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의 옥중서신
로자 룩셈부르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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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사상보다는, 그녀가 얼마나 삶과 자연, 연약하고 고통당하는 존재들을 사랑했는지를 알게 한다. 번역이 딱딱한 것과 각주와 미주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것, 분량이 적은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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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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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겁이 많아 독립운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조용히 내 할 일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총독부에서 나에게 매 끼니마다 총독의 음식을 시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 않겠다고 하면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까지 다 죽는다. 나는 총독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강제로 히틀러가 먹는 음식을 시식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 마르고트 뵐크라는 독일인 여성으로, 남편이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고 나서 독일 동부에 있는 시댁에서 지내고 있었다. 시댁 근처에는 히틀러의 동부 전선(독일이 동유럽 지역에서 연합군과 싸운 전역) 지휘 본부가 있었다. 1943년 나치 친위대는 마르고트를 비롯한 10여 명의 젊은 여성들을 히틀러의 시식가로 뽑아, 히틀러가 지휘 본부에 머무르는 동안 매 끼니마다 독이 있는지 없는지 먼저 맛보게 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이다. 


  실제 이야기를 먼저 찾아보면 소설의 주요 내용을 다 알게 될 정도로 이 책은 실화에 충실하다. 이탈리아인 작가가 독일인 화자를 내세워 독일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화자가 살았던 베를린과 독일 동부 지역의 자연, 풍습, 생활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독일인 독자가 보기에는 고증이 맞지 않다 싶은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독일인 독자가 아닌 나로서는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다. 작가가 1978년생이니 전후 세대인데도 전쟁으로 인해 남루해지고 피폐해진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덕분에 2차 세계대전 말이라는 불안한 시기의 독일에 와 있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실제 인물인 마르고트 뵐크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겪었을 복잡한 심리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매 끼니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겪지만, 몇 년째 버터와 설탕을 구경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재료를 쓰고 솜씨 좋은 요리사가 만든 음식은 군침이 돌게 만든다. 친위대에서는 독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끼니마다 여러 가지 메뉴를 짜고 시식가들에게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한 메뉴씩 먹게 하니, 자신과 같은 메뉴를 먹는 동료에게 운명을 함께한다는 동지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히틀러의 목숨을 부지하는 데 한 역할을 하면서 나치 장교와 사랑에 빠지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죄의식을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그 장교와의 관계는 끊지 못하고 그 관계 덕분에 얻는 이익은 다 누리고 있다. 마르고트 뵐크를 모델로 한 주인공 로자는 이렇게 피해자이면서 부역자라는 모순을 안고 있는 복합적인 캐릭터이다. 


  로자의 죄의식은 상상 속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뚜렷이 나타난다. 이미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나치를 반대했던 아버지는, 상상 속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는 로자를 호되게 꾸짖는다. 


“정치와는 상관없어요.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게다가 1933년에는 저는 고작 열여섯 살이었어요. 히틀러를 뽑은 건 제가 아니라고요.” 그러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일단 용인하면 그 정권에 대한 책임은 네게도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가 속한 국가 체제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은둔자조차 말이다. 알아들었니? 네게는 정치적 죄악에 대해 면죄부가 없다, 로자.”


  로자가 매일 죽음의 위험을 직면하면서 산다고 해도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학살당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녀는 나치에 부역해서 매일 호의호식하고 있는 부역자다. 게다가 자신의 남편이 죽은 줄 알았다고 할지라도 나치 장교에게 처자식이 있는 걸 알면서도 그와 관계를 이어간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게다가 그 덕분에 유용한 정보를 얻었으면서도, 그와의 관계가 탄로 날까 봐 친정 부모처럼 자신을 돌봐줬던 시부모에게도 자매처럼 지내 왔던 동료들에게도 그 정보를 알리지 않고 혼자 살아남았다. 이러한 로자의 잘못들은 작품 속에서 정당화되지 않는다. 작가는 상상 속 아버지의 말, 즉 로자 자신의 죄의식을 통해 로자, 즉 평범한 사람들이 악을 뒷받침했던 것에 면죄부가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악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더 큰 악을 잊지 않는다. 히틀러와 나치가 아니었다면 로자를 비롯한 동료들은 히틀러의 목숨을 부지하는 데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자는 남편과 헤어지지 않고 그렇게 바라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갔을 것이고, 다른 동료들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아갔을 것이다. 이들이 실험용 모르모트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들이 어느 날 식사를 하고 모두 쓰러지는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나치 친위대는 시식가들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서 이들에게서 어떤 증상이 나타났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다행히 상한 음식 때문에 일어난 식중독이어서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실제로 독이 들어 있었던 거라면 주인공을 비롯한 시식가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악에 동참하면서 죽음의 위험을 직면할지, 악을 거부하고 그 대가로 죽임 당할지 선택하게 하고, 악에 동참해서 죽게 되더라도 내버려두는 거대한 악.

 

  작가는 이 거대한 악의 손아귀 안에서도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지만, 그 연대와 사랑이 모두를 구원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로자는 동료들과의 연대와 우정 덕분에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로자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은 목숨을 잃는다. 독일이 패전하고 소련군이 오고 있다는 소설 속 서술이나 실화에서 동료들이 맞은 운명을 생각해 보면, 동료들은 나치 부역자라는 이유로 소련군에게 처형당했을 것이다. 로자를 나치 친위대에게서 숨겨주지는 못했지만 따뜻한 가족이 되어주었던 시부모님도 전쟁 중에 돌아가셨을 것이고, 귀족이면서도 허물없이 로자를 친구로 대했던 마리아 남작부인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로자 본인은 살아남았고 남편을 다시 만났지만, 시식가로 살아가면서 남은 상처와 죄의식 때문에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헤어진다. 이들의 삶이 망가진 것은 전쟁과 그 전쟁을 일으킨 인간들 때문이었다. 이 모든 일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이런 거대한 악이 생기지 못하도록 평범한 사람들이 깨어 있어 힘을 모으는 것이 우선일까, 평범한 사람들이 악을 행하도록 강요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일까.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악은 평범한 사람들이 뒷받침해 지속되고 더 강해지면서 계속 악을 강요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악을 행하도록 강요당하다가 악에 무감각해져 악을 지속시킨다.『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이런 악순환이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뒤흔들고 망가뜨리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사랑과 연대로도 이렇게 망가진 삶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 악순환을 막는 것 자체가 최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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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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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평범성이 서로를 뒷받침하는 악순환이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뒤흔들고 망가뜨리는지 보여준다. 사랑과 연대로도 이렇게 망가진 삶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악순환을 막는 것 자체가 최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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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의학자 -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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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다른 두 분야를 접목한 책을 읽을 때 우려되는 것이 있다두 분야의 균형과 전문성이다두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만든 책이라면 두 분야가 균형을 이룰 수 있고 각 분야의 전문성도 갖출 수 있다하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분야와 다른 분야를 접목해서 책을 쓰면다른 분야는 그냥 곁들이는 수준이 되거나 다른 분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현직 의사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의학과 미술사를 접목한 책미술관에 간 의학자를 읽으려 할 때도 이런 우려가 들었었다.


  다행히 미술사와 의학의 비중은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다페스트디프테리아수면장애도박 중독 같은 의학적 주제를 미술 작품과 엮어서 설명하는데하나하나가 그 주제에 대한 처방전과 같은 느낌이다의학에 있어서는 전문 지식을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하고미술사에 있어서는 교양 수준의 배경지식을 충실하게 전달한다미술 작품을 그저 의학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삽화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과 이력그 그림이 그려지게 된 시대적 배경기법의 특징그 당시의 미술 사조까지 미술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풍성하게 담고 있다.


피터르 브뤼헐, <맹인을 이끄는 맹인>, 1568. 저자는 이 그림 속 시각장애인들을 관찰해 누가 어떤 병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는지 분석한다.


  단순히 배경지식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눈으로 그림을 분석하고 있어 흥미롭다저자는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맹인을 이끄는 맹인속에서 묘사된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고그들이 각각 어떤 병으로 시각을 잃었는지 분석해낸다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디프테리아>에는 호흡 곤란을 겪는 아이를 돕기 위해 손가락으로 아이의 목구멍을 벌리려고 하는 남자가 그려져 있다이렇게 하면 목구멍의 기도 점막을 자극해 림프가 더욱 부어올라서 아이는 숨을 더 쉬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그림이 그려진 19세기 초의 의료 기술을 생각해 보면 그림 속 아이는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의학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런 의학적 해석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압생트 중독으로 인한 황시증으로 별 주위의 노란 별무리가 보였을 것이라는 통설이 있지만, 저자는 최근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 통설을 반박한다. 


  인문 교양서 중에는 그저 대중 독자들이 흔히 알고 있는 통설만 정리하는 경우가 많은데그런 통설에만 기대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한 반 고흐의 작품들에는 노란색별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는 빛무리가 많이 나타나는데반 고흐가 즐겨 마셨던 술 압생트 때문에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통설이 있다하지만 별 주위에서 빛무리가 보일 정도가 되려면 182리터 이상의 압생트를 한꺼번에 마셔야 한다는 1997년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하면서그가 복용하던 간질약의 부작용일 수 있다는 설을 제기한다스탕달에게 스탕달 신드롬(미술 작품과 교감한 관람객이 흥분과 자아 상실을 경험하는 현상)’을 일으킨 작품이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클레오파트라가 독사가 자기 가슴을 물게 해 자살했다는 것도 동양에 대한 서양의 환상이 반영된 가설일 뿐이다라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런 미술 작품과 의학에 관한 다양한 지식들을 경어체로 서술하고 있어 더욱 더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그림을 보며주면서 그림과 관련된 병이 어떤 것인지그 병은 어떻게 예방하면 되는지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치료하고 몸 관리를 하면 되는지 처방하는 것 같다그래서 독자들은 더욱 친근감을 느끼고 이야기를 듣듯 편안하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다만 고유명사 표기가 정확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프랑스인이기 때문에 귀스타브Gustave’로 표기해야 하는 이름을 자꾸 독일식 표기인 구스타프로 표기하고 알렉상드르Alexandre’를 알렉상드로로 표기하며 마네트 살로몽의 원어 표기를 ‘Manette Salomon’으로 제대로 적어놓고도 계속 마네트 랄르몽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스페인인인데 영어식으로 프랜시스 고야라고 표기한다동성애자라고 분명히 밝혀진 사람은 20세기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인데 17세기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을 동성애자라고 적어 놓는 오류도 보인다모차르트의 사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모차르트가 매독 치료를 위해 수은을 치료제로 사용하다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즐겁게 읽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것도 많은 인문 교양서이다미술 작품에서도 의학적인 사실들의학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미술사 지식과 의학 지식들을 함께 쌓아가는 것이 즐겁다미술관과 병원의 행복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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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의학자 -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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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의학의 비중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고,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미술사에서는 배경지식을 충실히 전달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의학에서는 전문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한다. 고유명사 표기가 정확하지 않고 확정되지 않은 것을 확정된 것인 것처럼 서술하는 부분이 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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