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로 산다는 것
김학원.정은숙.강주헌 외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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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년 전에 쓴 책인데도 아직까지도 유효한 이야기가 많다. 기획편집이 어떤 것인지 모호하고 감이 잡히지 않는 초보 편집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책이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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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합니다
임수희 지음 / 수이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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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가 아니고 사서가 될 계획도 없는 나는 왜 이 책을 읽었을까. 어린 시절 일주일에 한 번 이동 도서관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대학교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 3층 인문학 코너를 주요 서식지로 삼았으며, 지금도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이 인생의 낙인 열성 도서관 이용자여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책을 입수하고 보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나와 입장이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져서? 사실 좋아하는 사람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사서다.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일하는지, 일하면서 어떤 것에 보람을 느끼는지, 어떤 것이 힘든지 알고 싶었다. 


  도서관마다 책을 입수하는 기준, 책을 버리는 기준, 이용자를 응대하는 매뉴얼은 각각 다를 것이다. 근무하는 곳이 공공도서관이냐 사설도서관이냐, 자신이 정사서냐 계약직 사서냐에 따라서도 할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사서로서 공통된 업무들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보람과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이 일할 때 이런 보람을 느끼겠구나, 이런 게 힘들겠구나 조금이라도 더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힘든 점을 이해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힘든 점을 가볍게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당사자 앞에서 쉽게 내뱉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 사람 앞에서, 그 사람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서 분들 앞에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더 이해하고 싶다는 처음의 목적을 넘어서, 읽으면서 사서 분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편집자인 나도 사서 분들도 책을 독자들과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서 한 사서 분이 "내가 건넨 책이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는데, 나는 "내가 만든 책이 그 책을 읽는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가능성이 너무 희미하게 느껴질 때 힘들다는 것조차 공감했다. 사서 분들이 도서관에 어떤 책을 입수할지 치열하게 수서 회의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 수서 회의에서 내 책이 선택되도록 더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수서 회의를 지켜보면서 사서 분들이 파악하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독서 경향은 어떤지 듣고 싶었다. 그 회의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 입장은 이렇다고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도서관에 십진분류법이 아닌 특정한 주제로 책들을 배치하는 '컬렉션'이 있다는 것이 특히 흥미로웠다. 이런 컬렉션은 한 사서의 고민이나 '이건 꼭 만들어야 해'라는 여러 사서들의 공감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사서들은 자신의 컬렉션 주제가 너무 좁거나 넓은 건 아닌지, 시의성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사하면서 컬렉션의 주제를 다듬어간다고 한다. 편집자가 책을 기획할 때 어떤 책을 만들지 생각을 다듬어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컬렉션들이 편집자가 책을 기획할 때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자 열성 독자, 도서관 이용자로서 도서관 컬렉션으로 이런 주제는 어떻냐고 의견을 내놓고도 싶었다. 


  이렇게 주제 자체로도 공감할 여지가 차고 넘치는데, 재기발랄한 문체여서 더 즐겁게 읽었다. 같은 것을 이야기해도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재미없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책의 작가는 전자다. 상황에 따라 뜻하지 않게 쏟아지는 업무와 공공 장소이다 보니 수없이 만나는 각종 민폐들마저 유쾌하게 이야기한다. 겪을 때마다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그런 힘든 일을 좀 더 쉽게 넘길 수 있게 된 내공이 느껴진다. 작가가 그런 힘든 일들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소소한 행복들을 이야기할 때 미소가 지어졌다. 


  작가가 동료 사서들 네 명과 나눈 인터뷰가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이 인터뷰가 사서라는 직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보다도 어린 사람들이 자기 직업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뚜렷한 직업관을 가진 것에 부끄러워졌다. 지금은 사서 일을 그만두었다는 작가나 인터뷰에 응한 이들 동료 사서 분들이나 '그림책에 나오는 할머니 안경을 쓰고 숄을 걸친 머리 하얀' 노인이 될 때까지 사서로 일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편집자로서나 이용자로서나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에세이와 직업 탐구의 중간에 있는 책이다 보니, 더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이야기도 스케치 정도로 가볍게 다룬다. 인터뷰가 직업 탐구로서의 깊이를 더해주긴 하지만, 워낙 작은 책인데다 페이지도 많지 않아 아쉽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은데. 책에서나 도서관에서나 사서 분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고,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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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합니다
임수희 지음 / 수이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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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이 열정을 가지고 진행하는 수서 회의도 지켜 보고 싶고, 열성 이용자로서 도서관 컬렉션에 대해 사서들과 신나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다만 각 꼭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가볍게 스케치하는 정도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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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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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번역본들보다 좀 더 매끄럽게 읽힌다. 당시의 시대 배경과 러시아어, 러시아 문화에 대한 설명도 각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작가의 말도 함께 실어 놓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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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의 옥중서신
로자 룩셈부르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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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H

 

잘 지내고 있어올해도 벌써 3분의 2는 지나갔네올해는 코로나뿐만 아니라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참 힘들었어그래도 나쁜 일은 다 지나갔고 조용히 내 시간을 보내고 있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예전보다 책을 더 많이 읽게 돼요즘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들을 묶은 책 로자 룩셈부르크의 옥중서신을 읽었어예전에 레드 로자라는 그래픽노블을 읽으면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는데그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었어.

 

로자 룩셈부르크는 폴란드인이지만 28세에 독일 사회민주당에 가입한 이후로독일에서 정치 활동을 해 왔어전쟁(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는 주장이 대세였던 당시 독일에서 로자와 동료 의원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켰고이 일 때문에 로자와 리프크네히트는 수감되었어그 때 로자가 리프크네히트의 아내 소피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게 이 책이야.


사적인 편지이다 보니 로자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많지 않아. “매일 조금씩 낡은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위대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하지만로자의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더 깊이 알려면 다른 책들을 더 읽어봐야겠지이 책은 로자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들을 다루고 있어.

 

편지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자연에 대한 사랑이야사방이 막힌 감옥에서 로자가 잠시나마 자유로움과 생기를 느낄 수 있게 한 건 주변의 자연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식물들동물들이었으니까로자는 붓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듯이 해가 지고 노을이 물드는 하늘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 모습을 묘사해식물학자처럼 주변의 식물들을 관찰하고밖에 있는 소피에게 식물원에 가서 어떤 식물들이 있었는지 보고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하지감옥 주변을 맴도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떤 새들이 우는 건지어떤 감정으로 우는 건지도 구별해나는 로자만큼 새와 식물들의 종류를 많이 알지 못하지만코로나 때문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자연이 더욱 싱그럽게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됐어그러니 로자에게 더 공감할 수 있었지.

 

자연에 대한 로자의 사랑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로자는 욕실 창가에서 우연히 공작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 보살펴 주었지만나비는 며칠 만에 죽고 말았어로자는 나비의 죽음을 슬퍼했지그리고 수용소에 끌려온 루마니아 들소가 독일 군인에게 피가 날 정도로 심하게 매 맞는 것을 보면서 그 소와 동질감을 느껴자유를 빼앗기고 잔인한 폭력을 당한다는 점에서그리고 책 속에서 미국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에게 억압당하고 말살당하는 이야기를 읽고 분노하지로자는 그저 이념과 투쟁에만 몰두해 있는 게 아니라세상의 약하고 억압당하고 고통 받는 존재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했어.

 

로자는 평생 약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싸워 왔어그러면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탄압당할 수밖에 없었고평생 동안 수차례 감옥에 갇혔지이런 삶이 고통스럽지 않았을 리 없지만그래도 로자는 삶을 사랑했어삶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자신이 작은 고통에도 흔들린다는 걸 인정했지만그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려고 했어그러면서 소피나 카를 같은 친구동지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을 추억하며 그런 시간을 다시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해. 1918년 봄에 로자는 소피에게 내년 봄은 함께 보낼 수 있을 거라고 편지를 보냈는데로자가 이듬해 봄이 되기도 전에 살해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슬퍼져삶은 로자의 기대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로자는 삶을 사랑했고그 덕분에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아갔다고 생각해.

 

번역이 딱딱해서 로자의 편지가 부드럽게 읽히지 않은 게 아쉬워합쇼체를 덜 쓰고 해요체를 더 많이 썼다면문장에서 주어를 적당히 삭제했다면 문장이 좀 더 자연스러워졌을 텐데(우리말 문장에서 주어를 일일이 넣으면 오히려 어색해지고 번역체처럼 느껴지지). 하지만 로자의 맑고 부드러운 감성은 딱딱한 번역문에서도 느껴져로자가 언급하는 작가학자정치인문학 작품을 미주와 각주로 꼼꼼히 설명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고(그런데 어떤 걸 미주로 처리하고 어떤 걸 각주로 처리하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서 좀 아쉬워). 로자는 소피 말고도 남편연인동지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데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도 번역되면 좋겠어그만큼 로자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우리도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삶과 우리 주변의 사람들더 약한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편지 속 로자의 표현을 빌려서 인사할게네가 더 많은 온기와 햇살을 가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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