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단편소설선 글누림 비서구문학전집 2
살와 바크르 외 지음, 조애리 외 옮김 / 글누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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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포함


  오래 전부터 낯선 지역의 이야기들이 듣고 싶었다. 우리 바로 옆의 중국과 일본이나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영미권의 문학 작품은 이제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인도, 중동, 이란처럼 낯선 지역의 문학 작품들에 끌린다. 이 책도 아랍 지역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끌렸다. 20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단편소설선이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막상 책을 펼치고 읽은 단편들은 너무 낯설고 투박해 나를 당황하게 했다.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거나 전개가 흥미로운 것도 아니고, 기승전결이 없다시피해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처럼 느껴지는 단편들도 있다. 그리고 아랍 특유의 정서가 내게 와 닿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집트 작가인 모하마드 살라흐 아잡의 단편「강둑을 싫어하는 보트」에서 주인공 노인은 평생 하인 노릇만 하느라 노년이 되도록 결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까만 머리, 까만 눈, 올리브빛 피부의 소녀와 결혼하는 꿈을 꾼다. 그는 수십 년만에 하인 일을 그만두면서 고용주의 손자인 '나'에게 조카딸 중 예쁜 아이를 골라 결혼할 거라고 말한다. 조카딸들이 이미 다 결혼해 버렸을까 걱정이라는 노인의 말에 '나'는 노인을 응원해준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면서 괜히 해 보는 농담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어린 조카딸과도 결혼할 수 있는 풍토이기 때문에 그런 농담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닌가. 어린 소녀가 노인과 강제 결혼하는 일이 아직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아랍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소녀와의 결혼이 남자의 아련한 꿈으로 표현된다는 것이 찝찝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랍 문화 속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그린 단편들도 있다. 이집트의 작가 사파 에네가르의 단편「아메바」에서 결혼 뒤 전통 의상으로 자신의 몸을 가려야 했던 주인공은 우연히 빨래를 하다 젖은 옷을 통해 드러난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보고, 자신의 몸을 다시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튀니지 작가 라치다 엘차르니의 단편「벼랑 끝의 삶」의 주인공 소녀는 아내나 자식들보다 양떼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의 모습에 절망하지만, 비정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출산을 야무지게 돕고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서 희망을 본다. 이들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저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억압적인 독재 정부에 저항하는 풍자 만화가의 이야기(압델 아지즈 가르몰,「저항의 냄새」), 그저 영화인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중동 지역의 복잡한 국제 분쟁에 얽혀 온갖 고난을 겪는 청년의 이야기(사무엘 시몬,「할리우드로 가는 길」) 등 아랍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그린 단편들이 이 책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단편들의 경우 작품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었다. 작품들 뒤에 실린 역자 해설에서 작품의 배경이 된 역사적, 정치적 사건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작품 본문에 역주가 거의 없는 것이 아쉬웠다. 특히「할리우드로 가는 길」의 경우 주인공을 둘러싼 당시 중동 지역 세력들의 대립 구도를 정리해서 보여주었더라면 작품을 이해하기 더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구중심적인 문학 전집들과 달리 아랍 문학을 소개하겠다는 출간 취지는 좋다. 하지만 아랍어 직역이 아니라 영어 중역이라는 것이 아쉽고, 번역자들도 아랍 역사나 문화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영어판을 그대로 번역하기만 했다는 느낌이 든다. 번역자마다 번역의 질도 천차만별이고, 맞춤법 교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2010년대에 나온 책인데도 편집이나 표지 디자인이 90년대에 출간된 책 같은 느낌이다. 우리에게 낯선 아랍 지역의 문화와 정서, 현재를 보여주는 소설들 자체는 읽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편집이 내용을 받쳐주지 못한다. 좀 더 깔끔한 편집에 설명이 보강된 버전으로 이 단편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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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단편소설선 글누림 비서구문학전집 2
살와 바크르 외 지음, 조애리 외 옮김 / 글누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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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전개가 흥미진진하지 않고 투박하다. 하지만 지금의 아랍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성을 지니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아랍어 직역이 아니라 영어 중역이라는 것이 아쉽고, 번역자마다 번역 질의 차이가 심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랍 문물, 역사적,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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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그녀
부다데바 보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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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서평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아마도 주인공 중 한 명의 시선에서 쓴 글로 보였다. 책에 열중해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녀.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렇게 나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내게도 있기에, 그 글이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어떤 이야기를 읽었기에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어느 겨울 밤 기차가 연착되면서, 한 기차역에서 함께 밤을 새게 된 중년 남자 넷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건축가, 고위 관료, 의사, 작가. 각자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은 그 날 처음 보는 사이였다. 그러나 한 신혼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옛 사랑의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들은 오랜만에 아련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각자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그 서평의 화자는 바로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건축가는 첫 번째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내 친구 얘긴데"하는 이야기 중 많은 이야기가 본인 이야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 남자 마칸랄은 젊은 시절, 이웃집 딸이 베란다에서 책을 읽는 모습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녀는 교수의 딸이었다. 학자 집안과 연을 맺고 싶었던 마칸랄의 어머니는 그녀의 부모에게 혼담을 넣지만 거절당한다.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다시 끊어진 인연. 마칸랄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이야기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네 개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싱겁고 덤덤한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보다 그 이야기를 토대로 쓴 서평이 더 애절하게 느껴질 정도다. 넷 중 셋은 짝사랑 이야기고, 어쩌면 상대의 마음에 흔적 하나 남기지 못했을 사랑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배경은 1930, 40년대의 인도이다. 2000년대 후반에도 혼처를 이미 정한 부모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는 자녀가 갈등하는 인도 영화들이 나오는데, 1930,40년대의 인도는 오죽했겠는가. 많은 인도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연인과 도망친다. 그들과 달리 이 책 속 주인공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소심해서 제 자리에 머무른다. 

  이 책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야기보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의 한 순간 한 순간들이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단 둘이 집으로 걸어오던 날, 집이 좀 더 멀리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 상대는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나는 두고두고 곱씹어 보는 순간들. 격정적이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 실망하겠지만, 소소한 설렘의 순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들처럼 겨울밤에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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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반짝 2018-05-2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을 때 다 낯설었는데, 그 낯섦이 가져다주는 매력과 말씀하신 것처럼 소소한 설렘의 순간들이 참 좋았어요. 과거에 그렇게 마음 끓여서 누군가를 좋아했던 생각도 났고요.^^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반가워서 댓글 남겨봅니다.^^

바스티안 2018-08-18 10:3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낯선 나라의 이야기들에 더 끌려요. 살아가면서 겪는 소소한 설렘의 순간들이 참 좋아요. 저는 설렘을 현재진행형으로 느끼고 있어서 이 책이 더 와 닿았고요. 댓글로 같이 얘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인생의 그녀
부다데바 보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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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익숙하지만 잔잔하고 시적인 첫사랑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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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꼴라쥬 시네마 톡 -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되는 진짜 영화 이야기
김영진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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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인도 영화 한 편을 같이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에 나가고 있다. 그 모임의 호스트 분은 영화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 블로그 포스트로 올리신다. 그렇게 정리된 이야기들을 엮어서 단행본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단행본을 만드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책들을 찾아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시네마톡'은 2009년부터 CGV에서 진행해 온 행사로, 영화평론가와 관객들이 영화를 함께 관람한 뒤 영화평론가가 그 영화에 대해 해설하고, 관객들과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이 책은 그 중 30개의 시네마톡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30편의 영화 중 내가 본 영화는 세 편밖에 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영화들도 있다. 물론 내가 본 영화들의 시네마톡이 가장 이해하기 쉽고 읽기 즐거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남아 있던 의문점들이 해결되고,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보지도 않은 영화나 내 취향이 아닌 영화들의 시네마톡을 읽으면서도 즐거웠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던 현장을 텍스트로 전해 듣는 것 또한 알차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관객들과 함께 하는 자리이다 보니 영화 이야기가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는 점이 좋았다. 영화알못인 나도 시네마톡들의 내용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었다.(마지막 시네마톡인 <까페 느와르> 편만 빼고. 이건 감독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됐다. 운동권 출신 몰락한 지식인(윤희석)이 왜 비가 오면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여자(김혜나)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부조리극인가.)

  1장 '시네마톡'에 실린 시네마톡들의 길이가 짧은 것은 아쉽다. 시네마톡에서 영화 관람 시간을 빼도 보통 한 시간 20분 정도 해설을 하고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시간 20분 동안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각 시네마톡의 내용이 너무 짧다. 관객들과 나눈 질의응답도 생각보다 적어서, 단행본에 싣기 적당한 내용만 추린 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의자> 편이나 <소라닌> 편의 경우 영화의 소재가 된 인물(법정 스님)이나 게스트(가수 이상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에 치중되고,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런 단점들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내 취향이 아니어서 관심이 없었던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롭고 풍성한지 몰랐다. 

  김영진 평론가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시네마톡은 영화에게 손을 잡아주는 시간'이라고 했다. 화제작에만 관심이 쏠리는 지금, 세상에는 외로워서 손을 잡고 싶어하는 영화들이 너무 많다고, 그런 영화들은 진심을 품고 누군가 손만 잡아주면 감동으로 응답할 영화들이라고. 내가 지금 참여하는 모임도, 모임의 호스트 분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한 포스트도,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책도 대규모 흥행작이 아닌 외로운 영화들에게 내미는 손이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톡이나 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 계속해서 그런 영화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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