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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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를 리셋하듯이 답답한 세상을 리셋해 버리고 싶을 때 이 책의 과격한 제목에 끌리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망할 놈의 세상 리셋해 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이 놈의 세상 갈아엎어 버려야지'라고 말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갈아엎을 수도 리셋할 수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격한 제목과 달리, 저자는 분노하지도 않고 냉소하지도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국민의 힘으로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도 희망은 멀게만 느껴진다.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계속 튀어나오고 있고, 경제난, 취업난은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공공연해지고 있다. 이처럼 지금의 한국은 희망이 없는 사회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희망이 없기에 모든 것을 아예 백지 상태로 돌리고 싶다고 소망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희망이 없어졌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두 가지로 나눈다. 무기력해지거나 분노하거나. 세상은 사람들에게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 '노오력'을 하라고 요구하지만, '노오력'하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쉽게 배신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오력'하면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소진시키다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노오력'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타인들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특혜만 받는다고 여기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조치들이 불공정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무기력과 분노는 개인의 내면을 잠식하고 때로는 타인을 혐오하고 폭력을 가하게 만들면서 개인들을 병들게 한다. 

  저자는 개인을 병들게 하는 것이 사회의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심리에서 시야를 넓혀 개인들이 '리셋'을 바라게 만드는 사회를 살펴본다. 중세 국가는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력', 즉 공개처형을 통해 권력의 위엄을 보이고 사는 문제는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하게 두는 국가였다. 반면 근대 국가는 개인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질병, 경제적 어려움, 재난에서 개인의 생명을 지키고 돌보았다. 그러나 저자가 보는 지금의 한국은 '살게 내버려 두고 죽게 내버려두는 국가'이다.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사건은 질병과 재난 앞에서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구의역에서 실습생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려오는 전동차에 치여 숨졌을 때, 사고 원인은 보호 조치 없이 실습생을 현장에 밀어넣은 업체가 아닌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실습생의 탓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굶어죽음과 언제나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생존, 두 가지 죽음 앞에 놓여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가 얼마나 큰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사적인 관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저자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대다수가 말 한 마디 잘못했다 SNS상에서 위험에 처했던 경험 때문에 SNS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SNS에서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았을 때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공격을 당하고, 그 뒤로는 '눈팅'만 하거나 댓글 하나를 쓸 때도 자기검열을 하게 되어버린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연인도 데이트 폭력이나 데이트 강간, 리벤지 포르노(연인과의 성행위를 녹화했다 헤어졌을 때 복수하려고 인터넷에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공동세계에 참여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 자체조차 위험해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은 안전, 사회적 인간으로서 죽은 상태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존엄과 안전 모두를 요구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단순히 생물학적 안전을 위해 가만히 있는 삶이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의견과 활동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저자는 리셋 대신 전환을 꿈꾼다. 미국의 트럼프와 필리핀의 두테르테는 비상식적일 정도로 과격한 정치 노선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정치판 자체를 리셋할 것이라는 기대로 그들을 선택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고 리셋이나 혁명 뒤에도 거의 모든 것은 과거와 다를 것 없이 지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 이전에 미리 혁명 이후를 살아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을 완성하기 전에 혁명 이후, 민주주의적인 삶의 일부라도 조금씩 미리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말을 걸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자고 이야기한다. 물론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소통의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협력이 획일적인 동원이나 개인적인 노력들의 기계적 연결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 진정한 협력이라기보다는 기계적인 분업에 가깝고, 독박을 쓰는 성실한 학생과 무임승차자로 나뉘는 경우가 많은 조별과제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그리고 위로와 공감을 넘어 상대에게 새로운 제안을 계속하며 상대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저자는 과격한 리셋 대신 점진적이지만 꾸준한 전환을 꿈꾼다. 저자는 광장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점으로서 협력하되, 자신과 나란히 점으로 있던 다른 이의 얼굴, 그가 지닌 나와 평등한 존엄을 기억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서 대의 민주주의가 멈춰섰던 곳을 넘어서 더 멀리 나아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무기력과 분노, 혐오가 들끓는 세상, 희망과 절망이 엇갈리면서 조증과 울증을 오가게 만드는 세상에서 저자는 좀 더 길게 보고 평상심을 회복하며 세상을 회복시켜 가자고 주장한다. 그의 꿈이 '망할 놈의 세상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외치던 사람들의 내면뿐만 아니라 세상 자체를 회복시킬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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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된 미래 - 무한 경쟁 시대 이후의 한국 사회
참여연대 기획, 김균 엮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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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말 드러난 국정 농단 사태는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지만이토록 뿌리까지 썩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기 때문이다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이권력자와 그 일가측근들은 막대한 부를 누렸다대선 공약이었던 복지 정책들은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폐기되었다참여연대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3년 전에 발간한 책반성된 미래는 우리가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지 방향을 제시한다.


 제목처럼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 논의하고 있다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분배정의노동 인권환경안전 등을 넘어서는 유일한 가치가 경제였다고 지적한다그러나 몇몇 대기업의 경쟁력에 의존한 경제 성장이 한계에 이르고 무한경쟁에 국민들이 지치게 된 오늘날사람들은 경제만이 유일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이 책은 경제 때문에 가려져 있던 민주주의평화차이와 공존다양성공공성 등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참여연대에 직접 참여하거나 참여연대와 뜻을 같이 하는 전문가들 18명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글을 한 편씩 썼다이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고진영 논리들이 팽팽히 맞서는 오늘날에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주장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이들은 진보 진영에 속해 있지만 보수와 진보 각 진영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아집만 부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저자들부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기에저자들과 반대 진영에 속한 독자라도 이들의 의견이 편향적이라고 일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미래는 경제 가치에 억압되어 있는 가치들을 지향함으로써 좋은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정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차이와 관용연대 등의 민주적 가치가 사람들의 삶에 뿌리내리는 것안보 위협을 체제 유지에 이용하는 현실을 넘어 분단 체제 극복과 평화 운동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우리 문제도 급한데 외국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사고방식을 넘어 국제적인 시민 연대를 실천하는 것복지 재원의 양적 확대를 넘어 어떤 조세 체계를 구축하고 어떤 복지국가를 이룰 것인지 고민하는 것 등이들은 독자들이 현실을 넘어 더 나은 미래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이 발간된 2014년 이후에도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그리고 지금도 국정 농단 사태를 일으킨 권력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이러한 현실 앞에서반성된 미래에 제시된 가치들이 실현되는 미래가 너무나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그러나 이 책에 제시된 가치들은 현실을 넘어 더 나은 삶더 나은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다. 2014년 이후 일어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들을 되짚어 보면서 이 책에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다시 검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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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슬람문화 체험기
최영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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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전문가 최영길 교수가 사우디아라비아 유학 시절부터 틈틈이 써 오던 일기와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이 36년 동안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슬람에 대해 정리했다. 나름대로 이슬람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봤더니 몰랐던 것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역시 그곳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작자 미상의 19세기 페르시아 세밀화. 막 창조된 아담에게 절하는 천사들. 이슬람교에서 아담은 천사들의 절을 받을 정도로 고귀한 존재였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죄인이 아니라 신에게 지상을 다스릴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특히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이나 성경 해석은 그가 고대 사람인 것을 감안했을 때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다는 이슬람 법은 아내를 재산 취급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과 아버지를 잃은 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여러 아내를 두었을 때 아내들을 모두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물론 지금의 이슬람권의 일부다처제가 이런 선한 의도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기 어렵긴 하다.) 무함마드는 아담은 원죄를 지은 벌로 천국에서 쫓겨났다는 기독교의 주장과 달리, 신에게서 지상을 다스릴 권한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을 원죄를 지고 사는 죄인에서 신에게 지상을 다스릴 권한을 받은 신의 상속자로 높인 것이다. 또한 자기 생각 없이 책 속의 지식을 그저 주입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책을 지고 가는 당나귀나 다름없다"고 하는 이슬람의 속담 등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도 곱씹어볼 만한 가르침들도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영화 '와즈다'의 한 장면. 여성은 운전을 할 수도 없어 운전사를 따로 고용해야 하고, 자전거를 탈 수도 없는 등(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서야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허용되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억압 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쿠란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그대로 실정법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의 권리에 있어서 그렇다. 무함마드가 코란을 쓴 당시는 여권이 지금보다 매우 낮은 때였기 때문에 코란으로 규정된 이슬람 법이 오히려 여성을 배려하는 편이었지만, 천 년하고도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여성을 옥죄고 있다. 그리고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서구와 달리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독실한 무슬림 여성은 노년에 세상을 떠나도 천국에 가면 생리도 하지 않는 아름답고 순결한, 젊은 아가씨로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생리를 불결한 것으로 여기고 아름답고 젊고 '순결한' 여성을 선호하는 무슬림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알라와 무함마드도 아름다움을 좋아하니 그 뜻을 따른 거라고 하지만 어쩐지 변명처럼 들린다. 그리고 생리를 불결하게 여긴다는 것 자체도 문화상대주의를 감안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보인다. 저자의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은 알겠지만, 이슬람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전혀 없는 점은 아쉬웠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최초의 이슬람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는데, 그 이야기가 더 자세히 나왔으면 했다. 부산 남도여중의  학생들과 최초의 이슬람 고등학교 알리고 학생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이슬람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장학금 혜택이 있다고 해도 술도 마실 수 없고 돼지고기도 먹을 수 없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은데 학생들이 선뜻 이슬람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계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궁금했다. 그리고 무슬림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원래 생활습관과 교리 사이의 충돌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은 없었을지 궁금하다. 그저 우리나라에도 이런 이슬람 학교가 있었다는 정도의 설명으로 끝난 것이 아쉽다.


 또한 사진 자료들이 모두 흑백 사진이어서 시각적인 면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 내용은 정말 알찬데 내용으로 진입하는 통로인 시각적인 부분이 아쉽다. 그래서 한길사 편집자가 꼽은 "많이 알려지지 못해서 아쉬운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것 같다. 시각적인 면과 이슬람에 대한 좀 더 냉철하고 균형 잡힌 시각이 보완되어 개정보완판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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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회 - 권력에 중독된 한국 기독교 내부 탐사
김지방 지음 / 교양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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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새 정부에 자신이 다니던 교회 출신 인사들을 등용해 또 한 번 논란을 빚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개신교계는 사립학교법 개정,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등 국가의 입법 활동에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또 보수 성향의 거대 교회 목사들이 설교 시간에 공공연히 대선에서 개신교인 후보를 지지하라고 주장하고, 자신들이 직접 주축이 되어 정당을 세우기도 하는 등 한국 교회는 매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교회의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보수 교회의 정치 참여를 비판한다. 그는 기독교인이지만 보수 교회들의 권력을 향한 투쟁이 교회의 본분을 잊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보수 교회의 정치적 정체성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먼저 짚어본 뒤, 한국 교회 안의 정치적 성향을 다섯 갈래로 분류하고, 그 중에서 보수 교회의 정치 활동들과 그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있다. 여러 입장과 여러 가지 쟁점이 복잡하게 뒤얽힌 문제지만 체계적인 분석과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또한 교회의 비뚤어진 권력욕에 대한 냉철하고 날카로운 비판은 그 동안 한국 보수 교회의 신앙을 빙자한 권력욕에 염증을 느끼던 독자의 마음을 후련하게 한다. 

 이 책은 교회의 정치 참여는 권력을 향한 질주가 아닌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한 섬김의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옳은 이야기이지만 원론적인 결론이고, 교회의 정치 참여에서의 문제점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은 기독교 외부에서의 원색적인 비난이나 기독교 내부에서의 무조건적인 옹호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기독교 내부에서 이만큼 체계적이고 냉정한 자기비판이 나왔다는 것은 긍정적인 점이다. 

 그런데 이런 내부 비판을 한국교회가 받아들이고 문제를 개선해 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책이 출간된 뒤 11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의 정치 참여가 소외된 이들을 향한 섬김의 활동보다는 권력을 향한 질주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얼마 전 총선에 출마한 어느 기독교 정당 후보의 공약집에는 비기독교인들, 성소수자들, 무슬림 이주자들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소외된 이들을 돕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 후보가 모든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면서 출마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한국 교회의 문제 아닐까. 예수가 강조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이었다는 것을 정치에 참여하려는 한국 교회들이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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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편견을 넘어서 - 우리 시대 정치철학자들과의 대화 한길인문학문고 생각하는 사람 1
곽준혁 지음 / 한길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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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왜 정치철학이 필요할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모두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어떤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것인지바람직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들이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정치인들은 가치보다는 권력을 추구하고시민들은 가치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맹목적인 현실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이념이 좌인지 우인지부터 따지고, 상대방의 이념에 따라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의 의견을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자기반성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정치철학자 곽준혁 교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자기반성이 없이 이미 익숙한 사고방식대로 정치가 이루어졌을 때의 위험성을 지적한다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반영된 절박한 사회경제적 요구들이그 문제들에 얽힌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가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치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해 갈 실마리가 정치철학에 있기 때문이다. 곽준혁 교수에게 정치철학은 정치가 상상하는 가능성의 경계를 확장하고, 현실과 편견이라는 장벽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정치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정치철학계의 석학 다섯 명에게 질문을 던졌다그 대담을 모은 것이 이 책 경계와 편견을 넘어서이다.

  필립 페팃은 비(非)지배 자유, 즉 다른 사람의 자의적인 의지에 지배당하지 않을 자유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동체주의에서 중시하는 공공선과 자유주의에서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공화국을 꿈꾼다. 데이비드 밀러의 이야기는 다문화 사회로 막 접어든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그는  소수자 집단들이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잃고 흡수되는 동화와, 소수자 집단이 그 사회의 경제, 정치,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다 하면서 그 사회 내의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과도 사회적 접촉을 많이 하는 통합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뭉치게 하면서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지탱하게 해 주는 통합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왜 후손이 과거사까지 책임을 져야 하냐는 일본 우익들의 질문에 대답할 실마리를 준다. 후손들이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낸 혜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 혜택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거에 다른 민족에게 부과했던 비용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샹탈 무페는 다원성이 인정된 정치 사회에서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고, 잘 제도화된다면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목표인 인민 주권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에이미 것만은 시민교육을 실질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를 시민 개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제도로 본다. 것만은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국가나 특정 집단이 좋은 사회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탄압하기 위해 시민교육을 이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마사 너스바움은 개개인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정치제도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면서, 가능성은 한 사회에서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건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개인의 가능성과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건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자유와 공공선의 조화, 다문화 사회에서의 통합, 과거사 문제, 개인의 가능성과 선택의 자유에 대한 보장까지 그들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우리 스스로도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들이다. 이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 어떤 절박한 사회, 경제적 요구에 귀기울여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편견, 이해관계에 휩쓸려 그저 익숙한 방식대로 처리해버릴 것이다. 이 책의 다섯 명의 정치철학자들이 말하는 정치철학이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과 대안은 우리가 우리의 한계와 편견을 넘어 생각과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의 삶,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낫게 만드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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