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 신비한 원소 사전
김병민 지음, 장홍제 감수 / 동아시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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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뼛속까지 문과이고 수포자이지만, 수학과 과학은 낯설어서 더 흥미롭다. 과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특히 낯선 것은 화학이다. 중학교 때와 고1 때 통합과학에서 잠깐 맛보기로 공부한 게 다이기 때문이다. 주기율표는 그저 칸마다 글씨로 채워진 테트리스처럼 보였다. 


  그렇게 주기율표는 평생 모르고 살 줄 알았는데,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이라는 서정적인 제목과 파란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산뜻한 표지에 끌렸다. 주기율표를 어렵지 않게 설명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기율표를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만 알아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계속 읽게 됐다. 


주기율표. 1번부터 118번까지 모든 원소를 특성에 따라 정리했다. 

출처: https://ptable.com/?lang=ko#%EC%86%8D%EC%84%B1


  주기율표는 (지금까지 발견된) 세상의 모든 원소를 번호와 특성에 따라 차례대로 정리해 놓은 표다. 그러니 우선 원소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화학이 어렵게만 느껴질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첫 장부터 원소에 대한 낭만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단 118개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도 우주에서 왔고, 우리가 죽고 우리의 몸이 분해되면 우주로 돌아간다. 그러니 사람이 죽으면 별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문학적인 표현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 뒤로 원소는 어디에서 왔는지, 원소의 개념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원소를 정리하는 주기율표는 어떻게 완성되어 왔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까지가 1장의 내용이다.


  1장은 원소의 기본적인 개념과 원소를 둘러싼 화학의 역사를 다루기에 이야기를 듣듯 술술 읽으면 된다. 하지만 2장부터는 주기율표의 배치 원리가 본격적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원소 하나하나의 입자인 원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인데, 원자의 구성 요소인 전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작다.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니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개념과 원리들이 직접적으로 와 닿기 힘들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위)과 주기율표(아래). 수소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맨 왼쪽 1족(가로줄) 구역은 웨스트민스터의 시계탑에, 오른쪽의 13족부터 18족 원소들이 있는 구역은 반대편 상원의회 건물에, 나머지 3족부터 12족 원소들이 있는 구역은 가운데의 긴 국회의사당 건물에, 아래에 따로 떨어져 있는 란타넘 족과 악티늄 족은 별채처럼 따로 떨어져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비유된다. 

웨스트민스터 사진 출처: https://www.archdaily.com/876018/bdp-to-restore-london-palace-of-westminster-and-secure-future-for-united-kingdom-houses-of-parliament


  저자는 비유를 통해 원자와 그 안의 전자가 만들어내는 화학 반응들, 그에 따른 주기율표의 배치 원리, 원소의 유형과 그 특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전자가 들어가는 공간들이 여러 겹 쌓여 있는 원자 내부를 겹겹의 껍질로 이루어진 양파에 비유하고, 주기율표를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비유하는 식이다. 주기율표 안에서도 각각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원소의 유형들은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각 부속 건물에 비유된다. 주기율표를 공부하는 게 처음이고 고등학생 때보다는 이해력이 많이 떨어진 나는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모르는 용어를 찾아보았다. 머리가 한창 잘 돌아가고 화학을 어느 정도 공부한 중고등학생이라면 아주 쉽게 이해할 것이다. 경어체로 쓰여 있어 친절한 과학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더해진다. 

도감처럼 구성된 2부 '신비한 원소 사전'


  1부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을 다 읽고 책을 뒤집어보면 반대편부터 2부인 ‘신비한 원소 사전’이 시작된다. 이야기체인 1부와 달리 2부는 도감 같은 형식이다. 맨 앞에 각 원자 항목의 구성을 설명하는 페이지와 주기율표가 나온 뒤 백과사전처럼 전체 원소에 대한 설명이 번호 순서대로 실려 있다. 각 원소의 번호와 한국어 명칭과 영어 명칭, 유형과 전자 배치가 나온 뒤 여러 개의 키워드와 그에 해당하는 이미지, 설명을 함께 실었다. 다채로운 사진, 일러스트와 함께 각각의 원소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특히 각 원소들이 실생활에서 어떤 곳에 활용되는지 설명되어 있어, 얼마나 많은 곳에서 다양한 원소들이 활용되고 있는지 실감하게 한다. 원소 연구를 통해 산업 기술을 발전시켜 인간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든 화학자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 두 개의 부분은 문체(1부는 경어체, 2부는 반말)와 형식뿐만 아니라 종이 재질과 색 구성이 달라 2부부터 새로운 책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만든다. 1부가 재생용지 재질의 종이인 반면, 2부는 고화질 이미지를 나타내기 좋은 매끄러운 종이이다.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등 몇 가지의 색으로만 구성된 1부와 달리 2부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선명한 총천연색으로 실려 있다. 

파란색 글씨와 일러스트로 산뜻한 느낌을 준 1부의 본문


  하얀 종이 위에 다양한 색이 펼쳐진 2부에 비해 1부가 우중충해 보일 수 있기에, 1부는 파란색 글씨와 귀여운 일러스트로 산뜻한 느낌을 더한다. 일러스트는 딱딱해질 수 있는 책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면서 본문의 이해를 돕는다. 중요한 부분에 친 형광 노란색 밑줄은 좀 더 어두운 색깔 위의 종이 위에서 뚜렷하게 빛나면서 중요한 부분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교과서에 밑줄을 치면서 공부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각 페이지들을 풀로 붙이는 대신 파란색 실로 묶어 본문의 파란색 글씨와 통일감을 주면서 페이지들이 쫙쫙 잘 펴지게 했다. 이렇게 디자인 측면에서도 공을 들인 것이 보인다. 다만 1부와 2부의 방향이 서로 반대여서 2부에 있는 주기율표를 보려면 책을 뒤집어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2부의 방향을 거꾸로 하지 않으면 2부를 조선시대 고서처럼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넘겨봐야 했을 테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주기율표를 몰라도 세상을 사는 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세상의 근원이 되는 원소와 그 원소를 특성에 따라 정리한 주기율표를 알게 된다면, 세상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원소들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지 알게 될 테니까. 전공자 수준으로 공부하지는 않더라도 원소와 주기율표의 기본 개념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이 책을 곁에 두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주기율표의 역사부터 기본 개념, 배치 원리, 주기율표에 담겨 있는 모든 원소의 특징들이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으니. 과탐 과목으로 화학을 선택해서 막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기본 개념을 머릿속에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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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 신비한 원소 사전
김병민 지음, 장홍제 감수 / 동아시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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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알못 문과도 이 책으로 주기율표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해 왔는지, 주기율표에 원소들이 어떤 원리로 배치되는지 이해하고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부드러운 문체로, 비유를 들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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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생각한다
이학범 지음 / 크레파스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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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애완동물이라는 말이 반려동물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애완동물()’희롱하다, 장난하다, 놀이하다, 장난감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동물을 놀잇감이나 장난감 정도로 치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반려동물반려이라는 뜻이기에 동물이 사람의 동반자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여기에서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점점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동물들의 삶의 질은 사람들의 인식만큼이나 나아졌을까? 반려동물을 생각한다는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 개 농장에서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전시되는 동물들, 실험동물들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전반의 복지와 권리에 대해 생각하는 책이다.


  사람에 대한 복지나 인권을 챙기는 것도 힘든데 동물의 복지나 동물권까지 챙기는 건 사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동물의 복지와 동물권을 추구한다고 사람에 대한 복지나 인권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사회적인 약자들처럼 동물들 또한 사람보다 약자이기에 그들의 권리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나 코끼리처럼 사람보다 체격이 크고 강한 동물들도 사람들의 도구로 목숨을 잃거나 동물원에 갇히거나 관광 수단으로 이용되니, 약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람과 동물 모두 같은 환경 아래서 살아가며 생태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에, 사람과 동물, 환경의 건강을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저자는 우리가 동물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정부의 관련 부서와 동물 보호 단체들이 작성한 구체적인 통계와 동물보호법 시행 사례들을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동물 보호, 동물 복지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그와 관련된 법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와 한계가 있었고 어떻게 개선해 가면 좋을지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수의사들과 동물 보호 단체들이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해 함께 행동했고, 정부에서도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꾸준히 동물보호법을 개선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대부분의 법령이 반려동물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개에 대한 것이고, 그 외의 반려동물들에 대한 법령, 규정은 미비하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예를 들자면, 고양이를 키우는 내 입장에서는 개와 달리 아직 고양이는 동물 등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고양이를 잃어버린다면 다시 찾기가, 동물 등록된 개를 찾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반려동물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해야 하는지, 각각의 동물 종에 대해서까지 세세하게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지 논란이 있겠지만 개가 아닌 반려동물들도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규정으로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이 책은 정부가 동물보호법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우리 곁의 동물들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밖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반려견의 목줄을 제대로 매지 않는 사람은, 반려견과 다른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게 방치하면서, 반려견에 대한 막연한 혐오와 공포까지 심어준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주는 안내견은 어느 곳에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안내견이 지하철에 탔다고 항의하는 사람이나 승차를 거부하는 버스 운전사도 있다. 이런 사람들뿐 아니라 내 자신의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를 그저 귀여운 인형, 위로를 주는 대상 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충분히 놀아주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과연 제공해 주었는지. 잔인하게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관심이 없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무지로 인해서 동물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다만 반려동물의 털이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이가 병이 들까 반려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이와 개, 고양이를 함께 키우면 알레르기와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이 오히려 반으로 줄어든다는 미국 조지아 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면 했다. 연구팀의 통계와 결론만 이야기하고 그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이야기해 주지 않아, 아이 때문에 반려동물을 버리려는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이 아쉽지만, 반려동물부터 길에서 살아가는 동물들, 동물원의 동물들, 실험동물들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동물들의 현실을 돌아보고, 그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다. 구체적인 사실들과 수치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딱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사실을 파악해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고 있다. 책 표지와 본문 곳곳에 그려진 귀여운 동물 일러스트들이 이런 딱딱함을 상쇄하고 있기도 하고.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동물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꼼꼼히 읽으면서 동물을 어떻게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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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생각한다
이학범 지음 / 크레파스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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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통계와 동물보호법 시행 사례들을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동물 보호, 동물 복지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지를 차근차근 제시한다. 반려동물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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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로 산다는 것
김학원.정은숙.강주헌 외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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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편집자가 되고 싶은데 어느 쪽으로도 길이 막혀 있는 것 같다. 주변에 조언을 구할 지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으니 마냥 붙잡고 물어볼 수만은 없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정도 있어 편집과 관련된 강의를 듣는 것도 쉽지 않다. 혼자 이것저것 찾아보긴 하는데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이런 내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준 책이 있다. 그 책이 여섯 명의 출판계 사람들이 한 꼭지씩 맡아 쓴 책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편집자를 꿈꿔왔지만, 편집자가 되면 어떤 책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내게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의 이 말이 지침이 되었다. "앞으로의 출판에서는 우선 자신의 운동장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때가 오면 자신의 분야와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김학원 대표는 말한다. 그런데 어느 출판사나 인문서를 만든다고 하면서 인문서 안에서도 어떤 분야를 전문으로 할 것인지, 그 분야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전문성도 없고 차별성도 없고 비전도 없다고 한다. 


  나는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했고 역사와 미술사를 전문으로 하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 역사책, 미술사 책 편집의 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김학원 대표는 역사 전문 출판사를 만들 때 역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단행본을 냈던 저자 수십 명을 만났다고 한다. 『역사비평』, 『역사산책』  같은 역사학 학술지에 발표된 글들을 참고해서 역사 분야의 주요 저자들, 핵심 학자들과 몇 개월 동안 계속 회의를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의 편집자가 10년 넘게 학계나 주변의 다양한 필자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역사책의 방향, 역사 대중화의 방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쌓아간다면, 그 자체로 역사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그런 편집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 당장 너무 어려운 일로 보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최근 나온 학술지 한 권씩이라도 읽어보고 나를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들이 쓰신 논문과 책들을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씩 보였다. 


  미술사 책을 만들려면 어떤 것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어떤 것들을 유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의 글에서 배웠다. 나를 가르쳐 주셨던 미술사 교수님들 중 한 분이 "요새는 사람들이 작품 자체보다 작품의 배경지식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한탄하셨고, 나도 교양 미술사 책이나 국내 유명 전시들의 도슨트 해설이 작품 자체보다는 배경지식에 더 치중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미술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미술사 책을 만들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민영 대표는 독자들에게는 화가들의 에피소드, 저자 자신의 에피소드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하는 통로가 되며, 교양 미술사 책에는 독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예능감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앞에서 김학원 대표가 말했듯이 대중서, 교양서에서도 깊이가 있고 기본이 탄탄해야 하지만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양념 또한 필요하다. 이 둘의 균형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들어가는 작품 도판 이미지의 저작권 문제와 화질 문제, 도판의 배치 등에 대한 실용적인 팁들도 많았다. 딱 내가 알고 싶었던 분야에 대한 특강을 들은 느낌이라 반갑고 기뻤다. 


  전문성 못지않게 편집자에게 중요한 것은 '팔리는 책'을 만드는 것, 즉 책의 상품성이다. 내게는 베스트셀러여도 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편집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그런 내게 "책 또한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상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강주헌 번역가의 말은 따끔한 일침이었다. 좋은 책을 쓰는 저자에게 출판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독자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책을 찾아내는 것이 기획자의 책임이고 의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막연히 '좋은 원고면 좋은 책이 되고 독자들도 알아주겠지'라고만 생각한 건 아닌가 반성했다. 팔리는 책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급자(편집자)가 생각하는 좋은 책과 수요자(독자)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간극을 좁히고, 수요자에게 책의 존재를 잘 전달해야 한다, 내가 가진 비교우위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의 시작이라는 이홍 리더스북 대표의 이야기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물론 큰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내 몫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길이라고 느껴졌다. 편집자로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하고 노력해야 할 것은 너무 많다. 평소에도 나 자신을 계속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게 숨이 막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한다 해도 출판계의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노는 거 좋아하고 어려운 걸 견뎌내지 못하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저 내게 스승이 되어준 이 책 속의 가르침들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며 실천해 갈 수밖에 없다. 좋은 편집자라는 길고도 막막한 길에서 이 책은 좋은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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