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야철신.

  

오늘은 출정하는 날이다. 거리마다 아낙들과 아이들, 노인들이 모두 나와 기다린다. 장군과 병사들과 함께 우리도 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이다. 우리 군의 제일 앞에는 커다란 깃발을 든 군악대가 풍악을 울리며 흥을 돋운다. 창, 칼 등의 갖가지 무기를 든 병사들이 그 뒤에 서 있다. 쇠조각을 덧댄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한 중마기병과 가볍게 무기만 든 경마기병도 그 뒤를 따른다. 걸어가는 병사들은 더욱 제각각이다.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채 창이나 칼을 든 경우가 있는가 하면, 허리에 화살통을 메고 활을 든 궁수도 있다. 또 어깨에 도끼만을 거머진 병사도 보인다. 우렁찬 음악에 발맞춰 걸어가는 행진 소리가 흐느끼는 소리와 묘하게 어울려 하나가 된다. 그들의 뒤에는 이미 인사를 마쳐 배웅해줄 사람도 없는 나와 무기 직공이 말 없이 서 있다. 뒤를 돌아보니 대장간을 짓는데 필요한 도구들과 기타 물건들이 3겹으로 쌓인 수레를 소가 끌고 따라온다.


이 나라에 산다는 것은 자신의 생애에서 적어도 2-3번은 전쟁을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도 누군가의 아버지와 아들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가고 그들의 아낙들은 서낭당 나무 앞에서, 살아 돌아오는 이보다 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전쟁이 되지 않기를 빌며 엎드려 절한다. 나를 위해,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게 정화수 한 그릇 떠 줄 이가 있으면 좋겠다.

[꼭 혼자 가셔야 하나요?]

문득 새벽에 새지와 한 마지막 대화가 생각났다.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가는 게 걱정이 되. 내가 믿는 건 너 뿐이니까, 니가 잘 지켜주어야 나도 있는 힘껏 노력해서 살아 돌아오지]

[도련님..]

새지의 눈물에 울면 재수가 없다고 뚝 그치라는 말을 한 후 돌아섰다. 집 밖을 나서며 등 뒤로 느껴지는 새지의 존재가 오늘따라 더 슬퍼졌다. 부디 오래 살아라. 내 대신 좋은 세상 구경하다가 아주 늦게 와라. 나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보이지 않는 붉은 눈물이 심장 가득 넘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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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아버지, 점심드세요] 

해가 중천에 뜨고 대장간 사람들의 점심이 시작되자 나는 밥을 거르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지금같이 전쟁 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는, 일을 하다가 외출한다는 게 불가능하니 식사 시간에 나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맛있는 김치를 얻었어요. 아버지가 드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오늘은 새지가 밥을 달라고 조르질 않는다. 내가 왜 왔는지 알기 때문인지, 없는 것처럼 주머니 속에 있다. 그런 새지가 기특하여 살짝 밥을 뭉쳐 넣어준 후, 아버지가 식사를 드실 수 있게 상을 들고 방으로 갔다. 아버지가 드시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마침내 수저를 내리시자 상을 물린 뒤에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대행수님께서 제가 대장장이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본격적으로 일을 배워보래요]  
[그거...잘..되었구나] 

마른 기침과 함께 간신히 말을 이어가는 아버지께 활짝 웃어보였다. 내가 진심으로 웃는 것처럼 해야 믿어주실 것이다.   

[그리고..선진 기술을 익히면 우리 대장간이 더 커질 기회가 생긴다고 하시면서 다른 대장간에 다녀오라고 하시는데...아버지..저 배우러 가고 싶어요] 

나는 말을 더듬더듬하다가 결국 고개를 바닥에 닿게 숙였다. 눈에 눈물이 고여서 들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면..가야지..다..너를..위한 일인데..대행수님께..인사를 대신 올려다오]
[제가 꽤 오래 집에 못 와서, 오월이가 저 대신 챙겨드릴 거예요. 무엇이든 원하시는게 생기시면 말씀만 하시면 되요] 

방을 나와 부엌 한 켠에 앉아있자니, 새지가 말을 건다. 

[도련님..울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가 가야하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나 없이 저렇게 계시다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억장을 무너지게 한다. 혹시라도 내가 없는 동안에 병환이 깊어져 생을 마감하시기라도 하면 나는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자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해야할 것이다. 

이런저런 불길한 생각들이 나를 두렵게 하고 오한이 일게 하지만..이렇게 마냥 앉아 있을 수도 없다는 생각에, 소매부리로 눈물을 훔치며 일어섰다. 대장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서 메질과 담금질을 더 연습해야 한다. 아직도 힘이 부족하고, 아직도 모양이 엉성하다. 한참 멀었다.  

가면 잊지 말고 오월이에게 그동안 모은 돈을 건네주고 아버지를 다시 한번 부탁하자. 참, 아직 못 건네준 비녀도 이참에 주어야겠다. 그거면...오월이가 내 마음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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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오늘은 무기에 대해 알아두어야 한다.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꼭 습득해야할 대장장이의 기초지]

무기 직공은 모두가 떠난 뒤 메질을 하고 있던 나를 불러 흙바닥에 그림을 그린 후 말했다. 

[창은 생긴 모양이 서로 비슷하기는 해도 쓰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뉜다. 찌르는 날이 한 가닥으로 된 것은 모(矛), 두 가닥인 것은 모차(矛), 세 갈래의 삼지창은 삭(矟), 갈고리가 달린 창인 과(戈) 그리고 두 개의 곁가지가 위 아래로 엇갈린 극(戟)이다. 우리가 현재 제일 많이 만드는 창이 무엇인지 아느냐?]

[극입니다]

[극은 특히 말을 탄 적을 끌어내리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만들어지는 양이 가장 적은 데도 그런 이유로 많이 요구한다] 

흙바닥의 그림을 발로 밀어 지우고는 칼을 그렸다.

[칼은 도와 검으로 나누어진다. 도와 검의 차이가 무엇이냐?]

[도는 한쪽만 날을 세운 것이고, 검은 앞 뒤로 날을 세운 것입니다]

[화두대도(環頭大刀)는 전쟁터에서 가장 애용되는 칼이지. 손잡이 끝에 둥근 고리가 달려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찌르기 보다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적을 베는데 주로 쓰인다]

[그럼 장수들이 주로..] 

그는 끄덕이며 이어서 갑옷과 못신에 대해 알려주었다. 우리의 갑옷은 쇠조각을 하나하나 연결한 것으로 매우 촘촘히 덧대어 무거운 편이다. 또한 쌍뿔인 투구를 쓰며 마지막으로 못신을 신어야 철저한 무장의 상태가 이루어진다. 바닥에 뾰족뾰족하게 못이 달린 신은 전투 도중에 달려드는 적군을 말에서 내리칠 때 좋다. 우리는 현재 못신의 제작도 주문 받은 상태이다. 
 
[군영에 간이 대장간이 만들어지면 가장 많이 해야 할 일이 지급된 무기의 수리다. 전투를 하고 나면 거의 대부분이 피로 물들어 녹이 생기고 날이 망가지거나 방패 등에 부딛혀서 구부러지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매질과 담금질이 꼭 필요하지만 양이 워낙 많다보니 세심하게는 손 볼 수 없다]
 
[그러면.. 다시 전쟁에서 사용할 때 성능이 좋지 않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한 명이라도 목숨을 더 살리기 위해서는 무기가 한 개라도 더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나를 말없이 처다보더니 계속 연습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앞으로 사흘 정도 후면 떠난다. 오늘은 점심때 아버지에게 잠시 다녀와야 한다. 말도 없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병이 더 깊어지실 것이다. 어떤 말을 해서 안심시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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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야철신 

 

[먼저 망치질을 해라. 아까 내가 한 것처럼 불에 달군 후 꺼내되, 꺼내는 그 순간에 칼의 모양을 생각한 후 두드리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고 전체적인 형태만 머리 속에 두고 단순하게 두드려라]   


그의 손에서 넘겨 받은 쇠뭉치를 달구어 쇠판 위에 올렸다. 먼저 아까 그가 두드리던 모습과 아버지의 서적에서 본 칼의 모양을 생각하며 시작했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단순하게. 


[한 군데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옆으로 움직여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힘으로 해야 한다. 망치가 닿을 때의 느낌을 몸이 기억해야한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무기 직공이 내가 연습해야할 부분을 알려주고 간지 한참된 것 같다. 새지가 다른 쇄 판 위에 잠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땀이 흘러 눈썹을 적신다. 눈을 감았다 뜨기도 고되다. 무엇보다 약한 팔로 계속 같은 힘을 유지하고 두드린다는 것이 고통스럽다. 팔과 다리의 감각이 무뎌진다.  

대장장이가 된다는 것이 자신과의 싸움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우습게 보았던 떡보도 쇠를 바라볼 때는 한 없이 진지해지는 모습이 이제야 그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느낀다.

[도련님, 곧 날이 밝아 올거에요. 조금만이라도 눈을 부치셔야 또 하루를 움직이실 수 있으세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일체의 잡생각을 비우고 달구고 치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다. 졸립다. 그냥 흙바닥에 누워버렸다. 깨워드릴테니 걱정 말라는 새지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눈이 감겼고 어느 순간 기억이 끊어졌다.
 

                                                       *

대장간의 한 쪽 구석에 돌로 줄을 그었다. 전쟁에 갈 날을 세기 위해서다. 줄이 많아진다는 것은 출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제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나 병사들은 모두 기민하게 행동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군에서 무기를 조달하려는 사람들이 대장간을 찾아오고, 어지간해서는 얼굴 보기 어렵던 대행수도 거의 매일 대장간에 나온다. 낫을 만들던 농기구 직공들도 이제는 무기류를 만든다. 나보다는 오래되었지만 크게 중요한 일을 하지 않던 떡보도 일을 할 만큼 지금은 손이 부족하다. 그 와중에 나는 한 쪽 구석에서 메질과 담금질을 연습하고 있다. 아무도 막내인 내가 그런 연습을 하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내가 전쟁터에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떡보도 내가 불쌍한지 괴롭히지 않는다. [어이]나 [야]가 아닌 이름도 불러준다. 정말로 내가 전쟁터에 가는 것이 모두의 행동을 통해 매 순간 되살아나서 자꾸 마음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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