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눈을 감고 혈액을 꿀꺽 삼켰다. 입 안에 구역질나는 피 맛이 퍼지며 위가 꿈틀거렸다. 지금 위는 절대 넣지 말라는 경고로 위액을 목구멍으로 올리는 중이고, 나는 혈액과 위액을 합쳐 다시 아래로 내려 보낸다. 이건 매일 하는 일이라 적응이 돼야 하는데, 이놈의 위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매 번, 매 순간 구역질을 한다. 게다가 오늘처럼 삼차신경통을 동반한 송곳니의 변신이 시작되면 위가 싸움에서 이겨 대참사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바로 입을 틀어막고 일어났다. 두 손으로 입을 꼭 막자, 양 볼이 부어올랐고, 싱크대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위액과 섞인 혈액이 코로 뿜어져 나왔다. 
 

[아이고, 아가씨!]
 

이번에는 코를 막으려고 왼 손을 떼자, 입에서도 새어나온다. 눈부시게 깨끗했던 주방 바닥과 싱크대 주변이 처참한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난 양 붉게 물들자  피 냄새를 맡은 가정부가 뛰어왔다. 
 

[미안해요, 아줌마]
[저야 치우면 되지만..어지러우실 텐데 의자에 좀 앉으세요]
 

나는 더 이상 참이 못하고 나머지 혈액을 싱크대에 뱉었다. 고개를 돌려 이 끔찍한 현장을 바라보다가 아줌마가 가져온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혈액..얼마나 남았어요?]
[하루 정도요. 만약에 뱉으시지 않으면 이틀째 오전까지 가능해요]
 

냉장고 문을 열어본 아줌마는 코를 막은 채 중얼거렸다. 가공하지 않은 생 혈액은 냄새 맡기도 고역이다, 그녀는 반 인간에 반 뱀파이어니까. 
 

[아줌마라도 얼른 아침 식사 하세요]
 

지금은 오후와 밤의 중간선상이지만, 우리는 아침으로 부른다. 해가 반쯤 졌을 때 깨어나는 나는 부지런한 축에 속하는데,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허기를 심하게 느껴 깊게 못자기 때문이다. 뱀파이어가 된 후로 넉넉히 배부르게 혈액을 섭취하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그렇다. 게다가 오늘은 욱신거리는 입안이 나를 30분이나 더 일찍 깨워 몹시 어지러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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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꿈 2010-02-1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장르문학은 잘 읽는 편이 아닌데..알라딘의 눈에띠는 새연재란에서 보고 읽었어요. 재미있네요~앞으로도 건필!하세요

최현진 2010-02-11 09:53   좋아요 0 | URL
오늘은 비가 눈으로 변했습니다. 기분도 묘해지는 날이네요. 감사합니다.

세레스 2010-09-15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에게는 고역이겠지만, 읽는 사람은 그게 재밌고 귀엽....퍽퍽!!
 

        

 

 

1부 . 야철신
 


 

[야~이 놈아. 그거 당장 못 놔!

 

성큼성큼 다가가 발로 놈을 걷어차며 소리 질렀다. 요괴들은 동료라는 개념도 없는 것인지, 그 놈이 맞든 넘어지든 아무도 처다보지 않고 저 먹는 거에만 정신을 쏟는다. 어차피 요괴들이 이 놈을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면 나도 봐주며 때릴 필요가 없다. 한 대, 두 대, 세 대..점점 늘어난다. 더불어 속도도 빨라지고, 내 흥분도 높아진다. 어느새 이 요괴 놈은 내 동료와 우리 민족을 죽인 상대편이 되어 나의 고통과 슬픔과 분노를 최고조에 달하게 만들었다. 

  

[죽어! 죽어! 죽어!] 

 

 

평소의 나를 보면 움직임도 둔하고, 남을 때리거나 피해를 입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은 귀신들린 놈 같다. 눈엔 핏발이 섯고, 팔은 덜덜 떨리며, 입에서는 쉴 세 없이 욕을 내밷고 있다. 내 어디에 이런 성격이 있었던 것일까.  

 

가슴팍에서 터져나오는 울분을 입 밖으로 포호하듯 내뱉으며 그 요괴 놈을 마구 짓밟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요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에 다리가 덜덜 떨이며 몸에 힘이 빠져 주저 앉았다. 옆을 쳐다보니 직공의 다리를 물어뜯던 요괴가 몸을 동그랗게 만채 떨고 있었다. 대항을 못하는 놈의 모습이 적군의 병사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처다보았다. 까마귀들이 넓디 넓은 공간을 빽빽이 덮어 검은 천을 보는 것 같다.  

 

나머지 요괴들은 까마귀가 하늘에서 울던, 내가 소리를 지르던 상관없이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우적우적 뼈를 씹어 먹고 있다. 그들이 재법 빨리 먹는 데도 시체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병사들의 시체가 많다. 예전에 어른들이 시체가 산을 이룬다는 말을 했는데 이제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낀다. 나는 한 손으로 무기 직공의 시체를 질질 끌고 피의 웅덩이를 벗어나 풀 숲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나중에 다시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찾아온다고 해도 위치를 제대로 알 가능성이 없음을 알지만, 묻어주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다. 그것이 나를 위해 죽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누군가의 시체위에 꽂혀 있던 창과 적군의 무기들로 땅을 팠다. 한 뼘 한 뼘 깊숙히 들어가면서 나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나약함이 싫고, 살아남은 걸 기뻐하는 이기심에 화가났기 때문이다.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만약에 무기직공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보았다면 그를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었을까.  

 

오후가 저물어갈 무렵에야 내 번민과 함께 그의 시체를 묻고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었는데, 뒤에서 큰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시체를 두고 요괴들이 악다구니를 하며 싸우고 있었다. 나는 침을 뱉어 입 안의 고인 피를 버리고는 길을 나섰다. 가슴에 안은 새지의 긴 날개를 쓰다듬으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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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는 아무 문제가 없고..단지..]  

[단지 뭐요? 빨리 말하세요. 답답하잖아요]  

 

 그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아꼈다. 나와는 초면인데도 그는 내가 마음을 다칠까봐 조심스러워했다.  

  

 [송곳니가 없다]  

 

 

 

   지금 간질거리는 이를 만지작만지작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처음 그 날이 떠올랐다. 스승님과 만나고, 내 송곳니의 부재에 기겁을 하던 첫 날을. 아직도 욱신거리는 이를 신경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나절 남짓 삼차신경통을 거쳐야 부실하고 장애가 있지만 뱀파이어의 상징인 송곳니가 나타날 테니, 그 때까지는 알아서 배를 채워야한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조금 열어두었던 창문을 통해 부드러운 바람이 내 곁으로 다가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일어나면 언제나 느끼는 어지러움도 이 순간만은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잠들기 전에 창문을 열어두면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스승님이 똑똑 두드리며 잘 다녀왔다고 인사하지 않을까..하는 바람 때문이다. 하여간 나는 오늘도 아무 인기척 없는 창문을 슬쩍 본 뒤 옷을 갈아입었다. 뱀파이어가 된 후로 가장 좋은 건 나이를 먹지 않고, 신체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한 번 옷을 사면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문제없이 입으니 경제적으로 참 기쁘다. 물론 이 행복에는 패션이 복고로 회귀한다는 조건이 따르지만.   

 

 

 1층으로 연결된 나무 계단을 내려와 부엌으로 갔다. 그곳에는 냉장고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혈액이 응고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특수 냉장고다. 겉면은 얼마 전에 리모델링을 해 울룩불룩하게 튀어 오른 노란색 해바라기 그림을 붙여 놨다, 이렇게라도 밝고 맑은 기분을 느끼자는 취지로. 예민한 손가락으로 해바라기의 표면을 쓰다듬다가 문을 열었다. 작은 팩에 담긴 혈액을 꺼내 파카글라스에 따랐다. 거실을 향해 놓인 의자에 털썩 앉아 탁자에 몸을 기대며 그 반동으로 흔들거리는 혈액을 바라보았다. 내가 송곳니가 없는 뱀파이어가 된 후로 생긴 문제는 평범한 뱀파이어로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뱀파이어는 송곳니를 통해 혈액을 흡수하여 위를 거치지 않고 혈관에 바로 투입한다. 그래야 음식으로 취급받지 않아서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고 온 몸에 퍼진다. 반면 나는 그럴 수 없으니 살기 위해선 입으로 마시는 방법을 써야하는데, 이게 정말 고역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 리스트를 작성한다면 1위를 차지할 정도니 말 다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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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차신경통

 

저녁에 눈을 뜨자마자 이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에서 왼쪽 3번째가 욱신거린다. 동시에 스멀, 스멀 입천장도 간지럽다. 또다시 이가 변하는 시기임에 틀림없다. 나는 어둠을 이불 삼아 그대로 누워 오른 손을 이빨에 가져갔다.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면 징징거리고 눈물도 보이면서 떼를 쓰겠지만 나는 혼자다. 그래서 젓니나는 아기를 엄마가 위로하듯이 아픈 이를 어루만졌다. 손끝에 닿는 느낌으로 보아 송곳니로 변신하는 중이다.  

 

 [넌..좀 이상하구나]  

 

 두 번째 삶을 시작하던 날, 나의 스승은 그렇게 말했다  (엄밀하게 말해 스승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 싫어 그렇게 정했다, 그와 가까워진 후부터)  눈을 뜨자 귀 속으로 넘실넘실 들어온 말에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제가..못생겼나요?]  

 [왜 그런 말을 하지?]  

 [ 다들 아름다웠는데, 나만..나만 못생겨서..]  

 

 내 눈에 들어온 그는 상당히 괜찮은 외모를 지녔다. 머리카락은 약간 두꺼워보이지만 자연스럽게 구불거려 요즘 유행하는 바람머리로 느껴지고, 그 밑에 달린 검은색의 눈썹은 적당히 큰 눈과 조화를 이뤄 매력이 느껴졌다. 게다가 코는..한국사람 치고는 상당히 오똑했다. 내가 그렇게나 원하던 코를 가진 그는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말을 이었다.   

 

 

 [흠..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아주 이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처음 본 그 마저도 인정을 하자, 나는 화가 났다. 여전히 아름답지 않다면 뱀파이어가 된 의미가 없다. 미모를 얻을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었겠는가.   

 

 

 [젠장, 빌어먹을 세상..]  

 [이봐, 아가씨. 욕을 하면 정말 밉게 보일 거야]  

 [전 아직도 못생겼고, 그 딴 건 상관없어요]  

 

 그 순간 뺨에 차가운 액채가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예민한 신경들은 그 액체가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라고 알려주었다. 스승은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넌 너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어. 그리고 내가 이상하다고 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럼 뭐죠? 혹시 팔 다리가 삐뚤어졌나요? 발가락이 사라졌나요?]  

 

 나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아직 내 몸은 움직일만큼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고, 목을 움직여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으니 더럭 겁이 났다. 변신하는 과정에서 간혹 문제가 생기기도 하니 그런건 본인의 책임이라고 서약서에 사인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때 이름을 쓰며 드라마처럼 목만 물리면 뱀파이어가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현실적인 깨달음에 쓴웃음이 배였고, 설마 별 일은 없겠지..라는 안이한 믿음이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런 과거 기억이 떠올라 눈을 최대한 굴려 아래를 보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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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춥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마치 허허벌판에서 벌거벗은 채 찬서리를 맞는 기분이다. 너무 추워서 살 수가 없다. 이미 죽은 상태에서 불평을 하다니..어이가 없다. 스스로의 모순에 웃음이 터져나와 사래가 들렸다.   

 

[캐캑.케캑] 

 

 

마른 입술 너머로 한바탕 기침을 쏟아내며 매운 눈물까지 흘리다보니 문득 내가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비록 몸은 차고 뒷머리는 젓어있지만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하늘은 별이 반짝이는 밤이고 저 멀리에서는 엄마품 같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모든 상황에 전쟁과 죽을뻔했던 일들이 꿈결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어떻게 된 일이지?]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죽은 사람들 뿐이다. 피 웅덩이 속에서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시체,시체,시체들이 활과 창에 찔린 상처를 공개한 채 널부러져 있었다.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 느끼며 반대쪽으로 머리를 돌리자 근처의 피 웅덩이에 뭔가 익숙한 것이 쫙 펼쳐진 채 빠져있었다.  

 

 

[새..지?]  

 

 

분명 수 십 가지의 색을 가진 팔색조였다. 피에 젓어 거의 모든 부분이 검붉은 색이지만, 새지가 분명하다. 배를 보인 채로 하늘을 향해 둥둥 떠서 죽은 것처럼 보인다. 소스라치게 놀라 엉금엉금 기어 피웅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떨리는 두 손으로 간신히 건저내 옷으로 얼굴 주변의 피를 닦아냈으나 새지는 미동도 없었다.  

 

 

[이봐! 야!]  

 

 

살살 흔들어도, 미친 듯이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스스로 깨어나지도 않는다. 목이 쉬도록 울면서 불러도 반응이 없다. 손바닥만한 새지로 돌아가지도 않는 것을 보면 정말로 죽은 것 같다. 요괴가 사멸되지 않고 죽는 게 가능한가? 이 모습이 정말 죽은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품에 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쪽으로 가자. 누군가..도와줄 사람이 있을거야] 

 

 

[크큭..크큭..] 

 

 

뒤를 돌아보자 언제들 왔는지 밤에 만났던 그 요괴 놈이 동료들을 왕창 끌고 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이 박통만하게 벌어지며 웃는다. 그 웃음..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 웃음이었다, 비열한 지옥사자의 모습. 

 

 

지금은 그 놈이 웃던 울던 사실 중요하지 않다. 새지만 살려준다면 여기 죽어 있는 모든 시체들을 저 놈들이 먹어도 좋다. 혹시 내 팔다리를 원한다면 그것도 줄 수 있다. 새지가 여기에 있는 건 나를 살리기 위해서였을테고, 병사의 칼이 내리꼿히는 순간 그것을 막기 위해 변신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 창에 죽을 수도 있을텐데 이 겁장이가 어떻게 달려들었을까..이 형편없는 나를 위해.   

 

 

와그작 와그작 거리는 소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 눈을 들었다. 그 요괴가 내 동료 무기 직공, 나를 살려준 무기 직공의 다리 한쪽을 뜯어내어 씹는 소리에 새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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