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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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필연적으로 파괴를 동반한다. 파괴의 대상은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고 우리일 수도 있고 그들일 수도 있다. 소설가 구병모가 2025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절창>은 사랑으로 인한 파괴, 파괴를 위한 사랑 등 사랑과 파괴의 관계를 다각도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남편이 죽은 후 독서 교사로 일하며 혼자 살아가던 '나'는 어느 날 다소 수상해 보이는 취업 제안을 받는다. 어느 저택에 살고 있는 젊은 여자의 입주 교사가 되어 그와 함께 책을 읽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만 하면 지금보다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불안해하면서 제안을 받아들였고, 아니나 다를까 저택에 도착한 첫날부터 위험하기 그지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나'를 고용한 저택의 주인 '문오언'은 스스로를 사업가로 소개하지만 위험한 조직의 보스처럼 보이고, '문오언'과 함께 산다고 하지만 실상은 문오언이 감금하고 있는 듯한 '그녀'의 정체도 의심스럽다. 

사실 '그녀'에게는 신비하고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타인의 상처에 손을 대면 그의 생각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오래전 우연한 계기로 '그녀'의 능력을 알게 된 문오언은 보육원 출신으로 힘들게 살아온 '그녀'를 자신의 저택으로 데려와 원하는 걸 다 해줬다. 문오언이 '그녀'에게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자신의 상처에 손을 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뿐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문오언의 간청을 절대로 들어주지 않고, 문오언 역시 '그녀'의 거절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탁한다. 제발 나도 읽어달라고 말하는 남자와 결코 너만은 읽지 않겠다고 말하는 여자.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혐관 로맨스인데, 내가 이 소설에서 좋았던 건 이 두 사람이 아니라 화자인 '나'다. 

이 소설에서 '나'는 사실상 거의 마지막까지 문오언과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현재의 상태를 관찰하는, 두 사람의 관찰자 또는 목격자로 행위한다. 그러다 일종의 반전이 드러나면서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주변에 머무는 제3자가 아닌) 그 자신의 사랑을 하고 있는 주체임이 밝혀진다. 게다가 '나'의 사랑은 문오언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속박하고 자기 자신을 해치는 (사실상 협박이나 폭력에 가까운) 사랑이 아닌,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타인들을 이해하고 끝내는 그들을 해방시키기까지 하는, 더 큰 차원의 사랑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녀'의 초능력 속성은 구병모 작가가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 때부터 종종 작품에 초능력을 가진 인물을 등장시킨 것의 연장 같고, 겉모습만 보면 아무도 그가 그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캐릭터라는 점에서 '나'는 <파과>의 주인공 '조각'을 닮았다. 여성과 여성이 만나서 그들을 속박하고 통제하는 남성(권력)에게 대항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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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법 - 당신이라는 이야기 속으로
장은교 지음 / 터틀넥프레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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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즐겨 듣는 팟캐스트 목록에 <거북목 라디오>가 추가되었다. <거북목 라디오>는 출판사 터틀넥프레스에서 만드는 팟캐스트 방송으로, 2주에 한 번 목요일마다 업로드된다. 이 팟캐스트를 듣기 전부터 터틀넥프레스를 좋아했지만,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터틀넥프레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터틀넥프레스에서 만드는 책들도 야금야금 사서 읽는 중인데, 그중 하나가 신문기자로 지난 19년간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온 장은교 작가의 책 <인터뷰하는 법>이다. 


이 책은 인터뷰에 관한 교본 같은 책이다. 인터뷰 기획 방향 잡기, 기획안 만들기, 인터뷰이 섭외, 메일 쓰기, 인터뷰 진행, 인터뷰 정리와 콘텐츠 편집, 인터뷰 글쓰기와 최종리뷰 등 인터뷰의 전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나처럼 인터뷰 경험이 거의 없고 인터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인터뷰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라고 하면 기자나 아나운서, 작가 같은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에 따르면 인터뷰의 기본은 '질문'이고 질문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능력이다. 이 책에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온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지만, 저자의 경우 그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 보려고 한다. 


가령 저자는 어느 식당의 사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사전에 요청해 그가 출근하는 새벽 시간부터 퇴근하는 밤늦은 시간까지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그의 하루를 관찰한 적이 있다. 고작 몇 페이지 글을 쓰기 위해 하루를 꼬박 바치다니. 아웃풋 대비 인풋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대상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쓴 글과 그가 평소에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지 최대한 경험해 보고 쓴 글은 깊이와 울림이 다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다면 일단 내 몸부터 움직여야 한다. 


인터뷰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인터뷰어 자신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 내놓아야 한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맛집으로 소문난 떡볶이 가게의 사장에게 다짜고짜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해 줄 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딸이 입이 짧아서 다른 떡볶이는 안 먹는데 이 집 떡볶이만 좋아해요. 비결이 뭔가요?"라는 식으로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면서 질문하면 약간의 힌트 정도는 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인터뷰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인터뷰로 만나는 세계가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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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미래 - 편혜영 짧은소설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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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미래>는 2000년 등단한 소설가 편혜영이 2025년에 발표한 소설집이다. 편혜영 작가의 책 중에는 <아오이가든>, <홀>, <재와 빨강>을 읽었는데 하나같이 공포스러웠다. 이번에 읽은 <어른의 미래> 역시 공포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전에 읽은 책들에 비해서는 읽을 만했다. 이전 작품들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이 안 가는 내용이라서 공포스러웠다면, <어른의 미래>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다. 환상적인 장치를 빌리지 않고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상황만으로 공포를 자아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공포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냉장고>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야구부 소년이라든가, <어른의 호의>에서 자식이 있는 남자라든가, <깊고 검은 구멍>에서 신발과 우산을 고치는 수리공 등은 대단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같이 살던 할아버지가 죽고, 자식이 학폭 피해자가 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가 이상한 일에 휘말리는 등 의도하지 않았거나 의도한 일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내 주변에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를 보면서 불쌍한 마음을 품는 것이나 아직 나는 괜찮다고 안도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나, 어쩌면 선보다 악에 가까운 반응일지 모른다. 


어쩌면 공포는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만 생각해>에서 다리 부상을 당해 휠체어 신세가 된 여자는 부상 자체보다 오기로 한 남자 친구는 오지 않고 옆방 커플의 소리는 너무 잘 들리는 상황 때문에 심란하다. <한밤의 새>에서 직장을 관두고 남쪽 지방의 펜션을 인수하려고 시찰 겸 여행을 떠난 부부는 친절한 줄 알았던 주인의 다른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그들이 스스로 답을 정해 놓고 나중에 끼워 맞춘 이유인지도 모른다. <비닐하우스>에서 도시를 떠나 귀농한 남자는 범죄 사건 용의자가 시체를 묻은 곳이 하필 자신의 비닐하우스인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그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건,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장과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다. 


대부분의 공포는 불안과 연결되어 있고,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이윽고 밤이 다시>의 남자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고 발신자가 누구인지 몰라 불안에 떤다. <신발이 마를 동안>의 여자는 어느 비 오는 날 사무실을 방문한 외판원 남자와 훗날 부부의 연을 맺지만 그때는 그와 그렇게 될 줄 모른다. <아는 사람>의 여자는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에서 옛 동창으로 짐작되는 사람을 만나지만 자신이 왜 그를 기억하는지는 모른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여러 가지 의미로 공포스러운 존재인데 편혜영의 소설에서도 그렇다. <앨리스 옆집에 살았다>에서 아파트에 사는 한 남자는 수리 중인 옆집에 몰래 들어갔다는 의심을 받고 난처한 상황이 된다. <모든 고요>의 여자는 층간 소음에 시달리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정적을 맞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불안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불안한 도시의 일상과 도시인들의 심리를 날카롭고 서늘하게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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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루됨 - 인류학자의 세상 읽기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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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사회과학 책을 읽는 일이 뜸해졌다. 끽해야 여성학 책을 읽는 정도이고 그 외 분야는 좀처럼 안 읽는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문영의 책 <연루됨>을 읽는 동안 내용을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내가 만약 대학원에 가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계속해서 이런 책을 대량으로 읽고 분석하고 이런 글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다른 머리로 세상을 이해했을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그때와는 다른 존재일지도.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의 빈민, 노동자, 청년, 노인, 여성, 장애인, 원주민, 이주민, 지방, 비인간 문제에 대해 총 64편의 글을 통해 소개한다. 제목의 '연루'라는 단어는 '잇닿고, 인연을 맺으며, 묶어내는 감각'을 의미한다. 이는 권력자들이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각각의 사회 집단을 분리하고 배제하고 차별하고 거부하는 것을 대중이 어떻게 저항하거나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저자가 내린 일종의 답이자 대안이다. 저자와 같은 학자, 연구자들이 하는 비판 역시 통치 권력에 대한 저항 및 탈예속화의 실천이 될 수 있으며, 비판이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유학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중국 이야기도 많이 들려둔다. 저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그나마 가진 지식도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얻은 왜곡, 편향된 정보뿐이라 안타깝다고 토로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중국에 대해 잘 아는 저자도 최근 중국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분통이 터질 때가 많지만, 중국 정부가 싫다고 중국 전체를 싫어하는 건 (한국과도 관련이 깊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 예술 등에 대해 알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다. 일부러라도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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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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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은 소설가 최진영이 쓴 99편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일기의 시작 지점에서 저자는 장편 소설 집필을 멈춘 상태이고, 아직 제주에 살고 있으며, 응원하는 야구 팀의 경기를 보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하루빨리 집필을 재개해 원고를 넘기고 독자들을 만나고 싶지만, 마감이 임박한 다른 원고들을 써내느라 바쁘고, 제주와 서울을 오가느라 몸도 힘들고, 응원하는 야구 팀의 경기 결과에 따라 마음이 요동쳐 집필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일견 반성문 같기도 한 일기가 한동안 이어지다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그동안 열심히 마감을 쳐낸 단편 소설과 교정을 본 개정판 책들이 세상에 나오고, 제주에서 육지로 이사하고, 응원하는 야구 팀이 역대급 성적을 낸다. 장편 소설 집필에도 속도가 붙는데, 그렇게 완성된 책이 2023년에 나온 <단 한 사람>이다. 저자처럼 오랫동안 글을 써온 작가에게도 글 쓰는 일은 늘 어렵고, 어려워도 계속 쓰다 보면 어떻게든 끝이 난다는 걸 여실히 알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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