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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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편견에 맞서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가겠다는 메시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공상표와 김영우, 그들의 사랑을 그려가는 데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그리고 게이는 여자 같은 남자라는 편견이 이 소설에서도 반복되어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어긋나는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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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선언 - 서브컬처 본격 비평집
텍스트릿 엮음 / 요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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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란 나름대로의 서사 규칙과 관습으로 굳어진 특징들이 있어누구나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 작품을 보는 순간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 알게 되는 콘텐츠들, 그 콘텐츠들을 묶은 집단이다엘프와 마법사가 나오면 판타지하늘에 우주선이 떠다니면 SF, 중국을 배경으로 무예 실력을 겨루는 고수들이 나오면 무협이런 식으로. 2000년대 이후로는 장르가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대중의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콘텐츠들을 포괄하는 의미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르 콘텐츠의 역사가 수십 년 동안 쌓여 왔고웹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 작품대중영화대중음악게임 등의 장르 콘텐츠들이 대중들에게서 큰 인기와 수익을 얻고 있다그러나 장르 문학은 문학의 주류로 여겨지는 순문학과 비교해 비주류로 여겨지곤 하고대중성이 강한 장르 콘텐츠들은 순수 예술 작품들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받는다장르 콘텐츠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비평가들의 모임 텍스트릿은 장르가 주류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미학과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뜻에서, ‘비주류 선언을 한다자신들이 또 다른 주류임을 외치는 ‘B급의 주류 선언이자 ‘Be 주류 선언이다.비주류 선언은 장르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고장르와 관련된 콘텐츠들을 비평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르 콘텐츠를 그저 즐길 거리로만 여기고진지하게 비평하거나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텍스트릿의 연구자들은 장르 콘텐츠를 연구와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우리가 장르 콘텐츠들을 즐기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짚어낸다왜 판타지 소설들은 대부분 중세시대 서양을 배경으로 할까중세시대 서양이 한국 사회에서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거리가 멀고 낯선 세계이기 때문이다한국의 판타지 문학 속 중세 서양은 실제 중세 서양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서양이 근대에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낯선 동양에 대한 환상을 키워 왔지만 그들이 재현한 동양은 실제 동양의 모습과 달랐던 것과 통하는 부분이다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꿔 왔고픽션을 통해 현실을 탈출하려 했다판타지 소설 속 중세 서양은 독자들이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고 욕망을 채우는 공간이라는 기능을 한다이렇게 텍스트릿은 장르 콘텐츠들에 지금의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텍스트릿은 장르 콘텐츠가 한국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되짚어 본다이들은 장르 콘텐츠의 내용 면에서의 변화뿐만 아니라 장르 콘텐츠가 유통되는 방법과 매체에서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 1990년대에는 장르 문학 작가들이 PC 통신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연재했다.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장르 문학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이 시기에는 장르 문학 작품들이 주로 개인 사이트에서 연재되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문피아조아라 등 기업형 웹소설 사이트들이 등장했고스마트폰이 발명되고 보급된 이후로는 카카오페이지네이버 시리즈 등의 웹소설 플랫폼들에서 장르 문학이 더욱 흥행하고 있다작가는 웹소설 플랫폼에 소설을 직접 업로드하면서 창작자일 뿐만 아니라 출판사와 같은 출판 주체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매체에서의 변화는 내용 면에서의 변화까지 불러왔다온라인 공간에서 더 다양한 독자들과 만나게 되면서무협 소설은 어려운 무공의 개념을 좀 더 쉽게 전달하면서 여성 인권 신장 등 당대의 변화를 반영하게 되었다이 책은 이렇게 내적인 측면만 분석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까지 살펴보면서 장르를 바라보는 시야를 더 넓혀주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더 펼쳐나갈 수 있는 지점에서 논의를 마무리하는 글들이 많다한국형 판타지가 어색한 이유라는 글에서는 왜 창작자들이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한국보다는 서양을 배경으로 판타지 작품을 창작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파헤쳐 보고 있다하지만 한국의 환상성이 어떤 점에서 현실의 질서와 도덕윤리와 맞닿아 있어 현실을 넘어서고 싶어 하는 독자들과 어긋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았다면 좋았을 것이다또한 결론 부분에서 잘 만든’ 한국형 판타지의 예시와 그들이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빈약하다.로맨스와 페미니즘은 공생할 수 있을까에서 저자는 로맨스가 낭만적 사랑이라는 허울을 통해 가부장제를 뒷받침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주장한다그리고 로맨스 소설에서 여성은 로맨스를 통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얻어내며사랑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연대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여성들의 다양한 욕망이 로맨스 소설에 반영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다그러나 로맨스 소설에서 여성이 성취하는 것은 연애 상대인 남자주인공에게 좌우되는 것인 경우가 많다남자주인공의 사랑을 통해 얻은 것이니 그의 사랑을 잃으면 사라지는 것이다그리고 로맨스와 페미니즘이 공생하려면 로맨스 소설에 강간 판타지나 폭력적인 행동이 로맨틱한 행동으로 미화되는 것 등 여성혐오적인 면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이러한 면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좀 더 논의를 진행할 만한데 결론을 내리는 글들을 읽으면서, 지면이나 연구 기간의 한계 때문에 논의를 더 이어가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장르에 대한 연구와 비평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지금다각적으로 장르 콘텐츠를 비평하고 장르와 지금의 우리 사회를 연결해서 탐구해 보는 시도 자체는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이 책의 부제는 서브컬처 본격 비평집이지만, ‘본격보다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도이다이 책이 텍스트릿의 첫 번째 결과물이고대표 저자인 이융희 팀장이 다음 책에서는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 다음에는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참고김지혜장르문학·서브컬처에 담긴 독자적 미학경향신문, 2019.08.3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302042005&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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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선언 - 서브컬처 본격 비평집
텍스트릿 엮음 / 요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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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짚어주고 논의를 제기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더 펼쳐나갈 수 있는 지점에서 글을 끝맺어 버리는 글들이 많다. ‘서브컬처 본격 비평집‘이라는 제목과 달리 ‘본격‘보다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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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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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위가 약한 편이라 좀비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동별곡>부터 <만복사저포기>, <사랑 손님과 어머니>, <운수 좋은 날>, <소나기>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 문학 작품들을 좀비물로 다시 썼다는 책 소개에 궁금해졌다. 대체 저 작품들에 어떻게 좀비라는 소재를 넣을 수 있을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책에 실린 다섯 편의 패러디 소설 모두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필력도 좋았다. 각 소설에 대한 감상을 간단하게 적으려고 한다.

관동행: Gama to Gwandong (원작: 정철-관동별곡)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현대물보다는 사극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무서운 얘기를 해 달라는 학생들에게 <관동별곡>의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사 방식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너희 반이 진도 꼴찌다'라는 선생님들의 단골 레퍼토리에 누구나 <관동별곡>을 공부할 때 느꼈을 심정("폭포가 멋지군, 하면 될 걸 갖다가 용의 꼬리가 어떻고, 오바는 또 얼마나 심한지. 그래서 500년 뒤에 니들은 읽기 싫다고 난리를 치고")을 솔직하게 내뱉으니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게다가 <부산행: Train to Busan>을 패러디한 제목의 재기발랄함까지. 잔혹하지만 제목만큼이나 유쾌한 분위기를 끝까지 이끌어가 즐겁게 읽었다.

시골에서 유배 생활을 해다 갑자기 왕의 부름을 받고 강원도 관찰사가 됐는데, 왜 정철은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몇 마디로 압축하고 폭포 얘기나 줄줄이 늘어놓고 있을까? <관동행>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단편이다. <관동별곡>의 저자 송강 정철을 모델로 한 우리의 주인공 정 대감은 학식이 풍부하고 유능한 관료였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한테나 쓴소리를 필터 없이 퍼붓는 고지식한 성격. 어린 딸이 처음 만든 물김치를 자랑하는 친구에게 그 물김치가 어째서 못 만든 건지 정 대감이 한 페이지 가득 품평을 늘어놓는 장면에서는 빵 터졌다. 그렇게 지나치게 강직한 성품 탓에 조정 대소 신료들은 물론 왕에게 미움을 산 정 대감은 파직되고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벼슬 잘리고 지방으로 내려와 백수가 된 상황을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라는 시 구절로 미화하며 정신승리하던 정 대감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왕이 정 대감을 강원도 관찰사로 제수했다는 것이다. 아내과 종복들에게 모처럼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 들뜬 마음에 성대하게 관찰사 부임 행차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미친놈이 정 대감에게 뛰어든다. 그런데 그 미친놈이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희뿌옇게 썩은 눈알에 구더기가 끓고 있는 좀비였다. 왕과 조정 신료들은 도성을 제외한 전국에 좀비로 변하는 전염병이 퍼지자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강원도 관찰사에 정 대감을 임명한 것이다. 정 대감 일행의 관동행은 꽃길이 아니라 저승길이었다.


  좀비가 근처에만 나타나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면서 재채기가 나는 증상 때문에 좀비 감지기가 된 정 대감. 정 대감은 자신의 좀비 감지기 기능과 풍부한 지식을 활용해 백성들과 함께 좀비에 맞서 싸운다. 가족들과 종복들에게 생계를 맡기고 하염없이 때만 기다렸던 잉여인간 정 대감이 자기 재능을 활용해 진정한 리더로 변화해 가는 모습이 나름 감동적이었다. 남편을 지키기 위해 비녀 하나 들고 좀비에게 달려드는 유씨 부인의 용기와 사랑에 뭉클해지기도 했고. 나름대로의 사연과 잘생긴 외모, 뛰어난 무예 능력을 갖춰 조력자로 활약할 줄 알았던 마을 청년이, 결국은 좀비 치료제만 들고 도망가 버리는 대목은 클리셰를 깨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관동별곡>의 구절들과 기근으로 인해 백성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까지 삽입해 역사물로서의 무게감도 살짝 넣었다. 작가 후기에서는 "단점 몇 개는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하지만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장점이 많았던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만복사 좀비기(원작: 김만중-『금오신화』 중 <만복사 저포기>)

<관동행>과 같은 역사물이지만 판소리 한 마당을 하듯 유쾌하게 입담을 펼치는 <관동행>과 달리 서정적으로 <만복사 저포기>를 재해석하고 있다. 작가는 왜 <만복사 저포기>의 주인공 양생이 젊은 나이에 가족들과 떨어져 만복사에서 혼자 지내게 됐을까, 라는 의문에서 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왜구가 쳐들어온데다(고려시대가 배경이기 때문에 임진왜란은 아니다) 왜구에게 죽은 마을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면서 양생을 포함한 생존자들은 만복사로 피신하게 된다. 언제 좀비에게 습격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양생은 혼인을 하고 손주를 낳아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다, 원작처럼 부처님과 저포 내기를 해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스님들과 절에 함께 숨어 있던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좀비일 거라 의심하고, 양생 본인도 그런 의문을 품지만 그녀가 부처님이 보내주신 배필이라는 생각에 그녀를 감싼다.

맹목적으로 아가씨를 지키려는 양생의 모습이 순정남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작 그녀도 자신을 사랑하는지는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 찜찜하게 느껴졌다. 결국 양생은 이미 좀비에게 물려 감염되어 좀비가 되었고, 양생 때문에 절 안의 모든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있었다는 반전이 밝혀진다. 양생은 그녀가 좀비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어주지만, 좀비 소탕 대원인 그녀에게 양생은 가엽지만 생존자들을 위해서 퇴치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이런 엇갈림이 안타깝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양생뿐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절 안의 모든 사람들까지 안타까웠다. 그들에게서 좀비가 됐을 리는 없지만 전쟁과 기근 등 온갖 환란으로 소리 없이 사라져 갔을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원작: 주요섭-<사랑 손님과 어머니>)

원작의 문장까지 하나하나 비틀어 원작과 한 문장 한 문장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원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옥희의 아버지 경선이 살아 있다는 것. 그러나 심한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처지고, 옥희의 친할머니는 아들의 병을 며느리 탓으로 돌리며 옥희 어머니를 심하게 구박한다. 스물네 살의 나이에 여섯 살짜리 아이의 어머니이자 며느리, 아내로 살면서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에게 근거 없는 미움을 받고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옥희 어머니. 가부장제의 억압 아래서 그녀는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며 이 지옥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매일 밤 기도한다.

남편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어머니가 사랑 손님에게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긴장감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순한데 이상하게 사랑 손님만 보면 맹렬하게 짖던 개가 갑자기 죽으면서,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면서 긴장감은 더욱 증폭되고, 결국 어머니와 사랑 손님의 관계, 그들이 아버지에게 한 짓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피비린내 나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자신이 해방되기 위해서 남편도 시어머니도 마을 사람들도 망설임 없이 좀비로 만들고 살육해 버린 어머니가, 마침내 기차에 올라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는 희열이 느껴진다. 아직 스물네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옥희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던 원작 속 어머니와 달리, 이 작품 속 어머니는 좀비라는 수단을 이용해 스스로 해방을 쟁취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잔혹해지는 전개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옥희 어머니의 이런 반란이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운수 좋은 날(원작: 현진건-운수 좋은 날)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들 중 가장 원작과 거리가 멀다. 잘 나가는 모델이자 추리소설 작가였던 주인공은 남편과의 이혼과 슬럼프로 망가져 간다. 전 남편의 재혼 소식을 들은 그녀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대리 기사를 불러 전 남편의 결혼식장으로 쳐들어가는데, 이것이 <운수 좋은 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 대리 기사의 성이 김씨라는 점에서 아, 설마 싶었다. 그런데 이 김씨가 정말 김 첨지였다. 그것도 좀비가 된 김 첨지.

좀비가 되는 전염병에 걸려 아내와 아들마저 죽은 뒤 김 첨지도 그 전염병에 걸렸지만 그는 죽지도, 이성을 잃지도 않았다. 좀비가 된 게 분명한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결국 설렁탕 한 숟가락 먹이지 못하고 아내를 떠나보낸 이후로 김 첨지는 고기를 입에 댈 수 없었다. 슬럼프에 빠지면서 고기에 집착하며 날씬했던 몸무게가 이전의 두 배로 늘어났던 주인공은 김 첨지 때문에 채식밖에 할 수 없는 좀비가 된다. 그녀는 좀비가 되면서 날씬하고 아름다웠던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만, 인육에 대한 갈망이 불쑥불쑥 치밀어 올라올라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외모가 아름다웠을 때는 주인공을 칭송하고 욕망하던 사람들이, 주인공의 외모가 망가지자 그녀를 꺼리고 비웃는 모습이 씁쓸했다. 그래도 다른 단편들에서 무수히 썰리고 죽어 나가던 다른 좀비들에 비하면 주인공은 훨씬 나은 처지다. 채식만 하면서 살면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피, 소나기(원작: 황순원-소나기)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주인공 그녀는 <소나기>의 소녀가 진흙이 묻은 스웨터와 함께 소년까지 같이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면서 원작을 잔혹하게 변주했다. 이 단편 속 소녀는 소년과 함께 무덤에 묻히는 대신 무덤에서 깨어난다. 좀비가 된 채로. 소년은 소녀가 좀비가 된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지키다가, 결국 소녀가 살인과 식인을 하는 것까지 돕게 된다.

작가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처럼 원작의 문장들을 그대로 빌려오거나 살짝 변주하는 방식으로 원작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간다. 그러나 하얗고 화사했던 소녀의 피부는 혼자 흑백사진에 들어 있는 것처럼 잿빛으로 변했고, 소년과 소녀에게 한 마디 건넸던 이웃 아저씨는 소녀에게 처참하게 죽임당한다.  슬프게도 소년에 대한 순수한 감정이 아닌, 자기 친할아버지까지 속이면서 살아남으려는 생존본능이 소녀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도 소년은 끝까지 소녀를 지키려 한다. 김 선생이 소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소년은 그 자신이 희생양이 될 때까지도 소녀의 곁을 지켰을 것이다. 이렇게 맹목적일 정도로 순수해서 더 잔혹한 소년 소녀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렛미인』을 떠올리게 했다. 평범한 인간인 소년이, 다른 사람을 죽여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소녀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원작과는 또 다른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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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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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학생 시절부터 익숙한 명작 소설들이 이렇게 좀비물로 변주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게 본 작품은 김성희의 <관동행>. 고등학생들을 괴롭히는 <관동별곡>으로 유쾌한 사극 좀비물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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