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스 킹!!!
김홍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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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구'는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런 마을에 어느 날 '킹 프라이스 마트'가 생긴다. 킹 프라이스 마트란 무엇인가. 그것은 천재적 장사꾼 혹은 최악의 사기꾼으로 불리는 '배치 크라우더(본명 박치국)'가 세운 창고형 마트로, 천구는 왜 이런 대형 상업 시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허름한 시골 마을에 생기는지 의문을 품는다. 한편 천구의 엄마이자 마을의 '탑티어' 무당인 '억조창생 이진솔'은 멀쩡한 몸으로 놀고 먹는 막내아들 천구를 보다 못해 킹 프라이스 마트에 취직시키는데 여기에는 모종의 음모가 있다. 이를 알 리 없는 천구는 손님들의 부당한 요구를 처리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데...


김홍의 장편소설 <프라이스 킹!!!>은 제29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에는 기발함을 넘어 엉뚱하게 느껴지는 설정들이 다수 나오는데, 처음에는 좀 억지스럽다고 느껴졌지만 나중에 보니 무속인이 정치인들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라든가, 돈으로 코끼리도 사고 득표율도 사고 사람의 마음도 사고 다 살 수 있지만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상태로('그냥' 신라면 다섯 박스를 하자 없는 상태로) 사는 건 어렵다는 게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웃펐다. 결국 천구는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 후에 엄마에게도 박치국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자기만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데, 정치 권력(엄마)과 자본 권력(박치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산다는 건 뭘까. 그게 가능할까. 나도 답을 찾고 싶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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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낙천적인 아이 오늘의 젊은 작가 50
원소윤 지음 / 민음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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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해서 관심 가는 책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서 읽는다. 원소윤의 <꽤 낙천적인 아이>는 저자에 대해 잘 몰라서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구입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이 책에 대한 반응이 좋은 걸 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읽어 보았다. 읽어보니 과연 반응이 좋을 만하다. 저자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서 그런지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다. 


저자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왔다. 서울대를, 그것도 종교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텐데 일부는 틀리고 일부는 맞다. 일단 서울대를 나왔다고 하면 부유한 집안에서 고학력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의 부모는 육체노동자이고 집안에 서울대는커녕 대학을 나온 사람도 손에 꼽는다. 조부모, 부모가 천주교 신자이고 저자도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녔지만, 저자의 부모가 종교 생활에 열심인 건 세 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오빠 때문이기도 하다. 눈앞의 딸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죽은 아들을 더 그리워하는 엄마 아빠를 원망할 수도 없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힘든 마음을 평생 안고 산다는 건 뭘까. 내 눈에 저자는 철이 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을 때 이미 철이 든 사람처럼 보인다. 


소설은 저자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과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솔직하게 보여준다(남자친구가 저자의 복통을 해결해 주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ㅋㅋㅋ). 다 읽고 나서 이 소설이 '소설' 맞나 에세이 아닌가, 자전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정답이 무엇이든 간에 이 책이 재미있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두 번째 책도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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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황종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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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은 이후로 츠바이크의 팬이 되어 그의 작품을 야금야금 찾아 읽고 있다. 그 책의 뒤를 이어 마찬가지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츠바이크의 단편집 <감정의 혼란>에는 네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네 편의 중편은 츠바이크의 작품답게 하나같이 극적이고 재미있다.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어머니에게 수작을 거는 바람둥이 남작 때문에 뜻하지 않은 모험을 하게 된 열두 살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불타는 비밀>, 인도네시아에서 의사로 일하다 귀부인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배에서 숨어 지내는 신세로 전락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아모크 광인>, 도박장에서 만난 청년을 구원해 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노부인의 이야기를 그린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국가적으로 인정 받는 학자가 과거에 품었던 비밀스러운 애정을 보여주는 <감정의 혼란> 등 모든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이다(넷플릭스 왜 보나, 슈테판 츠바이크 책 보면 되는데).


특히 <감정의 혼란>은 이성애 관계를 중점적으로 그린 앞의 세 편과 달리 (남성 간의) 동성애를 그린 점이 다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난봉꾼으로 지내다 우연히 듣게 된 강연 덕분에 영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마침 그 강연을 한 교수의 집에서 하숙생을 구하고 있어서 그 집에서 같이 살게 되는데, 점점 교수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일반적으로 스승이 제자를 바라볼 때의 눈과 다름을 느낀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주인공은 교수의 젊은 아내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관계의 변화를 꾀하는데, 그때 그의 본심이 무엇이었는지는 나중에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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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투맨 오늘의 젊은 작가 46
최재영 지음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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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중반의 시나리오 작가 '영호'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한,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호는 친분이 있는 피 PD로부터 3년 전에 쓴 <맨투맨>의 시나리오가 장편 영화로 만들어질 것 같다는 연락을 받는다. 기쁨도 잠시,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각색이 이루어질 건 불 보듯 뻔했는데, 피 PD는 각색을 맡은 시나리오 작가 '혜진'을 소개해 줄 테니 원작자로서 의견을 제시하라고 한다. 영호는 혜진과 기싸움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리 혜진은 영호와 마찬가지로 잘나가는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자신의 글에 대한 확신도 없고 창작에 대한 의욕이 많이 꺾인 상태였다. 그런 혜진의 모습에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본 영호는 이제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고 느낀다. 


최재영의 두 번째 장편소설 <맨투맨>은 오늘날 창작자들의 현실을 사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영호는 어릴 때 보고 가슴이 뛰었던 영화 <록키>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지만, 업계는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가 아닌 작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취향, 트렌드에만 신경 쓰고 그들의 비난, 외면을 받지 않는 일에만 골몰한다. 결국 영호와 같은 창작자들은 소비자들에게 더 많이 선택받으면서도 더 적게 비난받을 만한 작품을 만들라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영호는 이런 상황이 답답하지만 이 길 말고는 살 길이 없다는 생각에 더 큰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영호의 상황이나 감정은 작품 속 작품, 소설 속 시나리오 <맨투맨>에 반영되는데, 각각의 요소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식으로 서사가 전개, 발전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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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세계
이희주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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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대학 시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대학에서 나처럼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를 몇 명 만났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일본으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정작 나는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다. 뭐 지금도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살면서 외국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한 번도 안 해본 건 왠지 조금 아쉽기도 하고, 아직 젊다는 핑계로 앞뒤 안 재고 외국에서 살아보는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때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서 어디서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전부터 이따금 했던, 일본에서 살아보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오랜만에 다시 한 건, 최근에 읽은 이희주의 연작 소설 <사랑의 세계>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의 내용은 '일본에서 살아보기 - 희망 편'이 아니라 '절망 편'에 가깝기 때문에(돈 없고 외롭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는...) 일본에서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건 절대 아니고 일본 생활이 다 이럴 거라는 건 더더욱 아니지만,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의 결이라든가 종류, 깊이는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어릴 때부터 사용한 언어를 계속 쓰면서 살고 있는 사람은 알기 어렵고,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로 간접 경험할 수 있다고 해도 직접 체험과는 다를 테니 말이다. 

이 소설은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첫 번째 이야기 <탐정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대학 졸업 후 백수로 지내다 일본으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 '나'는 우연히 같은 편의점, 같은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또 다른 한국인 '지윤'과 친해지고 싶다. 그러나 히로스에 료코를 닮은 예쁜 외모 때문에 기숙사 앞까지 찾아오는 일본인(니카이도)이 있을 만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인기가 많은 지윤은 평범한 나에게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지윤과 똑같이 생긴 호스트가 어떤 젊은 여성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지윤의 실종 소식을 듣는다. 

두 번째 이야기 <여름>은 고교 동창인 '지은'의 초대로 일본에 와서 지내고 있는 작가 지망생 '효진'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지은은 일본에서 만난 또 다른 고교 동창 '지윤'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여성 '마이'와 친하게 지내는데, 효진은 이들이 평범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 마이는 지윤을, 지윤은 지은을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 관계의 최상위에 있는 지은은 (슬프게도) 파워 이성애자인 데다가 외모도 예뻐서 주변에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효진은 이들의 관계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고 관계 밖에서 관찰만 하는데, 효진이 이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때로는 혐오스러워하는 대목들은 이희주 작가가 이전 작품들에서 그려온 아이돌 팬의 세계, 아이돌 팬의 심리와도 이어진다고 느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 <또 하나의 신화>에는 <탐정 이야기>에서 지윤을 스토킹하는 음침한 일본인으로 등장했던 '니카이도'의 사연이 나온다. <또 하나의 신화>라는 제목이 재미있는데, 이 이야기가 또 하나의 신화라면 앞의 두 이야기 역시 신화이고, 거기서 신(神)은 지윤일까. 그렇다면 앞의 두 이야기는 신을 숭배하던 사람들이 신을 파괴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이희주 작가의 장편소설 <성소년>과 연결된다. <또 하나의 신화>에는 <탐정 이야기>, <여름>에 나오는 사랑과는 또 다른 문제적인 사랑이 등장하는데, 그냥 사랑 말고 문제적인 사랑에만 관심 있는 이희주 작가의 작품 세계가 너무 좋고, 작가님이 앞으로 또 어떤 문제적인 사랑, 미친 사랑, 미친 여자(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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