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 나뭇조각에 담겨 있는 백제인의 생활상
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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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고대의 국가인데다 다른 나라에 멸망당해서인지 백제 관련 사료는 다른 시대에 비해 유난히 적다. “토기 파편 몇 조각을 가지고 논문 수십 페이지를 쓰려니 죽겠다는 백제사 연구자분의 한탄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날 정도다사료 부족으로 허덕이는 백제사 연구자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목간木簡이다목간은 종이가 보편화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썼던 나뭇조각이다. 1999년 부여 궁남지에서 백제시대 목간이 대량으로 출토된 이후로 20여 년 동안 목간을 통한 백제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만연구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연구 결과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그래서 백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중 독자들에게 목간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 백제사를 들려주려 만든 책이 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나주 복암리에서 발굴된 목간들. 백제의 지방들에서도 문서 행정이 이루어졌고, 지방 관리들이 주민들의 연령대별 인구 수, 재산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시대의 목간들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정치행정과 관련된 것이다백제 조정에서는 목간과 종이를 활용해 문서 행정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종이로 된 행정 자료는 남아 있지 않으니 백제시대의 문서 행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려면 목간을 연구할 수밖에 없다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같은 우리나라 사서에는 없고 주서같은 중국 사료에만 나와 있던 외경부라는 중앙 행정 기구의 명칭이 적혀 있었다. ‘외경부의 철로 면 10냥을 대신한다고 쓰여 있는데철과 면은 특산물로 바치는 세금인 조調에 해당하는 물품이다이를 통해 외경부가 조세 등 백제의 국가 재정을 관장하는 행정 기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또한 수도인 부여뿐만 아니라 나주 같은 지방에서도 목간이 발굴되어 지방에서도 목간을 활용해 문서 행정을 운영했다는 것이 밝혀졌다나주 복암리에서 발굴된 호적 목간에는 해당 지역의 연령대별 인구수와 전답별 면적가축의 수가 적혀 있다여기에서 백제의 지방 관리들이 주민들의 인구수와 재산소득 상황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이와 같이 백제시대 목간은 현존하는 역사서에 남아 있는 내용을 증명하고 보완할 뿐만 아니라백제사에 대한 새로운 내용까지 밝혀내고 있다.


부여 쌍북리에서 출토된 구구단 목간(왼쪽)과 해독본(오른쪽), 9단부터 2단까지 구구단이 적혀 있다. 이 목간 덕분에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이미 구구단이 활용되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진 출처: 한국문화재단


  백제시대 목간은 백제의 정치행정뿐만 아니라 백제 사람들의 학문 수준도 알려준다2011년 부여 쌍북리에서는 2단부터 9단까지 구구단이 기록된 목간이 발굴되었다그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구구단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구구단이 들어왔다는 설까지 있었다그러나 백제시대의 구구단 목간이 발견되면서 삼국시대부터 이미 구구단이 활용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외우는 구구단이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백제가 멸망한 지 수백 년 뒤인 중세시대의 유럽에서도 숫자를 쓸 줄 아는 것은 소수의 상류층과 지식인들뿐이었고 이들조차 덧셈과 뺄셈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그렇기에 구구단 목간은 백제가 복잡한 산술 체계를 이해하고 활용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목간을 통해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백제 왕들이 묻혀 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 옆에는 왕들의 명복을 비는 절 능사陵寺가 있다이 능사 터에서 자기사子基寺라는 세 글자가 적힌 목간이 발굴되었다. ‘자기사라는 절에서 능사에 보낸 물품에 붙인 꼬리표로 추정된다조경철 교수는 자기사를 아들의 터가 되는 절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이 절을 부모가 아들을 위해 세운 절이라고 본다부여 왕흥사 터에서 출토된 사리함에 왕흥사는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세운 절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조경철 교수는 왕흥사가 자기사와 같은 절이라고 가정하고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위덕왕의 슬픔을 짐작해 본다능사에서는 오랜 세월 맺은 업으로 같은 곳에 태어났으니서로 옮고 그름을 물어 무엇하겠습니까부처님께 절 올리고 귀의합니다라고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조 교수는 이 목간에 신라군에게 죽임당한 아버지 성왕성왕과 함께 목숨을 잃었던 백제 병사들에 대한 위덕왕의 슬픔이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자기사와 왕흥사가 정말 같은 절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능사에서 발견된 목간에 대한 해석도 연구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목간을 통해 역사 이면에 담긴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려는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대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보니 학술서보다는 쉽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것이 느껴진다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글씨 크기가 크고 행간도 넓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편집과 디자인이 세련되고 깔끔하며모든 사진 자료들이 컬러로 되어 있어 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각 챕터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시대 목간들 중 중요한 몇몇 목간들을 공통적으로 다루다 보니 겹치고 반복되는 내용들이 꽤 있다물론 각 장을 맡은 저자에 따라 목간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저자가 설명하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비슷하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그리고 연구 결과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보니 대중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몇 줄의 목간에서 백제의 정치행정사회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유추해 내는 학자들 덕분에 우리는 백제의 숨겨진 면들을 보게 된다중국일본의 사료나 유사한 사례들까지 살펴보면서 목간에 적힌 사실의 파편들을 역사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놀랍다수십 만 점의 목간들이 출토된 중국과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500여 점의 목간만이 출토되었고그 중 70퍼센트는 신라 목간이라고 한다하지만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목간이 꾸준히 출토되고 있다고 하니백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이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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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 나뭇조각에 담겨 있는 백제인의 생활상
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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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독자가 읽기에 조금 딱딱한 면이 있다. 하지만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작은 나뭇조각 위의 몇 글자를 통해 백제의 숨겨진 면을 드러내는 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깔끔한 편집과 디자인, 컬러 사진들 덕분에 만듦새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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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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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에서 미술사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술사에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있었던가?” 내가 프리다 칼로를 이야기하자 교수님이 말했다. “프리다 칼로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 아류잖아또 다른 사람은 없어?” 나도 다른 학생들도 위대한 여성 미술가를 한 명도 더 말하지 못했다하지만 교수님은 틀렸다프리다 칼로는 결코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아류가 아니다그리고 이렇게 질문했어야 했다. “왜 미술사에는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을까?”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이것은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klin이 던진 질문이다렘브란트루벤스마네모네반 고흐피카소까지 수많은 남성 거장들이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그런데 이들에 필적하는 여성 거장은 미술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노클린은 미술사에서 여성 거장이 나타나지 않은 원인으로 남성 중심 사회의 성차별을 지목했다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술 교육을 받는 데도 작품 활동을 하는 데도 제약을 받았고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육아와 가사 노동을 떠맡았기 때문에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없었다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그렇게 자신을 옭아매는 가부장적 사회의 성차별과 싸우며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여성 미술가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 실린 21명의 여성 미술가들 중 대다수가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다여성 미술가의 작품은 남성 미술가의 작품보다 열등한 것아류로 여겨지거나심지어 동시대의 다른 남성 미술가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리에타 로부스티, <자화상>, 1580년.

마리에타 로부스티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의 딸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수백 년 동안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다.


  그렇게 지워진 여성 미술가 중 한 사람이 마리에타 로부스티Marietta Robusti우리는 마리에타 로부스티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잘 알고 있다본명인 자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보다 별명인 틴토레토Tintoretto’로 잘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화가마리에타는 틴토레토의 자녀들 중 예술적 재능이 가장 뛰어났고틴토레토는 평생 동안 딸과 공동 작업을 했다딸이 서른이 될 때까지 결혼조차 허락하지 않고자신이 죽을 때까지 한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데릴사위를 들였을 정도로 틴토레토는 딸에게 집착했다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의 군주들이 마리에타를 궁정화가로 채용하려 했지만틴토레토는 마리에타를 자기 작업장에서만 일하도록 했다.


<소년과 함께 있는 노인의 초상>, 1585년.

틴토레토가 아닌 마리에타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지만, 아직까지 소장처인 빈 미술사박물관에서는 틴토레토의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마리에타가 아이를 낳다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난 후틴토레토의 창작 능력은 급격히 떨어졌다페미니스트 미술가 그룹인 게릴라 걸스Guerilla Girls는 사실상 틴토레토 작업장의 핵심이 그녀였기 때문에 그녀가 죽은 뒤로는 틴토레토가 예전만큼의 창작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마리에타가 자신의 서명을 남긴 작품은 단 한 개였기에 그녀가 죽은 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아버지나 다른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전해져 왔다최근 르네상스 시기 여성 미술가들의 작업을 재조명하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아버지의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들이 그녀의 그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녀를 떠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그늘이 이제야 조금씩 걷히고 있는 셈이다.


  마리에타가 겪었던 가부장제의 억압 외에 여성들이 미술사의 거장으로 자리 잡지 못하게 했던 원인이 또 있다회화와 조각은 미술 분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야로 여겨졌는데여성들은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가족이 아닌 남성 미술가의 수업을 사적으로 들을 수 없었고회화 기술을 익히는 데 필요한 누드 데생 수업도 받을 수 없었다또한 여성은 육체적인 힘도 지적 능력도 부족해 조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이 계속되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이 할 수 있었던 예술 작업은 공예와 자수였고이것들은 남성들에게만 허락된 회화조각건축보다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다.




(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골로 뒀던 패션 디자이너 로즈 베르탱이 디자인한 드레스

(가운데) 요아나 쿠르턴, <사냥 장면>, 1700. 종이 공예 작품이다. 

(아래) 영국의 정원 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이 디자인한 헤스터콤 하우스의 정원.


  그래서 저자가 선택한 전략은 미술사의 범주를 회화조각뿐만 아니라 패션공예디자인 분야까지 확장해 살펴보는 것이다그러면서 가난한 시골 소녀에서 세계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가 된 로즈 베르탱종이 오리기 공예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던 요아나 쿠르턴시력 손상 때문에 화가의 길을 포기했지만 캔버스 대신 정원 조경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거트루드 지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예술을 펼쳤던 여성들의 삶이 드러난다미술사의 주류에 속하지 않는 장르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미술사의 거장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그녀들은 분명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많지 않은 분량 안에 21명이나 되는 미술가들을 다루다 보니 한 명당 내용이 그렇게 깊지 않다는 것이다요아나 쿠르턴의 경우 도판을 제외한 텍스트 설명이 4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다이제 막 재조명되기 시작한 미술가들이 대부분이라 관련 연구 자료가 부족해서였겠지만좀 더 깊이 있게 여성 미술가들을 알고 싶었던 독자로서는 맛보기만 한 기분이다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21명의 여성 미술가 모두가 유럽 출신이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아메리카 지역의 여성 미술가들은 한 명도 다루어지지 않아서양미술사 책이라 하더라도 유럽 쪽에 치우쳐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근현대에 들어선 이후로 서양 미술 분야에서 활약한 아시아아메리카 지역의 여성 미술가들도 많을 텐데화질이 낮은 도판들이 종종 눈에 띄고 크기를 너무 작게 해 놓은 도판들이 많은 것도 미술사 책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판면 구성을 수정해서라도 도판을 더 크게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아쉽지만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 가려져 있던 여성 미술가 21명을 만날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각자 처한 상황과 한계 속에서도 자신이 갈 길을 모색하고 개척해 갔던 그녀들의 삶이아직도 남아 있는 성차별이라는 벽을 허물려고 하는 우리에게 영감과 힘을 준다아직도 전 세계에서 남성 미술가 대 여성 미술가의 전시회 비율이 70 대 30일 정도로 미술계의 성차별은 심각하다그러나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라는 17세기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선언을 마음속에 품고 계속 정진하는 여성 미술가들이 있기에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의 이름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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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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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여성 미술가들을 알려준 것만으로 의미 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시대의 한계를 뚫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분투해 왔는지를 깨닫게 한다. 다만 자료가 부족해서인지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다루지 못한 점, 화질이 좋지 않은 도판들이 여러 개 눈에 띈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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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에 대한 생각 - 세계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우리의 식탁은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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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의 헬스 앱으로 매일 그 날 먹은 음식들을 기록하고 있다내가 입력한 음식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앱에서는 그 날의 영양 균형 점수를 매기는데내 평균 영양 균형 점수는 5, 60점대다포화 지방과 나트륨은 매일 과다하게 섭취하는데 비타민 A, 비타민 C, 칼슘칼륨철분 같은 필수 영양소는 하루 권장량의 절반도 섭취하지 않기 때문이다삼 시 세 끼 굶지 않는 수준을 넘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칼로리를 섭취하는데 정작 내 몸에 꼭 필요한 영양은 부족하다.


  너무 많이 먹는데 정작 영양이 부족하다는 모순은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십억 명이 겪고 있는 문제다농업 기술의 진보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해방되었다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과식과 영양 부족이 동시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고혈압2형 당뇨병뇌졸중각종 암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영국의 음식 작가 비 윌슨Bee Wilson은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 우리가 지금 왜 이렇게 먹게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미국의 영양학자 배리 팝킨Barry Popkin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인간 식단의 변화를 4단계로 분류했다. 1단계는 인간이 아직 농경을 시작하기 전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구했을 때다최초의 인간은 자연에서 구한 다양한 채소와 야생 짐승 고기로 저지방 식사를 했고대체로 영양 결핍을 겪지 않았다. 2단계는 기원전 2만 년경 농경과 함께 시작되었고이 시기 인간의 식단은 곡물 위주로 바뀌었다농경으로 여분의 식량이 생기면서 문명을 발전시킬 여력도 생겼지만기근이 들었을 경우 식사의 양과 질이 떨어져 인간은 결핍성 질환들에 시달리게 되었다. 3단계에서 농업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더 다양하고 풍성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더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게 되면서 결핍성 질환 대부분이 줄어들었다우리는 지금 4단계에 위치해 있고이전의 1, 2, 3단계 시기와 달리 농업의 기계화대규모 국제 식품 산업의 발전으로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그러나 지방과 육류설탕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먹고 섬유질은 덜 먹고 있어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고이 불균형이 우리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의 4단계를 넘어서 5단계로 가길 바란다저자가 이야기하는 5단계는 채소 같이 몸에 좋은 음식으로 건강하게 식사를 하되즐거움을 위해 가끔 입에는 달지만 몸에는 좋지 않은 음식도 먹는 것이다누군가는 다이어트 때문에 고민하는데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굶주리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서이 세상의 모두가 건강하게 먹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마음에서 식사에 대한 저자의 모든 고민과 분석성찰제안이 시작된다.

  

  우리가 5단계로 넘어서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더 기름지고 더 달콤한 음식에 대한 욕망 때문에 건강한 음식을 포기하는 우리 개개인의 의지 부족뿐만이 아니다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정부들이 전쟁으로 고통 받은 국민들에게 더 많은 양의 식품을 제공하는 데만 힘썼을 뿐식품의 질에는 그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다거대 다국적 식품 기업들은 칼로리는 높지만 지방과 당분만이 가득한 가공식품패스트푸드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고매스미디어로 끊임없이 광고를 내보내 소비자들이 어린 시절부터 건강에 나쁜 자기들의 상품에 입맛을 들이게 만들고 있다그런데도 세계 각국의 정부들특히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국민들이 건강에 좋은 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돕기보다는 자기 나라에까지 침투한 다국적 식품 기업들의 이윤을 얻는 데 더 힘을 쏟는다빈민층은 비싼 채소와 과일 대신 값싸고 입을 즐겁게 하며 칼로리도 채워주는 패스트푸드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다이처럼 전 세계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먹고 살지 못하는 것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고더 근본적이고 뿌리 깊은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음을 저자는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더 많이더 기름지게더 달게 먹는 현재의 추세를 부추기는 정부와 기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이 책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도우려는 정부들과 단체들의 노력을 이야기한다칠레 정부는 2016년 설탕이 들어간 탄산음료에 18퍼센트나 되는 세금을 물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그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시리얼 상자에서 모든 만화 캐릭터를 없애는 식품법도 통과시켰다아이들이 설탕이 가득 든 시리얼을 먹게 유혹하는 데 만화 캐릭터들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또한 경고-설탕 함유량 높음’, ‘경고-포화지방 함유량 높음’ 등 꼭 필요한 내용만 눈에 띄도록 식품 라벨을 단순화시켜 식품을 구매하는 시민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했다암스테르담 시의회는 과체중 아동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2012년부터 건강 체중 프로그램을 시작했다현재 암스테르담의 학교들에서는 아이들이 교내에 케이크초콜릿심지어 당분이 많은 과일 주스를 가지고 올 수 없다암스테르담 내 120개의 특별 개입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생일에도 케이크와 과자 대신 채소 꼬치를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다영국의 자선 단체 푸드 파운데이션Food Foundation은 농부와 병원슈퍼마켓출장 요리사 등과 협업하며 영국 사람들이 채소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고또 다른 자선 단체인 알렉산드라 로즈Alexandra Rose는 지역 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무료로 살 수 있는 상품권을 런던의 가정들에 전달했다외딴 섬나라나 산간벽지까지 다국적 기업의 가공식품이 침투한 지금의 세상에서이러한 활동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먹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저자는 정부나 단체의 노력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 또한 제시한다저자가 제안하는 건강한 식사 전략은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것들이다간식보다는 식사에 집중하는 것다양한 품종의 채소와 과일들을 먹어보는 것자기 손으로 자신이 먹을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오감을 활용해 자신이 먹을 식재료들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것그러면서 특정한 슈퍼푸드 몇 가지만을 강조하거나 모든 음식이 건강하지 않은 음식인 양 엄격한 식단만을 강조하는 태도는 경계한다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기보다는몸에 좋은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어 먹도록 권유한다저자는 독자들이 편식하는 아이들인 양 훈계하는 대신자연스럽고 건강하고 즐겁게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있다그 조언 중 독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야기는 그냥 넘겨버리라고까지 말한다이런 저자의 균형 잡히고 유연한 태도 덕분에저자가 훈계하거나 설교하는 것을 싫어하는 독자더라도 자연스럽게 이제부터는 더 건강하게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고기나 가공식품패스트푸드를 완전히 끊지는 못하지만 고기를 먹을 때 배추쌈이나 상추쌈나물 반찬을 더 많이 먹는 식으로 작은 노력이나마 더 하게 되었다싫어하는 반찬을 억지로 삼키기보다는 내가 잘 먹지 않았던 채소 반찬들도 나름대로 맛이 있고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이렇게 책을 읽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노력들이 이어질 때 저자가 바라는 모두가 건강하게 먹고 건강하게 사는 세상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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