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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ㅣ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평점 :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서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SNS에서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달고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은, 흑인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가 2006년 시작한 캠페인이다. 처음에는 성범죄에 취약한 유색인종 여성과 청소년을 위해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2017년 10월 헐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행각이 폭로되면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의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미투 운동이 사회 전 영역으로 번져나갔다. 그만큼 사회 전반적으로 성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이야기다. 살아가면서 성폭력을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여성이 얼마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프랑스의 만화가 토마 마티외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과 성차별을 적나라하게 그린 만화 『악어 프로젝트』 는 이런 시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만화 속에서 악어로 그려지는 가해 남성들. 인간이 아닌 악어로 그려져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악어 프로젝트』 의 가장 특이한 점은 성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이 모두 악어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다 흑백의 만화에서 악어 남성들만 초록색으로 그려져 더 두드러져 보인다. 작가는 왜 남성들을 악어로 그렸을까? 작가는 말한다. 그림으로 옮기고 싶었던 것은 바로 여성의 관점에서 본 현실이라고. 작가 자신은 남성이지만 여성 지인들과 여성 네티즌들에게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관한 경험담을 들려달라고 부탁했고, 그 경험담을 그림으로 담았다. 악어는 남성 개인이 아닌 남성우월주의, 성차별, 남성의 어긋난 성적 욕망, 성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에게서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이다. 독자는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진 여성에게 감정이입하며 여성이 악어들에게서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 즉 성폭력으로 인해 느끼는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악어 프로젝트>에서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독자들이 피해자의 수치심과 분노, 고통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 만화에서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성폭력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여성들은 길거리에서 남성들의 시선에 노출되고, 성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말을 듣는다. 수영장 탈의실에는 몰래 훔쳐보는 남자들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는 몰래카메라가 숨어 있다. 대중교통에 함께 타고 있는 승객에게 성추행당하고, 직장에서는 성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을 듣는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연인마저 데이트 강간을 한다. 그 모든 폭력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져 만화를 보는 나까지도 치가 떨릴 정도였다. 이렇게 실제 상황에서 오가는 욕설과 성적 행위들을 있는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이 만화는 2014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개최된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 기념 전시회에 초청되었다 취소되기도 했고, 프랑스의 한 정치인에게 ‘저속하고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저속하고 비도덕적인 것은 이 만화가 아니라 이 만화가 그려지게 만든 현실, 현실 속의 악어들이다.

<악어 프로젝트>에서는 성폭력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만화로 설명한다.
작가는 단순히 성폭력 피해 경험담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법들을 만화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가해자에게 자신의 행동이 성폭력임을 빨리 인지시키는 것, 폭언과 위협을 할 때 경찰에 신고하는 것, 사소한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경험이 더 큰 위험이 닥쳤을 때 잘 극복할 수 있는 거름이 된다는 것, 무엇보다 이렇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것. 모든 잘못은 가해자에게 있으니. 그리고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글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독자들에게 고민할 단초를 던지는 것이다.

악어 탈을 스스로 벗는 남성과, 남성이 악어 탈을 벗을 수 있도록 돕는 여성.
이 만화의 마지막 장면은 남성이 스스로 악어 탈을 벗고, 여성이 악어 탈을 벗는 것을 도와주는 장면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른 성별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악어들이 아닌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것이라고. 번역 후기에서 번역자가 말했듯이 이 만화는 적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통합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성신문과 작가 토마 마티외가 2016년 8월 29일부터 함께 진행했던 ‘한국판 악어 프로젝트'로 모집된 사연들을 정리한 기사이다. 프랑스가 아닌 바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