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에 대한 생각 - 세계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우리의 식탁은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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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누구나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한 권을 이끌어간다. 화려한 시각 자료 없이도 풍부한 예시로 넷플릭스 음식 다큐 시리즈를 보는 듯 생생하게, 균형 잡힌 시선으로 좋은 음식에 대한 고민들과 노력들을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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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세계사
셰저칭 지음, 김경숙 옮김 / 마음서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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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만 원권의 신사임당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지폐에 실린 인물은 다 조선시대 이씨 남자라든가천 원권에 그려진 퇴계 이황 선생이 배우 소지섭을 닮았다든가 하는 사소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지폐 자체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았다어린 시절 어머니가 반짇고리에 외국 주화 몇 개를 모아두어 그걸 갖고 놀긴 했지만 주화가 아닌 지폐를 수집하는 사람도 있을 줄은 몰랐다그런데 각 나라의 지폐를 수집하면서 각 지폐에 얽힌 그 나라의 역사정치문화를 살펴보는 사람이 있었다그런 점에서 지폐의 세계사는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폐의 세계사는 대만의 대중 인문학자이자 여행 작가인 셰저칭이 25년간 수집해 온 외국 지폐를 통해 지폐에 얽힌 그 나라의 역사와 정치사회문화예술을 이야기하는 책이다저자는 단순히 지폐를 수집해 온 것이 아니라 지폐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기도 하고 지폐의 인쇄 방식을 연구했으며 지폐 디자인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이 책은 그가 97개국에서 수집한 지폐 중 42개국의 지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위)1968년 발행된 네덜란드의 10길더 지폐. 앞면에서는 인물의 세부적인 특징을 단순화하고, 뒷면에는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도형을 담았다. 

(가운데) 2002년 발행된 페로 제도의 페로크로나 지폐. 화가 하이네센이 그린 페로 제도의 풍경화를 뒷면에 담았다.

(아래) 1941년 발행된 프랑스의 50프랑 지폐. 프랑스 회화 특유의 섬세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다양한 나라의 지폐 이미지들을 컬러로 담았다책장을 넘기면서 그 나라만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담은 지폐 자체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자국의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려 넣은 네덜란드의 지폐수묵화 같은 발묵 기법으로 광활하고 적막한 바다 풍경을 그린 페로 제도(Færøerne,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에 있는 덴마크의 자치령)의 지폐는 지폐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다. 1940년대에 발행된 프랑스 지폐들에 그려진 삽화들은 프랑스 회화 특유의 풍부한 색채와 섬세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해외는커녕 집 밖으로 나가기도 꺼려지는 이 상황에서 이 책은 지폐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책상 앞으로 불러온다.


2005년 루마니아에서 발행한 1만 레우 지폐. 이 지폐에 그려진 쿠르테아 데 아르제슈 성당에는 잔혹하고도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지폐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크다. 2005년 발행된 루마니아 1레우 지폐에 그려진 쿠르테아 데 아르제슈 성당 Curtea de Arges Cathedral은 잔혹하면서도 슬픈 전설을 품고 있다. 194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70여 년 동안이나 태국의 각종 지폐의 주인공이 되어 온 라마 9세 전 국왕은 국왕과 왕실의 이미지를 신성하게 만들기 위해 태국 정부가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는지를 보여준다원 제국의 전성기에 궁중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해 포도주와 마유주벌꿀주를 뿜어냈다는 은 나무는 1993년 몽골에서 발행된 5천 투그릭과 만 투그릭 지폐 뒷면에 그려져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지폐 곳곳에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먼 나라들의 역사와 현재가 숨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다만 워낙 다양한 나라의 지폐들을 제한된 분량 안에서 다루다 보니 각 지폐에 대한 설명이 생각만큼 깊이 있지는 않다. 42개국의 지폐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어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책의 분량이 326페이지밖에 되지 않으니스스로 지폐의 인쇄 방식을 연구했다고 하니 지폐의 인쇄 방식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정교한 오목판 인쇄 기술’ 정도로 언급하는 데 그친다무엇보다 지폐가 언제 어디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개관하는 서론 부분을 덧붙였다면독자들이 지폐의 세계로 들어오는 데 도움을 주면서 지폐의 세계사라는 제목에 더 걸맞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이 책은 저자가 각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지폐를 설명하는 짤막한 에세이들을 모은 것이라, ‘테마로 보는 세계사보다는 인문 에세이집에 가깝다저자가 여행에서 느낀 감상 부분이 서정적이어서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지폐라는 키워드로 세계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던 독자들로서는 아쉬울 것이다.

 

  그리고 내용 면에서 오류도 보인다프랑스 화폐 챕터에서 저자는 1870년 보불전쟁(프랑스와 프로이센이 스페인 국왕의 선출 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당시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이 나라를 지키는 데 비교적 냉담했다고 설명하면서전쟁을 피해 런던이나 브뤼셀로 피신했던 인상파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반 고흐를 든다그러나 반 고흐는 애초에 프랑스인이 아니기에 보불전쟁에 참전해야 할 이유가 없었고그 당시 런던도 브뤼셀도 아닌 헤이그의 화랑에서 직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전쟁을 피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에서 자기 경력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반 고흐는 인상파가 아니라인상주의의 영향을 받되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개성을 추구하려 했던 후기 인상주의에 속한다저자가 각 지폐에 얽힌 한 나라의 역사나 한 분야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기에 이런 오류를 저질렀을 것이다.


  이런 점들로 볼 때 이 책은 지폐의 역사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아쉬운 책이지만낯선 세계의 문물들을 구경하면서 현실의 시름을 잊고 상상을 펼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책일 것이다예쁘고 다채로운 이미지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사람들편안히 쉬면서 얕고도 넓은 지식을 쌓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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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세계사
셰저칭 지음, 김경숙 옮김 / 마음서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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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세계사 책이라기보다는 각 나라 지폐에 대한 잡학 지식과 단상들을 엮은 인문 에세이집에 가깝다. 다루고 있는 나라가 많아 각 나라의 지폐에 대해 깊이 있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다양한 나라들의 지폐에 얽힌 소소한 지식들을 얻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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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한 끼 - 아라비아의 디저트부터 산사의 국수까지, 맛과 믿음의 음식인문학
박경은 지음 / 서해문집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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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이지만 내 종교가 그렇게 내 식생활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순절(四旬節, Lent,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전까지의 40일. 기독교인들은 이 시기 동안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속죄와 경건의 시간을 보낸다.)에 금식도 잘 하지 않는 나일론 신자여서 그렇긴 하지만. 부활절에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삶은 달걀을 먹는 것 말고는 내 식생활과 내 종교가 관련될 일은 평소에 거의 없다. 하지만 육식을 할 수 없는 불교 승려들이나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는 무슬림들처럼 식생활에서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나와 다른 종교, 다른 문화권인 사람들은 종교 때문에 어떤 것을 먹을 수 있고 어떤 것을 먹을 수 없을까. 종교 덕분에 어떤 음식 문화를 가지게 되었을까. 이런 호기심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중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이태원의 터키 제과점에서 파는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중동 이슬람 국가 사람들이 강한 단맛을 좋아하는 이유가 특히 흥미로웠다. 중동의 더위를 이겨내고 금식 기간인 라마단을 지낸 뒤 기력을 빨리 회복하는 데는 단 음식이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동의 디저트들은 단맛이 매우 강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중동의 무슬림들이 단맛을 좋아하는 데는 이런 실용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맛있는 식사 등 현세에서 즐기는 쾌락이 내세의 낙원에서 누리는 기쁨의 예시라고 여긴다. 화려하고 다양한 디저트는 낙원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확인해 주는 증거다. 디저트를 즐기는 것이 믿음의 증거라는 내용은 코란에도 나와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한 종교가 어떻게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음식 문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지구 반대편 먼 곳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채워져 갔다.



또한 기독교인인 나도 기독교가 사람들의 식생활과 음식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독교와 관련된 음식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종교개혁에 버터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15~16세기, 로마 가톨릭교회는 고기와 유제품이 성욕을 부추긴다고 여겨 성직자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사순절과 기타 금식 기간에 버터를 먹지 못하게 했다. 문제는 1년 중 버터를 먹으면 안 되는 기간이 거의 반 년은 됐다는 것이다. 그나마 올리브가 많이 나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부 유럽에서는 버터보다 올리브 오일을 즐겼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육류와 버터를 주된 식량으로 삼았던 프랑스, 독일 등 중북부 유럽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왕족들과 귀족들, 부자들은 돈을 주고 사순절과 금식 기간에도 버터를 섭취할 수 있는 권리를 샀고, 교회는 버터 섭취권을 판 돈으로 화려한 성당 건물을 지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금식 기간에 정해진 규정을 어겼다가 벌금을 내거나 채찍을 맞거나 투옥되기까지 했다. 마르틴 루터는 1520년 「독일 지역의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에서 금식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비판했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탈한 나라 중 대부분이 버터를 주된 식량으로 삼았던 북부, 중부 유럽 국가들이었다. 이렇게 버터는 종교 개혁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으며, 지금도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버터를 많이 먹는 지역에서는 개신교의 세가 강하다. 주 안에서는 다 같은 형제 자매라고 인간의 평등함을 주장하는 종교가, 기본적인 욕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불평등에 일조했다는 것이 씁쓸하게 남는다. 그리고 종교만이 일방적으로 인간의 식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식생활 또한 종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 가득 실려 있는 선명하고 화려한 음식 사진들은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텍스트가 그 음식에 얽힌 교리나 문화를 설명하고 그 음식의 맛을 설명하고 있으면, 이미지는 그 옆에서 실제로 그 음식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면서 낯선 문화의 낯선 음식들이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와 닿게 한다.

낯섦을 설렘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 낯섦은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자신과 다른 종교, 문화를 가진 상대가 무엇을 먹는지 또는 먹지 않는지에 대해 조롱하고 공격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 낯섦이 배척이 되고 혐오로 번지는 상황이 너무나 많기에 이 책이 서로의 낯섦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 속 다양한 종교와 문화의 음식 문화가 주는 낯섦이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가 아닌, 나를 넘어선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설렘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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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한 끼 - 아라비아의 디저트부터 산사의 국수까지, 맛과 믿음의 음식인문학
박경은 지음 / 서해문집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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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식생활이 생각보다 많은 면에서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 내가 믿는 종교가 어떻게 내 식생활에 영향을 미치는지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의 음식 관련 규칙과 금기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새롭게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생생하고 아름다운 음식 사진들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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