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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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나오려다 신착 도서 서가를 한 번 더 돌아봤다. 맨 위 칸에 눈에 띄는 그림책이 있었다. 눈 덮인 벌판 위에서 빨간색의 무언가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는 할머니와 검은 형체. 도대체 저 검은 형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둘은 추운 겨울에 밖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제목으로 책의 내용을 짐작해 보려고 해도 '팡도르'라는 단어에서 막힌다. 무슨 책인지 잠깐 앉아서 읽다 가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 한 권을 다 읽는 데 길어야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테니까.


크리스마스에 먹는 이탈리아의 전통 빵, 팡도르

이미지 출처: https://www.insidetherustickitchen.com/pandoro-christmas-cake/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단어 '팡도르'는 정확히 발음하자면 '판도로(pandoro)'이고, 크리스마스에 먹는 이탈리아의 전통 빵의 이름이라고 한다. 강가에 있는 어느 시골 마을 외딴 집에 살고 있던 할머니는 '죽음도 나를 잊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오랜 세월 혼자 외롭게 살아왔다. 직접 빵을 만들어 마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할머니의 낙이다.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둔 어느 겨울, 할머니를 잊어버린 줄 알았던 사신(死神)이 할머니를 데리러 찾아왔다.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때 마을 아이들에게 나눠줄 팡도르를 만들어야 하는데, 빵 반죽을 숙성시키고 빵 안에 들어갈 소를 준비하려면 일주일이 걸리니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단칼에 거절하려던 사신의 입에 할머니는 빵에 들어갈 달콤한 과일 소를 쏙 넣어주고, 처음 보는 달콤한 맛에 당황한 사신은 할머니를 데려가지 못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줄 팡도르를 준비해야 한다며 몇 번이나 죽음을 미룬다. 사신은 과연 할머니를 저승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기지를 발휘해서 저승에 끌려가는 것을 피한 사람은 우리 옛 이야기에도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할머니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직 사람들에게 나눌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시간을 달라고 한 것이다. 할머니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이웃뿐만 아니라 사신에게까지 달콤한 빵을 나누어준다. 외딴 집에서 홀로 사는 할머니의 처지와 추운 겨울날은 마음을 쓸쓸하게 하지만, 그 속에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림은 오직 하얀색, 검은색, 빨간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하얀 눈밭과 대비되는 검은 사신, 빨간 불빛. 잘 구워져 황금빛이 된 빵과 상큼한 귤 소, 달콤한 밤 절임은 빨간색 동그라미로만 표현되지만, 이 동화 속 따뜻함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하다. 글에서 사신은 검은 망토 대신 할머니가 준 숄을 둘렀더니 우아한 인간 여성처럼 보였다고 묘사되지만, 그림에서는 커다란 검은 자루로 보인다. 그래서 사신이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것이 더 직접적으로 와 닿고, 그런 존재와도 소통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할머니의 따뜻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림책이지만 아이보다는 어른, 그것도 인생의 황혼을 맞고 있는 어른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어린 시절이었으면 할머니의 쓸쓸함과 그 속에서도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 속 할머니만큼 나이가 들면 할머니에게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이 '어른을 위한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보다는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다 겪고 조용히 삶을 관조할 줄 알게 된 어른에게 더 맞는 책이다. 


눈 오는 겨울날에 읽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한여름에 읽게 되었다. 한여름에 하얀 눈밭과 그 위에서 빛을 발하는 빨간색 빵들과 불빛을 보면서 잠시 겨울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겨울에 다시 읽으면 난로에 손을 쬐듯이 마음에 온기가 퍼져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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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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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지만 아이보다는 어른, 그것도 인생의 황혼을 맞고 있는 어른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책. 하얀색, 검은색, 빨간색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따뜻한 분위기를 잘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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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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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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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추리 작가 찬호께이의 소설을 읽는 건 이번이 네 번째다첫 번째로 읽은『13·67』은 한 경찰의 46년을 돌아보면서 그의 삶과 홍콩 현대사를 엮어서 거대한 서사로 만들어가는 솜씨가 감탄스러웠다두 번째로 읽은 『망내인』은 주인공이 지나치게 전지전능하다는 감이 있었지만 주인공이 사용하는 IT 기술의 디테일에 압도당했다세 번째로 읽은 『기억나지 않음형사』는 앞의 두 책보다 가벼운 느낌이었지만 예상을 몇 번이나 뒤엎는 전개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이렇게 작품마다 서로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작가이기에 이번에 읽은 『염소가 웃는 순간』도 기대감을 갖고 읽었다.

『염소가 웃는 순간』은 앞서 읽은 세 권의 소설과 달리 공포소설이다추리 작가가 쓴 소설답게 과학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도그 진상을 알고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것 같았다다른 공포소설들처럼 원인을 모르니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공포를 다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공포물을 무서워하는 편인데도 긴장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공포라면 해결할 방법도 있을 테니 덜 무섭다.

내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그런데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 전까지 공포감은 팽팽하게 유지된다대학 신입생인 주인공들이 그냥 재미로 들었던 기숙사 7대 괴담은 주인공들의 눈앞에 그대로 재현되어한 명 한 명을 희생시켜 간다잔혹한 부분이 꽤 많지만 공포감은 잔혹함만으로 생기지 않는다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희망이 있다고 믿었지만 그 희망이 헛된 것임을 알았을 때의 절망감우정과 생존 본능 사이에서의 갈등모든 게 해결됐다 싶었는데 더 참혹한 일이 생길 때의 경악스러움하나하나 뜯어보면 공포물의 클리셰이지만 작가는 이런 클리셰들을 영리하게 활용해독자들까지 공포에 압도당하게 만든다.

그런데 결말 부분에서 한 캐릭터가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면서 공포감은 사라져버린다사실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이 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환상이기 때문이다이 환상을 깨기만 하면 모두가 무사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친구들이 눈앞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갔는데도 살아남기 위해남은 사람들이나마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그게 다 환상이었다니 허탈하기까지 하다공포감이 결말까지결말 이후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사람들로서는 이런 전개가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인물 설정이나 사건 전개에서 일본 라이트노블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자기 입으로는 평범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평범하지 않은 남주인공(그는 이 모든 상황이 실제라고 생각했을 때도 놀라운 희생정신과 용기로 친구들을 지켜내고결국 사건을 해결해낸다.)과 꾸미면 예쁜 여주인공은 일본 라이트노블만화의 클리셰이고 나머지 친구 캐릭터들도 일본 만화에서 자주 보았던 전형적인 캐릭터 유형들이다주인공이 실수로 여자 가슴을 만지는 장면에서는 일본 만화에서 독자들을 끌기 위해 일부러 넣는 선정적인 장면들이 떠오른다한 캐릭터가 닌자술을 활용해 친구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사건의 배경과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처음 100여 페이지를 읽고 나면 나머지 400여 페이지는 순식간에 읽힌다공포 영화에서 많이 보던 소재들과 공포물의 클리셰들이 등장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잘 엮어내고긴장감과 공포감을 낮추었다 다시 끌어올리는 솜씨도 뛰어나다사건의 참상 묘사도 생생해마치 등장인물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모든 일들을 겪고 있는 것 같다모든 게 너무 쉽게 해결되는 감이 있지만아무도 죽지 않아 다 읽고 나서 기분이 찝찝하지 않다덥고 이런저런 걱정도 많아 잠 못 드는 여름밤에 읽기 좋은 소설이다읽는 내내 등골이 서늘해지게 하고걱정거리를 잊어버리게 할 만큼 재미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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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웃는 순간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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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등장인물과 사건 배경이 소개되는 첫 100여 페이지를 지나면 나머지 400여 페이지는 순식간에 읽힌다. 결말 부분에서는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추리물 같은 느낌이 들고 전반적으로 라이트노블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같다는 인상이 들지만, 공포감과 긴장감을 결말 전까지 끌고 가는 솜씨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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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요리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스탠리 엘린 지음, 김민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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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요리』를 처음 알게 된 건 러시아 문학 속 음식들을 분석한 책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를 통해서였다. 러시아 문학 중 미식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소설을 다룬 부분에서, 미국의 추리 작가 스탠리 엘린의 단편소설 「특별 요리」의 내용이 소개되었다. 이 소설은 러시아 문학은 아니지만 미식에 집착하느라 더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소개되었다. 전체 줄거리가 다 소개되는 바람에 읽어보지도 않은 소설의 스포일러를 당했지만, 그래도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특별 요리」가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집을 찾아읽게 되었다.

직접 찾아 읽어보니, 장르 문학이지만 한 편 한 편이 순수문학 못지않게 문장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다엘린의 문장력이 뛰어나서인지 번역가의 감각이 젊은 것인지 70여 년 전이 배경인데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번역문의 문장도 자연스럽고 깔끔하다간결한 문장만으로도 소설의 분위기를 섬세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특히 「성탄 전야의 죽음과 「체스의 고수」, 「브로커 특급의 마지막 문장은 그 문장 하나만으로 반전을 제시하며 전율을 일으킨다.

엘린의 단편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난처한 상황더 심하게는 파국으로 치닫는데안됐다 싶다가도 따져보면 거의 전부가 자업자득인 경우다또 다른 소설이나 영화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중간 중간에 보이는데작품이 쓰여진 시기를 생각하면 엘린의 소설들이 원조가 아닐까 싶다. 엘린의 소설들이 이후에 나온 수많은 스릴러 소설, 영화들의 원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단편에 대한 단상은 이렇다.


특별요리

등장인물들은 식도락에 미학이니 예술이니 온갖 미사여구를 다 끌어들이지만 정작 이 작품의 결론은 인간들아적당히 미식에 탐닉해라.’코스테인은 식당의 비밀과 래플러의 운명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방관한 건 아니었는지 미심쩍다이미 스포일러를 당하고 읽었고스포일러를 당하지 않았어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의 반전은 뻔하다그런데도 맛의 섬세한 묘사와 인물들 사이의 묘한 긴장감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읽었다.


손발의 몫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로 일한 경험이 꽤 많아서 갑자기 낯선 곳에서 사무 보조 일을 하게 된 주인공에게 공감하면서 읽었다사람을 죽이고 나서도 어떻게 계속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생계를 생각하면 일을 그만두기는 쉽지 않다그리고 나쁜 짓을 하고도 인간은 생각보다 더 쉽게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이라는 소재는 내 생계를 위해 다른 사람에 대한 죄책감과 양심도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비유이지만, 그저 비유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아서, 자신도 그런 일을 당하기 두려워서 외면해 버릴 때가 많으니.


성탄 전야의 죽음

이 단편의 반전은 최근에 일어난 줄 알았던 의문사 사건이 무려 2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20년 동안 찰리와 실리아변호사는 같은 지옥 안에 있었던 셈이다하지만 누구 하나 빠져나올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인간의 집착은 생각보다 더 집요하고 지독하다. 매일 다른 사람에게서 받았던 상처를 곱씹어 보고, 10년도 넘은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는 내 자신을 보니 남의 얘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애플비 씨의 죽음

체호프의 단편 「아내들」을 떠올리게 한 작품「아내들」의 주인공 라울 시냐보르다가 뻔뻔스럽게 사소한 이유로 아내들을 죽여온 자신의 살인 행각을 이야기하는 반면, 애플비는 이제껏 만난 적이 없던 강적을 만나 고전한다하지만 그 강적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목숨을 잃는다하지만 동시에 애플비를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짧은 마지막 부분만으로 효과적으로 반전을 묘사한, 깔끔한 블랙코미디.


체스의 고수

조지 허니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체스에 집착한 것보다도 아내와 소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애초에 아내가 조지의 취미 생활을 존중해 줬더라면 그는 가상의 체스 상대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조지가 아내를 회피해 가짜 상대를 만드는 대신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더라면 파국은 없었을 것이고소통과 존중이 없는 결혼생활이 이렇게 무섭다조지가 화이트에게 완전히 잠식당했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문장은 소름끼친다.


최상의 것

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떠올리게 했던 단편. 불행히도 이 단편의 배경인 1940년대 미국과 2020년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다빈부 격차가 또 다른 계급 사회를 만들어냈다따져 보면 상류층들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은 아니고그들 사이의 규칙과 유행도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유치하기까지 하다엘린은 이 사실을 70여 년 전에 이미 간파했었다. 2020년대인 지금도 상류층에 대한 선망열등감증오상승 욕구로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그러니 아서 같은 사람들의 비극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배반자들

주인공이 한 여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추적하다 마침내 그 여자와 마주치지만그 여자가 비참한 최후를 선택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는 점에서 영화 <화차>를 연상시킨다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좀 더 애정과 관심을 기울였다면남편이 에이미를 학대하지 않았다면그리고 에이미 자신도 친구 제니의 말에 귀 기울였다면 비극을 막지 않을 수 있었을까로버트의 말대로 그들 모두가 배반자들이었다아니면 로버트가 조금이라도 용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로버트도 배반자들까지는 아니어도 방관자였다로버트가 마지막에 의자를 부순 것은 그런 자신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우스 파티

이 모든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오고 있다는 반전은 밝혀지지만왜 모든 일이 반복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이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이 모든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마일스는 더더욱 진저리를 치고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새 연인과 도망치는 대신아내와 자신의 배역에 충실하기로 선택한다면 반복의 수렁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그가 매번 도망치기로 선택했기에 아내에게 총을 맞고 다시 정신을 차리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브로커 특급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당들은 항상 자기 사정 다 말하다가 망한다이 단편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아내는 어차피 다 눈치 채고 끝까지 주인공까지 지옥으로 끌고 갔겠지만그나저나 아내는 어차피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남편과 결혼한 거면서 남편한테 왜 그리 당당한 건지 모르겠다.


결단의 순간

정말 사소한 자존심 싸움이 사람을 잡을 때가 있다이 단편에서는 그런 사소한 자존심 싸움과 그에 따른 미묘한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한다이 자존심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될지 작가는 열린 결말로 남겨뒀지만나는 휴가 레이먼드가 갇힌 방문을 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자신의 의견이 이미 깨졌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를 얽매고 있던 감정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 한 번은 꼭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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