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세계사 - 인류 첫 거래부터 무역 전쟁까지, 찬란한 거래의 역사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박홍경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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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백수십여 년 전에 쇄국정책이 시행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나라들과 활발히 교역하고 있다. 무역을 활발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역 없이는 살 수 없는 정도다. 자동차들은 석유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고, 중국산 생활용품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는 값싼 외국 먹거리들을 사는 게 유리하니까. 우리만 외국의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먼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한국산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사용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전 세계는 어떻게 이토록 가까워졌을까. 『무역의 세계사』의 저자 윌리엄 번스타인은 물건을 운반해 와서 다른 물건과 교환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타인과 물건을 교환하려는 인류 행동의 기원이 1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문자가 생기기도 전부터 인류는 자기 지역의 물건을 다른 지역으로 가져가서 그곳의 물건과 교환해, 자신에게 필요하지만 자신에게는 없는 물건을 얻어 왔다. 저자는 무역은 인간의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고, 무역을 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무역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은 없기에,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무역이라는 주제로 세계사를 살펴보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보통 한 가지 주제로 역사 전체를 보는 책은 미시사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이 책은 거시사와 미시사와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무역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무역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본다는 점에서는 미시사지만, 무역의 주도권을 잡는 자가 세계의 주도권을 잡아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역의 역사는 세계사의 큰 흐름을 살펴보는 거시사가 될 수밖에 없다. 미시사는 역사의 큰 흐름으로 정리되지 않고 잡다한 이야기들의 모음으로 그칠 수 있고, 거시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를 움직여 온 작은 요인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세계 역사의 큰 흐름에 따라 무역이 사람들과 세계를 변화시켜 온 모습들을 엮어나가면서 거시사로서도 미시사로서도 제 역할을 다해낸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의 시간과 고대 중동 지역부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까지 전 세계, 역사학, 경제학, 생물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무역‘이라는 주제 하나로 아우르는 저자의 역량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스인들이 곡물이 풍부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는 데 열심이었던 이유를 알려면 그리스의 척박한 풍토를 알아야 하고, 무역풍이 어떻게 무역선의 항해에 도움이 되기도 장애가 되기도 했는지 알려면 코리올리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워낙 많은 시대와 지역, 인물, 사건이 등장하는 데다 역사 외의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의 배경 지식까지 겹쳐 따라잡기 벅차다고 느껴질 정도다.(본문에 있는 지도들만으로는 모자라 고등학생 때 쓰던 사회과부도, 역사부도 교과서, 구글 지도까지 동원하면서 읽었다.)


이 모든 것은 저자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 무역의 역사는 자유무역을 향해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저자의 의도는 근대의 무역사를 다루는 부분부터 뚜렷이 보인다.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근대 이후, 많은 나라들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 등의 수단을 동원해 보호무역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자유무역주의자들과 보호무역주의자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과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자유무역이 주는 이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1947년 23개국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 서명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수만 건, 수천억 달러 규모의 관세 인하가 이루어지며 역사는 자유무역을 향해 흐름을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유무역을 해야 할까? 자유무역은 인류에게 전반적으로 이익을 안겨줘 왔기 때문이다. 관세와 운송비 부담이 사라지면서 전 세계에서 화물은 보다 자유롭게 운반되었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나라의 물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선진국들은 더욱 부유해졌고, 외국에 개방적인 개발도상국들은 폐쇄적인 개발도상국들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선진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게 되었다.


자유무역이 불러오는 이익은 경제적 이익뿐만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상업의 경제적 이득보다 중요한 것은 상업을 통해 유발되는 지성적, 도덕적 효과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조국 말고 다른 나라들이 잘 되지 않길 바랐지만, 상업이 발달한 현재에는 다른 나라의 부와 진보가 자기 나라에 부와 진보를 가져올 원천이 될 수 있기에 상대방의 부와 번영을 선의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밀의 말대로 무역이 인류의 폭력적 성향을 줄이고 인류의 평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보고 있다. 21세기 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950년대에 비해 3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웃을 죽이는 것보다는, 서로의 경제적 필요를 인식하고 그 필요를 서로 채워주며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유무역이 불러오는 폐해도 간과하지 않는다. 자유무역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으며 그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복지 정책이나 지원 정책이 자유무역의 피해자들을 모두 구제하거나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지나치게 낙관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한계와 문제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에게 최선의 방안인 것처럼 자유무역 또한 우리에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그는 “수메르에서 시애틀까지 우리는 자유무역을 향해 나아왔고, 그 흐름을 되돌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 우리는 강대국들의 무역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내부로 눈을 돌리면 외국 농산물 때문에 우리 농업이 위태롭다고 호소하는 우리 농민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세계 무역의 큰 흐름에서 살아남고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책의 원서는 2008년에 출간되어 있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2008년까지 세계 무역의 흐름이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2008년 이후, 지금의 세계 무역의 흐름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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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세계사 - 인류 첫 거래부터 무역 전쟁까지, 찬란한 거래의 역사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박홍경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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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의 시간과 고대 중동 지역부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까지 전 세계, 역사학, 경제학, 생물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무역‘이라는 주제 하나로 아우르는 저자의 역량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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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 (20주년 기념판) - 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1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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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근대까지 미학의 흐름을 각 시대의 미술 작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 에셔의 그림을 통해 쉽고 재미있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헤겔의 미학 부분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되었어야 한다는 점, 여혐적인 면이 있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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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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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아쉬웠던 1, 2권에 비해 배경지식 부분이 많이 보강되어 읽을거리가 풍성해졌다. 이 책을 통해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밀하게 음악을 만들어냈던 바흐라는 인간과, 그의 깊은 음악 세계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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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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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과 인천에서 보냈고, 평생 동안 표준 한국어로 말하고 쓰면서 살아왔다. 두 개의 언어를 병행해서 써야 했을 때는 해외여행을 갔을 때뿐이었고, 그 여행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은 일행과 한국어로 이야기하면서 보냈다. 그러니 혼혈이라든가, 이민을 갔다든가 해서 두 언어, 두 나라, 두 문화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은 책이나 방송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다.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두 개의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이란계 작가가 이란과 프랑스, 페르시아어와 프랑스어 사이에서 혼란을 겪다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를 버리지만, 성장해서는 자신의 뿌리인 페르시아어, 이란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기승전결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과 상념들을 털어놓고 있기 때문에 소설이라기보다는 환상적인 요소들이 섞인 에세이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찾아간다는 큰 이야기 줄기 아래 있지만, 이란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프랑스에서 보낸 소녀 시절, 성인이 되어 이란에 돌아왔을 때의 이야기가 시간의 순서와는 상관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더욱 혼란스럽다. 게다가 시와 산문, 현실과 환상, 비유와 상징이 뒤섞여 있어,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모국어 찾기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 본다고 생각하고 그 안의 상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작가의 부모님이 어린 딸(작가)을 데리고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치적 억압이었다. 1979년 부패한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은 서슬 퍼런 독재 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대학교 학우들과 시위를 하다 학생들이 경찰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경찰에게 쫓기다 3층에서 뛰어내려 유산할 뻔했다. 작가의 생일날마다 꽃을 선물하던 다정한 외삼촌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전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8년 동안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야 했다. 이런 정치적 억압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고국을 떠나 망명한 프랑스도 작가 가족에게 마냥 따뜻한 곳은 아니었다. 같이 놀아주지 않는 학교 아이들에게 말도 못 붙이고 외로워하던 작가는 프랑스에 적응하기 위해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를 버린다. 부모님이 집에서는 페르시아어를 쓰라고 해서 여전히 페르시아어로 말할 수는 있지만, 페르시아어보다는 프랑스어로 읽고 쓰는 것이 더 편해져 버렸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프랑스어를 사용하면서,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크루아상이 고향 음식으로 느껴질 정도로 프랑스가 또 하나의 고국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민자라는 이유로 작가가 '진짜'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한다. 두 개의 언어와 문화를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이야기는, 평생 두 언어, 두 문화 사이에서 헤매면서 살아온 작가에게 속 편한 소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시 이란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21세기가 되어서도 종교 경찰들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게 옷을 입었는지, 정숙하지 못하게 외간 남자와 함께 있는지 감시하고 있는 곳이니까. 누구보다 손녀가 보고 싶었을 외할머니조차, 작가가 이란에 남겠다고 하자 만류할 정도다. 수십 년을 살았어도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프랑스와, 민소매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탈 자유도 없는 이란. 어느 곳도 작가를 온전히 받아주지도, 이해해 주지도 않는다. 책에 실린 온갖 기억과 상념의 파편들은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분열돼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작가의 혼란스러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는 두 언어, 두 나라, 두 문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익힌다. 다시 페르시아어를 익히면서 페르시아어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고, 이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이란과 프랑스 두 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연습하게 된다. 이란도 프랑스도 아닌 곳들에서 몇 년 동안 살아가는 것에도 익숙해진다. 테헤란의 교통 체증 속에서도 택시기사가 읊어주는 하페즈(14세기 이란의 시인으로, 페르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다.)의 시에서 행복을 느낀다. 마침내 묵묵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국어와 화해한 것이다. 


 그냥 모국과 지금 살고 있는 나라 모두의 언어와 문화를 누리며 살아가며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고국을 떠나 낯선 나라와 언어, 문화에 던져졌던 작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지금에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두 개의 언어, 문화 사이에서 나름대로 균형을 잡았다 해도 다시 흔들리고 헤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그녀를 기다려준 모국어와 그녀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 많은 어려움과 시간을 겪으면서 단단해진 그녀 자신이 있기에 다시 굳건히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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