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정원 -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된 19개의 시크릿 가든 정원 시리즈
재키 베넷 지음, 김명신 옮김, 리처드 핸슨 사진 / 샘터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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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잘 정돈된 잔디밭이나 텃밭을 보며 멋진 자연만을 음미했다면, 이제는 '저렇게 가꾸려고 엄청 고생했겠구나!' 생각한다. 틈틈이 잡초도 뽑고, 제 때 거름주고 약을 쳐야 지금 보고있는 그 모습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방치해두면 벌레 먹고 시들고 잡초가 무성해진다. 그래서 '작가들의 정원'이라는 책을 보며 처음에는 '이렇게 가꾸다보면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할텐데......' 생각했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은 대부분 정원사를 고용했지만, 짬이 날 때마다 직접 정원을 가꾸곤 했다. (11쪽)' 라는 글을 읽고 나서야 작가와 정원의 적당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끔씩만 정원을 직접 가꾸고 글을 쓰거나 구상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작업실로의 정원은 최상의 환경임을 이 책에 담긴 사진을 보며 짐작해본다.

 

정원은 작가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온갖 번잡함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글을 쓰는 장소를 제공한다. '작가의 은신처'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원에 되살리고 싶어 한 이미지다. (9쪽)

집중을 방해하는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서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얼마나 근사한가. 반드시 그런 장소가 필요할 것이다. 예술적 영감을 주는 장소와 시간이 있기에 소설 속 세계는 현실감 있게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영국 작가들의 집과 정원을 보여준다.

제인 오스틴, 루퍼트 브룩, 존 러스킨, 애거서 크리스티, 베아트릭스 포터, 로알드 달,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윈스턴 처칠, 로렌스 스턴, 조지 버나드 쇼, 테드 휴즈, 헨리 제임스와 E.F. 벤슨, 존 클리어, 토머스 하디, 로버트 번스, 윌리엄 워즈워스, 월터 스콧, 러디어스 키플링

총 19개의 시크릿 가든으로 초대받는 시간이다.

 

익숙한 작가든 생소한 작가든 상관없었다. 주로 작품으로 접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모르고 있는 부분도 많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정원을 매개로 작가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꽃과 과일, 정원의 파릇파릇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집이나 정원은 그곳에 거주한 모든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140쪽)'는 이야기가 맞아떨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집이나 정원을 통해 작가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작가와 정원에 관한 글이 끝난 후 '그 작가 그 장소 그 작품'이라는 글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는 '영국 정원 여행 정보'가 실려있는데, 웹사이트와 주소가 안내되어 있다. 모든 집과 정원에는 휴무일이 정해져있으니 해당 웹사이트에서 입장 시간을 확인하라는 주의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정원 한두 곳쯤은 마음에 품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여행길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독자의 그런 마음을 알아서인지 '영국 정원 여행 정보'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제, 당신의 정원을 만들 준비가 되었나요?'라는 질문으로 마친다. 누구든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정원 하나쯤은 만들어 놓으면 좋지 않을까. 크든 작든 상관없고, 나 혼자만의 정원이든 동네의 정원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나의 정원이 될 것이니 말이다. 작가들의 정원을 살펴보며 정원이라는 장소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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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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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에 대한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옛시절에 대과는 단순암기 또는 객관식 시험이 아니었으리라 짐작만 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시험이 치러진지는 알지 못했다. 그 시절 시험에 대한 호기심에 이 책을 선택했는데 기대 이상의 책이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 사는 곳의 문제점은 엇비슷한 것인가. 오늘날 사람들이 읽어도 의미가 있을 글들을 가려 뽑아서 엮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답변했을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 이 책 『책문』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태완. 율곡 이이의 책문을 텍스트로 삼아 실리사상을 연구하여 철학 박사학위를 받아싿. 현재 광주광역시 소재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책문』은 조선시대 고급공무원 선발 시험인 대과의 마지막 단계에서 출제한 시험과 답안의 한 유형인 책문 가운데에서 오늘의 산재한 정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만한 의미 있는 글들만 가려 뽑아서 엮었다. 조선의 왕들은 책문에서 당대에 해결해야 할 정치, 문화, 제도개혁, 인사, 치안, 국방, 외교, 교육, 조직혁신 등의 온갖 현안을 묻고 선비들은 정치의 원칙과 학자적 소신에 입각해 거침없이 대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원칙과 도덕이 부재한 우리 시대의 권력의 성찰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있다. (책날개 中)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바른 정치를 구현하는 방안, 공정한 인재 등용의 원칙, 공약을 끝까지 지키는 정치, 이상 정치를 실현하는 방법, 부국강병을 위한 인재 등용, 정부 조직 개혁 방안, 난세의 국가경영, 국가 위기 타개책 등 국가의 큰 틀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부터 외교관의 자질, 올바른 교육의 길, 지도자의 리더십 등의 교육과 개인의 문제, 인생무상이나 술의 폐해를 근절하는 방법 등의 삶 속의 문제 등을 다룬다. 사회 현안에 대해 젊은 지식인 선비들이 어떤 대책을 제시하였는지 엿보는 시간이 된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옛사람들의 책문에서 찾아보는 시간이다.

 

책문이란 무엇인가? 책문은 시대의 물음이다. 시대가 출제한 시험이다. 곧 당대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에 빗대어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대해 응시자가 자기의 역사의식, 정치철학, 인문교양을 총망라하여 해법을 제출한다. 그리하여 책문이란 권력을 갖고 권력을 행사할 사람의 권력에 대한 이념과 철학, 권력 운용의 역량과 비전을 묻는 시험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를 이끌어간 수많은 문신관료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간에 적어도 관료로 출사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때는 관료로서 자기가 처한 시대와 역사에 대한 성찰, 학자관료로서 세계를 보는 자기의 세계관을 책문을 저술함으로써 치열하게 점검하고 성찰했다. (13쪽)

옛지식이 그저 책 속에 담겨있기만 할 때에는 우리에게 별 의미를 줄 수 없다. 지금 시대의 눈으로 새롭게 해석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할지 판단할 때, 오랫동안 책 속에서 잠자고 있던 글은 생생하게 살아나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현안을 떠올리고 그에 따른 대책을 건져보게 된다. 솔직담백하고 다소 공격적인 발언에 속이 시원해진다. 그러면서도 대과에 응시하는 만큼 두려움도 함께 살짝 비치는 모습도 수험생의 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시대적 배경, 책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일화를 흥미롭게 담은 '책문 속으로' 등 읽을 거리가 풍부한 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옛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답변을 했을지 궁금한 마음도 충족시키면서 그밖에 예상치 못했던 지적 호기심까지 채워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시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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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모험 - 빌 게이츠가 극찬한 금세기 최고의 경영서
존 브룩스 지음, 이충호 옮김, 이동기 감수 / 쌤앤파커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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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 보면 눈에 띄는 말이 있다.

"내가 읽은 최고의 경영서"

The Best Business Book I've Ever Read

빌 게이츠

어떤 책이길래 이렇게 찬사를 보냈는지 궁금했다. 경영에 관한 두꺼운 책이기에 나중에 시간될 때 읽어보려고 찜해놓기만 했는데, 그 추천사가 아른거려 결국 읽어보게 되었다. 책장을 넘겨보니 이 책이 요즘에 출간된 책이 아니다. 한국어판으로는 2015년에 출간된 것이지만, 미국에서 1959년에 처음 출간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어지는 추천사와 '시대가 바뀌어도 반드시 읽어야 할 경영의 고전'이라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이동기 교수의 감수의 글이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다.

빌게이츠가 자신의 홈페이지와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내가 읽은 최고의 경영서"라고 추천하면서 43년 만에 다시 출간된 경영서의 고전

그 이야깃속으로 들어가보는 시간이다.

 

사실 이 책이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기에 아무래도 지금 읽기에는 거리감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며 읽었는데, 생각보다 난해하지는 않았다. 경영서다운 책이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12편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경영서의 고전임을 몸소 깨닫게 된다. 특히 빌 게이츠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저널리즘 명예의 전당'에 올릴 만하다고 극찬한 바 있는 5장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에 집중하게 된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게 한 공은 빌 게이츠가 차지해야겠다.

 

이 책에는 총 12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에드셀의 운명','누구를 위한 세금인가?','비공개 정보가 돈으로 바뀌는 순간','주식 시장을 움직이는 손','제록스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선량한 고객 구하기','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하는 회사','마지막 코너','기업가의 본질은 무엇인가?','주주들의 계절','개는 물기 전에는 모른다','파운드화 구출 작전'이라는 제목의 이야기 12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을 보다가 궁금한 내용에 먼저 손이 가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읽기도 했다. 읽다보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되고, 그 시절이나 지금에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안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을 건져내게 된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이동기 교수의 '감수의 글'에 나오는 문장을 보며 경제경영에 관한 전문가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해본다. 관련된 직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며 그 안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고, 일반인이라도 한 번쯤은 읽어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폭을 넓히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한 번 읽을 책이 아니라 책장에 두고 필요한 부분을 다시 찾아 읽고 싶은 책이다.

지금 기업 경영에 몸담고 있는 기업 임직원들, 경영, 경제에 관심 있는 전문가나 학생, 일반인들, 기업 또는 경제 관련 언론인들, 정부 정책 담당자들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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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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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중간부터인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로 채워진 책이었다. 그 책은 나른한 오후에 졸음이 올 듯 말 듯한 상태로 책을 읽어나가다가 보면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잠에서 확 깨는 순간이 오는 그런 책이었다. 그때의 그 감동을 잊지 않고 '김연수'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이번에는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어보게 되었다. 소설가의 소설은 '나중에 읽어야지'라는 변명을 하며 미뤄두고 산문을 먼저 읽는 것은 소설읽기는 늘 뒤로 미루는 나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에도 산문이 더 익숙하고, 소설가 김연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먼저 이 책의 제목 '지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다보니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김연수 소설가는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뛰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일본 만화 <좋은 사람>에 나오는 조언, 즉 "가장 천천히 뛴다고 생각하면 가장 빨리 뛸 수 있어."를 읽고 크게 깨달은 뒤 매일 달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작가는 달리기를 통해 깨달은 점을 알려준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9쪽)

 

이 책의 뒷표지에 보면 이 책의 취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소설가 김연수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체험한 사랑, 자연, 문학, 사람 그리고 지지 않는다는 말이 담겨있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에서도 그의 세상 보는 섬세한 눈을 엿볼 수 있었고, 생활 속의 어떤 사소한 소재라도 이야깃거리로 탄생되는 연금술에 감탄하며 읽어나갔다. 말 그대로 '이런 것도 글로 쓸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남들이 별 일 아니라고 넘기는 일에도 탁월한 관찰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가볍게 툭 던지는 말에서 삶의 철학을 담아낸다. 이 책을 읽으며 달리기에 대해 다양한 방면에서 접근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도 직접 달리기를 취미생활로 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힘든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근육통과 지루함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러너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달리기는 고급 예술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절망을 좋아하는 척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인간으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삶은 고급 예술이다.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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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지음 / 열림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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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한부를 선고받으면 낯선 병원에서 죽을 때까지 치료받고 병마와 싸우다가 눈을 감게 된다. 병때문이 아니라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게 삶의 끈을 놓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현대의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병에 걸리면 돌아다니지 말고 병원에서 치료받아야한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아온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대안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치의는 내게 객사를 권했다."

살아야 한다, 살 수 있다, 이 믿음 하나로 시작된 여행.

이 책의 띠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객사'라는 말은 다소 자극적인 단어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치의가 무책임하게 한 말이 아니라 충분히 저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게 삶의 끈을 놓지 않도록 최대한의 조언을 해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때의 상황이 어땠고 무슨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 상황에는 그것이 적합한 처방이었고 그렇게 했기에 삶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떠났다기보다는 도망쳤다는 말이 맞겠다. 이미 파산한데다가 가정이 해체되어 기존의 삶을 버릴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주치의의 말대로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난 지 벌써 스무 해.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린 것은 그러므로 잡스의 '부유富裕'가 아닌 내가 선택한 '부유浮遊'였던 셈이다. (25쪽)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부유浮遊'하다가 생체의 '조화'를 되찾게 되었다고, 그렇게 죽음을 삶으로 바꾸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27쪽)

 

'단테처럼 여행하기'라는 제목도 시선을 끈다. 책을 펼쳐들면 이런 말이 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찾아 떠나듯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긴 여행길에 나섰다.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읽다보면 나온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사랑하면서도 고백하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괴테도 샤를로테를 사랑하면서도 떠나보냈다. 바이런도 진정 사랑한다면 떠나라고, 떠나보내라고 했다. 주치의는 여행을 떠날 때에도 단테나 괴테처럼 사랑을 생각하며 여행하라고 했다. (55쪽)

 

이 책은 전규태 산문집이다. 그의 첫 여행, 어린 시절의 생각, 여행지에서의 생각,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담긴 책이다. 어찌보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니 한정된 삶을 보다 깊게 누리기 위해서는 여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여행이 어떻게 우리를 살게 하는지, 혼자 여행하기가 어떻게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따금 훨훨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면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활력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얻을 수 있다. 혼자 여행할 때면 자기 모습을 '유체이탈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된다. 그 눈으로 보면 나그네의 모습은 얼핏 쓸쓸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많이 괴로워하다가 길을 나선 나그네가 어느샌가 여느 사람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함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50쪽)

 

여행을 통해 우리는 '부유浮遊하는 소우주'를 만나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도 접하게 되지만 못 보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행을 하면 일상에서는 뜨이지 않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마음의 감각을 되살리며, 스스로도 놀랄 만한 새로운 발견과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행은 꿈꾸는 중임을 알면서 꿈을 꾸는 자각몽 같기도 한 것이고, 우리에게 실존의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보물이다. 이 책을 통해 여행에 대해 색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고 가치를 발견해내는 시간을 갖는다.

 

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돌아온 후 이를 반추하면서, 나는 나의 남은 시간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세상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자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213쪽)

여행은 여행자를 한껏 성장시킨다. 마음은 좀더 너그러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넓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여행과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하며 존재할지 조금은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이 책은 죽음의 경계에서 건져올린 사색의 결정체이자 여행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담아낸 폭포수같은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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