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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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은 다소 엉성하고 로봇에 대한 발상들은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로봇에 대한 발상들이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것도 100여 년 전에. 로봇을 통한 현대 사회 비판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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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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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로봇Robot'은 '노동, 부역'이라는 뜻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따온 말로,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그 개념을 만들어냈다.('로봇'이라는 신조어 자체는 카렐과 공동 창작을 하던 형 요제프가 제안했다.) 사람과 비슷한 인조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는 차페크 이전부터도 있었지만, 과학의 힘으로 인조인간을 만들어 대량생산하고 판매한다는 발상, 현대적 의미의 인조인간은 차페크에게서 처음 나왔다. 그러니 로봇을 처음 등장시킨 그의 1920년 희곡『로봇』은 최초의 로봇 SF라고 할 수 있다. 


  차페크의『로봇』은 1921년 체코 프라하에서 초연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23년에는 런던에서『로봇』 을 놓고 버나드 쇼와 G.K.체스터턴 등 당대의 유명 작가들이 공식 토론을 벌였다. 이들 중 대부분은 로봇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했다. 그러나 차페크 자신은 로봇보다 인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차페크에게 로봇은 생산성과 효율성만 따지느라 인간을 하나의 부품처럼 대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수단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선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무표정한 승객들의 모습에서 로봇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승객들은 아무 생각 없이 출근을 하고 일을 한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인간으로서 배려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노동자를 더 싼 값에 부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노동자의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극 중에서 로봇의 인권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여주인공 헬레나에게 '로숨 유니버설 공장(작품 속 로봇을 만들어내는 회사)'의 관리자들은 말한다. 로봇 덕분에 사람들은 더 싼 값에 빵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로봇은 인간이 아니니 임금을 주지 않아도 돼서, 로봇이 만드는 빵의 가격이 저렴해진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로봇의 노동 덕분에 식량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로숨 유니버설 공장의 사장 해리 도민은 로봇 덕분에 인간이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꿈꾸었다. 노예들의 노동 덕분에 정치와 문학, 예술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데만 몰두할 수 있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인간이 고통스러운 노동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여유롭고 즐겁게 살아가길 바랐다. 그러나 노동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인간은 즐기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게 되었고, 노동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의욕도 잃어버렸다. 더 이상 아이도 낳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 헬레나의 요청으로 로봇 개발자 갈 박사는 자의식을 가진 로봇을 개발해내고, 로봇들은 인간의 종 노릇을 그만두고 인간의 주인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로봇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로숨 사의 건축 담당자 알퀴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류를 절멸시킨다. 로봇을 이용해 신세계를 만들려고 했던 도민도, 로봇을 동정하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려 했던 헬레나도 죽임을 당한다. 알퀴스트는 아직까지도 스스로 노동을 하는 인간이어서 유일하게 살려둔 것이다. 로봇들은 알퀴스트에게 자신들도 인간처럼 번식을 하고 싶다고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지만, 로봇의 설계도는 로봇의 대량생산을 두려워한 헬레나가 불태워버렸다. 알퀴스트는 로봇들을 해부하며 방법을 찾아보려 하지만, 과학자가 아니라 건축가인 그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죽어버렸으니 뭔가를 할 의욕도 없다. 그러나 상대방이 해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해부당하겠다며 서로 희생하려고 하는 두 로봇 프리무스와 헬레나(인간 헬레나에게서 이름을 따 왔다.)를 보고, 알퀴스트는 그들이 인간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퀴스트는 그들을 풀어주면서 그들을 통해 생명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두 로봇이 기계라면 알퀴스트는 두 로봇이 생명을 낳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작품 속 로봇들은 기계라기보다는 유기물들을 합성해서 만든 인조 생명에 가깝다. 도민은 로봇이 여러 부품을 조합해 만들어지지만 조립된 뒤 부품들 스스로가 자라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로봇들을 해부하면 피가 나오고, 로봇들은 고통스러워한다. 기계라기보다는 인조인간이었기 때문에 헬레나가 더욱 더 그들을 인간처럼 여기고 도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서로 사랑하면서 인간성을 얻게 되었다. 카렐 차페크가 이 최초의 로봇 SF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서로 사랑하고, 스스로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것이 인간에게 인간성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작품 자체를 보면 구성이 다소 엉성하다. 그리고 작품 속 로봇에 대한 발상들은 식상하게 여겨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봇에 대한 이후의 상상들은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고, 인간성에 대한 고민을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이제 작품에서처럼 로봇이 산업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는 단계는 아직 아니지만, 로봇과 인간이 공생하는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인간 복제도 시도되고 있다. 복제인간에게서 인간에게 필요한 장기들을 적출하는 상상을 하는 SF들도 나왔다. 로봇과 복제인간 등,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과 유사한 존재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고민에서 더 나아가 인간 아닌 것들과의 공존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차페크는 원래 의도했던 현대 사회 비판과 함께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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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과 안생
칭산 지음, 손미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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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소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스포일러 포함


 올해 초에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보고 마음이 아렸었다. 서로를 소중히 여겼지만 서로 너무나 달라서 엇갈려야 했던 두 친구의 애증. 나에게도 그토록 지독하게 아끼고 미워했던 친구가 있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원작『칠월과 안생』이 우리나라에 번역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읽어야 할 책들이 산더미 같아서 이제야『칠월과 안생』을 읽게 되었다. 


"칠월七月이 안생安生을 처음 만난 건 열세 살 때였다. 입학식장에 길게 늘어선 낯선 얼굴들이 눈부신 가을 햇살에 어른거렸다. 그 중 한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이 첫 문단에서부터 맑고 싱그러운 영화의 분위기가 다시 떠올랐다. 영화 속 싱그러움, 두 친구 사이의 애틋한 감정은 원작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평범한 삶을 꿈꾸었던 모범생 칠월(마사순)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안생(주동우). 그러나 둘의 입장이 뒤바뀌어 둘은 상대가 원하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화 쪽을 더 높이 평가한다. 원작에서도 안생이 "왜 나는 칠월이 될 수 없을까"라고 부러워하는 말을 하지만, 평범한 칠월이 독특한 개성을 지닌 안생에게 일방적으로 매혹되는 느낌이다. 안생도 칠월을 아끼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칠월이 안생을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편이다. 심지어 안생이 자기 남자친구를 유혹해 그의 아이까지 가졌는데도 칠월은 임신한 안생을 지극정성으로 돌본다.(영화에서는 칠월의 남자친구 가명의 딸이 안생이 아니라 칠월이 낳은 아이로 설정이 바뀌었다.) 영화에서 두 친구가 상대가 원하던 삶을 살게 되면서 상대의 입장에 놓이게 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원작 속 안생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살다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과 달리, 영화 속 안생은 칠월처럼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서 오히려 칠월을 돌보게 된다. 반면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안생을 돌보던 칠월은 안정된 삶을 버리고 여행을 떠난다. 현실에서는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나면서 칠월의 여행이 끝나지만, 안생의 소설 속에서 칠월은 여전히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매혹된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지독하게 아끼다 못해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된 관계. 각본가들이 둘의 관계를 더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칠월과 안생」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개 단편은 하나의 이야기나 다름 없다. 안安(또는 란藍)이라는 이름의 아름답고 자유분방하지만 불안정한 여자와 린林이라는 잘생기고 따뜻한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린은 인내와 사랑으로 안을 감싸려 하지만 안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받은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한 채 붕 뜬 것처럼 살아간다. 린은 결국 현실에 지쳐 안을 포기하고, 안은 자살하거나 살해당하는 등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작가의 소설 속에서 사람은 세 부류다. 아름답고 불안정한 젊은 여성(안)과 잘생긴 외모에 그녀보다 경제적,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만 결국 그녀를 놓게 되는 남자(린), 그리고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 이 틀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벗어난 게「칠월과 안생」인데, 이름에 '안'이 들어가 있듯이, 안생도 '아름답지만 불안정한 여자 주인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남주인공 가명도 다른 소설 속 남주인공 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소설 속 평범한 사람들이 여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독특한 여주인공을 이해하고 포용하려 하는 칠월이 이 소설집에서 가장 개성적인 인물이다.


  아련한 첫사랑과 가혹한 현실, 그 사이에서 무너지는 남녀의 사랑. 이런 비극적이고 애틋한 정서, 한없이 여린 풀꽃 같다가도 독을 내뿜는 독초 같은 여주인공의 매력. 이런 분위기와 정서의 묘사는 정말 뛰어나다. 그 덕분에 중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내용이 열 편 내내 반복된다는 것이다. A 단편의 안A를 B단편의 안B와 바꿔도 문제가 없을 만큼 비슷한 인물들,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정서가 반복된다. 처음 들을 때는 아름다워 매혹되지만 들을수록 지치는 음악 같다. '아름답고 청초하고 신비스럽지만 자기 고독에 잠겨 비극에 빠지는 여자'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둘러싼 세계에 작가 자신이 매혹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작가가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소설을 써도 자기복제만 하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요즘 일본 애니메이터들이 현실에서 인간을 관찰하지 않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만 보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했었다. 칭산 작가는 현실이 아니라 자기 세계 속 캐릭터들만 보면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느낌이다. 자기 세계에서 눈을 돌려 더 넓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작가의 동어반복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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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과 안생
칭산 지음, 손미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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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세계에 빠진 작가의 동어반복. 처음 들을 때는 아름다워 매혹되지만 들을수록 지치는 음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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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노트 - 알고 싶은 클래식 듣고 싶은 클래식
진회숙 지음 / 샘터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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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에 대해 처음 알게 됐을 때 '책에 실린 QR 코드로 클래식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갔다. 종이로 된 책 중에서 QR 코드를 활용하는 책은 처음 봤으니까. 음악은 백 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직접 듣는 것이 더 나으니, 음악을 주제로 하는 책으로서는 음악을 직접 들려주는 게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이미 3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신기한 신제품을 처음 써 보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친절하게도 책 서두에서부터 QR 코드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QR 코드를 비교적 정확히 인식해 주는 앱들까지 추천해 준다. 사용법대로 QR 코드를 인식하니 정말 해당 곡의 유튜브 영상이 뜬다.


책에 실린 QR 코드를 QR 코드 앱으로 스캔하면 해당 곡의 유튜브 영상 링크와 연결된다.


실제로 책 속 QR 코드를 스캔하면 이런 영상 링크가 뜬다. 이 영상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남주인공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안타까운 것은 유튜브의 특성상, 해당 계정이 사라졌거나 저작권 문제로 영상이 삭제되는 등의 문제로 지금은 연결되지 않는 링크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이다. 해당 링크가 보전되도록 수시로 점검, 업데이트하겠다지만, 출판사가 마냥 이 책만 관리할 수는 없으니 힘든 일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 실린 QR 코드는 320여 개나 된다. 그래서 링크가 연결되지 않는 경우에는 내가 직접 유튜브에서 곡 이름으로 검색해서 다른 버전을 찾아 들었다. 320여 개의 곡을 다 듣다 보니 이 책을 다 읽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덕분에 한 달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다. 


책에 실린 QR 코드로 볼 수 있는 영상 중 하나.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올림피아의 아리아'. 기계 인형 올림피아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인데, 올림피아 역 소프라노의 기계 인형 연기가 인상적이다.


 QR 코드로 직접 해당 곡을 들으니 텍스트로 된 설명만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프시코드 같은 옛 클래식 악기 연주를 직접 들으니 그 악기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연주하며 어떤 음색을 지녔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들에서 피아노 멜로디 자체는 아름답지만 오케스트라 파트는 피아노의 반주 수준으로 빈약하다는 이야기도 직접 들으니 납득이 됐고. 아리아의 경우는 그 곡이 오페라 안의 어떤 장면에서 나오는지를 직접 볼 수 있어, 그 곡이 어떤 맥락에서 불리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오페라 속 성악가들의 연기와 의상, 무대를 함께 볼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은 QR 코드라는 장치에만 기대지 않는다. 클래식 곡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나, 클래식 음악가들의 사생활 이야기로 내용을 채우는 책들과 달리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의 ABC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부터 클래식 악기들, 음악 이론과 곡의 형식, 음악 상식들까지. 오케스트라에는 왜 지휘자가 필요한지, 왜 오보에의 A음으로 오케스트라 악기 전체를 조율하는지, 현대에 탄생한 12음 기법은 어떤 거인지, 실내악, 환상곡, 교향곡, 협주곡은 어떤 형식의 곡인지 등등. 초중고등학교 음악 시간 이후로 음악 이론은 잊어버렸어도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 

 내용의 질에 있어서나 QR 코드라는 새로운 장치에 있어서나 다른 클래식 책들과 차별화되는 책이다. 
한 번만 본 지식은 금세 머릿속에서 지워지니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으면 좋을 것이다. 워낙 많은 곡들이 소개되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곡을 종종 꺼내 들어도 좋을 것이고. 한 번 읽어보고 끝내기보다는 곁에 두고 오래 읽어 보고 싶다. 

P.S 1. 저자는 미술 비평가 진중권의 누나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 닮지는 않지만, 누나나 동생이나 각자의 분야를 대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데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멜라니 C가 부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넘버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정선아가 부른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한국어 버전 '어떻게 사랑하나'


P. S. 2. 오페라를 원어로 공연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넘버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의 원곡과 한국어 버전을 예로 들었는데, "...하나, ...했어, 라는 유아적인 뉘앙스의 종결어미 때문인지, 예수에 대한 사랑으로 갈등하는 마리아의 고뇌가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라는 말에서 한국어 버전을 깎아내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원어 공연의 중요성으로 든 근거들은 납득이 되지만 '유아적인 뉘앙스'의 종결어미라니. 

  오페라와 같은 이유로 수입 뮤지컬은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원어로 공연해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라이센스 뮤지컬도 좋아하는 뮤덕으로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가 예시로 든 두 영상 중에서는 나는 오히려 한국어 버전에 더 공감하고 감동했다. 한국어로 개사되면서 원어 가사에 맞춘 리듬과 강세가 어그러지고 가사 속 미묘한 뉘앙스, 의미가 뭉뚱그려지는 것은 인정하지만, 모국어로 가사를 들었을 때 노래의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의미 전달은 한국어 자막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했지만, 무대와 한국어 자막으로 시선이 분산되는 것보다 한국어로 바로 듣는 것이 의미를 전달하는 데 더 유리하다. 그리고 프랑스 뮤지컬의 라이센스인 <노트르담 드 파리>나 미국 뮤지컬의 라이센스인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넘버들처럼 의미 전달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음악적인 운율 모두를 살리는 번역이 있다. 이런 좋은 번역, 좋은 라이센스 공연도 필요하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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