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야철신 

 

[쇠를 화로에서 꺼내는 것은 끝 부분이 옅은 노랗색이 되었을 때다. 그보다 먼저 꺼내면 메질 후, 물에 담금질을 하기도 전에 완전히 식어버리며, 뒤에 꺼내면 물에 닿는 순간 금이 간다]  

[예]

쇠뭉치의 끝 부분이 점점 주황색이 되어간다. 이윽고 살짝 노랗게 빛나며 더욱 환해지자 무기 직공은 꺼내어 붉은 기운이 있는 상태에서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대장장이에게 있어서 메질과 담금질은 신성한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낼 것을 머리에서 그리면서 메질과 담금질을 해야되. 네가 칼을 만들 것이면 모양과 날이 되는 것이고, 낫이면 휘어지는 정도, 날을 세우는 각도 일 것이야]

그 후 준비된 물 통 속에 담궜다. 순간 치이익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아올랐다. 더운 열기 때문에 이마에 땀이 배어나온다. 손에서도 흘러내린다. 문득 내가 이 과정을 습득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오랜 세월의 연륜과 경험이 필요한 일을 불과 열흘 정도 만에 할 수 있을까..더럭 두려움이 물결치는게 느꼈다.

[제가..제가..이걸 해낼 수 있을까요? 두드리고 담그고 하는 것에는 일종의 과정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떠한 법칙이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맞게 만들어낸 하나의 기준일 뿐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받아드리려고 한다면 물론 어렵지. 이미 그 과정은 만들어낸 사람의 특성에 맞추어진 것이니까. 처음 매질과 담금질을 배우는 너에게는 다만 나의 방법이 가능성이 될 수는 있다. 그 후의 것은 너의 노력과 능력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자신만의 과정을 찾아가는 것이다. 대장장이로 인정 받는 것은 그래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 야철신의 보살핌은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다]

[저는..두렵습니다]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죽기 살기로 해라. 이 걸 할 수 있어야 니가 산다. 아버지를 생각해라. 꼭 돌아와야 하잖니]

아버지. 그렇다.  

나에겐 꼭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다. 약 한 첩 못해드린 아버지께 살아 돌아와서 기쁘게 인사해야한다. 옆 동네에 놀러갔다 온 것처럼, 영원히 내가 전쟁에 다녀온 것을 모르시도록 다친 곳 없이, 건강히 돌아와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 나 자신과 해야 할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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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하루가 정신 없이 지나간 것 같다. 오늘따라 심부름이 많아서 쉴 사이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아버지께 잠깐 들린 후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도와주었다. 작은 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느새 어두운 밤이라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새지는 따뜻한 불가에 누워서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에 내가 주머니에서 누룽지를 꺼내 건네주니 좋아라 받아먹는다. 어쩜 저리 잘 먹는지 신기하다.  

[문 열어라]

갑자기 쾅쾅 문을 두드리며 흔드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얼른 달려가 문틈으로 살짝 보니 무기 직공이다.

[어인 일로 다시 오셨어요?]

[거 좀 앉아라]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온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나를 불렀다.

[메질과 담금질 하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거라] 

[예?]

[메질과 담금질이 뭔지 모르느냐?]

[알..아요..하지만 왜 갑자기..?]

[대행수가 전쟁터에 널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나와 함께 가서 내 밑에 있더라도 그곳은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니, 니가 살기 위해서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오랑캐 놈들에게 잡혀가더라도 그래야 살 수 있다]

그의 억양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대행수의 결정이 고마우면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 어쩌면 보내지 말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기 직공은 내 기분을 모르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너도 대장간의 일들을 대충은 알 것이다. 우리는 보통 2-3년 정도 심부름 등의 잡일을 하며 대장간의 분위기와 역할을 배우고, 칼을 갈고 낫을 치는 데 3년, 또 메질에 3년 등 10년은 넘어야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고 직공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너는 당장 뭐라도 한 가지 기술이 있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니, 메질과 담금질이 어떤 것인지 보고 몸에 익히기라도 하여라. 어렵기는 하지만 너처럼 눈치가 빠른 녀석이라면 어설프게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바로 차비를 하라고 말하였다. 나는 쭈뼛쭈뻣 일어나 화로에 장작을 더 넣었다.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본 뒤에 담금질에 쓸 물을 가득히 통에 담았다. 

[메질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쇠를 망치로 두드리는 것이요]

[그리고 담금질은?]

[물에 식히는 것입니다]

[쇠에 메질과 담금질을 한다는 말은 곧 모양을 잡고 길을 들인다는 뜻이다. 쇠는 메질과 담금질을 할 수록 단단해지는 법. 그러나 많이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뭐든 알맞게 하여야 한다. 그게 어려운 일이지]

그는 뒤 쪽에 만들다 두고 간 쇠뭉치을 꺼내 들었다. 화로의 불길 속에 찝개로 잡아 넣자 이내 불길 속에서 벌겋게 변하며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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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우리는 잠시 동안 화로의 불을 바라보았다. 대장간 안은 불의 온기로 공기가 꽤 훈훈해져 기분이 좋아졌다.
 

[너는 가족이 있니?]

[요괴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럼 너를 낳아준 부모님은?]

[요괴는 인간과 다릅니다. 각각이 하나의 개체일뿐]

[친구도?]

[친구도요]

[하지만..나는 니가 친구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같이 넘겼으니까..]

[그것은 제가 팔색조이면서도 하등 쓸모가 없어서 도련님을 위험에 빠트린 것입니다. 이번 전쟁에서도 제가 제대로 못 지켜드릴 거라고 생각하면....]

새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겁 많고 약한데다 마음도 여린 요괴라니..정말 요괴 세계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성격이다.

[약속을 해라. 전쟁터에 따라가지 않고 우리 아버지 옆에 있겠다고..]

[하지만..]

[아버지를 지켜줄 누군가가 있어야 안심하고 전쟁터에 갈 수 있고, 그래야 살아돌아오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을 것 같다] 

새지는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말이 없다.  

[약속하지 않으면 너를 사신들에게 보내버릴 것이다. 그럼 천년은 어둠 속에서 보내야 할 걸...]

새지는 잠시 나를 올려다보더니 끄덕인 후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천년을 어둠 속에서 혼자 보내는 것과, 전쟁터에 가는 것 중 무엇이 더 무섭고 고통스러울까. 인간과 요괴의 두려움은 그 차원이 다를테지만, 새지나 나나 겁이 많다는 것은 비슷하다.
 

*

다음날 새벽에 대장간 문을 열었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늘은 이 이상더 우울할 수 없는 색으로 덥혀 있다. 새지는 밤에 주머니에 들어간 이 후로 미동도 없다. 그 역시 기분이 별로인 것이 느껴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침 일찍 들에 나가기 전에 들르는 농부들을 위해 농기구를 내놓느라 몇 번을 왔다갔다 했다. 이마에 땀이 배이고, 몸이 더워 옷을 겉어올릴 정도로 움직이는데 무기 직공이 들어왔다. 바로 일을 시작하는 줄 알고 화로의 불을 바짝 올리는데도 그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쟁터에 가겠다고?] 

[네?..아...네] 

대행수에게 들었는지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가 뭔가 더 묻고 싶은지 입을 여는데 떡보와 다른 직공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지방을 넘어 들어왔다. 무기 직공은 그에 입을 다물고 일을 시작했다. 그는 무엇을 물어보려고 했던 것일까? 

[야..오늘만 나랑 불 당번 좀 바꾸자] 

떡보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속삭였다. 오후에 아버지에게 잠시 다녀올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그러마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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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우리는 둘 다 입을 다물었다. 묵묵히 장작을 나르고 물을 길어다 부어주면서도 머리 속은 복잡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나가 어느 덧 대장간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오늘 불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모두가 나간 뒤 대문을 잠궜다. 화로의 불은 낮보다는 반 정도 줄어든 채 타오르고 있다. 화소이도 보이지 않고, 주변이 고요하다. 가끔씩 탁탁거리며 불씨가 날리는 소리만이 적막한 공간에 메아리쳤다.

[너도 소원이 있니?]

사람들이 모두 나간 후, 대장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새지가 내 옆에 앉았다. 아까 오월이가 살짝 건네준 짱아찌를 한 입 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어머니..그리고 세상을 보지 못하고 죽은 내 동생..가족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저는..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괴도 사람도 저를 괴롭히지 않고 우러러보며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웃지마세요. 신이 되고 싶어요] 

[신?]
 

[네. 팔색조는 일생에 2번 대변신을 한데요. 새끼 요괴에서 어른 요괴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변신]

[그 마지막에 신이 되고 싶다라...]

[불가능할까요?]

나는 새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아주 어릴 때 내가 아버지께 대장군이 되고 싶다고 했던 그 때,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니가 진심으로 원하고 노력하면 신도 될 수 있다. 아마 니가 요괴 사상 최초의 신이 되겠구나]

[기왕이면 야철신이 될까요?]

[야철신?]

[도련님은 대장장이 중에 최고가 되고, 저는 이 나라에서 최고로 치는 신인 야철신이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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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누구 2009-12-0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구려의 신 중에 야철신이란 게 있었군요. 신기하네요.

최현진 2009-12-04 10:34   좋아요 0 | URL
실제로 고구려는 철기를 중요시 여기다보니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벽화를 보면 야철신이라는 대장장이의 신이 그려져 있죠.
 

        

 

 

1부. 야철신 

  

 나는 화들짝 놀라 의자 모서리를 잡고 있던 손으로 얼른 주머니 입구를 막았다. 그는 내 이상한 움직임을 못 본 것인지 계속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무기 직공과 떡보가 갈 것이다]

[하오면 저는 왜?]  

 

 

[그들이 없는 동안 너는 떡보의 일까지 다 해야 하니...걱정이 되는구나]

 

떡보는 풀무질도 하고, 메질과 담금질을 도와주고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대장장이다운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전쟁에 가야만 한다. 그래야 살 가능성이 생긴다.  


[떡보의 일을 맡으면 당분간 집에는 갈 수가 없을 것이다. 부친의 병수발이 문제구나]

[아버지가 병환 중이신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대행수는 내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탁자에 놓여있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어르신, 저를...떡보 대신 전쟁터에 보내주십시오]

 

말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질 않아 더듬거렸다. 누가 죽을 것이 뻔한 전쟁에 스스로 가고 싶겠는가. 대행수는 눈썹을 찡끗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니가? 전쟁터에 가본 적도 없고 가야 도움도 안 되는 걸 알잖느냐]
 

[그래도 저는 꼭 가야만 합니다. 저를 보내주시지 않으시면 관에 가서 요청하겠습니다.] 


대행수는 찻잔을 돌리며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제가 갈 때까지 날을 세서라도 떡보의 일을 배우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익히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냐?]  

 

[네] 


이를 꽉 물고 대답을 한 뒤 고개를 숙였다. 이쯤 되니 새지도 잠잠해져 주머니 입구를 막고 있던 손을 떼었다.

 

[부친은 어떻게 하고?]

 

[허락을 해주신다면 오월이에게 끼니 때만 좀 챙겨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생각을 좀 해볼 것이니 나가 보거라]
 

문을 닫고 나오는데 기분이 찹착하다. 만약에 죽는다면...생각하기도 싫지만 이것 또한 조만간 닥쳐올 현실 중 하나이므로 그 뒤의 일을 생각해두어야 한다.  

 

[도련님..진짜 가실 겁니까? 

 

 

[가야지..]
 

[가면 죽는뎁쇼]

 

[꼭...죽는 건 아니야. 어쩌면 살아 돌아올지도 몰라] 


[저는 무섭습니다요. 생각만해도..]  

 

 

[너희는 전쟁 같은 게 없나보구나]

 

[요괴들은 매일이 전쟁이죠.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니까요. 하지만..인간들처럼 돈을 위해, 나라를 위해 무의미하게 살상하지는 않아요] 


[인간이..요괴보다도 못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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