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 - 장수 세포를 깨우는 메츠 건강법
아오야기 유키토시 지음, 김현화 옮김 / 헬스조선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제목에 혹해서 읽어보게 된 책이다. 얼마나 핑계대기 좋은 문장인가! 운동을 하려고 해도 사실 흥미를 붙이기는 어렵고, 요즘처럼 가만히 있어도 축축 늘어지는 때라든지 추워서 꼼짝도 하기 싫을 때에는 더 그렇다. 이왕 운동량이 현저히 적은 나에게 잘 하면 좋은 이론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궁금해서 이 책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를 읽어보게 되었다.

 

열심히 운동할수록 건강해진다는 무서운 착각! 우리는 그런 착각을 하고 살아간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무서운 착각'이다. 적당한 정도의 운동이 아니라 운동에 혹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건강을 해치는 줄도 모르고 당연히 더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운동을 꾸준히 한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이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왜 장수하는 사람은 운동하지 않을까?!"

수명을 단축시키는 운동,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의미 없는 운동은 지금 당장 멈춰라! 몸은 탄탄해져도 체내는 점점 노화한다. 연령과 질병에 맞는 최적의 운동법은 따로 있다. (책 뒷면 中)

 

세상에는 건강을 평생 약속해주는 운동이 있는 반면,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운동도 존재한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의학박사 아오야기 유키토시. 도쿄 건강장수의료센터연구소 노화제어연구팀 부부장이다. 군마 현 나카노조 마을에서 65세 이상의 교령자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나카노조 연구'가 그 집대성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다보면 이 책이 운동무용론이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무리한 운동에 대해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동에는 나이에 맞는 '최적의 강도'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약하거나 지나치게 강해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를 바로 '중강도 운동'이라고 부르며, 기준이 되는 단위는 '메츠'로 나타냅니다. 따라서 필자는 이것을 '메츠 운동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중략)...20대가 무난히 소화해내어 건강해지는 운동을 60대 이상의 고령자가 하면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60대 이상에게 가장 적합한 운동을 20대가 아무리 지속적으로 한다고 해도 건강에는 거의 의미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8쪽)

 

이 책은 맹목적이고 무의미한 운동 예찬론을 살짝 꺾을 수 있는 일화들로 시작된다.'1일 1만보'를 실천했는데도 질병에 걸린 사람, 철인 3종 경기로 동맥경화에 걸린 남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걷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걸으면 걸을수록 건강해진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라고 일러준다. 이들에게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냐면 '운동의 질'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은 하지 않아도 문제이지만, 너무 열심히 해도 문제가 된다. 건강해지겠다고 철인3종경기를 취미로 한 사람이 동맥경화를 일으키게 된 원인은 고강도의 거친 운동에 있었다. 고강도 운동을 하면 세포를 공격하는 활성산소가 체내에 과도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체력을 되돌릴 수 있다는 오해가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말한다.

 

운동은 하지 않아도, 너무 열심히 해도 문제가 되는데, 그럼 어떻게 운동을 해야할까? 이 책에서는 중강도 운동으로 건강하고 질병에 걸리지 않는 몸으로 만들 것을 이야기한다. 운동의 강도를 '메츠(METs)'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메츠는 1메츠에서 활동량이 가장 많은 20메츠 이상까지 나누어 소비 칼로리가 적은 순서부터 저강도, 중강도, 고강도로 분류한다. 활동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신체에 오는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60쪽) 그런데 이 메츠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에 따라서 중강도의 값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60대 이상은 3.0~4.9메츠, 40~50대는 4.0~5.9메츠, 20~30대는 5.0~6.9메츠가 중강도 운동이므로 연령에 맞춰 해당되는 중강도 운동을 실시할 것을 권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동'이라는 것 이외에도 생활 속에서 중강도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활동의 종류도 알려주기에 어느 정도의 강도에 맞춰 몸을 움직일지 판단하게 된다. 주말만 해도, 쉬엄쉬엄 해도 충분하다는 점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큰맘 먹지 않더라도 누구든 무리없이 효과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건강법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다룬 책을 접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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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J의 다이어리
전아리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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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쏙쏙, 아주 잘 들어온다. 오늘은 비까지 살짝 내려주니 습기까지 더해져 햇살이 더욱 쨍쨍하고, 돌아다니자니 햇빛이 따가워서 다닐 수가 없는 날씨다. 뜨거운 정도를 넘어서서 따갑다. 도로 위에 계란후라이라도 할 수 있을 듯한 날씨다. 이럴 때에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다. 소설책이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고 한 손에 쥐고 슬슬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을 여름 더위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한 손에는 책, 한 손에는 맥주. 이 책이 여름밤에 읽기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 J의 다이어리』는 Daum 작가의 발견 2nd 7인의 작가전 선정작이다. 2015년 3월 22일부터 연재 되었던 작품을 기본으로 하여 편저를 거친 도서이므로, 출간된 도서의 내용은 오로지 책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전아리. 2008년 『직녀의 일기장』으로 제2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2009년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로 제3회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작가의 소설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이 영화로도 제작된『김종욱 찾기』이다. 인상적인 작품이었기에 이 책에 대한 호감도 급상승했다. 이 책에서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해서 손에 쥐자마자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간호사 J는 <라모나 병원>에 취직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나몰라 병원>이라 부른다. 어지간히 아파서 시내에 나갈 힘이 없거나, 단골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동네 사람들조차 개인병원에 갔으면 갔지, 이 병원은 못미더워 하는 편이다. 병원의 특성상 "코드 레드"도 다른 의미이다. 다른 병원이라면 코드 레드는 환자가 위독할 때나 쓰이는 신호이지만 이 병원에서는 주로 환자들의 난리로 간호사들이 위험해질 때 쓰이는 편이다. 이곳에는 꾀병을 앓으며 입원하는 할머니 환자들을 비롯하여 자해공갈을 업으로 삼아 입원한 사람, 열여덟 살 미소년 중민이 등 환자인 듯 환자 아닌 환자같은 사람들이 입원하고 있다.

 

간호사 J, 이름은 정소정이다.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똑같은 이름. 간호사가 된 이유는 바람 핀 애인에 대한 복수심때문이었는데, 왜 간호사가 되었냐는 물음에 누구에게나 간단히 대답한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돕고 사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속사정과 다르게 남들 앞에서는 정답처럼 내뱉는 말에 살짝 웃음이 난다. 누구든 자신의 직업에 대해 너무나도 솔직할 수는 없을테니, 비슷한 사정의 사람들은 이 말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모습, 차차 회복되며 죽을 먹던 환자가 밥을 먹게 되는 모습, 쾌차하여 즐겁게 퇴원하는 모습만을 보는 게 나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막상 병원이란 곳은 목숨을 구하는 만큼 잃는 사람도 있다. 그곳은 즐거운 나의 집이 아니라, 신음과 비명, 외로움이 교차하는 삶과 죽음 사이의 좁은 방에 불과한 것이다. 그 사실을 각성해야 한다는 것에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58쪽)

 

이 책에서 <나몰라 병원> 아니, <라모나 병원>에서 간호사 J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볼 수 있다. 간호사 J의 사생활을 비롯한 남녀문제와 인간의 외로움 등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포괄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내용이 술술 읽히는 적당한 가벼움이 있어서 한여름에 읽기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6인실 병원에 입원하면서 여러 환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것이 모티브가 되어 소설 작품이 탄생했다.

아프면 모든 게 소음으로 들린다. 마음이 뒤틀리고, 걱정해 주는 말들이 그저 성가시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한편으로는 예민해진 만큼 모든 말들이 뇌리에 남고 사람들의 작은 동작, 표정, 손길을 몸에 새기게 된다. 몸이 좀 나아진 뒤에 그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참고해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214쪽_작가의 말 中)

 

한 손에 쥘 수 있는 편안한 크기에 적당한 페이지, 이 책으로 무더위 속에서 적당한 피서를 즐겼다. 누구 하나 혼을 쏙 빼놓을 듯한 매력은 없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듯한 인물에 현실감을 느끼고, 좌충우돌 그들의 삶에 함께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손에 쥐면 끝까지 읽어나가게 하는 작가의 능력을 보니 왜 천재작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젊은 작가의 젊은 시선이 상큼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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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란 무엇인가 - 데카르트, 칸트, 하이데거, 가다머로 이어진 편견에 관한 철학 논쟁을 다시 시작한다
애덤 아다토 샌델 지음, 이재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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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또는 '선입견'이라는 것을 깨뜨려야할 고정관념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편견은 없애고 또 없애야 하는 것인데 나도 모르게 자꾸 생기고 있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 그것 또한 나의 편견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 책 자체가 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내 안의 편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도구가 되었다. 그동안 생각하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논리적으로 접근해서 또다른 깨달음을 얻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고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애덤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마이클 샌델의 아들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4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출판한 본서 『편견이란 무엇인가Yhe Place of Prejudice』에서 그는 도덕 판단, 역사 이해, 그리고 과학 지식에서 편견의 역할을 탐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하이데거, 가다머에 이르는 철학사를 토대로 바르게 이해된 편견은 명료한 사고에 대한 불행한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명료한 사고의 필수적 측면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의 이해로부터 모든 문화적, 역사적 선개념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오히려 부박함과 혼란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책날개 中)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유명세와 그의 아들이라는 점이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서 읽어보도록 유도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김선욱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추천의 글에서 보더라도 애덤의 책은 아버지 마이클의 책과 독립된 저술이다. 또한 아버지 마이클의 유명세로 나처럼 궁금한 생각에 읽어보게 되는 독자가 많으리라 생각된다. 어떻게든 편견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된 것이 중요한 일이다.

 

애덤 샌델은 우리가 편견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체계 있게 지적하면서 정당한 편견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작업을 '비관여적 판단'과 '정황적 판단'이라는 두 개념의 정립을 통해 솜씨 있게 수행하고 있다. 편견은 안 좋은 것이므로 편견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다. 그런데 애덤은 편견 가운데는 정당한 편견이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우리가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편견임을 알려 준다. (7쪽_김선욱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추천의 글' 中)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된다. 편견에 반대하는 주장, 정황적 이해의 옹호, 정황적 행위, 역사 연구에서 편견의 역할, 도덕 판단에서 편견의 역할, 편견과 수사, 이런 내용이 총 6장에 걸쳐 이야기되고 있다. 고대 철학에서부터 계몽사상과 그 비판자들, 헌법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폭넓고 깊게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먼저 편견에 대한 편견부터 정리해보며 이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다양한 각도로 편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전혀 다른 저술 방식을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잘 표현해낸 책이다. 이 책은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을 곱씹으며 의미를 해석해나가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앞으로 다시 돌아와서 읽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이해한 부분이 그 의미가 맞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편견에 대한 치밀하고 흥미로운 해석을 담은 애덤 샌델의 철학 대중서'라는 말이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학적인 갈증을 해결해주며 책을 읽어내는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편견에 관해 한 권의 책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해보는 시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베이컨, 데카르트, 칸트, 헤겔, 애덤 스미스, 하이데거, 가다머 등 고대 철학에서부터 계몽사상과 그 비판자들, 하이데거와 가다머로 대표되는 독일의 해석학 전통, 그리고 헌법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좀더 깊고 어렵게 접근한다면 전문가들에게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이 정도라면 철학 대중서라 이름 붙이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편견에 관한 철학 논쟁에 조용히 참관해본 느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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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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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것은 부담스럽다. 저질체력으로 올라가는 것도 힘들고 내려오는 것은 다리가 풀려서 더욱 힘들다. 그 다음 날은 물론 며칠은 앓아 누울지도 모른다. 물론 산에 오르면 정말 좋다.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좋은 장소인데다가 그동안과는 다른 시야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산에 오르지 않을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이게 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나에게는 다른 일이 더 흥미로운가보다. 그러니 더 높고 험준한 산인 '히말라야'는 이번 생에는 절대 가지 않을 곳으로 손꼽을 수 있다. 춥고 힘들고 부담스러운 산이다. 돈들이고 시간들이며 고생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소설가 정유정이 히말라야 여행을 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소설가 정유정의 첫 에세이다. 프롤로그를 보며 나도 이 상황이라면 여행을 가고 싶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이 특별하다.

들개처럼 쏘다니고 싶을 때마다, 일이 힘에 부칠 때마다 떠올리던 특별한 곳이 있었다. 다섯 번째 출간작이자, 등단작인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의 특별한 곳이기도 했다. 그를 새처럼 자유롭게 했던 세상, 눈멀어가던 순간까지 그리워하던 신들의 땅. 안나푸르나. (11쪽)

욕망이라는 엔진이 꺼져버린 상태, 불씨까지 타버린 잿더미가 된 기분, 결국 정유정 작가는 "나 안나푸르나 갈 거야."라고 통곡한다. 새벽 3시에.

 

그 이후 동행자를 구하고 안나푸르나 환상종주를 계획한다. 안나푸르나에도 여러 가지 코스가 있는데, 마르상디 강을 따라 오르는 동부 마낭 지역, 칼리간다키 강을 따라 내려오는 서부 무스탕 지역. 동에서 서, 혹은 서에서 동으로 도는 것이 환상종주다. '환상'이라는 것이 '환상적이다'라고 할 때의 의미인 줄 알고 읽었는데, 그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뜻을 오해했기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진 것도 사실이다. 정유정 작가라면 특별히 환상적인 여행을 했을 것이라는 기대감 말이다.

 

환상적인 내용이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여행기였다. 좌충우돌 투덜투덜, 게다가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것이 묘하게 재미있어서 빼놓지 않고 읽게 만든다. 비행기를 오래 타서 마살라향이 이상했던 것이 아니라, 그 향이 맞지 않아서 계속 음식 선택에 고충을 느꼈던 것이다. 티베트 음식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 툭바(티베트 칼국수)를 먹었지만 지나치게 짜고, 너무 걸쭉하고, 어김없이 강렬한 마살라 향을 풍겼다. 결국 커피믹스 두 개를 타서 마시는 상황,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얼마나 맛있었을까. 또한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러면서 노고단 대피소에서 남편과 함께 먹은 라면을 떠올리는 장면도 웃음이 나면서 뭉클했다. 그런 고충이 있었기에 마살라 없이 볶음밥을 시켜 먹고 성공한 장면도 왠지 뿌듯하다.

 

그녀의 솔직담백한 여행기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간다. 읽는 이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느낌이다. 끙끙대며 고개를 올라가고 아등바등 헉헉거리며 뒤따라가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 것이 싫어서 산에 오르기를 주저하는 나 자신을 보는 듯하다. 분명 다녀오면 인생에서 커다란 점 하나를 찍는 획기적인 기억으로 남을테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할 것이 뻔하다. 낯선 환경에서 변비로 고생하는 장면, 불면증과 두통 등 고산병인지 고산병이 아닌지 모를 증상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여행 중에 몸이 불편하면 마음도 편안하지 못한 것을 떠올린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그녀들의 여행 일정에 동참하며 책을 읽어나간다.

 

책 중간 중간에 히말라야의 웅장한 자연을 사진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점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히말라야 환상종주를 계획하고 실천하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 부분까지 여행 일정에 맞춰 써나간 글인데,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행 이야기를 쓴 것인데도 이렇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언젠가 또다시 배낭을 꾸릴 듯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에 동참한 듯 생생하고 유쾌발랄한 에세이를 읽게 되어 여행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책이다.

어떤 이는 여행에서 평화를 얻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삶의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이는 사람을 깨닫고, 어떤 이는 자신과 화해하기도 한다. 드물게 피안에 이르는 이도 있다. 나로 말하면 확신 하나를 얻었다. 나를 지치게 한 건 삶이 아니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링을 좋아하는 싸움닭이요, 시끄러운 뻐꾸기였다. 안나푸르나의 대답은 결국 내 본성의 대답이었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이었다. 결론적으로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는 다르지 않아싿. 달갑잖은 확신을 얻었고, 힘이 남아돌아 미칠 지경이라는 게 그때와 다를 뿐. 몇 년 후, 어쩌면 몇 달 후, 가까스로 얻은 힘을 전력질주로 써버리고 다시 히말라야를 찾아 올테지. 아니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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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1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심장을 쏴라, 영화에서 저 대사 마지막장면에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날아가죠. 책, 담아갑니다~
 
송곳 1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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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최규석 작가의『100℃』를 읽던 기억을 떠올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무거운 마음과 미안한 생각으로 그 책을 덮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불편해지는 마음이 느껴졌다. 처음 읽은 책의 여운이 깊게 남았기에 『울기엔 좀 애매한』도 읽어보았다. 가볍게 웃고 넘기기엔 마음이 무거워지고, 그렇다고 슬픔 속에만 빠져버리기엔 개그와 자학의 내공이 상당한 책이었으며, 말 그대로 애매한 현실을 느꼈다. 그 다음으로 읽은 『습지 생태 보고서』또한 유쾌하게 읽고 나서 뭔가 씁씁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이번에는 최규석 작가의 『송곳』을 읽으며 노동운동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송곳』은 2013년 12월부터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작품이다. 외국계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에 대한 대항을 좇는 웹툰 『송곳』은 한국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찬사를 받았고, 지금도 연재 중인데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3권까지이다.

 

먼저 이 책의 제목 '송곳'이라는 것이 어떤 뜻으로 쓰인 것인가 궁금해진다. 그 의미는 이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194쪽)

 

이 책 역시 최규석 작가의 작품 성향을 잘 반영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사소한 이야기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거창한 다른 세계에 있는 일이 아니다. 예전에 있던 일인 것만도 아니고, 지금 현실에서 불합리한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총대를 메고 앞장서는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이면서, 나또한 손해를 보면서까지 용기를 내어 앞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남들의 일에는 '왜 그렇게 하는가'라고 열을 올리지만, 정작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면 불의에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며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경우도 많으니 이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잘 모르던 것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이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건데 다 늙은 사람들 모아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독일은 초등학교에서 모의 노사교섭을 1년에 여섯번 한답디다. 요구안 작성, 홍보물 제작, 서명 운동, 연설문 작성까지.

프랑스는 고등학교 사회 수업 3분의 1이 교섭 전략 짜는 거라네. 학교에서 이런 걸 가르치니까 그런 나라들에는 판사, 교수 같은 사람들도 노조 만드는 거요.

경찰, 소방관뿐 아니라 독일이나 스웨덴 이런 데는 군인 노조도 있어요. 군대에 노조 있어봐. 군납 비리, 성추행, 의문사 이런 거 쉽게 되겠어요?

우리나라가 산재율은 최전데 산재 사망률은 최고야. 노조 없으면 죽기 전까지는 신고도 못한다는......(202쪽)

이 책의 추천사에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의 글이 있다. 그 말 또한

내 강의를 듣는 것보다『송곳』을 보는 것이 더 많은 공부가 된다.

이 말이 의심스럽다면 프롤로그부터 보시라.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송곳』은 현재까지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이 총 3권 세트이다. 이번에 1권을 읽어보니 다음 권도 궁금해진다. 속이 답답해지면서도 알아야 할 현실이다. 다음 내용도 읽어보며 송곳 같은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겠다. 무언가 애매하고 어찌해야할지 모르겠고, 나설 수도 나서지 않을 수도 없는 현실에서 송곳 같은 인간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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