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아서 할말을 잃었다..#

그 한 달은 유이치리는 남자를 탐구하는 기간이었다. 페루에서 태어난 유이치는 십대 초반에 가족과 함께 샌디에이고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육 개월 뒤에 시애틀로 이주했 다고 말했는데. 그는 내가 가족들과 함꼐 이민 온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남미인 특유의 단순함이 몸에 벤 유이치는 나의 과거 같은 것을 시시콜콜 캐묻지 않았다. 그에게는 현재의 삶, 지금 살아가는 삶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그런 것들이 꽤 부러웠다. 내게는 과거의 삶이 여전히 중요했으니까. - P22

이 사진은 내 이름이 우연하게 지어진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줍니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 경)‘이라는 제목으로 책에 수록한 것이죠. - P59

신혜숙의 충고대로 나는 열녀각이나 매생이국 같은 것들, 동백꽃이나 김밥집의 화장품 같은 것들이나 추억으로 간직한 고 진남을 떠나 다시는 들아오지 말았어야만 했다. 처음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처럼 모든 과거를 망각 속으로 밀어넣은 채. 그리나 이젠 돌이킬 수가 없게 됐다. - P97

저는 소문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 바보들이니까요. 저는 자기 마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 무지한 마음이 무서울 뿐이죠. - P168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 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네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내게는 없네. 네 눈을 빤히 쳐다보고 싶지만, 너를 바라볼 눈동자가 내게는 없네. 너를 안고 싶으나, 두 팔이 없네. 두 팔이 없으니 포옹도 없고, 입술이 없으니 키스도 없고, 눈동자가 없으니 빛도 없네. 포옹도, 키스도, 빛도 없으니, 슬퍼라, 여긴 사랑이 없는 곳이네. - P201

너는 망각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는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던 니체의 말을 떠올린다. 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인간은 잊을 수 있어서. - P202

실제로도 이제 우리 나이는 돌아가실 무렵 미옥의 아버지보다 더 많아졌다.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번 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번 인생은 한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 걸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번 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 P251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그렇게요. 저는 말문이 턱 막혔어요. 그런 제게 지은이가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라고 말하며 자기 배를 만졌어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른 채, 무지하다고 해야 할까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 P244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우리는 그일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모든 균열은 봉괴보다 앞선다. 하지만 붕괴가 일어나야만 우리는 균열의 시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붕괴가 일어난 뒤에야 최초의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초의 균열은 어디에 있었을까?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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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장편 역시 좋았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에 감각적인 문장까지 완벽했다.

처음에는 밤새워 일하는 게 너무 지루헤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결국 나중에는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중독 되고 말았던 것이다. 시작부터 그런 식으로 관계를 맺게 되자, 이내 도저히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게 됐다. 이야기를 멈추게 되면. 그러니까 더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진다거나,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더이상 이야기가 하고 싶지 않게 된다면, 우리 둘의 관계는 그 순간 끊어질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계속됐다. - P18

"생각해봐. 지금 안 보면 영영 못 보는 거야. 게다가 그 사진을 보지 않고는 네 할아버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어. 당연하잖아 나는 한 번도 입체 누드사진이리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사진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는걸.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북극의 오로라 같은 거야.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그러니 빨리 가서 가져와. 나머지 이야기는 그 사진 보고 나서 들을 테니까." - P20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끼닭에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 P33

"그러니까 별자리교실의 설명대로라면 저 별이 베가니까 직녀별일 테고, 저 별이 알타이르니까 견우별이겠구나. 어떻게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 멀리 떨어진 두 별이 서로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걸까? 그때도 세상은 서로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걸까? 아무리 외로워도 여름밤이면 다들 참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가 됐겠네. 저렇게 멀리 떨어진 별들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서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았겠다, 그지? 고개만 들면 거기 서로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별들이 보였을 테니까." - P144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 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무주에서 정민과 나란히 누워 바라본 밤하늘처럼 인생은 광활하고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 P150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의 세계란? 패배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일 뿐, 운명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니 꿈처럼 지나가는 비극의 삶에서 살아남겠다면 먼저 웃으라는, 쓸쓸한 목관과 유머러스한 현악의 전언. 그 순간 베르크 씨는 차이코프스키가 그 교향곡을 작곡한 이래, 인류가 그 곡을 어떤 식으로 들었건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러므로 다음에 올 인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곡을 새롭게 들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220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고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 - P254

내가 한때나마 존재했었다면 그건 오직 당신 때문이었어. 얼룩무늬 소피에게 맹세했다시피, 존재가 없었다면 고통도 없었을까. 그렇다면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 내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어. 나는 그 고통을 매순간 맛보고 있어. 너무나 달콤한 고통이야. 나는 지금 하얀 숲속에 있고, 모든 것은 끝나가고 있어. 지금으로서는 그 고통을 이제 더이상 맛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 뿐이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 해. 사랑해. - P269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저녁이에요. 동쪽 하늘은 파랑고 거기로 별이 떠올라요. 하지만 서쪽을 보면, 아직 빛이 남아 있는 거죠. 요즘 베를린의 밤처럼 말이에요. 밤이 깊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빛. 모든게 끝이 난다고 해도 인생은 조금 더 계속되리라는 그런 느낌." - P377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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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4-28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월 1회라도 밑줄 그은 문장들, 을 올려야겠단 다짐을 해 봅니다.
새파랑 님의 성실성을 좋아합니다.^^

새파랑 2024-04-28 13: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요새 책만 읽고 리뷰는 안쓰고 있는데 좀 찔리네요 ㅋ 성실하지 못해서...

밑줄긋기 하면 나중에 기억하기도 좋고 편하더라구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지 못한 사람은 어떤 타인에게도 우정을 기대할 권리가 없다.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으뜸가는 의무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적대적일 뿐 아니라 자기를 섬기는 타인의 가장 선한 마음조차 꺾어버리고 세상에 친구 따윈 없다!‘며 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불평까지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 P26

우정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다. 전자는 함께할 자리를 미리 마련해두지만, 후자는 일정 중에 빈자릴 찾는다. - P43

우정이든 사랑이든, 핵심은 사랑하는 이가 존재할 때 (최선의 자아까지는 아니더라도) 표현하는 자아가 꽃을 피우리라는 기대다. 모든 것은 그 활짝 핀 자아에 얹힌다. 하지만 각자의 내면에 있는 그 불안한 것, 유동적인 것, 변덕스러운 것이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만개한 자아를 꾸준히 값아먹고 있다면 어떡해야 할까? 실은 표현을 하고 싶어하는 자아라는 가정 자체가 환상이라면? 안정적인 친밀감에 대한 열망이 -그보다 더하진 않더라도 그에 못지 않게 무진장한- 불안정해지려는 열망에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면? 그럼 어떡해야 하는 걸까?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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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4-28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3쪽의 글은 절묘한 표현이군요. 멋진 문장 같습니다.^^

새파랑 2024-04-28 13:5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ㅋ 전자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우정이 한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인생이 풍요로울거 같아요~!!
 

자연에 대항하는 인간, 신에 맞서려는 인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느낌을 책을 덮는 순간까지 느꼈다.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모든 인간의 정신과 의견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들이 지닌 종교적 신념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남의 말을 훔쳐 허세를 부리는 웅변가에게 사상가들의 사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거대한 지구 자체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독자여, 당신 또한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 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 P207

암컷 학교와 수컷 학교 사이의 또다른 차이점이 성별의 차이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여러분이 40통짜리 황소 한마리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불쌍하기도 하지! ㅡ녀석의 동료들은 몽땅 녀석을 두고 달아나 버린다. 하지만 하렘 학교의 학생 하나를 공격하면, 그 학생의 친구들이 온갖 우려를 표하며 그녀 주위를 헤엄쳐 다니고, 때로는 그녀 가까이서 너무 오랫동안 머무는 바람에 자신들까지 희생물이 되어버리곤 한다. - P199

I. ‘잡힌 고래‘는 그것을 잡은 자의 소유다.
II. ‘놓친 고래‘는 먼저 잡는 자가 임자다. - P203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을 쫓을 것이오. 그냥 내버려두는 게 상책인 녀석, 그 저주받은 녀석이 때로는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매력을 뻗어내기도 한단 말이지. 녀석은 온몸이 자석이오!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소? 어느 쪽으로 갔소?‘ - P282

"흰 고래를 잡겠디는 너희의 맹세는 나의 맹세만큼이나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에이해브는 심장, 영혼, 육신, 허파 그리고 목슴 까지 그 맹세에 묶여 있다. 너희는 이 심장이 어떤 곡조에 맞춰 뛰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다들 여기를 봐라. 내가 마지막 두려움까지 모두 꺼 줄 테니!" 그러더니 그는 거센 입김 한 번으로 불꽃을 꺼버렸다. - P396

난 영감에게 순풍을 보고하러 온 거야. 그런데 무엇을 위한 순풍이지? 죽음과 파멸을 위한 순풍. 그렇다면 그것은 모비딕을 위한 순풍이로군. 그 저주받은 고래에게만 순조로운 바람이야. - P405

이리하여 흰 고래가 혜엄치고 노는 바로 그 어장에서 흰 고래를 찾기 위해 돛대에 오른 피쿼드호의 선원이 처음으로 심해에 삼켜지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에 그 사건의 의미를 곱썹어본 이들은 극히 소수였을 것이다. 사실 선원들 중에 이 사건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비통해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앞으로 닥쳐올 재앙의 전조가 아니라, 이미 에견된 재앙의 실험으로 여졌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간밤에 들었던 날카로운 비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다며 떠들어 댔다. 하지만 맨섬 출신의 노인은 그게 아니라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 P423

이 늙은 에이해브는 지난 사십년 동안을 왜 그리도 바보ㅡ바보ㅡ늙은 바보처럼 살아온 것일까! 왜 고래를 잡겠다고 이처럼 분투하는 것일까? 왜 노를 긋고 작살과 창을 던지느라 팔을 지치게 하고 저리게 하는 것일까? 그래서 에이해브가 지금 더 부자가 되거나 형편이 나아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보게. 오오, 스타벅! 이렇게 지굿지긋한 짐을 짊어진 내게서 가련한 다리 하나마저 슬적 강탈해가야만 했다니, 이건 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 P458

"오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고귀한 영혼이시여! 역시나 위엄 있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신 분이시여! 왜 우리가 그 가증스러운 고래를 쫓아야 하는 겁니까! 저와 함께 갑시다! 이 끔찍한 바다에서 함께 달아 납시다! 집으로 가자고요! 저 스타벽에게도 처자식이 있습니다-형제 같고 자매 같고 어릴 적에 같이 놀던 친구 같은 처자식 말이에요. 선장님이 늙어서 얻은 사랑스럽고 그리운 처자식도 그와 마찬가지일 테죠. 갑시다! 함께 가자고요! 지금 당장 침로를 수정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오, 나의 선장님, 우리가 다시 그리운 낸터킷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울까요! 선장님, 제 생각에는 낸터킷에서도 이처럼 온화하고 푸른 날들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 P459

"영감 당신은 녀석을 절대로, 절대로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짓을 그만두세요. 이건 악마의 광기보다 더 지독한 짓입니다. 이틀 동안이나 추격했고, 보트가 두 차례나 산산조각났으며, 당신의 그 다리는 또 한번 당신 몸에서 떨어져나간데다, 당신의 사악한 그림자는 영원히 종적을 감췄습니다. 선한 천사들이 떼지어 몰려들어 당신에게 경고하고 있어요. 뭘 더 원하나요? 이 흉악한 고래가 우리를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몽땅 힘쓸어버릴 때까지 녀석을 추격해야 하나요? 우리가 녀석에게 이끌려 저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나요? 우리가 녀석에게 이끌려 지옥에라도 들어가야 하나요? 아아, 이 이상 녀석을 쫓는 일은 불경스러운 신성모독입니다!" - P489

"농락당했구나, 바보처럼 농락당했어." 길고 가는 한숨을 들이마시며 그가 말했다." 그래, 파르시여! 자네와 다시 만나게 되였구나. 그래, 자네가 나보다 앞서나갔군. 그렇다면 이것이 이것이 바로 자네가 약속했던 그 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자네가 했던 약속의 마지막 한 글자까지 지켜줘야겠네. 두번째 관은 어디에 있지? 항해시들은 모두 모선으로 돌아가라! 너희 보트는 이제 무용지물이니까. 제시간에 보트를 수리할 수 있거든 내게로 돌아오고, 그럴 수 없거든 죽는 건 이 에이해브 하나로 족하 다ㅡ다들 앉아! 내가 서 있는 이 보트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자가 나온다면 내가 작살 맛을 보여주겠다. 너희는 남이 아니라 내 팔과 다리다. 그러니 내게 복종하라. 고래는 어디 있지? 다시 아래로 잠수했나?" - P506

이제 조그마한 새들이 여전히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소용돌이 위를 시끄럽게 울며 닐아다녔고, 시무룩한 힌 파도는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을 때렸다. 그러고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고, 거대한 수의같은 바다는 오천 년 전에 넘실거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 자리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 P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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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작품. 김연수 작가님 작품을 다 읽어봐야 겠다.




두번째 밤이 지나간 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생각 한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날 때 세상에는 지혜가 가장 흔해진 다고. 그때야말로 우리가 지혜를 모을 때라고, 평범하고 흔한 그 지혜로 우리는 세상을 다시 만들 것이라고. - P14

나는 진짜 기타를 처음 손에 넣었지,
오 달러 십 센트에 샀지.
손가락에서 피가 날 때까지 기타를 쳤어.
69년 여름의 일이었지. - P34

그날 다리 밑까지 함께 간 친구들은 담배를 나눠 피웠다. 그 러려고 어두운 철교 밑으로 간 것이었다. 그 친구는 내게도 담배를 건넷다. 마치 브라이언 아담스의 앨범을 복사한 카세트 테이프를 건네듯이.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어둠 속의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친구들이 피우는 담배 불빛이 어둠 속에서 빨갛게 타들어갔다. 그 어둠 속에서도 시냇물은 쉬지 않고 흘렀으리라.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밤이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조금씩 변해갔다 - P36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야. 과거는 다 잊어버리자. 내가 어떤 집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누구를 만나 사랑했고, 어떤 꿈을 가졌었는지는 다 잊어버리자. 대신에 오로지 미래만을 생각하기로 해. 이제까지는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미래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도록 말이야. - P57

청붕오리를 보는 일도, 아내와 밥을 먹는 일도, 또 둘이서 잠드는 일도 모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됐다고. - P65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말입니다. 제가 소설을 쓰고 출판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 P114

"네 쪽에서 더 자주 연락하지 그랬니?‘"
라고들 말했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관계라는건 실로 양쪽을 연결한 종이컵 전화기 같은 것이어서, 한쪽이 놓아버리면 다른 쪽이 아무리 실을 당겨도 그전과 같은 팽팽함은 뇌실아나지 않는다. - P118

사랑이란 제 쪽에서 타인을 바리볼 때의 감각이었다. 그것에는 절대적인 크기가 없었다. 멀어지던 그 순간부터 그녀의 살갓이 와닿을 때의 촉감이나 자신을 쓰다듬떤 손길은 전혀 되살아나지 않았다. 멀어지던 바로 그 순간부터 풍화는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땠는지, 심지어는 그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됐다. 지훈은 그녀의 강의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누구도 스스로 존재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 P143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고적으로‘라는 말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이어지지 않았어도 전쟁 전의 유럽이 그토록 평화롭고 풍요롭게 기억될 수 있었을까? ‘회고적으로‘라는 말은 그뒤에 일어난 끔찍한 일, 즉 전쟁을 겪고 난 뒤에야 그 시절이 제대로 보였다는 뜻이다. 벨 에포크를 살아가는 사람은 그 시절이 벨 에포크인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한 번의 인생이란 살아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은 뒤에야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잘 살고 싶다면 이미 살아본 인생인 양 살아가면 된다. - P214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별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예요"라고 연구원은 말한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바라보는 것, 그것이 관찰자로서의 책임감이 아닐까요" - P238

프랑스의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는 이런 문장을 썼다.

다음 여덟가지가 사랑의 결과다. 사랑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고통을 진정시키고, 죽음을 떼어놓고, 사랑과 관련되지 않은 관계들을 해체시키고, 낮을 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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