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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 스포일러 포함
1947년 8월 14일 자정 인도가 독립하는 순간,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1001명의 '한밤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을 때 엑스맨 같은 히어로물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 1001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활약하는 이야기 대신, 그 중 가장 강한 능력을 지닌 아이, 살림 시나이의 인생과 그와 얽힌 인도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한다. 살림의 외조부 아담 아지즈가 아내 나심을 처음 만나는 1915년부터 살림이 세상을 떠나는 1976년까지 60여 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살림의 가족사와 살림의 인생은 인도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들과 교묘하게 연결된다.
살림은 한밤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능력을 가졌지만, 역사의 풍랑에 휘말리면서 살림의 삶은 뿌리째 요동치게 된다. 그러나 살림은 자신이 겪었던 고난들조차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사랑하던 가족들이 전쟁 중 폭격으로 세상을 떠난 일, 자신을 포함한 한밤의 아이들이 자기 능력조차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정부에 의해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 일을 이야기할 때도 그는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이 회고할 뿐이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초연하지만, 그가 인도의 역사의 관찰자이자 인도 그 자체라고 보면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온갖 고난을 겪어도 그렇게 그저 묵묵히, 계속 살아가는 것이 살림의 모습이자 인도 그 자체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살림과 한밤의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활약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독자라면 이런 전개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한밤의 아이들'이라는 제목과 달리 살림을 제외한 한밤의 아이들의 이야기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것도 분명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한 사람의 삶과 인도의 근현대사를 엮어내는 솜씨는 감탄스럽다. 그리고 그가 솜씨 좋게 엮어낸 이 이야기에 인도와 인도의 역사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