렇다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게 우리에게는 다행인 건데아주 단순한 이야기여서 군데군데 빈 곳이 많으니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의 나뿐만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놓고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아담과 이브 이야기 자체에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는 듯하다. “세계 역사에 이렇게 오래 지속되고이렇게 널리 퍼지고이렇게 집요하게 뇌리를 사로잡을 만큼 현실감이 있었던 이야기는 거의 없다.”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은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야기 이상의 권력을 가질 정도로 흥했다가 다시 이야기의 위치로 내려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그 과정 자체가 고대의 메소포타미아부터 현대의 우간다까지 수천 년의 세월과 수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넘나드는 거대한 이야기이다.


아시리아의 점토판에 새겨진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모습.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몇 가지 면에서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저자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맞서는 일종의 저항 서사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담긴 창세기는 모세가 썼다고 전해지는 모세 5’ 중 첫 번째 책이고, ‘모세 5은 기원전 5세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때는 바빌로니아에게 점령당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던 유대인 포로들이바빌로니아를 점령한 새로운 정복자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 덕분에 유대 땅으로 돌아가던 시기였다바빌로니아에서 수십 년 동안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와 신화에 노출되어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줄 이야기가 필요했다그래서인지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메소포타미아 신화와는 몇 가지 차별점을 갖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서사시 <길가메시 이야기> 속 등장인물 엔키두처럼 아담과 이브는 신이 진흙으로 만든 존재이고, 길가메시와 엔키두처럼 서로 떼어낼 수 없는 한 쌍의 파트너가 된다. 엔키두도, 아담과 이브도 아무것도 모르는 야생의 존재에서 이성과 문명을 접하면서 변화되고, 죽음을 피해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엔키두에게 문명인으로 변화하는 것이 축복이었던 반면, 아담과 이브에게는 그것이 저주였고, 엔키두에게 죽음이 정해진 운명이었던 반면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와는 차별점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의 서사를 완성시켰다. 

(위)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 <아담과 이브>(1504)

(아래) 얀과 후베르트 반 에이크 형제의 <헨트 제단화>(1432) 중 아담과 이브 부분.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인체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뛰어난 기술을 토대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이 이야기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유대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였다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기독교가 유럽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수천 년 뒤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쐐기 문자 기록들을 다시 발견할 때까지 잊혀 있었다.) 기독교 신학의 기틀을 다진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교리를 확립한 이후기독교인들에게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자 삶의 지침이 되었다뒤러나 반에이크 같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인체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완벽하고 생생한 육체를 갖춘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17세기 영국의 작가 밀턴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여겼던 부부관계와 현실에서 보아온 정쟁을 반영해사탄과 하나님의 갈등아담과 이브의 복잡 미묘한 애정 관계를 생생하게 그려낸 대서사시실낙원을 완성했다이렇게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문학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생생한 현실성을 갖추게 되었다.

 

문제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이야기 이상의 권력을 갖춘 교리이자 역사적 사실의 위치에 놓이게 되면서남들을 배척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5세기에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른 견해를 주장했던 펠라기우스가 이단으로 공격받고 추방당한 것에서부터 배척의 역사는 시작되었다신의 명령을 어겨서 에덴으로 쫓겨난 데는 아담의 책임도 있는데도많은 남성들은 이브에게만 책임을 돌리며 여성들의 악덕이 이브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여성 혐오적인 편견을 드러냈다근대에 들어서도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허점을 지적하거나 허구라는 암시를 한 사람들은 자객의 습격을 받거나 화형당하기까지 했다한때 외세에게 점령당해 고통 받던 유대 민족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아담과 이브그들의 자식밖에 없었다면 맏아들 가인은 왜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벌할까 두려워했을까가인이 고향을 떠나 결혼했다는 여자는 누구고가인이 만든 도시의 주민들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어떤 억압도 이런 의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성경에서 언급한 세상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오래된 지층이 발견되고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인간이 단 한 번의 창조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절대성을 잃게 되었다


이제 아무도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허점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다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오히려 이야기의 위치로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다시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그 이야기는 여전히 인간의 연약함과 책임의 문제인간의 성과 노동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 이야기가 어떤 절대적인 것으로 굳어버리는 것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그렇게 되면 그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까지 막혀 버리면서 이야기 자체의 생명력을 잃게 된다단순히 이야기의 매력과 생명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억압하고 해치는 데 이용되기까지 한다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것 자체도 많은 사람들이 탄압당하는 것을 무릅쓰고 의문을 제기해서 얻어낸 축복이다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흥망성쇠는 우리에게 이야기의 힘과 위험성가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P. S. 이 책의 모든 도판은 책 한가운데 몰려 있다도판이 있는 페이지는 텍스트만 있는 나머지 페이지와 재질이 다른데도판이 있는 페이지들만 도판을 찍어내는 데 최적화된 재질의 종이로 해서 비용을 절감하려던 게 아닌가 싶다하지만 텍스트가 설명하는 도판이 그 텍스트 바로 옆에 있었다면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이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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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정영목 옮김 / 까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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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의 세월과 수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따라가며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따라가는 여정은 흥미롭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흥망성쇠를 통해 이야기가 얼마나 큰 힘과 위험성,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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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선택 - 생사의 순간,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법
사브리나 코헨-해턴 지음, 김희정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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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선택은 영국의 현직 소방관이자 심리학자인 저자가 20년간의 현장 경험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생사를 가르는 위급한 순간에 소방관들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소방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저자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소방관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어느 때보다도 삶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지금,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책이 필요했다. “이 방법은 어떤 분야에서든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문구처럼 내 삶, 내 분야에서도 저자의 방법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작은 힌트 하나라도 얻고 싶었다.


 한 터널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15분 후에 두 번째 폭발물이 터져 터널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것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터널 안에는 소방관 20명과 구급대원 6, 최소 30명의 구조 대상이 있다. 이 정보를 믿고 구조대원들을 철수시킬 것인가, 아직 터널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끝까지 구조하게 둘 것인가. 이건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소방관들은 언제라도 이렇게 어느 쪽도 쉽사리 택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나는 지금 네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 나는 언제든 네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하는 사람, 자신의 뜻에 조금만 어긋나도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면서 내가 창조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게 하는 사람과 일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이렇게 처리하면 비난을 받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불손하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해고당하지 않을까, 자꾸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소방관의 의사결정에 비하면 내 의사결정은 아주 가벼운 문제다. 그러나 나와 내 가족의 생계가 달렸다는 점에서 내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버거운 문제다.


 저자가 소방관들에게 제시한 방법은 결정 제어 프로세스. 사람들은 소방대 지휘관이 보고받은 정보들을 치밀하게 분석한 뒤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연구를 통해 소방대 지휘관들이 내리는 결정의 80퍼센트가 직관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빠른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분석적인 결정을 내리면 시간을 낭비하게 되지만, 직관적인 결정을 하다 보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결정 제어 프로세스는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 결정으로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결정으로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이라 예측하는가?’, ‘이 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이 일로 초래될 수 있는 위험을 얼마나 능가하는가라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재빨리 검토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의사결정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상황을 더 분석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내 분야의 업무를 할 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에 내게는 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팁 하나 더. 우려를 내려놓고 행동하되, 큰 그림을 생각할 것. 잘못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걱정하다 보면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마비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결정을 아예 내리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떠넘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한 걱정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기보다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생각이 너무 많고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는 내게 특히 유용한 팁이다.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걱정은 스트레스를 불러오는데, 저자는 스트레스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악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생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소방관들에 견주는 것 자체가 죄송한 일이지만, 나 또한 나 자신을 계속 의심하고 검열하게 만드는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저자가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 삶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 부분을 읽자마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나쁜 것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다. 내가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 방법을 사용해야겠다.


 이렇게 내게 필요한 팁들을 얻는 것에 더 정신이 쏠린 것이 저자를 비롯한 소방관분들에게 죄송스럽다. 소방관들이 몸과 마음을 다치거나 심지어 죽는 것도 각오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구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더 나은 방법들을 찾아내고 익히는 데 온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심지어 이 글에서도 마지막에 짧게만 언급해 버렸다. 위급한 상황에서 내가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길, 내 분야의 일이나 사소한 친절로라도 그분들에게 보탬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써서 삶의 지혜를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저자와 그녀의 수많은 동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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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선택 - 생사의 순간,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법
사브리나 코헨-해턴 지음, 김희정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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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소방관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모두에게 좋은 지침이 되어준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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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어 수업 - 다음 세대를 위한 요즘 북한 말, 북한 삶 안내서
한성우.설송아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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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대학교에서 공부했던 영어 교재나 제2외국어 교재는 주요 인물을 설정하고 그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 대화에서 사용된 단어와 표현들을 익히는 형식이었다문화어 수업은 수업이라는 제목에 맞게 이런 외국어 교재와 비슷한 형식을 하고 있다평양에 1년 동안 체류하게 된 남한의 방언학자 한겸재와 그의 가족(저자 자신과 가족들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들이 북한의 미대 교수 리청지’ 가족과 함께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더 자세히 보면 식사 시간’, ‘교통수단’, ‘학습 용어’, ‘두음법칙’ 등 20개의 주제에 대한 단어와 표현그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외국어 교재처럼 대화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문화어에 대한 설명이 녹아 있는 모습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방언학자 한성우 교수의 전작 우리 음식의 언어노래의 언어를 재미있게 읽었는데앞의 책은 우리 음식과 관련된 우리말을뒤의 책은 우리 대중가요 가사 속 우리말을 탐구해 보는 책이었다이 책들에서 한성우 교수는 우리말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갔는데문화어 수업에서도 특유의 이야기 솜씨를 발휘한다앞의 책들과 달리 각자의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대화하고 같이 뭔가를 하며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니 더 흥미롭다공저자인 북한 출신 설송아 기자는 상자 글에서 본문을 읽는 데 참고할 만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북한 사람들의 언어 습관뿐만 아니라 밥상 구성주택 상황교육 제도 등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문화어가 남한의 언어와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제의 각을 뜨자’ 같은 과격한 북녘 언어는 구호나 뉴스에서나 쓰이지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 대화를 하면 대부분은 서로 이해할 수 있으며가끔 귀에 걸리는 낯선 어휘들도 맥락을 살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북한 사람들은 남한에서 들어온 옷가지들을 장마당에서 사 입고젊은이들은 몰래 남한 아이돌의 노래를 듣는다심지어 남한 젊은이들처럼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20강 내내 줄기차게 이야기한다남과 북은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많고다른 점마저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고한겸재 교수의 딸 슬기와 리청지 교수의 딸 예리는 서로가 사용하는 단어나 맞춤법이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가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맞춰보는 놀이를 할 정도로 편안하게 서로의 언어를 받아들인다한겸재 교수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언어의 미래를 본다통일이 된 이후 무조건 한쪽을 기준으로 삼아서 거기에 모든 것을 끼워맞출 수는 없으니우리도 북한의 어문 규정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할 것이다맞춤법을 잘 알아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어문 규정을 다시 배우는 게 번거롭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하지만 내가 불편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내 것에 맞추라고 강요할 권리는 내게 없다한겸재 교수(의 입을 빌린 한성우 교수)의 말처럼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언어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남는 말들사람들이 언어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규칙들을 잘 활용하면 될 일이다.

 

이 책은 왜 남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쓰고 북한에서는 쓰지 않는지, 남한과 북한에서 한글 자음, 모음을 부르는 명칭이 왜 다른지, 남한의 이 단어가 북한에서는 어떤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지 같은 남북 언어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지식들을 전달한다. 하지만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임을 책 전체에 걸쳐 강조한다. “남북의 말 차이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사례가 뭔가요?” 북한말 중 재미있는 사례 몇 개만 들어주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런 질문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야기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남북 사람들이 서로의 언어를 우스꽝스러운 흥밋거리로 여기기보다는, 같은 점을 바탕으로 서로의 다른 점들을 수용하고 조화시켜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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